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metaverse" ①
• 댓글 남기기어디까지나 내 느낌이지만, 한국과 미국에서 메타버스를 생각하는 온도 차이는 꽤 크게 다른 듯 하다. 미국에서 메타버스를 외치는 사람들은 주로 기업인이다. 페이스북 이름을 메타로 바꾼 마크 저커버그가 대표적이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도 빠질 수 없다. 가령 지난주 게임 기업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인수한다는 딜을 발표하면서 나델라는 "메타버스"라는 말을 최소 다섯 번 이상 했다고 한다. (물론 마이크로소프트 역사상 최대의 인수합병 계약을 발표하는 나델라가 게임이 아닌 메타버스를 강조한 데는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이 두 기업이나 에픽게임즈, 로블록스 같은 게임회사 외에도 디즈니, 나이키, 월마트까지 많은 기업이 메타버스의 열기에 올라탔다.
하지만 이들은 기업, 더 중요하게는 상장기업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상장기업의 CEO라면 이렇게 핫한 키워드가 나왔다면 밴드웨건(bandwagon)에 올라타는 건 당연하다. 테크를 잘 모르는 투자자들이 "월마트가 메타버스를 한대? 역시 리테일의 거인은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생각에 주식을 사거나, 최소한 팔지 않도록 만들어야 하니까 그렇다.
테크 전문기자들은 다르다. 이들은 진짜 트렌드와 '마케팅용 하이프(hype)'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실리콘밸리에서 10년 이상 일했으면 CEO들이 입만 열면 하는 주가 방어용 멘트에 익숙할 뿐 아니라, 정확한 예측과 통찰이 궁극적인 자산인 사람들이다. 헛소리로 드러나도 하이프를 통해 주가를 올리는 게 CEO의 임무라면,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BS(개소리)를 알아보는 것이 테크 전문기자와 테크 블로거들의 임무다. 물론 이들에게는 연결 끈(access)도 중요하기 때문에 기업인들 입에서 BS가 나와도 정면에서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말할 때는 하이프를 하이프라고 말한다. 저커버그가 부르는 메타버스 열창에 꽤 냉담한 시선이 그렇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오히려 기업인들보다 테크 기자나 전문가들이 메타버스를 더 열심히 외치는 느낌을 받는다. 아직 한국이 주도하는 흐름이 아니어서일 수도 있고, 잘 몰라서일 수도 있지만, 새롭게 뜨는 아이템을 빨리 가져와서 설명하는 게 좋은 부업(혹은 본업)이 되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본다면 그들의 이해관계는 메타버스 하이프를 만들어낸 CEO들의 이해관계와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테크 전문가와 미국 빅테크 CEO들이 비양심적이라거나 부도덕한 사람들이라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같은 이유로 미국의 테크 전문기자들이 반드시 더 정확하다고 할 수도 없다.) 그들 모두는 직업인으로서 자신의 할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독자와 소비자/사용자들의 이해관계 역시 분명히 존재하고, CEO와 반드시 일치하지도 않다.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되, 나와는 다른 그들의 이해관계가 어디에 있는지는 항상 기억해야 한다.
필 리빈의 트윗
그런 의미에서 필 리빈(Phil Libin)처럼 잘 알려진 테크 기업인의 신랄한 비판은 다른 기업의 사업에 대해 솔직한 생각을 밝히기 꺼리는 (모두 그런 건 아니다. 가령 세일즈포스의 마크 베니오프나 팰런티어의 피터 틸은 대표적인 예외에 해당한다) 실리콘밸리 문화에서 쉽게 듣기 힘든 솔직한 생각이었다. 리빈은 에버노트의 공동창업자이자 CEO(2007~2015)로 일했고, 이후 벤처 투자자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올터틀즈(All Turtles)를 설립해 음흠(mmhmm) 등의 서비스를 만들었다. (그의 경력을 소개하는 이유는 아래에서도 이야기하지만, 그가 가상공간에서의 게임과 협업에 반대하는 게 아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시작은 리빈이 1월 5일에 트위터에 쓴 한 줄, "나는 메타버스가 너무 싫다. 너무, 너무 싫다"였다. 원래 소련(지금의 러시아)에서 태어나 8살 때 미국으로 이민해온 리빈은 저커버그의 메타버스 홍보가 자신이 어린 시절에 보던 소련의 공산주의 프로파간다와 너무나 닮았다고 한다.
이 발언이 화제가 되면서 테크 팟캐스트 데드캣(Dead Cat)에서 리빈을 초대해서 메타버스에 대한 그의 솔직한 생각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1시간 짜리 팟캐스트의 전반 30분은 메타버스에 대한 이야기, 후반 30분은 그가 세운 회사 올터틀즈가 왜 원격 근무를 선택했고,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설명한 내용이다. 두 주제 모두 흥미롭기 때문에 가능하면 모두 들어보시기를 권하지만, 이 글에서는 메타버스에 관한 내용만을 소개한다.
세 명의 공동 진행자(에릭 뉴코머, 톰 도턴, 케이티 배너)가 진행하는 '데드캣'은 텍스트가 아닌 팟캐스트라서 내용은 이해하기 쉽게 약간의 의역과 (대본이 없는 팟캐스트의 성격 때문에 같은 주제의 이야기가 흩어져 등장할 경우 모으는 등의) 편집을 거쳐 번역했다. 하지만 그가 하지 않은 말을 넣지 않았고, 발언의도를 바꾸는 편집도 하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현실을 공유하지 못하는 인류
에릭 뉴코머: 트위터에 "나는 메타버스가 너무 싫다. 너무, 너무 싫다"고 쓰셨는데, 왜 그렇게 싫은 건가요?
