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대로 신시내티 시의원의 자리를 내놓은 제리 스프링어는 몇 달 후 같은 자리에 다시 도전한다. 민주당에서는 그를 공식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지역구에 경쟁 후보를 내놓지 않음으로써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선거운동은 쉽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그를 본 사람들에게서 "야, 이 멍청한 인간아!" "어이, 수표는 챙겨 왔냐?" 따위의 조롱을 들어야 했다. 스프링어는 웃는 얼굴로 사람들의 조롱을 들었고, 그런 그의 자세는 유권자들에게 먹혔다. 성매매 사건으로 사임한 지 18개월 만에 다시 시의원에 당선된 것이다.

신시내티 시장

그렇게 세 번째 임기를 마친 스프링어는 이번에는 신시내티 시장직에 도전해서 당선된다. 신시내티 선거 사상 최다 득표였다. 신시내티 사람들이 그의 성매매 사건을 잊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게 아니다. 유권자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프링어는 자신의 멍청한 행동을 자조(自嘲)할 줄 알았다. 그걸 보여주는 일화가 지역 라디오를 통해 방송된 신용카드 광고에 출연한 일이다.

아래 영상에 등장하는 오디오가 그 광고. (영상은 스프링어의 활동을 보여주지만, 광고 내용과는 무관하다.) 내용은 이렇다:

"안녕하세요! 저를 아시나요? 저는 얼굴이 신시내티 전역에 도배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행을 할 때는 주 경계선만 넘어도 사람들은 제가 제리 스프링어인지, 제리 포드인지 모르죠. 그래서는 아메리칸 익스펜스 카드를 사용합니다. 이 카드는 강 건너에 있는 수천 개의 클럽과 모텔에서 사용할 수 있죠. 잠시 즐거운 경험을 하기 위해 수표 승인을 받는 것도 아주 간단합니다. 저처럼 경쟁 상대가 없는 카드입니다."

광고 문구 곳곳에 신시내티에서 강을 건너 다른 주로 가서 성매매를 하고 수표를 사용한 일에 대한 암시가 들어가 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그 사건을 지울 수 없다면 차라리 자기 행동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이미지를 바꾼 것이다. 이런 가벼운 이미지 세탁이 바람직한 행동이냐는 생각해 볼 문제이지만, 분명 영리한 미디어 전략이다.

많은 미국인이 당시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기억하는 사람들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스프링어가 신시내티 시장으로 활동하다가 성매매 혐의로 시장직에서 물러나서 제리 스프링어 쇼를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기이하다. 스프링어는 성매매 사건 후에 시장이 되었다. 제리 스프링어 쇼는 그로부터 15년 후에 시작했다. 그 사이에 몇 가지 일이 있었다.

시장으로 일하던 스프링어는 더 큰 꿈을 꾼다. 오하이오주의 주지사에 도전하기로 하고 시장직을 내려놓은 것이다. 하지만 세 후보가 다툰 치열한 레이스 끝에 스프링어는 패하고 만다. 이게 1980년이다.

방송인으로 변신

시장 자리까지 내려놓고 도전한 선거에 패하자 먹고 살 직업이 필요했다. 그런 스프링어에게 지역 방송국에서 뉴스 앵커 자리를 제안했다. 신시내티에서 저녁 뉴스로는 시청률이 가장 떨어지는 방송사였지만, 어쩌면 그래서 모험을 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매일 뉴스 끝에는 앵커가 자신의 견해를 전달하는 논평 순서를 허락했다. (지금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앵커가 하는 논평을 쉽게 볼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드문 방식이었다–옮긴이)

스프링어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에 따라 당시 정·부통령이었던 레이건과 조지 H.W. 부시를 비판하고 노조를 옹호하는 진보적 논평을 하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년을 앵커로 활동하면서 꼴찌였던 그 방송국의 뉴스 시청률을 1위로 끌어올렸고, 에미상을 10개나 받았다.

그러자 그의 인기를 지켜보던 다른 방송국들에서 그에게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제리 스프링어'라는 이름을 걸고 당신만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라는 제의였다. 그렇게 해서 1991년 9월에 탄생한 것이 제리 스프링어 쇼였고, 스프링어는 10년 동안 진행하던 신시내티 방송국의 앵커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마지막 방송에서 그가 했던 작별 인사는 워낙 유명해서 지금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그가 울먹이며 말한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오늘은 양해를 좀 구하겠습니다. 저로서는 힘든 인사가 될 것 같네요. 아마 잘 아시겠지만, 제가 신시내티를 떠나는 걸 고려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약 20년 전, 지금은 신시내티의 전설이 된 제 수표 사건이 터졌을 때 저는 바닥을 쳤다고 생각하고 이곳을 떠나려 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냥 다 끝내고 죽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만, 좀 더 합리적인 대안으로 그냥 신시내티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죠.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개인으로서 신시내티에서의 제 인생은 끝났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때 제가 내린 결정은 아마도 제 인생에서 가장 운이 좋은 결정이었습니다. 달아나지 말자, 여기에 남아서 조롱과 농담을 다 듣자는 것이었죠. 저는 사람들이 조롱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전혀 아프지 않은 척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신시내티에 바치기로 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게 만들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아니, 좋아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존중은 하게 만들기로 했죠. 그렇게 해서 당의 지지 없이 다시 시의회에 도전하기로 한 겁니다.

저는 신시내티 시민이 가져본 최고의 공복이 되거나, 아니면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다 죽자고 생각했습니다. 그 자리가 시장이든, 뉴스 앵커이든 상관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개인 수표를 사용해 하룻밤 성매매를 한 인간' 이상이라는 것을 반드시 증명해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하는 중에 저는 저 자신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게 하나님이 저희를 가르치시는 방법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깨달은 건 제가 신시내티 시민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으로부터 삶에 대해 배웠고, 남을 아끼는 법, 용서하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은혜를 갚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게 제가 지난 한 주 동안 힘들었던 이유이고, 제가 여러분께 작별 인사를 드려야 하는 이 순간이 힘든 이유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스프링어가 쓰레기 TV를 시작하기 위해 앵커 자리를 떠난 건 아니다. 당시 인기 있던 필 도너휴(Phil Donahue)와 같은 쇼를 진행하려는 게 그와 제작진의 목표였다. 그렇게 시작한 제리 스프링어 쇼가 첫 해 다뤘던 주제들에는 노숙자 문제, 총기 규제 같은 것들이 있다. 스프링어는 올리버 노스(Oliver North), 제시 잭슨(Jessie Jackson) 같은 진지한 초대 손님을 섭외해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시청률은 바닥을 쳤고, 프로그램은 살아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결국 새로운 프로듀서를 고용했고... 제리 스프링어 쇼는 우리가 아는 그런 프로그램이 되었다.

신시내티 사람들은 감동적인 인사를 하고 떠난 제리 스프링어가 이런 쇼를 진행하는 것을 믿기 힘들었다. 사람들은 "내가 아는 제리처럼 보이지 않았다"라며, "제리는 항상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는데" TV 화면 속에 나온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제리 스프링어의 변신은 마치 그리스의 비극을 보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스프링어 본인은 자기가 하는 일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제리 스프링어 ③'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