제리 스프링어를 상대해야 하는 정치인은 그를 공격하는 광고(상대 후보에 대한 비방을 담은 선거 홍보 영상, 즉 "attack ad"는 미국에서 선거철에 아주 흔하다–옮긴이)를 굳이 만들 필요가 없었다. 대부분 지역 케이블TV에서 하루 두 번, 한 시간씩 방영되는 제리 스프링어 쇼야말로 스프링어를 가장 효율적으로 공격하는 광고인 셈이다. 따라서 스프링어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동안 그의 선거 참모 마이크 포드는 중요한 질문, '제리 스프링어는 제리 스프링어 쇼라는 장애물을 넘을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얻으려 했다.

스프링어는 정치인으로서 회복이 불가능한 선을 넘은 것일까?

포드는 잠재적 유권자 포커스 그룹을 만들고 그들에게 스프링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대신, 스프링어가 비판받을 만한 일들, 즉 그와 관련한 좋지 않은 내용들을 솔직하게–그리고 비방 광고에 등장하는 것처럼 낮은 목소리를 사용해–들려주었다. 그리고나서 스프링어의 개인사(bio)를 주었고, 마지막으로 스프링어가 카메라 앞에서 선거 쟁점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랬더니 포커스 그룹은 실험 전에는 스프링어에 대해 나쁜 인상으로 시작했어도 결국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호의적인 의견으로 바뀌었다. 어느 지역에서 실험해도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 그에 관한 나쁜 얘기는 하도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가 진지한 정책 이야기를 할 경우 처음 듣는 얘기라 그에 대한 인상은 좋아졌던 것이다.

(이미지 출처: The Globe and Mail)

하지만 유권자들이 스프링어의 출마를 지지하는 데는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었다. 그들은 스프링어가 제리 스프링어 쇼를 그만해야만 지지할 수 있다고 했다. 제리 스프링어에 대해 새롭게 생긴 유권자의 호감은 제리 스프링어 쇼라는 장애물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진 셈이다. 문제는 그가 방송사와의 계약 때문에 상원의원 선거 일정에 맞춰 방송을 중단하는 게 불가능했다는 것.

결국 스프링어의 정계 복귀 시도는 실패하게 된다.

그가 하고 싶었던 말

스프링어는 정계에 돌아가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지를 오래 생각해 왔고,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걸 설명했다. 핵심은 이랬다. 공화당 지지자나, 민주당 지지자나 정부의 존재 목적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정부가 경찰과 군대를 유지하고, 테러리스트를 막는 일을 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민주당 지지자들은 그런 물리적 폭력이 아닌 다른 폭력으로부터도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믿는다.

스프링어: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게 그런 폭력입니다. 직장을 잃으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고, 건강보험을 잃게 됩니다. 그럼 내가 먹어야 하는 약과 아이들이 입을 겨울 외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거죠. 민주당의 존재 이유는 경제적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보호하는 데 있습니다. 물리적 폭력 외에 경제적 폭력으로부터도 말이죠."

인터뷰어: "지난 10년 가까이 쇼를 진행해 보시니 정치적인 견해가 바뀌었나요?"

스프링어: "아뇨, 오히려 제가 믿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저는 제가 가졌던 모든 직업에서 똑같은 집단의 사람들(same constituency)을 상대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누군가가 필요한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그들입니다. 심지어 지금 하는 방송에서도 같은 집단이 저의 관객이죠. 정치를 할 때도 그들이었고, 제가 변호사로 일하던 시절에도 그들이었습니다."

스프링어가 세상을 떠난 후 오하이오주 민주당원들이 만든 추모 영상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내용은 그가 상원 선거를 준비하면서 오하이오주 민주당 당직자들 앞에서 했던 연설의 일부다.

이 연설을 한 행사에는 언론사가 오지 않았지만, 청중 한 사람이 자기 자리에 앉아서 녹화하는 바람에 기록이 남게 되었다. 이 사람은 스프링어 같은 사람이 정치 연설을 하는 게 우습다고 생각해서 녹화를 시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연설 내용에 감동한 그는 자비로 이 테이프를 복사해서 그 자리에 오지 않은 오하이오주 민주당 사람들에게 발송했다고 한다.

전반적인 연설은 특별한 게 없다. 그가 항상 하는 경제 문제를 이야기하고, 당시 부시 정부의 외교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끝부분에서 그는 자기와 자기 부모가 난민으로 미국에 도착했던 때를 이야기한다.

스프링어: "저희 가족은 1949년 1월 19일부터 24일까지 5일간의 항해 끝에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미국에서의 제 첫 기억은 어머니가 자고 있던 저를 깨워서 갑판으로 올라가자고 하셨던 일입니다. 퀸메리호에는 갑판(deck)이 여러 층 있었고, 저희는 그중 하나에 올라갔죠. 당시 다섯 살이었던 제가 이걸 기억하는 이유는 나중에 어머니께서 이야기를 들려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기억하는 건, 수많은 사람이–약 2,000명의 승객이 탑승했다고 합니다–갑판에 모여 서 있던 장면입니다. 몹시 추웠는데 한 사람도 입을 열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완벽한 침묵 속에서 우리는 자유의 여신상 앞을 지났습니다.

뉴욕으로 입항하는 퀸메리호 (이미지 출처: The Statue of Liberty-Ellis Island Foundation)

나중에 어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에 따르면 제가 그때 자유의 여신상을 가리키며 저게 뭐냐, 뭘 의미하는 거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묻는 제게 어머니는 (독일어로) "Ein tag, alles (One day, everything)"라고 답하셨다고 합니다.

자유의 여신상은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가진 걸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보여주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민주당 당원들은 우리가 가진 위대한 원칙을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미국인들에게 일깨워 줘야 합니다. 미국은 사람들을 지키고 보호해 주는 곳입니다.

미국은 깡패들의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는 제국이 아닙니다. 우리는 등불이고, 우리가 자유의 여신상입니다. 감사합니다."


여기까지가 내가 들은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글을 마치기 전에 뉴욕타임즈가 지난 4월 27일에 게재한 스프링어의 부고 기사 마지막 부분을 소개하고 싶다. 2008년 그의 모교인 노스웨스턴 대학교 졸업식에서 했던 연설의 일부다.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가 졸업식 연설을 하는 것에 반대한 학생들이 있었고, 그걸 잘 아는 스프링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저를 초대해 주신 학생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제게 큰 영광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 자리에 서는 것을 반대하신 학생 여러분, 여러분의 생각을 이해합니다. 저라도 다른 사람을 골랐을 겁니다."

"저는 살면서 운 좋게도 다양한 일을 하면서 상당한 성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제가 가졌던 직업들–변호사, 시장, 뉴스 앵커, 토크쇼 호스트–은 하나같이 여러분이 존중하기 힘든 것들입니다. 그러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제가 천국에 갈 수 있으면, 우리 모두가 천국에 가는 겁니다."

신시내티 시장 시절의 스프링어 (이미지 출처: Cincinnati Enquir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