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위한 역사
• 댓글 29개 보기세계 역사에는 수수께끼 같은 민족들이 가끔 보인다. 대표적인 민족이 4세기 후반부터 유럽을 침략해 게르만족의 이동을 촉발한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인 훈족(Huns)이다. 북아시아의 초원 지역에서 중국을 공격했던 흉노(匈奴)와 연관성이 있다는 말도 있고, 훈족의 엘리트 중에 아시아계 유전자를 가진 이들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다른 민족이다. 서구인들에게 "Attila the Hun"(훈족의 왕 아틸라)는 전설적인 침략자이지만, 훈족은 문자를 사용하지 않아 자신들의 기록이 없기 때문에 침략을 당한 쪽에서 서술한 '침략자'로만 기록된다.
지중해 지역에서는 바다 민족(Sea Peoples)이 그런 존재다. 훈족은 이름이라도 있는데, 이 사람들은 이름도 없이 그냥 지중해 바다를 건너와서 침략했다고 그냥 바다 민족(들)이라 불린다. 지금은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서 대략 지중해 어느 지역들에서 온 사람들인지 대략 추정할 수 있게 되었지만, 어디까지나 문자로 기록을 남길 수 있었던 침략당한 쪽, 그러니까 이집트, 히타이트와 같은 문명에서 남긴 기록을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이집트는 바다 민족의 침략을 간신히 극복하고 살아남았지만, 그 지역의 청동기 국가들이 대부분 무너졌다.
조지 워싱턴 대학교의 고고학 교수인 에릭 클라인(Eric H. Cline)은 청동기 문명의 몰락을 다룬 자신의 책('1177 B.C.: The Year Civilization Collapsed')에서 왜 바다 민족이 지중해를 건너 이집트, 히타이트, 우가리트 같은 당시 강국들을 침략했을지 짐작해 본다. 그는 바다 민족이 이집트와 히타이트에는 침략자이지만, 사실 그들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바다를 건너 침략한 시기는 지중해 동부 지역에서 거대가뭄(megadrought)이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가뭄이 몇십 년만 지속되어도 국력이 쇠퇴하는데, 당시 지중해 지역에서는 기후 변화로 무려 200년이 넘도록 가뭄이 이어진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같은 시기에 대규모 지진이 50~100년 동안 10년에 한 번꼴로 몰려 일어나는 대형 재난까지 일어나는 바람에 그들로서는 먹고 살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처음에는 단독으로, 후에는 연합해서) 강대국을 공격하기로 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문명의 몰락은 많은 학자들의 관심사다.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부터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까지 많은 학자들이 굳건하던 문명이 갑자기 망하게 된 이유를 연구했다. 하지만 청동기 문명의 종말을 연구하는 클라인은 그걸 가져온 원인보다, 붕괴로 잃은 것이 무엇인지에 더 관심이 있다고 했다. 기번과 같은 학자들이 연구한 건 한 국가의 붕괴지만, 지중해 지역의 청동기 문명은 드넓은 지역을 무역 등으로 연결하는 "글로벌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이집트에서 청동을 만들 때 필요한 주석은 대부분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수입했다.)
클라인이 보기에 하나의 제국이 아닌, 언어가 다른 여러 나라가 협력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유지된 건 후기 청동기와 현재가 대표적인 두 개의 예다. 그런데 첫 번째 글로벌 시스템이 붕괴된 이유가 기후의 변화와 민족의 이동이었다면, 두 번째 글로벌 시스템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무슨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하지만 클라인은 직접적인 교훈보다는 사라진 청동기 문명 자체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개별적인 문제를 과거에 풀어낸 사례를 찾고 싶다면 다른 책을 봐야 한다.
호주의 사회 철학자 로먼 크르즈나릭(Roman Krznaric)이 쓴 책 '내일을 위한 역사'가 그런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은 저술 의도를 분명하게 보여주지만, 그걸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 저자는 부제—'과거의 세계가 미래를 구할 수 있을까?'—로 더욱 명확하게 설명한다. 즉, '내일을 위한 역사'는 현대를 사는 우리가 접한 것과 비슷한 문제를 이미 겪었던 역사 속 사례를 찾아서 그들은 그걸 어떻게 해결했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목차를 보면 '화석연료 중독을 끊는 방법,' '관대함을 키우는 방법,' '소비주의에서 벗어나는 방법,' '소셜미디어를 길들이는 방법,' '모두를 위한 물을 얻는 방법,' '민주주의의 믿음을 되살리는 방법' 등등 21세기에 인류가 직면 문제 9가지가 한 장씩 차지하고 있고, 마지막 10장은 '문명의 붕괴를 피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구성 의도가 너무 잘 보이는 바람에 지루한 얘기가 될 것 같기도 하지만, 첫 장부터 흥미롭게 읽게 되는 책이다.
'화석연료 중독을 끊는 방법'을 보자. 인류 역사에서 화석연료의 중독을 성공적으로 끊은 사례는 없다. 이건 현대 인류가 맞닥뜨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 인류가 화석연료처럼 중독되어 있던 나쁜—그러나 경제에는 유용했던—습관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노예 제도를 이야기한다.
화석연료를 노예와 연결하는 건 뜬금없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고대 노예제도와 달리, 인류가 현대 국가에 들어선 후에도 유지되던 노예제는 초기 자본주의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생산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나쁘다는 걸 많은 사람이 알고 있었다는 것, 그래서 그 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장기적' 목표에 대부분 동의했다는 것, 그리고 둘 다 그 사회의 주요 생산수단에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에 부와 직결된 문제였고, 깊은 이해관계—힘 있는 계층이 쌓은 부의 원천이다—가 존재하기 때문에 갖은 로비와 지연작전을 통해 목표의 해결을 미루는 문제라는 점까지 똑같다.
