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츠가 말하는 슐츠 ①
• 댓글 2개 보기지난주 토요일(11월 26일)은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이 등장하는 만화 피너츠(Peanuts)를 그린 찰스 슐츠 (Charles M. Schulz)가 태어난 지 정확히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2000년 2월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슐츠는 1950년에 처음 그리기 시작한 피너츠 시리즈를 죽기 직전까지 (마지막 피너츠는 그가 세상을 떠난 바로 다음날 신문에 등장했다) 무려 반 세기 동안 그린 전설적인 만화가였다. 찰스 슐츠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오터레터에서 '상식적인 남자들 ②' '친애하는 슐츠 씨 ①, ②'로 소개한 적이 있다. (아직 안 읽어보셨다면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여성의 운동경기 참여와 미국에서의 인종 문제를 보는 슐츠의 시각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위의 글을 쓰면서 내가 찰스 슐츠라는 인물을 잘 몰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피너츠 만화를 즐겨 봤고, 아이들을 데리고 캘리포니아 산타로사(Santa Rosa)에 있는 슐츠 박물관까지 다녀왔지만 거기에서 본 건 그가 일하던 작업실과 그가 사용하던 물건, 그리고 피너츠 만화의 변천사였지, 정작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된 건 아니다. 1922년에 태어난 백인 남성이 여성과 인종 문제에 그 정도로 열린 태도를 가지고 있는 건 드문 일인데,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런 문제 해결에 몸을 던진 운동가는 아니었다.
찰스 슐츠의 이야기, 특히 해리엇 글릭먼과 주고받은 편지 내용에서 내가 받은 인상은 그가 열정적인 성격이라기보다는 차분하고 결정을 서두르지 않는 성격이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그래서 남들과 다른 결론에 도달해도 개의치 않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건 내가 받은 단편적인 인상이지 그가 스스로 자신을 그렇게 설명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런데 슐츠의 생각을 그의 목소리로 듣게 될 기회가 생겼다. 내가 즐겨 듣는 NPR(미국 공영 라디오)의 프로그램인 프레시 에어(Fresh Air)에서 1990년에 그와 했던 인터뷰(가 있었는지 나는 몰랐다)를 탄생 100주년에 맞춰 방송한 것이다. 그 인터뷰를 듣고 나서 찰스 슐츠에 대한 나의 생각이 바뀌었다. 아니, 슐츠에 대해서는 몰랐던 부분이 채워졌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거고, 그가 그린 만화 피너츠를 보는 눈이 바뀌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피너츠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만화가 슐츠의 분신들이었다. 인터뷰의 진행자 테리 그로스(Terry Gross)는 주인공 찰리 브라운을 "우울하고 자신감이 없는(depressed and insecure)" 아이라고 소개하는데, 인터뷰를 들어보면 이 아이가 슐츠를 가장 많이 닮은 등장인물이었음을 알게 된다. 대표적인 대사가 아래 영상에 등장한다. 1965년에 TV 만화로 발표된 '찰리 브라운 크리스마스' 도입부다.
"라이너스,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거 같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데 나는 행복하지 않아. 행복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질 않아. 난 크리스마스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선물 받는 것도 좋아하고,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는 것도 좋아하고,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나는 행복하지 않아. 항상 크리스마스에 우울한 기분이 되거든."
"찰리 브라운. 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크리스마스처럼 멋진 때를 문제로 만드는 유일한 애야. 루시 말이 맞는 거 같아. 세상에 너 같은 애들 중에서 제일 심한 애가 너야 (Of all the Charlie Browns in the world, you're the Charlie Browniest)."
아래는 인터뷰 전문을 번역한 것이다. 인터뷰는 여기에서 직접 들을 수 있다.
테리 그로스: 요즘은 피너츠 만화를 얼마나 자주 그리세요?
찰스 슐츠: (양으로는) 평생 그려온 정도로 지금도 그리고 있어요. 예전만큼 긴 시간을 일하지는 않는데, 그건 가족에게 들어가는 시간 때문일 거예요. 저는 다른 사람들처럼(슐츠는 여기에서 "like real people"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만화가라는 '직업'이 흔치 않았던 시절에 일을 시작했기 때문 아닐까 싶다–옮긴이) 일주일에 5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하는 것을 원칙으로 지켜왔습니다. 저는 스튜디오(작업실)에 9시에 들어와서 일을 시작하고 요즘은 오후 4시에 일을 마칩니다. 예전에 제 스케줄은 다섯 명의 어린아이들에 많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래도 규칙적인 작업시간을 유지할 때 일이 잘 되더라고요.
