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 새벽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것을 두고 많은 분석이 나왔다. 우선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보복 공격이 뒤따를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하마스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분석은 대체로 일치하는 것 같다. 국제 정치와 관련해서 항상 차분하고 깊이 있는 분석을 내놓는 국립외교원의 인남식 교수가 기고문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이 정상적인 외교 관계를 맺으려는 시도를 차단해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근거이자 팔레스타인 집단 거주지인 가자 지구를 공격하는 걸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수교하는 건 쉽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하마스는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리면서 중동을 흔들어 놨으니 일단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이런 의도를 전혀 몰랐을까? 지난 주말 공격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이스라엘이 애초에 파악했던 것보다 더 큰 작전이었음이 밝혀졌다. 이스라엘군이 영토 내에서 반격으로 사살한 하마스 대원만 1,500명이 넘는다고 하니, 최소 수천 명이 동원된, 엄청난 공격이었다. 정규군도 없는 조직이 육지와 해상, 심지어 하늘에서 패러글라이더까지 사용해 기습한 이번 작전은 과거 미사일 공격에 의존하던 하마스가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준비한 결과였다. 이 정도의 대규모 작전을 약 1년 가까이 준비하는 동안 이스라엘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다는 사람이 많다.

하마스의 공격으로 파괴된 이스라엘의 탱크 (이미지 출처: ABC News)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계획을 알았지만, 네타냐후 총리가 자기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를 방치했다"는 음모론이 퍼진 건 이 때문이다. 정치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극우파와 손을 잡고, 사법제도 개편을 통해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도 파괴할 수 있는 네타냐후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이 음모론의 근거다. 세상의 모든 음모론이 허구는 아니다. 한 때 음모론 수준으로 떠돌던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는 일은 드물지 않다. 따라서 네타냐후가 하마스의 거사 계획을 알고도 방치했다는 주장이 신빙성 있는 주장인지 살펴보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네타냐후와 이스라엘은 전혀 모르고 있다가 당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네타냐후가 진실만을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이번 공격과 이스라엘의 대응을 살펴보면 내릴 수 있는 상식적인 결론이다. 그리고 그런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은 이번 사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래의 내용은 사건 직후부터 이 글을 쓰는 오늘까지 나온 각종 분석 기사를 토대로 작성한 것이다. 분석의 출처는 링크로 넣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번 하마스의 공격을 "이스라엘의 9/11" 혹은 "이스라엘의 진주만 사태"라고 부른다. 하지만 가장 적절한 비유는 베트남 전쟁 때 미군이 기습당한 '구정 대공세(Tet Offensive)'다. 베트콩의 성공적인 기습으로 미군에 큰 피해가 났고, 그 공격으로 전세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미국의 자존심을 크게 건드리면서 미국 국민들 사이에 전쟁에 대한 회의감이 들게 만드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서는 1948년, 현대 이스라엘 건국 이래 최악의 사태라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번 사태와 가장 가까운 예를 찾으라면 1973년의 욤 키푸르 전쟁이다. 이집트와 시리아가 각각 이스라엘의 남쪽과 북쪽을 기습적으로 공격했던 이 전쟁은 3주 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지만, 첫 며칠 동안 입은 이스라엘군이 입은 피해가 엄청났다. 이 전쟁은 적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교훈으로 이스라엘군의 뇌리에 남아있다. 그런데 하마스는 이를 조롱하듯 욤 키푸르 전쟁 발발 50주년 바로 다음 날을 공격일로 정했다.

사람들이 '네타냐후의 음모'를 의심하는 데는 이스라엘의 첩보기관 모사드에 대한 신화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사드야말로 세계 최고의 첩보기관이고 심지어 미국의 CIA, 영국의 MI6 같은 첩보기관보다 더 뛰어나다고 믿는 사람들은 모사드가 놓쳤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정보기관도 완벽하지 않다. 정보를 취득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사람이 개입하게 되고, 사람이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사람은 실수와 판단 착오를 할 수 있다. 이번 사태의 경우 정보 수집 방법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지적이 있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방대한 휴민트(human intelligence, 인간정보)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전자장비를 동원한 감청 등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꾸준히 증가해 왔다. 이를 눈치챈 하마스는 감청이 가능한 통신을 이용하지 않고 직접 만나는 식으로 "석기시대식" 정보 전달에 의존하면서 모사드가 짜 맞춘 퍼즐에 구멍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수집된 정보에 생긴 구멍이 구멍인지, 아니면 하마스가 의심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아서 생긴 자연스런 빈 공간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정부와 첩보기관의 판단해야 할 문제다. 여기에는 가치 판단이 개입되고,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바라보는 시각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만약 이스라엘 정부가 '하마스는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는 시각으로 상황을 주시했다면, 중요한 정보가 빠진 것으로 판단하고 첩보 활동을 더욱 강화했겠지만,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것이 하마스에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라고 판단하고 상황을 바라보면, 특별한 징후가 없는 것을 의심하지는 않을 거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최근 들어 하마스가 무력 투쟁에서 방향을 전환해서 가자 지구의 정부로서 활동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하마스 대원들의 모습 (이미지 출처: France 24)

