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하키
• 댓글 5개 보기나는 종교적인 가정에서 자랐다. 조부, 증조부 때부터 기독교인이었던 집안이라 제사나 차례를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둘이 어떻게 다른지도 모르고 자랐다. 물론 모든 기독교인이 제사, 차례를 지내지 않는 건 아니지만, 우리 집안의 룰은 아주 엄격했다. 가령 주일(일요일)은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성경의 원칙에 따라 토요일 밤 자정이 되면 숙제도, 공부도 할 수 없었다. 숙제가 남았으면 일요일 자정을 넘긴 후에 하든지, 아니면 월요일에 일찍 일어나서 해야 했다.
이런 원칙을 강조한 건 우리 어머니였지만, 그렇다고 어머니가 24시간 감시를 한 건 아니다. 어린 시절에 그런 원칙을 강하게 주입받은 아이들은 주위에 아무도 없어도 스스로 조심한다. "하나님이 지켜보시기 때문"이다. 일요일 공부 금지 원칙은 내가 고3이 될 무렵 사실상 폐지되었다. 한국의 입시 경쟁에서 공부 시간의 1/7을 접고 들어가는 건 너무나 가혹하다는 나의 항의가 받아들여졌던 걸로 기억한다. 교회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우리 집처럼 엄격하고 보수적으로 성경의 기준을 적용하던 집은 없었고, 그게 나의 주장을 뒷받침한 논리 중 하나였다.
왜 우리집이 그토록 엄격한 기준을 갖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나의 이런 성장 배경은 미국에 와서 유대계,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유대계 미국인들의 정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유대인들은 기독교인과 많은 부분을 공유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하는 신약은 기독교인들(가톨릭, 개신교)만 믿는다. 따라서 신학적으로 말하면 개신교의 연장선에 있는 몰몬(Mormon)이나 아미쉬(Amish) 사람들이 나와 더 가까울 것 같지만, 내가 직관적으로 정서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유대계다. 그래서 유대계 작가들, 특히 엄격한 종교적인 배경에서 자라났지만 더 이상 회당에 나가지는 않는 '세속화된(secularized)' 유대계가 만든 영화나 산문, 소설을 즐기게 되었다. (예전에 오터레터에서 소개한 '태초에'를 쓴 조너선 골드스틴이 그런 작가다.)
나는 그들의 작품을 읽거나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꽤 오래 생각했고, 어느 순간 답을 얻었다. 바로 죄책감이었다. 인류가 가진 많은 종교나 윤리가 작동하는 중요한 방식이 수치심(shame)과 죄책감(guilt)이다. 사회가 금하는 말이나 행동을 죄로 규정하면 사람들은 그 행동에 스스로 죄책감과 수치심을 부여하면서 자신을 통제, 검열한다. 이건 반드시 나쁜 건 아니다. 국민 전체를 감시할 수 없는 수준의 적은 공권력으로도 질서가 무너지지 않고 사회가 작동하는 데는 개개인이 사회화 과정에서 의식에 장착하게 된 죄책감, 수치심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얘기가 있다. 내 외할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할머니는 20세기 초에 태어나신 분이었고, 당시에는 딸을 학교에 보내는 집안이 흔치 않았다. 하지만 워낙 머리가 좋은 분이어서 글을 배우고 싶은 마음에 다른 데 간다고 하고 몰래 학교에 가서 글을 배우고 있었단다. 그런데 그렇게 거짓말을 하고 학교로 가는 길에 벌에게 입을 쏘였다. 할머니는 그게 "입으로 죄를 지어서(=거짓말을 해서) 하나님께 벌을 받았다"고 생각했단다. 얼마나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하셨는지는 모르지만, 할머니는 평생을 그렇게 사셨다. '나쁜 일을 하면 하나님이 벌을 내리신다'는 게 그분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게 반드시 기독교적인 사고만은 아니다. "죄를 지으면 천벌을 받는다"는 말은 기독교가 한반도에 퍼뜨린 개념이 아니며, 대부분 전통적인 사회에서 볼 수 있다. 다른 게 있다면 엄격한 보수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면 성경을 항상 읽게 되는데, 성경에는 그렇게 "율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벌을 받는 예로 가득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매일 매일 그 사실을 강화하게 된다.
