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너츠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선생님의 성격(character)의 서로 다른 면을 각각 대표한다고 생각하세요?

물론입니다. 저는 제가 하는 것처럼 여러 명의 캐릭터들을 가지고 매일 작업하면서 각 캐릭터에 작가 자신의 일부가 담기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캐릭터들이 조금씩 조금씩 변하는 이유가 그거죠. 저는 아이들의 성격이 동일성을 유지하도록 했지만, 말하고 행동하는 게 변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게 제 생각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좋은 점이 있고 나쁜 점이 있기도 하고요.

찰리 브라운은 스누피에게 식사를 가져다주면서 자신이 평소와 다른 걸음걸이로 왔는데 혹시 눈치챘느냐고 묻는다. 스누피는 자신이 눈치를 못 챘다는 사실을 깨닫고 속으로 자신을 탓한다. 슐츠의 만화에는 이렇게 섬세한 감정 묘사가 많다. 1999년 5월 1일에 발행된 만화 (이미지 출처: Fandom)

제 아들 몬티가 제게 들려준 이론에 동의하는데요, 그 애가 어느 날 제게 이러더라고요. "아빠가 그리는 캐릭터들을 생각해봤는데 찰리 브라운이 제일 똑똑한 애라는 결론을 내렸어"라고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 애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찰리 브라운이 선생님 성격 중 어떤 면을 가지고 있나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닮지는 않았어요. 물론 그렇다고 생각하면 재미있게 들리겠지만요. 가령 저는 찰리 브라운처럼 루저(loser, 찰리 브라운은 항상 경기에 진다--옮긴이)는 아니에요. 하지만 야구든 골프든 하키든 게임에서 지면 잊지를 못해요. 심지어 50년 전에 진 경기를 두고 지금도 괴로워합니다.

제가 찰리 브라운과 닮은 게 있다면 둘 다 좋아하는 몇 가지에 열광한다는 거예요. 그런 점에 제 어린 시절의 제가 찰리 브라운 같았어요. 저는 야구 경기가 다가오면 플레이할 생각에 잔뜩 기대하고, 경기날 비가 오면 그라운드에서 비를 맞으며 서서 "다들 어디 가냐, 그냥 나와서 경기 시작하자"라고 하는 아이였어요. 저는 그런 일에 전심을 다하는 성격이었고, 그림을 그리는 일도 그래서 40년 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제가 하는 일에 진심이거든요.

비가 오니 경기를 취소하자는 말에 네가 맡은 일에 집중하라며 아랑곳하지 않고 경기를 이어가는 찰리 브라운 (이미지 출처: Pinterest)

찰리 브라운처럼 우울해지곤 하세요?

물론이죠. 지난 며칠 동안도 우울한 마음으로 지냈어요. 정확히 왜 이러는지 몰라요.

무슨 일에 우울해지셨나요? 혹시 아세요?

짐작 가는 일로는, 지금 제 아이스 아레나(슐츠는 1969년부터 자신이 사는 산타 로사에 아이스링크를 소유, 운영했다. 지금은 Snoopy's Home Ice라 불린다--옮긴이)에서 아이스 쇼 하나를 공연 중에 있는데요, 아름답고 멋진 젊은 사람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연주되는 음악을 들으면 옛날 생각이 나거든요. 제가 그런 것들에 민감한 것 같아요. 그렇다고 남들보다 특별히 더 민감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제가 그런 것들에 영향을 받아요. 그렇게 자잘한 것들이 저로 하여금 우울감에 빠지게 하죠.

몇 해 전에 리타 그림즐리 존슨 씨가 'Good Grief'라는 제목으로 저에 관한 책을 냈는데 그 책에서 제 "우울증"을 이야기하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그 단어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어떤 표현이 제게 더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기준으로도 제가 정말 우울증을 가진 사람은 아닙니다.

슐츠 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슐츠는 대공황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고, 넉넉한 집은 아니었어도 아버지가 이런저런 일자리를 찾아 식구가 먹고살 수 있었던 것 같다. 슐츠에 따르면 "저녁에 (아침 메뉴인) 팬케이크를 먹어도 아이들은 집에 먹을 게 없어서라고 생각하지 않고 마냥 좋아한다." (이미지 출처: Schulz Museum)

아이들이 찰리 브라운처럼 우울해하거나 불안해하면 어른들이 이해를 하지 못할 때가 있다고 봅니다. 어른 생각에는 어린 시절은 걱정이 없는 때라고 생각해서일 것 같은데, 선생님께서 어릴 때 어른들이 선생님의 기분이나 내적 자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험을 자주 하셨나요?

