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우리의 마지막일까
• 댓글 남기기며칠 전 북미와 서유럽 지역으로 수온이 높아진 바닷물을 올려보내는 멕시코만류(Gulf Stream)가 멈추려는 징후가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읽고 우울해져서 페이스북에 포스팅했더니 한 분이 이런 댓글을 남겼다: "다음 주 월요일에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에서 최근 5, 6년간 기후변화 근거연구 리뷰한 보고서 나오는 데 이 부분은 어떻게 실렸나 봐야겠네요." 나는 이 댓글을 읽은 후에 마치 시험을 망친 학생이 성적표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보고서를 기다렸다.
그리고 보고서가 나왔다. 무려 234명의 저자가 1만 4천 개의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한 이 보고서는 현재까지 나온 가장 종합적인 연구 결과인 동시에 지구가 처한 상황에 대한 객관적이고 가감 없는 성적표다. 마침 비슷한 시점에 인터넷을 휩쓴 아래의 사진(그리스의 한 섬에서 산불로 마을이 불타는 모습)이 그 보고서를 요약해주지 않나 싶다. 말로 요약한다면, "이제 지구는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상황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여기에서 누구나 다운로드 할 수 있다: 보고서 전문, 정책 입안자들을 위한 요약본, 기술 요약본)
실패한 1.5 °C 방어
우리는 기후학자들이 "지구 평균기온이 1.5 °C 이상 상승하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라며 섭씨 1.5도 상승을 기후 변화 저지의 마지노선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익히 들어왔다. 그런데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인류는 이 선을 지킬 수 없는 게 분명해졌다. 현재 지구의 평균기온은 약 1.16도 상승한 상황이라 아직 그 선을 넘지는 않았지만, 현재 추세라면 지금부터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2030년대, 빠르면 2020년대가 지나기도 전에 1.5도 상승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즉, 인류는 1.5도 방어에 실패했다.
그렇다면 1.5도가 상승하면 지구에 정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까? 우선 이 상승 온도를 논의하는 기준점은 전세계적으로 산업화가 환경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전인 1880-1900년 즈음의 지구 평균기온이다. 즉, 그 이후에 일어난 상승분이 인류가 끌어올린 기온에 해당한다.
1.5도 상승이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답할 수도, 아니라고 답할 수도 있다. 지금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딕시 화재(Dixie Fire)'라고 불리는 산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 작년에 세운 사상 최악의 기록이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에서는 근래 들어 최악의 홍수가 났고, 그리스와 터키 역시 산불로 사람들의 거주지가 파괴되고 있다. 이게 급격한 변화로 생각한다면 이미 그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이 변화가 기후 변화의 결과임은 더는 부정하기 힘들다.
그럼 1.5도 상승으로 빙하와 동토층이 "일순간에 녹는" 일이 일어나느냐면,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일순간에 녹지는 않는다고 잘 버티고 있는 게 아니다. 이미 계속해서 녹고 있다. 세계는 지금 얼음 없는 북극으로 화물선을 통과시키기 위해 준비 중이고, '기후변화의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메탄가스를 뿜어낼 시베리아의 동토층 역시 이미 녹기 시작했다. 벌써 메탄가스가 분출되기 시작했다는 연구가 나왔다. (참고로, 메탄가스가 만들어내는 온실 효과는 이산화탄소의 140배에 달한다). 하지만 학자들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일시 분출은 아직 아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것보다 더 뜨거운 세상이 오는 건 막을 수 없게 되었다. 지금부터 온갖 노력을 다해도 앞으로 20~30년 동안 지구는 계속해서 더 커지는 태풍과 더 심각한 가뭄과 더 잦은 폭설, 폭염, 홍수 등 극한의 기후 현상을 겪어야 한다. 이건 막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1.5 °C 상승 저지'라는 기준은 어떻게 탄생한 것이고, 왜 이걸 방어해야 한다고 했을까? 사실 기후 변화(혹은 위기)를 '지구 온난화'라고 불렀던 초기만 해도 반드시 사수해야 할 지점은 '섭씨 2도 상승'이었다. 앙겔라 메르켈이 환경부 장관이던 시절의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국가들은 섭씨 2도 상승을 막는 것을 목표로 기후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온 상승으로 영토가 물에 잠길 위험이 있는 투발루와 피지, 통가, 파푸아뉴기니, 싱가포르 등 세계의 군소 도서 국가연합(Alliance of Small Island States)과 가뭄에 민감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2009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회의에서 목소리를 높여 "생존 기준 1.5도(1.5 to Stay Alive)"를 외치면서 '1.5도 상승 저지'가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2016년 그 유명한 '파리 기후 협약'이 체결될 때도 적어도 말로는 1.5도 상승 저지가 목표였지만, 국가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달라 협약에 들어간 내용은 약했고, 그것들을 모두 지킨다고 해도 무려 3도 상승을 각오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협약이 체결된 후에도 많은 나라가 지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은 아예 미국을 기후 협약에서 탈퇴시켜버렸다.
