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나는 다른 사람들을 만났고, 사랑을 했고, 이별의 아픔을 겪었고, 미국 대륙을 가로질러 이사했다. 연기 커리어에서 성공하기 시작하면서 헐리우드가 갖고 있는 성차별과 여성혐오(misogyny)를 최전선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나는 강간문화(rape culture)에 대해서, 그리고 남자들이 의식하지 못한 채 강간문화를 영속하는 무의식적인 방법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같은 남자들 사이에서 떠도는 어떤 종류의 유머를 그냥 놔두고, 이게 자신에 관한 일인 듯 반응하는 것 말이다 (그들은 "모든 남자가 그런 건 아냐, 나는 안 그래!"라고 외친다).

예전에는 나도 여성혐오적인 농담에 따라 웃었다. 그런 농담에 남자들과 같이 웃을 수 있는 쿨한 여자라는 게 좋았다. 그런 태도는 남성의 숫자가 여성보다 많은 환경에서 여자인 내게 안전함을 주었다. 하지만 내가 유명해지기 시작하면서 그런 것들이 나를 화나게 하기 시작했다. TV 업계에서 일하면서 내게 발언권이 주어졌고 나는 그렇게 주어진 발언권을 평등을 주장하고, 구조적인 젠더 편견을 지적하는 데, 그리고 사람들이 강간문화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를 종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사용했다. 강간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내게는 트리거가 되지 않았고, 그 이야기가 내게 불러일으킨 분노는 내게 행동을 촉구했다. 나는 피해자들의 손을 잡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그들에게 "다섯 명 중 한 명이 성적인 폭력을 경험합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예요"라고 말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이런 말을 하면서 나 자신은 한 번도 강간을 당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10년이 넘게 지난 그때의 일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싱가포르에서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기내에서 잠깐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는데 깨달음이 홍수처럼 나를 급습했다. 타이는 나를 강간했다. 그는 나를 강간했는데 나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내 목에서 무심결에 알 수 없는 이상한 소리가 나왔다. 나도 모르게 까악-하는 듯한 소리를 낸 나는 누가 그 소리를 들었을 것 같아 창피했다. 나의 심장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패닉에 빠졌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패닉에서 나오도록 설득했다.

'아, 아 맙소사. 음, 그래. 흠. 그 일이...'

'그래, 그게 무슨 일이었는지 나는 알지.'

'하지만 그걸 그렇게(=강간이라고) 부르면 이상하잖아. 그런데 내가 그걸 잊었다는 것도 이상하네.'

'하지만 나는 정말 괜찮잖아. 트라우마로 느껴지지 않는데.'

'아, 그리고 그 남자도 좋은 남자처럼 행동하려고 했잖아. 내 이마에 키스하고 꼭 안아줬잖아.'

'나는 괜찮아.'

나는 그 일을 "강간"이라고 부르지 못했다. 그 단어조차 말할 수 없었다. 강간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드라마틱했고, 통제불가능한 상황을 가리키는 것 같았기에 그렇게 조용히 일어난 일에는 어울리지 않게 느껴졌다.

물론 나는 심리치료사에게 그 일을 언급했다. 심리치료사는 그건 강간이 맞다고 하면서 폭력이 사용되지 않았다고 강간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일이 트라우마라고 했다. 그 표현은 때로는 적절한 표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고, 때로는 편리한 표현처럼 느껴졌고, 어떤 때는 그 표현 때문에 갑자기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큰 미스터리는, 나를 환장하게 만드는 건(what I couldn’t fucking get over) 어떻게 내가 그 일을 잊고 있었느냐는 거였다. 그리고 왜 그 일이 어느 날 갑자기 떠올랐냐는 것. 그것도 10년이 넘게 지난 후에.

그 일이 더 일찍 생각났으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 일이 일어난 직후에 그게 강간이었음을 깨달았다면 나는 신고했을 수 있다... 하지만 누가 내 말을 믿었을까? 나는 오르가즘에 도달한 후에 그 남자를 안았고, 행복한 척 했고, 그가 주는 선물을 받았고, 잘 자라고 키스를 했고, 심지어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고맙다고 문자까지 보냈다. 그에게는 내가 보낸 문자가 (증거로) 남아있었고, 내게는 '나는 섹스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라는 말을 한 게 전부였다. 나는 그걸 녹음하지도 않았잖아! 누가 내 말을 믿었겠나?

만약 내가 여성운동에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시점에 그 기억이 떠올랐다면 나는 그걸로 나의 정치적 입장을 강화하는 용감한 고백으로 사용했을 거다. 하지만 그랬다면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그리고 비판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오르가즘과 관련해서는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그 기억은 내가 크게 성공하게 될 영화의 촬영을 끝낸 후에 떠올랐다. 내 통장에는 잔고가 있었고, 빚은 모두 갚은 상태였고, 영화 촬영 후에는 출연하던 TV 프로그램에 되돌아갈 수 있었다. 나는 대학교 캠퍼스에서 강연을 했고, 내가 패널 토의에 참석하면 사람들은 내 말을 들으러 왔고,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게 그 일에 대한 기억이 그 시점에 되돌아 온 이유라고 생각한다. 내가 경제적으로 안정되었고, 커리어도 보장된 시점이었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사람들이 내가 하는 말에 실제로 귀를 기울이는 자리에 도달했다.