죄책감에 기반한 방법은 전통적인 교육 방법 중 하나이고, 지금도 종교적인 문화가 강한 집안에서 사용하지만, 나는 나이가 들면서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가 위험에 처하게 되는 일이 아니라면 선택권을 주어 결정하게 하는 게 스스로 사고하는 온전한 성인이 자라는 방법이라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고, 아이들에게 종교적이든 아니든 불필요한 죄책감을 주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왜냐하면 내가 그런 사고 습관을 벗어나는 데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고, 지금도 완전히 벗어났는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같은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내가 유대계 미국 작가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의 고민과 씨름이 내가 했던 것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글을 읽으며 위안을 받고, 쾌감을 느낀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몰몬교 사람들을 희화화한 인기 뮤지컬 '북 오브 몰몬(Book of Mormon)' 제작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 뮤지컬 공연에는 몰몬교인들이 와서 많이 웃고 간다고 한다. 몰몬교인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농담이 나오는데 그때마다 소수의 관객이 배꼽을 잡으며 웃는다는 거다. 내가 유대계 작가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도입으로 시작한 글이 길어졌지만, 그런 전형적인 글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아래의 글을 쓴 샬롬 아우슬랜더(Shalom Auslander)와 그의 아내는 종교적인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다. 그의 책 'Foreskin's Lament'에 나오는 내용으로, 한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버전으로 소개한다. 제목은 신과 하키(God and Hockey). 읽다 보면 아우슬랜더가 하는 말이 황당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전혀 과장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안다. 나도 똑같은 생각을 많이 해봤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창피해서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는 것뿐이다.
진행자: 샬롬 아우슬랜더와 그의 아내는 종교적인 유대계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만큼 열심이지는 않고 서서히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고, 유대교를 떠나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정통파 유대계(Orthodox Jewish) 커뮤니티가 있는 뉴저지주 티넥(Teaneck)에 살았지만, 뉴욕의 NHL 아이스하키팀 뉴욕 레인저스(Rangers)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그런데 레인저스는 1994년 시즌에 엄청난 성적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맞수인 뉴욕 아일랜더(Islanders)와 뉴저지 데블스(Devils)를 모두 누르고 캐나다 밴쿠버 커넉스(Canucks)와 스탠리컵을 두고 결승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승전 7경기는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과 밴쿠버의 퍼시픽 콜리시엄을 오가며 치러졌는데, 뉴욕 레인저스가 밴쿠버로 원정 경기를 하러 갈 때에는 팬들이 맨해튼에 있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 모여서 점보트론 전광판으로 중계를 보면서 응원하게 됩니다. 현장 경기가 아니니 경기장 입장료도 5달러 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아우슬랜더 부부는 그곳에 가서 관람하기로 했죠.
문제는 보러 가기로 한 경기가 (유대인들이 안식일로 지키는) 토요일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정통파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운전을 하지 못합니다. 율법에 어긋나는 일이니까요. (운전 외에도 토요일에는 가스 불도 사용할 수 없고, 심지어 전기 스위치도 켤 수 없다.–옮긴이)
하지만 아우슬랜더 부부는 그 경기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우슬랜더: 그렇지 않아도 과연 신이 존재하느냐를 고민하면서 유대교에 대한 회의가 들고 있는 시점에 맨해튼까지 나가려면 차를 타야 하니 갈등이 생겼죠. 아내와 저는 이걸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가 서로 다른 결론을 냈습니다. 저는 신경쓰지 말고 그냥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 (차를 타고) 가자는 쪽이었습니다. 레인저스가 이만큼 좋은 성적을 낸 게 신의 뜻이라면 우리는 가도 되는 게 아니냐는 게 제 주장이었습니다.
진행자: 신이 도와 결승전까지 오게 해줬다면 경기에 가서 봐도 좋다는 얘기죠?