사실 하마스는 처음부터 무장 단체가 아니었다. 처음 결성된 1980년대만 해도 하마스는 의사, 지식인들로 구성된 온건한 단체였고, 삶의 터전을 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해 일했다. 그랬던 하마스가 이스라엘인들을 상대로 테러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본격적으로 경계하기 시작했다. 가자 지구에서 이들과 싸우던 이스라엘은 2005년, 이스라엘인 정착지 건설을 포기하며 그곳을 떠났다. 이스라엘이 떠난 가자 지구에서 하마스는 선거를 통해 정치적 경쟁 세력인 파타를 이기고 가자 지구의 지배 세력이 되었다. 처음에는 선거를 통해 얻은 권력이었지만, 이후 발생한 무력 충돌로 권력을 이어가면서 선거 없이 가자를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하마스가 근래 들어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보다는 가자 지구의 경제 재건과 삶의 질 향상에 애를 쓰고 있다고 판단한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가 대대적인 공격을 준비할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이스라엘 대사를 지낸 토머스 나이즈(Thomas Nides)는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테러 조직으로 취급하면서도 가자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고, 1만 5,000명에게 이스라엘에서 일할 수 있도록 허가증을 주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가 이런 좋은 기회를 날려버릴 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착각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세계 최고의 첩보 능력과 첨단 장비를 갖고도 하마스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데에는 이런 판단 착오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태만했다고 볼 수는 없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설명처럼 이스라엘은 완전히 다른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아이언돔(Iron Dome)이라는 미사일 방어체계를 갖추고, 가자 지구를 공습할 수 있는 공군력을 강화했을 뿐 아니라, 국경 밑으로 땅굴을 뚫고 오는 것에 대비해서 (하마스는 2014년에 땅굴을 통해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다) 감지 시스템을 만들고, 국경 철조망에 감지 장비를 설치했다. 하지만 이런 고가의 장비에 투자한다는 건 다른 부분에 들어갈 예산의 감소를 의미했다. 결국 이스라엘은 병력을 많이 투입해서 국경을 지키는 것과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맞바꾼 셈이다.

이스라엘 정부가 걱정한 곳은 남부 가자 지구가 아니라 이스라엘 북부였다. 특히 요르단강 서안 지구(West Bank)는 이스라엘 정착지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분쟁이 발생하고 있었고, 레바논 남부에 자리를 틀고 있는 이슬람 무장단체 헤즈볼라는 하마스보다 훨씬 더 두려운 존재다. 이스라엘은 국경 지역에서 대규모 분쟁이 생긴다면 여기에서 생길 것으로 생각했다.

하마스가 가자 지구의 국경을 뚫고 침입했을 때 이스라엘군이 변변한 대응을 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은 이스라엘 초소들이 비어있거나 소수의 병력만이 지키고 있었고, 하마스는 이런 기회를 완벽하게 이용했다.

가자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지구 (이미지 출처: 노동자 연대)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당한 이유만큼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하마스 공격의 전술 목표다. 중동지역의 국제 정세를 유리하게 바꾸는 것이 전략적 목표라면, 전술적인 수준에서는 무엇을 노렸을까? 전문가들은 2006년, 땅굴을 뚫고 침입한 하마스 대원들에 의해 납치되어 5년 동안 억류 생활을 했던 길라드 샬리트의 사례를 통해 하마스의 의도를 짐작한다.

당시 이스라엘은 샬리트를 데려오기 위해 하마스와 긴 협상을 벌였고, 결국 2011년, 1천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포로들을 풀어주는 조건으로 그를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현재 하마스 조직 서열 2위인 야히아 신와르가 그때 풀려난 포로 중 한 명이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이 자국민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감수하는지 보여준다. 따라서 이번에 공격에서 납치한 150여 명의 이스라엘인들은 하마스에게는 아주 중요한 자산이다. 만약 이들을 사용해 현재 이스라엘이 감금하고 있는 5,000여 명의 팔레스타인 포로들을 데려올 수 있다면 하마스는 가자 지구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전체에서 영웅으로 등극하며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주도권을 차지하게 된다.

군 장성들과 회의 중인 네타냐후 총리 (이미지 출처: Al Jazeera)

이 모든 일이 네타냐후 총리가 일부러 정보를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9/11 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누렸던 인기처럼 '전시 대통령의 프리미엄'이 그를 향한 비판을 잠재울 것으로 생각한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이스라엘의 예비군들은 네타냐후의 사법 개혁을 비판하며 "소집 명령이 내려와도 총을 들지 않겠다"며 시위를 했지만, 이번 공격 이후 단결을 외치며 일제히 소집에 응하고 있다. 이스라엘 국민의 관심사는 더 이상 네타냐후의 사법 개혁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상황은 분명 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네타냐후에게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자기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국가를 혼란에 빠트렸고, 요르단강 서안에서 정착지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군의 병력을 이동해 경계를 허술하게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네타냐후는 하마스가 가자 지구에서 세력을 키우도록 놔둬야 서안 지구에 있는 온건 성향의 파타와 대립을 이어갈 수 있고, 궁극적으로 팔레스타인 전체가 단합하는 것을 막을 수 있어 이스라엘에 유리하다는 '큰 그림'을 갖고 있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하마스가 팔렌스타인을 대표하게 될 위험마저 생겼다.

이런 모든 위험을 안고 네타냐후가 도박을 했을까? 이스라엘과 같은 이해관계를 가진 미국의 첩보기관 역시 하마스의 공격 징후를 놓쳤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스라엘은 정보수집과 하마스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고 보는 게 오컴의 면도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