피너츠 만화를 그리실 때는 지금(=성인으로서) 느끼고 생각하시는 것을 내용으로 사용하시나요, 아니면 아이들이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어릴 때의) 기억 속에서 떠올려 그리시나요?
사실 저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이 만화가 아이들용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용으로 만화를 그린다면 아주 좋겠지만 아주 어려운 작업일 거 같아요. 요즘 만화가들 중에서 아이들용으로 아주 좋은 작품을 그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요. 만화의 역사–아마 80년 정도 된 걸 압니다만–를 통틀어서 아이들용으로 만화를 그린 작가는 고작해야 3, 4명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제가 생각하기에 웃긴 것, 제가 하는 생각, 이야기로 만들어질 만한 내용을 그려요. 그러니까 그냥 단순하게 제 자신을 위해서 그린다고 생각하셔도 될 거예요.
만화를 그리시면서 나이가 드셨는데 아이들은 같은 나이에 남아있잖아요? 선생님이 나이가 들면서 만화 속 아이들도 변했다고 생각하세요?
캐릭터들이 변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만화 전체, 만화의 관점(outlook) 자체가 예전에 비해 훨씬 더 부드러워졌어요. 캐릭터들이 예전처럼 비꼬는(sarcastic) 투로 말하지도 않죠. 그건 아마 제가 예전처럼 비꼬는 성격이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일 거예요. 나이가 들면서 문제의 양면을 모두, 그리고 더 분명하게 보게 되었고, 제 접근법 자체가 변했기 때문이죠. 그런 이유일 뿐입니다.
피너츠 만화 중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정확하게 몇 년도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마도 1950년대에 나온 걸 거예요. 아마 라이너스였던 것 같은데, 그 아이가 찰리 브라운에게 자신의 흉터를 보여주면서 너도 흉터가 있냐고 묻죠. (슐츠 웃음) 그러니까 찰리는 "많이 있는데 전부 마음에 남은 흉터(they are all mental, 정신적 흉터)"라고 대답합니다. (두 사람 모두 웃음) 저는 '마음에 남은 흉터'라는 말이 찰리 브라운이 인생을 보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얘기를 만화에 넣는 것을 당시 신문사들에서 꺼려하지는 않았나요? 우울증, 정신적 흉터 같은 표현 말이죠.
아뇨, 그런 내용을 가지고 불평했던 사람은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신문 편집자들이 지금의 편집자들보다 더 걱정했던 건 유명인을 만화 속에서 언급하는 거였어요. 한 때 시카고에서 미스 프랜시스(Miss Frances)라는 분이 진행하는 (어린이용)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저희 아이들이 어릴 때 저와 함께 보곤 했었죠. 한 번은 제가 미스 프랜시스를 만화 속에서 언급했어요. 그런데 한 신문 편집자가 그런 걸 홍보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요즘은 만화에서 못하는 얘기가 없죠. 요즘 만화 캐릭터들은 10년, 12년, 15년 전만 해도 어림없었던 얘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만화에서 욕도 하기 시작하는데, 이건 잘못한 결정이라고 봅니다.
선생님의 만화에서 가장 욕에 근접한 표현은 굿 그리프(good grief) 정도가 전부죠.
저는 살면서 굿 그리프(Good grief!)와 래츠(Rats!) 정도면 제게 일어난 모든 (어처구니없는) 일을 다 커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둘 다 일상 대화에서는 더 이상 듣기 힘든 표현들이다. '맙소사!'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옮긴이)
굿 그리프라는 표현은 유명해졌는데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건가요?
그냥 제가 자연스럽게 쓰는 표현이에요. (웃음) 가령 제가 골프를 하다가 1미터도 안 되는 퍼팅을 놓치면 "굿 그리프!"라는 한 마디가 툭 나오는 거죠. 하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욕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저는 듣기에 좋지 않은 말들("ugly words")을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그렇다고 그런 말을 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그런 의미에서 순수주의자도 아닙니다. 저는 말(words)을 어느 정도까지는 좋아합니다. (말에 대해) 전문가라고 자처할 만큼 교육을 받은 건 아니지만 어떤 종류든 듣기에 좋지 않은 말들을 싫어합니다. 반드시 욕이 아니더라도 말이죠.
'슐츠가 말하는 슐츠 ②'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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