이런 상황만 설명해도 왜 세계가 대응에 실패했는지 알 수 있지만, 이후 과학자들은 지구의 기후가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악화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에 따라 2018년 IPCC의 보고서는 1.5도 상승선에서 기후 변화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온난화 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절반으로 감축하고, 2050년에는 넷제로(net zero), 즉 배출량을 줄이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방법을 통해 인간의 활동으로 발생하는 온실 가스의 양을 0으로 만드는 '탄소 중립'에 도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제 1.5도 상승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이미 배출된 탄소의 양을 흡수하기가 쉽지 않고, 바다가 이미 많은 열을 흡수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보고서의 저자들은 바다의 수온이 2100년까지 계속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지옥에도 층이 있다
1.5도가 상승하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현재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폭염 사태는 과거에는 약 50년에 한 번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현재 10년에 한 번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1.5도 상승선을 통과하면 매 5년에 한 번 일어나게 될 뿐 아니라, 그 강도도 훨씬 더 강해진다. 다만 이번 보고서는 대서양의 난류가 느려지고는 있어도 이번 세기 중에 갑자기 멈출 가능성은 낮을 거라고 "중간 정도의 신뢰도(medium confidence)"로 전망했다. 하지만 계속 온도가 상승하게 내버려 두면 "가능성은 작아도 (발생할 경우) 큰 충격을 주는" 상황이 일어날 확률은 높아지며, 남극과 그린란드의 얼음에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명히 경고했다.
전 세계가 노력하면 지구의 기온은 어느 지점에서 상승을 멈출 수 있을까? 여기에 답을 하기에 앞서 이를 해내기 위해서 반드시 약속을 지켜야 하는 나라들이 어딘지 알 필요가 있다. 현재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10개국은 중국, 미국, EU, 인도, 러시아, 일본, 브라질, 인도네시아, 이란, 그리고 캐나다. 인구가 많고 영토가 넓은 나라들, 특히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대거 포함되어있고, 그중에서도 특히 중국과 미국의 노력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중국은 2060년까지 탄소 중립을 이룩하겠다고 약속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도 2050년까지 비슷한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만약 두 나라를 비롯해서 각국이 약속을 지킬 경우 (이 경우의 수가 얼마나 큰지는 각자 상상에 맡긴다) 지구 평균기온의 상승은 2도 언저리에서 방어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실패할 경우 3도는 물론, 최악의 경우 4도 상승까지도 각오해야 한다.
이번 IPCC의 보고서를 전달한 UN의 목소리는 더 심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현 상황은 "인류에 빨간불(code red for humanity)"이며 "앞으로 상황이 더 악화하는 건 기정사실"이고, 이 위기 앞에서 우리는 "달아날 곳도, 숨을 곳도 없다"고 했다. 이런 절박한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세계 각국이, 특히 강대국들이 기후 변화 대응에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가 열심을 내어도 될까 말까 한 목표를 내세웠는데, 자국의 정치, 경제적 이유로 미적거리고 있기 때문에 전망이 어두워진 것이다.
브레이크스루 인스티튜트의 기후와 에너지 디렉터인 제케 하우스파터는 "운 좋게 온난화가 적게 진행될 가능성은 아주 적다"면서도 동시에 "우리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도 상황이 나빠질 가능성도 적다"고 했다. 약간 애매한 표현이지만, 이 말에는 '지금이라도 노력하면 더 악화하는 건 피할 수 있다'라는 일종의 응원 비슷한 심정이 담겨있다. 인류가 1.5도 상승 목표에 실패했다는 사실에 자포자기하고 이제까지 살던 대로 살자는 여론이 형성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인류의 대응 실패로 상황이 이미 몹시 나빠졌지만, 손을 놓으면 얼마든지 더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어진 과제
이번 보고서는 1988년에 만들어진 IPCC가 여섯 번째로 발표한 종합보고서의 1편에 해당하고, 2편과 3편은 내년(2022년)에 나올 예정이다. 2편에서는 기후 변화가 해안 도시, 농장, 의료체계 등 실제 인류의 삶에 정확히 어떻게 영향을 주게 될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3편에서는 온실가스 감축과 온난화 방지 전략을 다룬다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중요한 기후 정상회담이 오는 11월에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개최된다. 이번 보고서로 세계 각국 유권자들이 충격을 받았다면 자신들의 리더가 적극적인 태도로 이 정상회담에 임하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 기후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코로나19 백신이 작고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게 충분히 돌아가지 않으면 이 회담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했다. 파괴력과 해법이 너무나도 분명하게 나와 있는 팬데믹을 두고 리더들이 상식적인 결정을 하지 못한다면 기후 변화와 같은 문제에서 무슨 합의를 볼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일리 있는 선언이다.
그렇다면 리더들은 11월 회담에서 당장 어떤 목표를 세워야 할까? 가장 달성하기 쉬우면서도 효과가 큰, '낮은 가지에 달린 열매들(low-hanging fruits)'을 노려야 하는데, 학자들은 메탄가스를 지목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메탄가스는 온실 효과가 이산화탄소의 140배에 달하지만, 이산화탄소처럼 공기 중에 오래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당장 산출량을 크게 줄이면 효과가 빠르다. 현재 메탄가스의 주요 배출원은 천연가스 생산시설과 대량으로 사육되는 소 떼다. 과거 우리는 천연가스가 "깨끗한 에너지"라고 배웠지만, 주성분이 메탄이고, 시설에서 메탄 유출량이 많아서 천연가스는 기후 변화의 주요 범인이다. 그리고, 좀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소 한 마리가 하루에 트림을 통해 방출하는 메탄 가스는 250~500 리터에 달하고, 1년에 무려 100kg(220파운드)의 메탄을 만들어낸다. 인류가 육식을 줄여야 하는 많은 이유 중 어쩌면 기후 변화가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이유일지 모른다.
아래는 이번 보고서와 함께 발표된, 데이터가 담긴 인터랙티브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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