아우슬랜더: 신이 캐나다에서 마크 메시에(Mark Messier)를 데려오게 해줬고, 러시아에서 세르게이 코발레프(Sergei Kovalev)를 영입한 것도 신의 뜻이라면, 레인저스를 이기게 하시려고 작정하신 거고, 그렇다면 거기 가서 경기를 보는 것은 선한 일(mitzvah)일 뿐 아니라 가서 구경하라는 명령 아니겠습니까?
진행자: 그럼 아내분의 의견은 어땠나요?
아우슬랜더: 아내는 신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했습니다. 아내는 맨해튼에 경기를 보러 가기는 가되, 걸어서 가자고 했죠. 저희가 사는 곳에서 매디슨 스퀘어 가든까지는 약 14마일(22km)이죠.
진행자: 잠깐만요. 만약 거기를 걷지 않고 차를 타고 간다면 신이 진노해서 경기에 레인저스가 경기에 질 거라고 생각하신 건가요? 신이 그렇게 보복한다고요? (참고로, 진행자인 아이라 글래스도 유대계이지만, 정통파 유대계는 아니다–옮긴이)
아우슬랜더: 네. 그렇게 해서 정말로 팀이 지면, 저는 신이 이번 시즌을 여기까지 이끌어 주셨는데, 내가 택시를 타는 바람에 결국 패하게 된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진행자: 그래서 정말 맨해튼까지 걸으셨어요? 다리도 걸어서 건넜다고요?
아우슬랜더: 네. 우선 티넥도로(Teaneck Road)를 따라 걸어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뉴저지 4번 국도(Route 4)가 나옵니다. 말은 국도이지만 8차선의 고속도로이고, 이걸 따라 걸으면 조지워싱턴다리(GWB)를 건너, 맨해튼 북쪽에 있는 할렘(Harlem)에 도착하죠. 거기에서 브로드웨이(Broadway)를 따라 100블록을 남쪽으로 걸으면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 갈 수 있어요.
그래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생각한 것보다 더 오래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특히 안식일에 입어야 하는 정장을 입고 걸으려니 힘들었죠. 무엇보다 딱딱한 신발이 문제였어요. 아내는 발에 물집이 생기기 시작했죠. 그런데 걸을수록 점점 더 심해져서 아프다고 힘들어했습니다.
아내는 결국 신발을 벗어들고 걷기로 했죠. 맨해튼이 어떤 곳인지 아실지 모르겠지만, 뉴욕의 거리를 양말만 신고 걷는다는 건 엄청난 결심이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발이 보통 아프지 않으면 그 더럽고 위험한 길을 신발 안 신고 걷게 되지 않아요.
하지만 그렇게 해서 도착하니 정말 좋더라고요. 우리는 너무 신이 나서 고생을 잊고 경기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경기에 몰두하느라 (우리가 거기까지 걷게 된 이유였던) 신에 대한 생각도 접어두었죠. 그런데 레인저스가 그 경기에 지면서 다시 신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 기억에는 4대1로 졌는데, 정말 어처구니없었습니다.
게임이 끝나자 모였던 팬들이 다들 기분이 상해서 매디슨 스퀘어 가든을 빠져나갔는데, 저희 부부만 멍하니 앉아있었습니다. 황당한 거에요. 이제는 레인저스만 싫어진 게 아니라, 우리의 믿음도 함께 무너지고 있었죠. 그날의 경기를 끝내는 부저가 울리자 아내는 저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냥 차 타고 올 걸 그랬다."
저희는 '음, 신이 이런 식으로 플레이를 하겠다는 거지. 그럼 우리는 안 하고 만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경기장을 나왔습니다. 저는 경기장 밖에서 파는 일반 핫도그를 사 먹었죠. 이제부터 나는 코셔(kosher) 안 지켜. (유대인들은 율법에 따라 불결한 음식을 피한다. 핫도그도 돼지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코셔 핫도그가 따로 있다–옮긴이)
진행자: (웃음) 자, 내가 어떻게 사는지 보라는 거군요.