저는 기분(moods)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우울증(depression)보다는 불안(anxiety)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한 것 같아요. 저는 걱정이 많은 사람(a very anxious person)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어린 시절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저희 동네에 아이들을 못살게 구는 남자애들이 한두 명 있었어요. 그중 하나는 지금 다시 만나면 죽이고 싶은 그런 애인데요 (웃음) 제가 그 애들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하곤 했어요. 어른이 되면서 많이들 잊는 게 있는데요, 놀이터라는 장소가 아주 힘든 곳이고 아이들은 그곳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 벌어지는 곳이죠.

그런데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그런 일과 거리가 멀어지고, 또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배웁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방어장치가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을 아이들을 강제로 놀이터에 내보내는데 아이들은 너무 작고 어떤 면에서는 부족한 게 많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니까 아이들의 일상은 아주 괴로울 수 있습니다.

'정신과 도움, 5센트' "요즘 우울하다는 생각이 많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정신 차리고 힘을 내! 자, 5센트 내." (이미지 출처: 슐츠 뮤지엄 페이스북)

루시(Lucy) 얘기를 해보죠. 루시는 정신상담 부스를 가지고 있죠. 심리치료를 믿으세요?

제가 심리치료를 믿을 수 있다, 없다 말할 수 있을 만큼 잘 알지는 못하지만 불안증세 때문에 심리치료를 몇 세션 받은 적이 있어요. 하지만 루시의 정신상담 부스는 만화에 자주 등장하던 레모네이드 판매대를 패러디해서 고안했어요. 제가 어릴 때 보던 만화들에는 (아이들이 운영하는) 레모네이드 판매대 장면이 한 번은 꼭 나왔거든요.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한 거예요. '요즘 같은 때라면 레모네이드를 파는 것보다는 정신상담을 해주는 게 더 실용적이지 않을까?' 그렇게 시작된 거죠.

지금도 미국 대중문화에서는 아이들이 운영하는 레모네이드 판매대가 극중 장치로 종종 등장한다. 이를 설명한 글
슐츠는 만화 내에서 이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재미있게 드러내기도 했다. "옛날에는 아이들이 레모네이드 판매대 차려놓곤 했잖아?" "요샌 별로 못 보겠던데, 무슨 장사에 자리를 뺏긴 걸까?" '정신과 도움, 5센트' "이제 답을 알았지?"
1985년부터 10년 동안 연재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던 캘빈과 홉스에도 피너츠의 패러디가 나온다. '인생을 알려드립니다. 5센트' "자, 여기 5센트 있어. 무슨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없어. 내가 그냥 사기 쳐서 돈 받아낸 거니까" "뭐라고?!" "그런 게 인생이야."

라이너스의 담요(security blanket*)는 어떻게 생각해내신 거죠?

저희 아이들 다섯 중에서 세 아이가 자기만의 담요가 있었어요. 그 셋 중 두 아이가 담요가 낡아서 해어질 때까지 항상 들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부스러져서 어느 날 보니 정말로 다 부스러져서 아무것도 남지 않았죠. 그게 그 담요들의 최후였어요.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거죠. 그걸 제일 먼저 눈치채고 만화에 사용한 사람이 저라는 사실이 지금도 기쁜데요, 왜냐하면 재능있는 만화가 모트 워커(Mort Walker)가 그 아이디어를 사용했을 게 분명하거든요. (모트 워커는 가상의 미군 부대를 배경으로 한 Beetle Bailey라는 만화를 그린, 슐츠와 동시대의 유명 만화가다. 피너츠와 함께 지금도 옛날 작품이 여러 지역 신문 일요일 판에 등장한다–옮긴이)

*라이너스의 담요를 "security blanket"이라고 부른 이유는 그 담요가 아이에게 일종의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흔치 않지만 서양 아이들 중에는 자신이 어릴 때 사용했던 곰인형이나 담요, 베개를 스무 살이 넘어서도 간직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 어떤 사람들은 아기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서 다른 방에서 자는 문화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아기 시절에 느꼈던 안도감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secure/security는 안도감을 넘어 자신에 대한 확신, 안정감, 자신감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래의 내용이 바로 그걸 이야기하고 있다.

