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못하는 나라
• 댓글 3개 보기이란의 선택
이스라엘은 적에게 둘러싸여 있다고 하지만, 정작 이스라엘이 걱정하는 적은 꽤 멀리 떨어진 이란이다. 이란은 군사 강국일 뿐 아니라, 현재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 뛰어난 성능의 드론을 공급하는 나라로, 오래전부터 이스라엘을 아랍권을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사실상의 주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개발하려는 핵무기가 자신들을 향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이라크와 시리아, 요르단 같은 나라들이 있다. 현대 미사일 전쟁에서 안심할 정도의 거리는 아니지만, 단 몇 킬로미터 밖에서 쏘는 하마스의 미사일도 막아내는 이스라엘에 이란의 미사일은 발사 후 대응할 충분한 시간이 있는, 관리 가능한 존재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겁내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잠재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는 이란은 이스라엘을 가장 긴장시키는 위협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언제 날아올지 모를 이란의 미사일을 두려워한다.
그런 우려가 지난 토요일, 현실이 되었다. 이란이 300개가 넘는 미사일과 드론을 동원해 대대적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이다. 항상 가정으로만 존재했던 이란의 미사일이 실제로 날아들었다. 언론에서 "역사적인(historic)" 사건이라고 부른 건 과장이 아니다. 이란이 이스라엘을 직접 공격한 것은 처음이었고, 한 국가가 그렇게 많은 드론(170대 추정)을 동원해 다른 나라를 공격한 것도 전쟁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공격에 동원된 미사일과 드론이 날아온 곳을 보면 이스라엘이 왜 이스라엘이 적에게 둘러싸여있다고 하는지, 왜 이란을 가장 두려운 적으로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드론과 미사일은 이란 본토에서도 날아왔지만, 가깝게는 레바논, 시리아에서도 날아왔다고, 이라크와 예멘에서도 왔다. 이들 나라의 정규군이 공격한 것이라기보다는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는 반군들이 이란의 요청에 따라 공격에 참여한 것이다.
170대의 드론 외에도, 30개의 순항 미사일, 110개의 탄도 미사일이 이스라엘로 날아들었다.
이런 대대적인 공격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 대부분의 평가다. 우선 이스라엘을 공격하겠다는 경고를 했고, 공격의 대상도 이스라엘의 대도시가 아닌, 사막에 있는 군사기지와 같은 동떨어진 곳으로 한정했다. 민간인 수십 명이 다치기는 했지만,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피해가 크지 않은 데에는 아이언돔(Iron Dome)와 애로우 시스템(Arrow System)과 같은 이스라엘의 강력한 방공망도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이 지역에 주둔한 미군의 도움도 컸다. 미국의 전투기들이 출격해서 70여 대의 드론을 격추했고, 지중해에 떠 있던 미 해군 구축함은 최대 6개의 탄도 미사일을 격추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미국의 방어력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이란의 사전 경고였다. 공격을 시작하기 72시간 전에 주변국에 공격을 예고했고, 이를 알게 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는 이를 미국과 이스라엘에 알렸다. 우리가 미사일과 드론을 보낼 테니 막으라고 통보한 이상한 공격이다. 이란의 이상한 행동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드론과 순항 미사일, 탄도 미사일, 이렇게 세 번에 나눠서 이스라엘로 보낸 후 이를 정당방위라고 UN에 알리면서, 마지막 미사일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것으로) "이번 일은 종결된 것으로 볼 수 있다(간주한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란은 이스라엘을 공격해야 했지만, 그 공격이 전쟁과 같은 더 큰 사태로 확산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전쟁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값비싼 무기를 사용해 대대적인 공격을 한 것은 알려진 것처럼 지난 4월 1일, 이스라엘이 시리아의 이란 영사관을 공격해 이란의 혁명수비대 지역 사령관을 포함한 고위 간부들을 죽였기 때문이다. 자국의 군인이, 외국이라고 해도 자국의 영토로 간주되는 영사관에서 살해당한 것을 앉아서 지켜볼 나라는 없다. 그래서 "보복" 공격을 한 것인데, 그렇게 공격을 하면서도 이스라엘에 실질적인 피해를 입히는 일은 피하려고 신경을 쓴 것이다.
네타냐후의 선택
그럼 네타냐후는 왜 하마스와 전쟁 중에 이란의 영사관을 폭격하는 일을 감행했을까? 국립외교원의 인남식 교수가 최근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이를 잘 요약해서 설명했다:
"정치적인 손익 관계만 따져본다면 네타냐후 총리는 이번 이란의 공습으로 자신의 정치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호기를 맞은 셈이다. 최근까지 네타냐후는 국민의 퇴진 시위에 시달리고 있었다. 작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을 막지 못했다는 책임론 비판은 매서웠다. 특히 연립정부 내 극우 각료들이 주도한 사법 제도 개편으로 국정 운영이 엉망이 된 상태에서 정보 및 안보망에 구멍이 뚫리며 기습을 당하지 않았던가? 가자 사태 이후 네타냐후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함은 물론, 과거 부패 스캔들로 인한 사법 처리 가능성에도 직면해 있었다. 생존이 걸리면 모든 문제는 부차적일 뿐이다.
상황을 반전시킬 카드, 즉 네타냐후 생존 카드는 이스라엘의 최대 위협 이란과의 갈등 격화다. 이란을 링 위로 끌어올리기만 하면 이스라엘 국민은 총리 중심으로 싸울 수밖에 없다. 4월 1일 시리아 주재 이란 대사관 폭격은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불러왔고, 결국 이스라엘 전시 내각이 구성되었다. 이번 이란의 공습도 큰 피해 없이 잘 막아낸 것으로 평가될 것이다. 네타냐후는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었다. 안보 상황이 악화될수록 현 네타냐후 총리에게는 유리하다."