아우슬랜더: 그동안 못 먹었던 슬림짐(Slim Jim, 일종의 육포인데 다양한 고기가 섞인 거라서 유대인들은 피하는 대표적인 간식이다–옮긴이)도 먹고..
진행자: 우유와 함께 먹나요. (유대 율법은 고기를 우유와 섞어서 요리하거나 곁들여 먹는 것을 금한다–옮긴이)
아우슬랜더: 바로 그거죠. (웃음)
진행자: 신(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형성할 경우 그런 단점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신과의 관계에서 자신감과 확신을 얻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불만이 생길 수도 있겠네요. 내가 필요할 때 찾을 수 있는 존재일 거라 생각했지, 이런 걸로 신에게 화가 날 줄은...
아우슬랜더: 그건 각자가 생각하는 신이 어떤 존재냐에 따라 다릅니다. 저는 평상시에도 문제가 많은 집안에서 자랐거든요. 아버지는 항상 무서운 사람이었죠. 그래서 어릴 때 히브리학교에 가서 신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부르는 말을 들으면, '으아... 그렇게 무서운 아버지가 하늘에도 있다는 건가...'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집에 있는 아버지만으로도 괴로운데 말이죠.
진행자: 흥미롭네요. 저는 자세히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제가 가진 신에 대한 이미지가 딱 제 아버지 같은 존재예요. 물론 우리 아버지보다는 큰 존재이겠지만, 항상 제 옆에 있는 건 아니고, 가끔 제게 관심을 가질 때도 있지만 그냥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특별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존재.
내가 교회 대학부에 다니던 시절, 선배들이 하던 말이 있었다. "너와 아버지와의 관계가 어떠냐에 따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 무서운 아버지를 가진 아이들은 하나님을 무서운 분으로 생각한다." 기독교와 유대교에서 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전통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일 수 있다.
아우슬랜더: 제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그래서 제가 아는 신은 빤스만 입고 케뎀(Kedem) 와인에 반쯤 취해서 어슬렁거리며 소리 지를 핑계를 찾는 그런 존재입니다. (함께 웃음) 그러니 그런 신이 레인저 게임을 내려다 보면서 저한테 "엿 먹어봐라"라고 한 것처럼 느껴지죠. (웃음)
진행자: 그럼 그 경기에 지는 바람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아우슬랜더: 이미 유대교 신앙에서 멀어지고 있었지만, 그게 가속화된 것 같아요. 그다음 주 안식일은 저희가 처음으로 지키지 않기로 한 첫 안식일이었죠. 신이라는 존재가 뭔지 깨달으면서 안식일을 무시하고 운전해서 몰에 가서 쇼핑을 했습니다. 저희로서는 큰 변화였습니다. 안식일이 유대교에 워낙 중요한 날이니, 그걸 안 지키는 건 결심이 필요한 일이죠. (참고로, 뉴욕 레인저스는 사흘 후에 열린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해서 1994년 스탠리컵을 따냈다–옮긴이)
진행자: 그런 일이 일어난 지 10년이 되었죠. (이 인터뷰는 2004년에 있었다–옮긴이) 그 이후로 종교인의 삶이나 유대교 커뮤니티가 그립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나요? 과거의 자신이 그립다고 느끼신 적이 있으세요?
아우슬랜더: 제가 포기한 건 종교활동(practice)입니다. 제 가족이나 유대계 커뮤니티, 그리고 저와 같은 학교를 다닌 친구들은 저를 보고 영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먼, 세속적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 제가 아는 한 저만큼 종교적인(religious) 사람도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아직도 신을 제 머릿속에서 완전히 몰아내지 못했거든요. 아직도 제 머릿속에 앉아서 제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고 있어요.
아직도 나이 많고 체중이 나가는 신이 방의 한구석에 앉아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너 그러다가 혼난다'면서 고개를 흔들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런다고 해서 머리에서 몰아내지는 못해요. 몰아내고 싶은데 왜 안되는지 모르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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