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미국에서 한 사람의 트윗이 꽤 큰 화제가 되었다. 내용은 이렇다.

"내가 여사친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몰랐던 사람들과) 데이트를 하는 게 좋아. 설령 데이트가 실패로 끝난다 해도 하나의 모험이니까. 최악의 경우라도 나 자신에 대해서 몰랐던 걸 배우게 되잖아'라고. 그 말을 들은 여사친 하나가 이렇게 답했다. '아니, 여자들은 최악의 경우 강간 당하고 살해당하지.' 나는 그 말을 듣고 비로소 현실을 깨달았다."

데이트 한 번 잘못했다가 강간과 살해까지 걱정해야 하는 건 지나친 우려 아니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물론 한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는 분명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그 차이가 얼마나 클까? 여성이 성폭행을 당한 경우 가해자가 그 여성이 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80%다.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한 "오랜 친구"와도 술을 마실 때는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쪽은 여성이다. 그런데 데이트 상대는 또 다른 얘기다. 최근 화제가 된 트윗을 보자.

"여자들은 데이트 장소에 가면서 서로 텍스트를 주고받는다. '자기 이름이 브라이언이라고 말하는 남자를 만나러 가는데, 만약 그가 나를 살해할 경우 그 사람의 범블(Bumble, 온라인 데이팅 앱) 프사는 이거니까 진실을 밝혀줘.' 이런 메시지를 받은 친구들은 '뒤는 우리가 책임질 테니까 재미있는 시간 보내!'라고 답장을 보낸다."

우리나라에서 카카오 T 같은 이동수단 호출 앱이 보편화되기 전 젊은 여성들이 밤에 택시를 타면서 가족과 애인, 친구들에게 택시 번호판을 찍어 보내던 것과 비슷하게 들린다. 물론 과장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데이트를 하다가 서로 마음이 잘 통해서 '진전'이 생겼다고 해보자. 단순히 대화를 하거나 손을 잡는 것을 떠나 키스 같은 신체적 접촉이 일어날 경우, 그리고 그 일이 공공장소가 아니라 한쪽의 아파트처럼 사적인 공간에서 일어날 경우를 생각해보자. 한 사람은 그 상황을 성관계까지 가져가고 싶은데 다른 사람은 어느 정도에서 선을 긋고 싶어하는 경우, 둘 사이에는 갈등이 형성된다. 그리고 한쪽이 다른 쪽의 의사를 무시하고 성관계를 강요할 경우 이는 성폭행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문제는 이런 일이 두 사람만 있을 때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가리기 어렵고, 그런 이유로 피해자는 자신의 의사에 반해 일어난 일임을 증명하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 큰 장벽은 소위 사회적 통념이다. "여자가 제 발로 남자의 집에 찾아갔다면" 그 뒤에 일어날 일을 각오한 거 아니냐는 남성 중심적인 사고가 많은 사회를 지배한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체구가 작은 친구가 자신보다 훨씬 크고 힘이 센 친구 집에 찾아가서 놀았다고 하자. 그런데 오해와 다툼이 생겨서 힘이 센 친구가 작은 친구를 폭행했을 때, 작은 친구는 그곳에 "자기 발로" 찾아갔기 때문에 자신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 부부의 사이도 마찬가지다. 단지 사랑한다고 해서, 결혼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의사에 반한 성관계를 강요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서 부부 사이의 강간죄가 처음으로 인정된 것은 2009년의 일이고, 대법원이 이를 인정한 것은 2013년의 일이다. 다른 선진국의 경우도 1980, 90년대에 들어서야 조금씩 인정되었을 만큼 이 문제에서 인류 사회의 계몽은 상당히 더딘 편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인정되었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 처한 여성이 적극적으로 싸웠다는 '흔적'이 발견되지 않을 경우 사회는 여성이 거짓말을 할 가능성을 무시하지 않는다. 물론 어떤 피의자도 무죄추정의 원칙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이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결과적으로 위력을 가할 수 있는 남성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결과, 성관계의 의사가 없던 여성은 이 모든 게 자신의 실수였다고 생각하고 남성의 요구에 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것처럼 여성은 최악의 경우 물리적 폭행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는 상황을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남성 중에 이 상황을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 있다면 생각 실험을 해보자. 어릴 때부터 집에서 키운 고릴라가 있다고 생각해보라. 한 번도 나를 해친 적이 없이 말을 잘 들었는데 어느덧 나보다 힘이 엄청나게 커졌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맹수로 자랐다. 그래도 나를 좋아하기 때문에 집에서 키우며 놀았는데, 어느 날 이 고릴라가 내 말을 듣지 않고 나를 제압하기 시작했다고 하자. 이런 고릴라에게 말을 듣지 않고 화를 냈다가 사태가 악화될 경우 단 몇 초 만에 목숨을 잃는다. 고릴라의 요구를 따르는 척하고 상황을 벗어날 궁리를 해야 한다.

"남자는 모두 짐승"이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이런 내러티브는 폭행의 책임을 "조심하지 않은" 여성에 뒤집어씌우는 남성중심적 사고다. 위력을 사용할 수 있는 '옵션을 가진' 남성을 고릴라에 비유한 이유는 물리적인 힘과 체구에서 큰 차이가 나는 쪽의 심리상태를 이해시키기 위함이다. 위력 사용의 가능성이 존재할 때 여성이 남성을 화나게 하지 않으려고 순순히 따르는 건 여성의 생존전략이다.

그런데 이 경우 남성이 "너도 좋아서 한 거잖아"라는 방어 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많은 경우 남성들은 그게 사실이라고 정말로 믿는다. 남성은 자라면서 '성관계는 남성이 주도해야 하는 것이고, 그게 남자다운 행동이다. 그리고 그렇게 적극적으로 주도할 경우 여성은 마지못해 (혹은 암묵적으로) 승낙해도 속으로는 좋아한다'는 내러티브를 배운다. 이렇게 지극히 사적인 의사소통은 부모나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에 결국 남성 중심적 대중문화와 포르노에서 배우게 되는데, 남성을 위해 만들어진 콘텐츠이니 그런 내러티브를 갖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남성들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잘못된 내러티브를 교육받고 자라고, 여성들은 자신의 의사를 강력하게 전달하는 것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연인 사이에 심각한 수준의 폭력적인(violent) 강간이 발생하는 것도 큰 문제이지만, 더 흔한 문제는 남성이 (때로는 여성도) 이 상황의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쪽은 자신의 의사에 반해 성관계를 가졌는데 다른 쪽은 이를 로맨스로 기억하는 상황 말이다.

이와 관련해서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고 진실을 알리고 대중을 계몽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런 시도 중 가장 최근에 나온 것이 헐리우드 배우 콘스탄스 우(Constance Wu)가 최근에 쓴 책, 'Making a Scene'이다. 우리에게는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Crazy Rich Asian, 2018)'의 주연 배우로 잘 알려진 콘스탄스 우는 중국계 미국인으로, '프레쉬 오프 더 보트(Fresh Off the Boat, 2015~2020)'로 미국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미국의 주간지 배너티 페어(Vanity Fair)는 얼마 전 우의 책의 일부를 발췌해서 게재했다.  이어지는 내용은 그 발췌분을 번역한 것이다.


반항하지 않은 여자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