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제리 스프링어가 변했다고 생각했지만,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제가 혼란에 빠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갈등하지 않아요. 저는 저고, 쇼는 쇼입니다. (I'm not conflicted because I'm not-- I know there's me, and then there's the show.)" 이게 스프링어의 답변이었다. 제리 스프링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스프링어 자신일 것이고, 그는 자기가 하게 된 일에 대해서 아무런 양가감정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스프링어와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게 있다. 스프링어는 직접 만나 이야기해 보면 미워하기 힘든 사람이다. 그는 대화하는 상대에 집중한다. 하지만 자기의 커리어와 관련한 질문에 대한 그의 답에는 연습을 한 느낌(a certain practiced quality) 같은 게 묻어난다.

스프링어: "저는 쇼에 맞는 페르소나(persona)를 만듭니다. 연기를 하는 거죠. 영화에 출연하는 거랑 비슷해요. 관객들이 히틀러를 연기한 배우에게 화를 내지는 않잖아요."

인터뷰어: "사람들이 그걸 문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떤 일을 하게 되든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온 분이신데, 제리 스프링어 쇼에 이르면..."

스프링어: "저희가 TV를 바꿔 놓은 건 사실이죠. (웃음) 사람들이 그런 변화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너무 골똘하게 생각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인생에서 바꿀 수 없는 게 있어요(Life is what it is). 내게 주어진 카드로 최선을 다해서 해 보는 거죠. 그렇게 해서 성공하면 다행인 거고요."

"하지만 그걸 고민하는 데 시간을 많이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냥 제 쇼를 합니다. 저는 제 쇼가 우스운 쇼(stupid show)라고 항상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 쇼 덕분에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었고 좋았지만, 한 번도 그 쇼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하찮은 쇼일 뿐이고, 그냥 심심풀이로 씹는 껌같은 존재죠. 저는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일을 하게 되면 나머지 것들은 그냥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 된다고 봅니다."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er)

어떻게 이상주의적인 정치인이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하게 되었을까? 스프링어를 비롯해 그의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고 내가 얻을 수 있었던 답은 이렇다. 제리 스프링어 쇼는–적어도 부분적으로는–우연히 얻은 성공이었다. 이 쇼가 이토록 크게 성공할 줄은 그도 몰랐다. 제작진 내부에서는 "젊은 시청자를 타깃으로 한" 쇼를 만들려고 했는데, 즉각적이고 엄청난 반응이 나온 거다. 스프링어는 이 쇼를 시작한 지 한두 해 만에 흔한 토크쇼 진행자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제리 스프링어 쇼는 (2004년 기준으로) 40여 개국에서 방영된다. 심지어 아프리카 튀니지에서도 볼 수 있다.

쇼의 제목에 진행자의 이름이 들어가는 경우는 그 진행자가 돈을 많이 받는다는 얘기다. 돈은 스프링어에 중요했다. 그는 다섯 살 때 유대계 난민으로 나치를 피해 미국에 온 사람이다.

하지만 기자인 내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양가감정이 없다고 하는 그의 말과 달리 양가감정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2000년 전후, 스프링어는 옛 친구이자 선거 참모였던 마이크 포드(첫 글에서 스프링어가 빌 클린턴이나 지미 카터 같은 정치인보다 더 뛰어난 정치인이라고 말한 사람이 이 사람이다–옮긴이)에 다시 연락하기 시작했다. 그냥 정치 얘기를 나누려고 전화를 한 거였지만, 스프링어의 쇼가 점점 더 인기를 끌고, 악명이 높아지면서 스프링어가 전화하는 일도 더 잦아지는 듯했다.