"네 담요를 찾았구나" "응. 부엌에서 행주와 섞여있더라고" "루시가 내 담요를 접시 닦는 데 썼어" "그래서 부엌에 정서적으로 안정된 접시들이 생겼어." (이미지 출처: Pinterest)

선생님의 아버지께서 이발사이셨고 찰리 브라운의 아버지도 이발사인데요, 찰리 브라운은 머리카락이 없고 그냥 앞머리에 한 줌만 있잖아요?

(질문을 끊고) 저는 그게 머리카락이 없는 게 아니라 찰리 브라운의 머리가 밝은 금발이어서 드러나지 않는 걸로 의도한 거였어요.

아아– 저는 선생님의 아버지가 머리를 아주 바짝 깎아주시곤 해서 찰리 브라운도 그렇게 그리신 거라 생각했어요. (웃음)

아뇨 (웃음) 하지만 제 머리는 항상 아버지께서 깎아주셨어요. 학교에 들어가서도 제 머리는 항상 단정했고, 잘 빗겨져 있었고요. 그런데 아버지가 깎아주실 때 창피했던 건 뭐냐면요, 아버지가 제 머리를 절반쯤 깎다가 단골손님이 찾아오면 "너 저기 잠깐 앉아 있어. 이분 먼저 손질을 해 드려야 하니까"라고 하시는 거예요. 머리를 절반만 깎인 채로 이발관 벤치에 앉아있는 건 정말 창피한 일이죠.

그러셨겠어요.

슐츠 아버지의 이발관 (이미지 출처: Schulz Museum)

선생님이 열일곱 살 때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세요? (Do you like to draw?)"라는 광고를 보고 편지를 보내서 통신 강좌를 받기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네, 잡지나 성냥갑에 등장하던 광고죠. 대개는 여성의 얼굴 옆모습이 등장했고요. (이 광고를 진행자 1951년생인 테리 그로스도 기억한다고 한다.) 저는 직접 출석하는 미술학교에는 부끄러워서 못 가겠더라고요.

슐츠가 본 것과 비슷한 종류의 광고 (이미지 출처: Schulz Museum)

뭐가 부끄러우셨어요?

제 그림 실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저보다 뛰어난 학생들 사이에 앉아 있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점에서 제가 찰리 브라운과 비슷해서 지는 걸 싫어했거든요. (웃음) 아무튼 그래서 통신 강좌(우편을 통해서 그림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배웠던 것으로 보인다–옮긴이)를 통해 배우기로 했습니다. 좋은 강좌였고 저는 그걸 통해서 많이 배웠어요.

그리고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는 제 그림을 그곳 사무실에 직접 가져가곤 했습니다.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 있었는데 제가 가면 직접 개인지도를 받을 수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그곳에서 그 해 여름 저를 파트타임 강사로 채용해서 일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시작해서 5년을 그곳에 남아 일했습니다. 제 자신만의 작품을 발전시키기 시작한 게 그때였어요.

슐츠는 2차 대전 때 군 복무를 했고 유럽에서 독일군과 싸웠지만 인터뷰에서 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이 세대는 자신이 싸웠던 전쟁과 군대 이야기를 좀처럼 하지 않는다고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가서도 그는 그림을 꾸준히 그렸던 것 같다.
전쟁 중 유럽에서 슐츠가 그린 그림. 1944년 경. (이미지 출처: Schulz Museum)

통신 강좌를 듣는 것을 부모님도 아셨나요, 아니면 부모님께는 비밀로 했었나요?

아뇨, 부모님도 당연히 알고 계셨어요. 제 부모님은 저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몰라하셨죠. 제가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분들이 제가 하고 싶어 하는 걸 조금도 막지 않으셨다는 거예요. 제가 하려는 게 뭔지 당신들이 이해하지 못하셔도 그러셨어요. 그분들께는 누가 만화가가 되려 한다는 건 완전히 생소한 일이었거든요.

제 부모님은 그냥 (그림 통신 강좌가) 저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당시 160달러 정도 하는 강좌였던 것 같은데 제 기억으로는 아버지께서는 한 달에 10달러 나가는 지출도 힘들어하실 때가 있었는데 제 강좌 비용을 다 내주셨어요.  


'굿 올 찰리 브라운 ③'에서 이어집니다.

슐츠가 어린 시절 집에서 키웠던 개 스파이크(Spike). 스누피는 어린 시절의 이 개에 대한 기억으로 탄생했다. 슐츠는 "내가 본 가장 영리한 개였다. 무려 50개의 어휘를 이해했다"라고 회상했다. (이미지 출처: Schulz Mus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