그렇다면 노예제는 어떻게 끝날 수 있었을까? 바로 노예들의 폭동, 즉 폭력이었다.

물론 화석연료 중독을 벗어나려면 폭력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사회 변화에서 '급진파'(radical flank)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한다. "급진파는 주류인 온건파보다 더욱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온건파의 기존 요구를 권력자들에게 수용할 만하거나, '합리적'으로 보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결국 남북전쟁으로 이어졌지만, 영국에서는 투표를 통해 노예제가 폐지되었기 때문에 온건한 변화처럼 착각할 수 있지만, 저자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노예 폐지법을 통과시킬 만큼의 의석수를 확보하게 된 배경에는 영국 노동자들의 폭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둘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책에서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다.)
오터레터에서도 '낯선 모습의 킹 목사'라는 글로 소개한 적이 있지만, 미국의 역사는 흑인 인권운동이 얼마나 과격하고 급진적인 운동이었는지를 숨긴다. 그렇게 하면 과거를 아름답게 색칠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후세가 새로운 문제에 직면해 사회를 바꿀 때 작동하는 방법을 놔두고 (가령 석유산업의 로비스트가 주장하는) 점진적인 변화만을 추진하다가 주저앉게 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고, 이는 우리가 실제로 목격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1장을 읽고 나면, 이 책이 겉보기만큼 단순한 책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4장 '소셜미디어를 길들이는 방법'도 '인쇄문화와 커피하우스의 탄생'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어서, 그럼 소셜미디어를 보는 대신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라는 거냐, 하고 생각하기 쉬운데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내용은 훨씬 더 흥미롭다. 이 장에서 우리가 소셜미디어가 만들어 낸 폐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이미 수백 아니, 수천 년 전부터 반복되어 왔음을 설명한다. 우리가 페이스북에 쓴 글을 다른 사람이 허락도 없이 공유했을 때 기분이 상하는 것과 똑같은 감정을 고대 로마의 키케로도 느꼈다. 자기가 보낸 편지를 받은 친구가 허락도 없이 출간했기 때문이다. (키케로는 '괘념치 않는다'고 너그럽게 넘어갔다.)
더 흥미로운 일은 인쇄술의 발명과 함께 일어난다. 흔히 인쇄술의 발명으로 성경이 널리 보급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많이 퍼진 것은 팸플릿과 소책자였고, 이를 가장 잘 활용한 사람은 마르틴 루터였다. "1520년에서 1526년 사이 독일어권 지역에서 인쇄 발행된 소책자의 25퍼센트 이상은 루터의 글을 편집한 것이었다. 종교개혁으로 이어진 첫 10년 동안 배포된 소책자 600만 부 가운데 3분의 1이 루터가 발행한 인쇄물이었는데, 가톨릭 경쟁 책자들보다 5배 더 많이 팔렸다."
그때 퍼져나간 인쇄물은 21세기 소셜미디어를 방불케 하는 지독한 내용과 이미지를 담고 있었다. 우리는 트럼프가 자신을 교황으로 묘사한 AI를 공유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당시에는 교황을 악마로 묘사한 인쇄물이 퍼져나갔고, 이를 본 친 교황청 세력은 루터를 악마로 묘사한 이미지를 퍼뜨렸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는 전혀 낯선 문제가 아니고, 그 문제를 먼저 겪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대응했는지 살펴볼 만한 가치는 분명 있다.

물론 저자 로먼 크르즈나릭이 대안처럼 제시하는 사례 중에는 분명 나이브해 보이는 것들도 있다. 아프리카나 유럽의 소도시에서 실시하는 주민참여 정치가 현대 국가에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고, 산업화 이전 에도 시대의 일본에서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생활했던 방식은 지금의 일본조차 따라 하기 힘들다. 하지만 가장 답이 없어 보이는 불평등 문제(8장)를 이야기할 때도 저자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가령, 역사적으로 전쟁과 국가 붕괴, 전염병 같은 대재난이 없이는 사회의 불평등이 감소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이지만 사실이다. 미국 역사에서 진보적이었던 시기는 그래서 20년이 채 되지 않는다.
'내일을 위한 역사'는 우리가 실행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라, 인류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절대로 불가피한 것이 아님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사례들이 우리에게 낯선 이야기라는 게 바로 그 증명이다. 우리가 모르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시도와 성공 사례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다른 내일을 꿈꿀 수 있다. 2025년을 사는 우리에게 이 정도의 희망은 있어야 한다.
이 책을 출간한 더퀘스트 출판사에서 오터레터 독자들에게 10권을 선물하시기로 했어요. 그런데 지난 뉴스레터에서도 잠깐 말씀드렸던 것처럼, 책 선물 행사는 올해 이 책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아서,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추첨해 보려고 합니다.
최소 세 번 이상 응모하셨는데도 아직 한 번도 책을 받지 못하신 독자님께서는 댓글에 "저는 한 번도 못 받았어요"라고 적어주세요. (제가 일일이 확인하지는 못합니다만, 오터레터 독자님들의 양심을 믿습니다.) 그럼 제가 그분들에게 우선권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분들이 10명이 넘는다면 그중에서 다시 10명을 추첨하려고 하고, 10명 미만이라면 그분들에게 드리고 남는 책은 그 외의 응모자들 사이에서 별도로 추첨해 선물하겠습니다.
몇 분이나 한 번도 못 받으셨다고 하실지 모르니, 받으신 적 있는 분들도 예전처럼 응모해 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