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캐터구드, 파트너 ①
• 댓글 남기기약 20년 전의 일이다. 미국에서 대학원생으로 공부하던 나는 어느 날 아내와 학교 근처 찻집에 들렀다가 같은 곳에 와있던 나의 지도 교수를 우연히 만났다. 아마도 나처럼 저녁을 먹고 시내에 나온 듯했다. 내가 박사과정 프로그램에 들어가기 몇 해 전에 처음 부임한 그 교수는 상당히 젊은 편이었는데, 결혼했는지의 여부는 당연히 사생활이라 알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아내와 함께 있는 걸 보더니 자기도 마침 자기 "파트너(partner)"와 함께 나왔다면서 서로 인사를 하게 했다. 지도교수는 여성이었고, 그 파트너는 남성이었다.
그 교수는 미국 현대 미술사를 연구하고 있었고, 현대 미술사에서도 젠더(gender)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수업 시간에 자기에게 "파트너가 있다"는 얘기를 잠깐 한 적이 있었는데 나를 비롯해 많은 학생이 그 교수가 레즈비언일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남성 '파트너'와 같이 있었던 거다. 흔하게 생각하면 두 사람이 결혼했으면 '남편'이라고 소개했을 텐데 굳이 파트너라고 부른 건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교수처럼 젠더 문제에 민감한 사람이 남자를 자신의 "파트너"라고 할 때는 얘기가 다를 수 있다. 결혼은 했지만 남편(husband), 아내(wife)라는 역사적, 문화적 짐이 많은 단어를 피하기 위해 파트너라고 불렀을 수도 있고, 아예 결혼 자체를 거부하고 함께 사는 (나중에 두 사람이 아이도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것일 수도 있었다. 그 교수가 여름방학에는 파리에 있는 친구 집에서 살다시피 했고, 미국인 중에서는 드물게 담배를 간간이 피웠기 때문에–쉽게 말하면 20세기 프랑스 지식인을 연상시키는 사람이었다–내가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영어의 'partner'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그 의미가 꾸준히 확장되어 온 단어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의미는 비즈니스 파트너(business partner), 즉 동업자라는 의미이고, 로펌(법무법인)에서 파트너는 회사 내에서의 직급을 말해주는 명칭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 이 단어는 비즈니스 영역을 벗어나 사적인 영역에서 사용된다. 가령 누군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이야기할 때 "파트너"라고 부를 경우, 그 사람은 반드시 이성이 아닐 수 있고, 이성이어도 성정체성을 여러 가지 이유에서 이야기하지 않으려는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
아니면 그냥 파트너라는 단어가 쿨해서 그걸 사용했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이든 중요한 건 그런 표현을 듣는 순간 궁금증–여자야, 남자야? 성소수자인가?–을 멈추고 모든 판단을 보류하고 넘겨짚지 않는 우리의 태도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단어에 성(性)을 부여하고, 대상의 성을 알아야 적절한 대명사를 고를 수 있는 유럽어 사용자들의 경우는 더욱 심하기는 하지만, 인류는 세상을 남성과 여성으로 가르는 데 익숙해 있다. 누군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분하기 힘든 옷이나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화를 내는 사람은 자신에게 익숙한 이분법을 벗어난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불편한 것이다.
이런 사회의 변화를 영어의 파트너만큼 잘 보여 주는 단어도 드물다. 오늘 소개하려는 내용은 역사학자 댄 바우크(Dan Bouk)가 쓴 책, 'Democracy's Data: The Hidden Stories in the U.S. Census and How to Read Them (민주주의의 데이터: 미국 인구조사의 숨은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읽는 법)'에 등장하는데, 이를 저자가 와이어드(Wired)에 기사로 소개한 것이다. 원문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고, 아래는 이를 번역한 것이다. 직역하는 대신 쉽게 읽히도록 편집했지만, 원문의 의미를 벗어나지는 않도록 했다.
미국의 인구 조사(U.S. Census) 같은 데이터세트(data set)는 조사의 틀을 벗어나는, 조사를 설계한 사람이 상상하지 못한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까? 인구 조사 발표 자료에 등장하는 숫자는 이런 질문에 답을 주지 않는다. 데이터 속 깊숙한 곳에 감춰진 이야기를 찾아내지 않고는 그 답을 얻을 수 없다.
가령 아래와 같은 이야기 말이다.
인구조사 질문지
마가렛 스캐터구드(Margaret Scattergood)는 미국 상무부(Commerce Department)의 인구 조사에 들어갈 질문을 논의하는 자리에 있었던 몇 안 되는 여성 중 하나였다. 스캐터구드는 1년 2개월 후 바로 그 질문들에 답을 해야 했다. 그는 자신을 그 자리에서 결정된 질문지에 억지로 맞춰 답해야 했다. 스캐터구드는 상무부 내에서 아웃라이어(outlier), 즉 평균에서 벗어난 인물이었고, 미국 인구조사를 위한 질문지에서도 적절한 자리를 찾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1940년 미국 인구조사(한국에서는 5년에 한 번 하는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10년에 한 번씩 인구총조사를 실시한다. 마지막 단위가 0이 되는 해가 센서스의 해가 된다–옮긴이)는 12만 명의 조사원(enumerator, 계수원)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집마다 들어가 질문을 하고 얻은 답을 모은 결과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 중 하나를 예로 들면 이렇다.
1940년 5월 25일, 리처드 그레이라는 계수원이 스캐터구드가 살고 있던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전원주택을 방문했다. 이 지역은 조사는 원래 4월에 끝났어야 했지만, 예정보다 한 달 가까이 늦은 것이다. 이 조사원은 이전에 스캐터구드의 집을 방문했었지만, 집에 아무도 없어서 조사하지 못하고 재방문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방문한 그레이는 이 주택의 가격을 50,000달러라는 아주 높은 가격으로 추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디를 봐도 아름답고 웅장한 전원주택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봐도 그렇다.
그레이는 방문 결과를 이렇게 적었다:
플로렌스 소온(Florence Thorne) 57세, 싱글, 백인, 4년제 대학 졸업,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편집자(assistant editor)." 마가렛 스캐터구드(Margaret Scattergood) 45세, 싱글, 백인, 대졸 학력,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연구원(researcher)," 매리 스토츠 앨런(Mary Stotts Allen) 50세, 이혼,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것으로 보임.
그레이는 앨런의 인종을 백인(white)을 뜻하는 "W"를 적었다가 줄을 그어 지우고는 흑인(Negro)를 뜻하는 "Ng"를 덮어썼다. 그리고 원래는 이 세 사람 중 누가 이 질문들에 답했는지를 적게 되어 있지만 어쩐 일인지 적지 않았다. 따라서 스캐터구드가 인구조사 질문에 직접 답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조사원인 그레이가 이렇게 세 명의 중년 여성이 한집에서 사는 것을 인구조사의 측면에서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알 수 있다. 그는 나이가 가장 많은 소온을 그 가구의 "Head(가장)"라고 기록했고, 마지막에 적은 앨런을 하인의 신분으로 파악해서 "Maid(하녀)"라고 기록했다.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스캐터구드는 "Partner(파트너)"라고 적었다.
'스캐터구드, 파트너 ②'에서 이어집니다.
무료 콘텐츠의 수
테크와 사회, 문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찾아냅니다.
유료 구독자가 되시면 모든 글을 빠짐없이 읽으실 수 있어요!
Powered by Bluedot, Partner of Mediasp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