그러니까 이란은 네타냐후의 전략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대대적인, 그러나 실제로는 형식적이고 제한적인 보복 작전을 하고 서둘러 끝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란의 영사관을 공격한 건 아니다. 이란의 혁명수비대 장교들이 시리아 영사관에 있었다는 사실이 보여주지만, 이란은 이스라엘을 둘러싼 적들에게 군사적 지원을 하고 있는데 영사관에 있던 장교들이 바로 그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게 이스라엘의 주장이고, 이는 국제사회에서도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게다가 이번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을 촉발한 지난해 10월 7일의 공격은 이란의 배후 지원을 받아서 이뤄졌을 게 분명하기 때문에 이스라엘로서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네타냐후가 빠진 위기에서 벗어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스라엘인과 유대계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처럼, 네타냐후의 지고지선의 목표는 자기의 정치적 생명 연장이다. 문제는 이 상황을 보는 미국, 정확하게는 바이든의 생각이다.
바이든의 선택
이스라엘 문제를 연구해 온 정치학자 이언 러스틱(Ian Lustick)은 전쟁을 이어가거나 확산하려는 이스라엘 총리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건 미국의 대통령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전쟁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총리가 자발적으로 전쟁을 끝낸 일은 거의 없고, 미국이 전쟁을 끝내라고 이스라엘 정부에 강요할 때만 끝났다는 것이다. 1982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메나힘 베긴 총리에게 레바논을 공격을 중단하라고 한 거나, 2002년에 조지 W. 부시가 아리엘 샤론 총리에게 요르단강 서안 지구 침략을 멈추라고 한 게 그런 예다. 이스라엘이 전쟁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전쟁을 끝낸 사례가 없고, 한편으로는 이스라엘도 미국이 그렇게 팔을 비틀어 그만하라고 말해 주기를 바라는 측면도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어차피 이스라엘이 내세운 전쟁의 목적은 달성되기 힘든데, 그걸 대내외적으로 인정하는 것보다는 군사 지원을 해주는 미국의 요청/강요로 멈추기로 한다고 알리는 게 낫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이든의 연이은 이스라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현재 전쟁을 이어나가는 것은 결국 바이든이 이를 용인하고 있거나, 최소한 분명한 시그널을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현 미국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이란의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이 대응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미국이 용인할까? 미국이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은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이 지역전쟁(regional war)으로 확산하는 것인데, 이란이 '우리는 여기까지만 하겠다'라고 선언했음에도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다면 이는 지역전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단 바이든은 이란의 공격을 규탄하면서도 이스라엘이 이를 보복하려 한다며 미국은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이를 두고 왜 불필요하게 이스라엘과 미국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스스로 제한하느냐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바이든이 보기에 현재 상황에서 통제가 쉽지 않은 쪽은 이란 정부가 아니라 이스라엘 정부다. 정치적 영향력이 크게 줄어든 네타냐후는 국민과 야당뿐 아니라, (분열과 경쟁이 극심하다고 알려진) 전쟁 내각 내에서도 자기 말을 잘 따르지 않는 관료들의 주장을 무시할 수 없다.
뉴욕타임즈의 분석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대응법에는 대략 다섯 개의 선택지가 있다.
- 시리아를 비롯한 다른 나라에 주둔한 이란 혁명수비대 기지 등 이란 관련 해외 목표물을 파괴하는 것. 이 경우, 이스라엘은 본토를 공격받았는데, 이스라엘은 이란 본토를 공격하지 못했다는 국내 정치적 비판을 받을 수 있다.
- 이란 내 목표물을 파괴하되, 실질적인 피해 대신 상징적인 피해를 입히는 것. 하지만 미국 정부는 이란 영토 공격에 반대할 것이고, 이를 무시하고 감행할 경우 그만한 외교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
- 이란 내 인프라를 파괴하는 사이버 공격. 이런 공격이 대개 그렇듯, 이스라엘이 가진 카드를 보여주게 된다. 상징적인 파괴에 이스라엘이 가진 사이버 공격 도구를 드러내면 정작 반드시 사용해야 할 때 쓸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사이버 공격이 공습에 대한 대응으로서 어울리지 않는다.
- 첩보기관(모사드)을 동원해 요인 암살을 비롯한 이란 내 작은 목표를 여럿 제거하는 방법이 있다. 이 경우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대내외적으로 보복에 성공했다고 말하지 못한다.
- 마지막으로 아무런 보복을 하지 않는 옵션이 있다. 이 경우에도 보복했다고 선언할 수는 없지만, 대신 이스라엘이 잃은 국제 사회의 지지를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다.
뉴욕타임즈 기자에 따르면 미국의 관료들은 이스라엘이 보복 공격을 하는 것을 막기는 힘들다고 보고 있다.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본토를 공격받은 이스라엘은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이란을 공격하려 할 것이라는 게 그들의 판단이다. 그렇게 이스라엘이 공격하면 이란은 또 한 번 대대적인 공격을 할 것이고, 그런 일이 일어나면 미국은 다시 해군 함정과 전투기를 동원해서 이스라엘을 방어할 것이다. 공격을 돕지는 않아도 이스라엘에 계속해서 무기를 공급하고, 방어해 주는 미국을 보는 이란을 비롯한 아랍 세계는 이 모든 사태가 결국 미국의 주도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확전을 원하지 않는 미국 정부로서는 억울하겠지만, 틀린 말이 아니다. 전쟁을 억지할 힘이 있는데 발휘하지 않는 것도 무력을 사용하는 방법이라서 그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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