바로 그 시점에 과거의 기억이 몰려들었던 것이다. 그가 내게 어떻게 속삭였는지, 신나서 콘돔 포장을 벗기던 그의 탐욕스러운 표정. "나는 할 준비가 되지 않았어. 나는 할 준비가 되지 않았어"라고 되풀이하던 나의 말. 나 자신이 작아지던 느낌. 그의 가슴에 난 털이 마치 따뜻하고 엉성한 이끼처럼 굵고 건조하게 느껴지던 것. 그의 원룸 아파트 부엌의 흰색 캐비닛에 묻었던 지저분한 때.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내 기억에만 남아있었다. 물증이 없으니 사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바로 그때, 그가 준 단편소설 원고가 생각났다. 조용한 여름날 나는 위층에 올라갔다. 나는 거기에 커다란 파일 상자를 보관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꺼낸 적이 없는 그 상자는 먼지에 덮여 있었고, 밖으로 드러난 면은 다른 면 보다 빛이 바래 있었다. 집안은 평소보다 조용하게 느껴졌다. 내 손가락이 파일을 더듬는 소리만 들렸고, 밖에서는 자동차 몇 대가 지나가는 소리만 들렸다. 나는 원고를 발견했다. "The Beating Heart of the Forest (숲의 뛰는 심장)." 그 원고를 꺼내는 동안 나의 심장이 내려앉았고 동시에 어찌할 수 없는 분노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종이는 너무나 빳빳해져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는 종이에 찍힌 잉크가 아직도 그렇게 선명하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었다. 불가능한 일 같았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으면 잉크는 퇴비처럼 분해되어 흙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내 기억이 그랬던 것처럼 희미해지고 사라져야 하는 거 아닌가?

콘스탄스 우의 책 'Making a Scene (소란 일으키기)' 표지

바로 그때 그가 전화를 했던 게 생각났다.

타이는 나를 강간한 지 몇 달 후에 내게 전화를 했다. 나는 모르는 번호라서 받았다.

"어, 나야. 타이!" 나는 얼어붙었다.

"보고 싶어!" 그는 익숙한 따뜻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연락을 하지 않은 몇 달이 느껴지지 않았다.

당황한 나는 그의 태도에 화답해 따뜻한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오디션을 받아야 하는데 나중에 내가 전화하면 안 될까?"

그는 물론 괜찮다고 했다.

나는 그 후로 그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이 그의 목소리를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음을 알았다. 그래서 대신 이메일을 썼다. "그동안 연락하지 않아서 미안해. 너는 참 좋은 사람이지만 너와 데이트하고 싶지는 않아. 미안해."

그는 기분이 상했고, 거절당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자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슬퍼하는 대신 분노했다. 소란을 일으킨 것은 내가 아니라 그였다(He made a scene). 그는 나를 잔인한 쌍년이라 부르고 인생에서 성공하지 못할 못생긴 창녀라고 했다. 그에게서 연락을 받은 건 그게 마지막이다.

그게 거의 20년 전의 일이다. 지금쯤이면 아마 그도 결혼했을 거고, 그의 사랑스러운 아내가 내 이야기를 들으면 놀라서 내가 아는 그이는 절대 그런 일을 했을 리 없다고 주장할 거다. 남편이 자신을 대하는 똑같은 태도로 다른 모든 사람을 대했을 거라 생각할 거다.

아마 타이 자신도 놀랄 거다. 정말로 어이없어할 거다.

유명한 남성들이 자신의 성희롱(sexual harrassment) 혐의를 부인할 때 정말로 어이없게 생각하는 것을 본다. 타이처럼 그들은 자신이 좋은 남자였다고 생각한다. 나와 부드럽게 성관계를 가졌고, 나를 다시 보고 싶어 했고, 좋은 보석을 사주고, 나에게 러브 스토리를 써준 좋은 남자. 나는 그가 진심으로 내 얘기에 반박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 여자가 내게 좋은 밤을 보내게 해줘서 고맙다고 쓴 문자 메시지를 갖고 있다고! 그 여자는 (성관계 후에) 나를 안아줬어! 그러고 나서 내게서 아무 말도 없이 사라져버린 건 그 여자야. 내게 다시 전화하겠다고 해놓고 이메일 하나 달랑 보내서 헤어지자고 했다고! 그런 여자가 이제는 내가 강간범이라고 한다고? 세상에 이게 가능한 얘기야?"

나는 이런 남자들이 진심으로 어이없게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이들의 말에 공감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남자들이 제대로 듣지 않으면 여자들이 자신의 공포를 숨기는 방법들(웃거나 침묵하는 행동)을 승낙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여자들은 어떤가? 그들의 주장은 수치와 죄책감, 그리고 자신이 소란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말하지 않은,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것들에 대한 후회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남자의 편을 들기가 훨씬 쉽다. 사건과 관련된 남자들의 감정은...(여성보다) 덜 복잡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런 남자를 그냥 실수를 저지르는 평범한 남자로 생각하고 용서하기 쉽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한 일을 모르는 남자들을 용서하는 대신 그들에게 그들이 한 일이 어떤 건지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진실을 말해줘야 한다.

나는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았다. 폭력적이지는 않았더라도 강간이었다. 여기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내가 타이에게 반항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하지만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의 대응은 다르지 않을 거다. 그때 내가 어떤 여자애였는지를 생각해보면 그 여자애가 어떤 상황을 지나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여자애는 여자들이 소란을 일으킬 경우 겪게 되는 모욕과 조롱을 견뎌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그 여자애가 아직 준비되지 않은 일을 하게 만들지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