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교적인 가정에서 자랐다. 조부, 증조부 때부터 기독교인이었던 집안이라 제사나 차례를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둘이 어떻게 다른지도 모르고 자랐다. 물론 모든 기독교인이 제사, 차례를 지내지 않는 건 아니지만, 우리 집안의 룰은 아주 엄격했다. 가령 주일(일요일)은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성경의 원칙에 따라 토요일 밤 자정이 되면 숙제도, 공부도 할 수 없었다. 숙제가 남았으면 일요일 자정을 넘긴 후에 하든지, 아니면 월요일에 일찍 일어나서 해야 했다.

이런 원칙을 강조한 건 우리 어머니였지만, 그렇다고 어머니가 24시간 감시를 한 건 아니다. 어린 시절에 그런 원칙을 강하게 주입받은 아이들은 주위에 아무도 없어도 스스로 조심한다. "하나님이 지켜보시기 때문"이다. 일요일 공부 금지 원칙은 내가 고3이 될 무렵 사실상 폐지되었다. 한국의 입시 경쟁에서 공부 시간의 1/7을 접고 들어가는 건 너무나 가혹하다는 나의 항의가 받아들여졌던 걸로 기억한다. 교회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우리 집처럼 엄격하고 보수적으로 성경의 기준을 적용하던 집은 없었고, 그게 나의 주장을 뒷받침한 논리 중 하나였다.

왜 우리집이 그토록 엄격한 기준을 갖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나의 이런 성장 배경은 미국에 와서 유대계,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유대계 미국인들의 정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유대인들은 기독교인과 많은 부분을 공유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하는 신약은 기독교인들(가톨릭, 개신교)만 믿는다. 따라서 신학적으로 말하면 개신교의 연장선에 있는 몰몬(Mormon)이나 아미쉬(Amish) 사람들이 나와 더 가까울 것 같지만, 내가 직관적으로 정서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유대계다. 그래서 유대계 작가들, 특히 엄격한 종교적인 배경에서 자라났지만 더 이상 회당에 나가지는 않는 '세속화된(secularized)' 유대계가 만든 영화나 산문, 소설을 즐기게 되었다. (예전에 오터레터에서 소개한 '태초에'를 쓴 조너선 골드스틴이 그런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