필 리빈: (그 트윗은) 몇 년 전에 나온 월마트의 메타버스 비디오가 며칠 전에 다시 돌아다녀서 거기에 반응한 거였어요. 저는 그 비디오가 메타버스의 많은 문제를 잘 요약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메타버스에 대해 특별한 입장을 취한다기 보다는 그냥 싫은 거예요. (웃음) 아주 자연스러운 혐오죠.
톰 도턴: (잠시 월마트 비디오 설명)
필 리빈: 제 생각은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먼저, 메타버스라는 게 정확하게 규정하기 힘든 개념이지만, 저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종류의 메타버스가 근본적으로 창의적이지 않다(non-creative)고 생각해요. 월마트의 메타버스 홍보 비디오가 알고보니 2017년에 나온 거였지만 그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게, 지난 20년 중 언제 만들어졌어도 똑같기 때문이죠. 20년 전에 존재하던 기술로 만들어졌는데 어제 만들어졌다고 해도 전혀 달라질 게 없어요. 그사이에 발전한 게 없이 진부하고, 스큐오모피즘을 사용하고 있고, 멍청하고, 아무도 사용하지 않을 거고, 현실 세상과 비교하면 모든 점에서 더 나쁘고, 창의적이지 못한 사람이나 기업이 아이디어가 없을 때 번지르르하게 만들어 놓은 작품이죠. 이렇게 후졌다(lame)는 게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게 정말로 실현되면 정말로 파괴적(destructive)일 것 같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한편으로는 싫어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두려워하는데, 메타버스라는 게 워낙 멍청한 생각이라 (실현되지 않을 것이므로) 아주 두려워할 건 아니라고 봐요.
케이티 배너: 메타버스가 파괴적일 수 있다는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리빈의 주장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이 여기에 등장한다.
필 리빈: 저는 우리(인류)가 더 이상 현실(reality)을 공유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현실 정도가 아니라 인식에 필요한 하부구조, 그러니까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에조차 동의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인류를 공유하는 현실에서 더 멀어지게 한다면 정말 큰 피해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페이스북은 이런 일을 메타버스 얘기를 하기 전부터 했습니다. 페이스북의 거짓말이 있죠. "우리는 그저 사람들을 연결할 뿐"이라는 거 말입니다.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페이스북은 "그저 사람들을 연결"하는 게 아닙니다. 페이스북은 당신을 당신의 의견과 편견에 연결하고, "당신의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커뮤니티"라고 말합니다. 이건 사람들 사이를 연결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믿고 있는 바를 강화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거죠. 당신이 속한 커뮤니티에 있는 여러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커뮤니티의 존재 이유인데 말이죠.
현재 존재하는 페이스북 만으로도 (물론 페이스북 뿐 아니라 전반적인 소셜미디어가) 그 문제가 악화되었는데, 메타버스는 그걸 극단으로 몰고 가게 될 거거든요. 실제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현실의 상당한 부분을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세상, 그것도 현실과 아주 비슷한 세상으로 대체한다면 현재의 문제가 더욱 나빠지겠죠.
이때 진행자인 뉴코머가 리빈의 주장에 대해 아주 적절한 문제를 제기한다. 메타버스의 '메타'라는 대목이 추구하는 이상에 대한 것이다.
뉴코머: 하지만 메타버스는 (당신이 말하는 분열된) 많은 세상들을 연결(bridge)하려 하는 거 아닌가요? 워낙 추상적인 아이디어라서 표현하기 힘들지만, 메타버스는 사람들이 현재 속한 세상을 연결해서 '디지털 리얼리티'를 공유하려는 거 같은데 말이죠.
리빈: 저는 메타버스가 디지털 세상을 '연결'하려는 게 포인트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디지털 세상의 대부분은 굳이 연결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거든요. 어느 날 아침에 잠을 깨서 '내가 속한 여러 디지털 세상들이 다 연결되면 좋겠네'라고 생각하나요? 아니죠.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내가 어느 게임에서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한 아이템을 다른 게임으로 가져가고 싶지 않겠어?"하고 말이죠. 그런데 말이죠, 그러고 싶지 않아요. 저는 비디오 게임 많이 해요. 오래전부터 했어요. 그렇지만 한 게임에서 사용하는 아이템을 다른 게임으로 가져가고 싶지 않아요.
재산 vs. 재미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하면 게임을 하는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아이템을 여기저기에 가져갈 수 있게 된다면 재산(property)에 게임의 초점이 맞춰지게 됩니다. 실제 세상을 닮게 되는 거죠. 실제 세상과 재산은 대개의 경우 재미없습니다. 게임은 재미로 하는 건데 말이죠.
따라서 저는 그 주장을 신뢰하지 않아요. 게다가 초점이 아이템 소유에 맞춰지면 게임 디자인의 질도 떨어지게 될 거고, 터무니없는 짓을 할 겁니다. 하지만 그 문제가 아니라고 해도 정말로 디지털 세상이 연결되어야 할 필요가 있나요? 이미 다 연결되어 있지 않나요? 메타버스가 정말로 하려는 건 우리를 우리가 사는 동네, 집 앞길처럼 진짜 현실, 매트릭스(Matrix)가 아닌 실제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거죠. 이건 좋지 않아요. 우리는 벌써 현실로부터 상당히 많이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메타버스의 논의가 NFT, 웹3 같은 것들을 끌어안고 있다 보니 환경에도 실제적인 피해가 갑니다. 메타버스에서 에너지를 사용하면 실제 세상에서도 에너지가 소비되고, 열대우림이 파괴되는 거죠.
제 생각을 요약하면 한 편으로는 메타버스가 후져서 아무도 사용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메타버스가 가져올 피해를 생각하면 후져서 아무도 사용하지 않을 거라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I hate the metaverse" 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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