마이크 포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통화한 것 같아요. 제리는 다시 정치로 돌아오고 싶어 했죠. 그가 "어떻게 할까" 하고 물어보면 저는 "하겠다"라고 대답했죠. 제리 당신이 하고 싶은 게 뭔지는 몰라도 지금 하고 있는 쇼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을지 살펴봤죠. 가능한 모든 옵션을 따져봤어요. 저는 미시시피주로 가서 스프링어가 공화당 상원의원인 트렌트 로트(Trent Lott)과 맞붙으면 승산이 있는지 조사해 봤고, (스프링어가 학부를 나온)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즈도 살펴봤고, 특히 (그가 정치 인생을 시작한) 오하이오주를 자세히 봤습니다.

스프링어는 몇 년 동안을 그렇게 정치로 돌아올 기회를 찾았어요. 중요한 건 스프링어가 그 쇼를 진행하면서 공허함을 느꼈다는 겁니다. 그는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하지 않았어요. 그걸로는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지 못했습니다."

신시내티 시장 시절의 스프링어(오른쪽)와 그의 참모 마이크 포드 (이미지 출처: Daily Mail)

스프링어는 2003년 초, 오하이오에서 연방 상원에 도전할 생각을 했고, 이는 전국적인 뉴스가 되었다. 언론에서는 쓰레기 TV 토크쇼 호스트가 정치인 흉내를 내려 한다는 식으로 이 소식을 전했다.

스프링어를 아는 소수의 사람들은 사실은 그 반대라는 것을 알았다. 토크쇼 호스트 흉내를 내던 전직 정치인이 호스트 흉내를 그만두고 싶어한다는 게 그들이 아는 진실이었다. 하지만 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를 설득하려면 우선 출마하려는 오하이오주에서 민주당 정치인들을 만나 자신의 진심을 알려야 했다. 이 작업을 도운 한 참모들에 따르면 스프링어는 불러주기만 하면 오하이오에서 후보로 나온 민주당 정치인들을 찾아가 도왔다. 작은 도시의 시의원이 불러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 참모는 스프링어가 오하이오주 민주당 당직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연설을 했던 때를 회상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스프링어를 토크쇼 호스트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회의적인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 청중에게 스프링어가 했던 첫인사는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제 쇼에 출연할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였다. 청중은 바로 웃음을 터뜨렸고, 그 참모는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다음은 그곳에서 스프링어가 했던 연설의 일부다.

"여러분도 들어보셨을 (공화당의) 세금 정책은 사람들에게 돈을 돌려주면 그들이 소비를 하고, 경제를 돕는다는 논리입니다. 이게 왜 멍청한 얘기이냐면요, 돈이 많은 사람들은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자기 돈을 주고 살 수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정부에서 세금 환급을 받으면 갑자기 나가서 물건을 살 것 같으세요? 저는 사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나가서 삽니다. 저한테 정부가 세금 환급을 해줄 필요가 없어요. 세금을 환급해 주는 대신 그 돈으로 미국 국민에게 건강보험을 주세요. 돈은 그렇게 쓰는 겁니다." (박수)

"만약 이 메시지를 오하이오주 유권자들에게 알릴 수 있다면, 여러분의 지역구가 아무리 공화당 우세 지역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아하, 이거 나에게 해당하는 이야기구나'하고 받아들일 겁니다. 그러면 민주당에 표를 줄 이유가 생기죠. 민주당은 유권자들에게 민주당에 투표할 이유를 줘야 합니다. 그게 우리가 믿는 바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민주당은 옳은 답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뉴스를 볼 때마다 (공화당의) 쓰레기 같은 주장을 들으면서 아주 미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쓰레기 TV의 황제 아닙니까? 저는 쓰레기가 뭔지 잘 압니다." (폭소)

1998년의 제리 스프링어 (이미지 출처: Cincinnati Enquirer)

이 연설이 끝나자, 처음에는 회의적인 표정이었던 당직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이 사람들은 일반 유권자가 아니라, 정치판에서 닳고 닳은 사람들이었고, 무수한 정치 연설을 평생 들었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하게 만든 것이다. 이게 제리 스프링어의 재능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정치적 재능이 아니었다.


마지막 편 '제리 스프링어 ④'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