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4월 19일 오전 9시 2분, 미국 남부 오클라호마주의 주도인 오클라호마시티에 있는 앨프레드 P. 뮤러 연방정부청사(Alfred P. Murrah Federal Building) 앞에 주차된 이삿짐 트럭 한 대가 폭발했다. 범인이 임대한 이 트럭 짐칸에는 2톤이 넘는 질산암모늄 비료와 니트로메탄과 경유가 들어있었고, 이 화학물질의 폭발은 건물의 전면부를 무너뜨렸을 뿐 아니라 근처에 있던 다른 건물들에도 큰 피해를 입혔고, 충격파로 그 도시 내 많은 빌딩의 유리창이 산산조각 났다. 모두 168명이 폭발로 목숨을 잃었고, 680명가량이 부상을 입었다. 특히 건물 내에 어린이집이 있었던 탓에 여섯 살 이하의 아이들 19명이 희생되는 끔찍한 사건이었다.

'오클라호마시티 폭탄 테러'로 불리는 이 사건은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나기 전까지 미국 본토에서 일어난 최악의 테러 사건으로 악명이 높았다. 파괴된 건물의 모습을 보면 한국에서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의 현장을 보는 듯한 끔찍한 모습이다. (삼풍백화점 붕괴는 이로부터 약 두 달 후에 일어났다.)

테러 직후 현장을 샅샅이 수색한 FBI와 경찰의 빠른 수사로 범인들은 곧 체포되었다. 폭발물이 든 트럭을 건물에 주차한 티머시 맥베이(Timothy McVeigh)와 그를 뒤에서 지휘하고 도움을 준 테리 니컬스(Terry Nichols)였다. 이들은 왜 테러를 저지르게 되었을까?

범행의 동기를 이해하는 데는 범인들이 선택한 날짜와 장소가 도움이 된다. 범인들은 '연방정부'를 공격하고 싶었다. 연방정부라고 하면 제일 먼저 동부의 워싱턴 D.C.가 생각나겠지만 국가 수도에 있는 정부 건물들은 경비가 워낙 삼엄하기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의 연방정부 건물은 전국 곳곳에 위치한다. 특히 각 주의 주도에는 각종 연방정부 기관이 지역 사무실을 갖고 있다. 가령 각 주에는 주 법원이 있지만 연방법을 다루는 연방법원도 존재한다. 각 주와 도시에는 그곳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이 있지만 주의 경계를 넘어 수사를 할 수 있는 연방수사국, FBI도 건물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편리성 때문에 이들 연방정부의 기관들은 한 건물에 모여 있는 일도 흔하다.

테러의 대상이 된 앨프레드 P. 뮤러 연방정부청사도 사회보장국(SSA), 마약단속국(DEA), 주류·담배·화기 및 폭발물 단속국(ATF) 같은 연방정부 기관들이 입주해 있었다. 어린이집은 여기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어린아이들은 맡기는 곳이었다. 범인들은 '연방정부를 공격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할 만큼 큰 건물이면서 동시에 '설마 이런 곳을 공격하겠느냐'라고 생각해서 경비가 느슨할 곳을 노렸다. 오클라호마주는 텍사스주 북쪽에 위치한 남부의 작은 주로 특별히 국민의 관심이 쏠리는 곳이 아니다. 범행을 저지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2년 전에 일어난 일

그럼 날짜는 왜 중요할까? 테러 공격으로부터 정확하게 2년 전인 1993년 4월 19일은 텍사스주 웨이코(Waco)라는 지역에서 연방정부가 신흥종교의 근거지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을 포함해 76명이 숨지는 대형 참사가 일어난 날이다. 티머시 맥베이와 테리 니컬스는 이 사건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4월 19일을 골라 테러를 저지른 것이다. 범인들이 신흥 종교에 소속된 사람들도 아니었는데 왜 이 사건에 큰 의미를 부여했을까?

다윗교도(Branch Davidians)라 불리는 이들은 신흥종교에서 흔히 보이는 특성, 즉 카리스마가 넘치는 교주가 종말론적인 메시지로 일군의 신자들의 충성을 받아내고, 젊은 여성들과 성관계를 가지고, 세상과 분리된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하는 등의 모습을 가진 전형적인 종교 단체였다.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텍사스주 웨이코에 커다란 요새 비슷한 건물을 짓고 살고 있었다.

이런 그들이 연방정부의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그들이 AR-15을 비롯한 무기들을 불법으로 사모으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연방정부 기관 중에서도 화기 및 폭발물을 관리, 단속하는 ATF가 이들에 관한 정보를 모으고 요원들을 보내어 수색을 시도했다. 이후에 벌어진 일을 자세하게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다큐멘터리와 영화가 나왔고, 뉴욕타임즈에서 15분짜리 영상, 혹은 바이스에서 만든 18분짜리 영상도 있다. 흥미로운 내용이니 추천한다) 이 진압 과정에서 벌어진 일은 미국 연방정부가 무장한 시민들을 진압할 때 저지를 수 있는 실수와 판단 착오를 모아둔 것처럼 보인다. 교주와 교도들은 항복하지 않고 버텼고, 연방정부와 텍사스주는 탱크까지 동원해서 이들을 꺼내려고 했고, 그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정부 발표에 따르면 교도들이 방화를 했다고 한다) 아이들을 포함한 교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뉴욕타임즈의 영상에서도 설명하지만, 이 사건은 이 종교에 전혀 관심이 없는 많은 사람들, 특히 연방정부에 강한 불신을 갖고 있는 미국인들을 분노하게 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무기를 갖겠다는 사람들을 정부가 탱크를 몰고 가서 강제 진압하고 아이들까지 "죽였다"는 것이다.

1995년 오클라호마시티에서 폭탄 테러를 일으킨 맥베이와 니콜스는 군인 출신으로, 그중 맥베이는 걸프전쟁(1990~1991)에 참전하기도 했던 인물. 이들 군에서 만나 가까워졌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중 1993년에 일어난 웨이코 진압 참사의 책임이 연방정부에 있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오클라호마시티의 테러를 모의하게 된 것이다.

무리한 진입 시도 끝에 일어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 (이미지 출처: The Texan)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반정부적인 생각을 가진 두 사람의 독립 범행으로 보인다. 독립 범행은 맞다. 하지만 당시 미국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1990년대에는 미국 전역에서 주로 백인들로 구성된 민병대(militia)가 급격하게 늘고 있었고, 이들은 연방정부의 공격용 총기 규제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었다. 특히 웨이코 사태가 벌어지기 한 해 전에는 아이다호주에서 루비 능선 대치(Ruby Ridge Standoff) 사건이 있었다. 이 경우는 신흥종교가 아니라 일가족이 불법 무기를 소지하고 정부 기관(FBI)과 대립 중에 총격전이 일어나 두 명이 죽고 두 명이 부상하는 사건이었다.

미국인들 중에는 1992년의 루비능선, 1993년 웨이코 사건이 연방 정부가 독재자처럼 무고한 시민들에게서 무기를 빼앗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고 있었다. 이들에게 공격용 소총은 자신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데 이를 빼앗기는 것은 정부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을 의미했다. 게다가 1994년에는 클린턴 행정부가 공격용 소총의 민간 소지를 금지하는 연방 공격용 무기 금지법(Federal Assault Weapons Ban)을 통과시켰다. 비록 10년짜리 한시법이었지만 이들은 이 모든 것이 자신들을 무장해제하려는 연방정부의 폭압이라고 생각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티모시 맥베이와 테리 니콜스가 오클라호마시티에서 테러의 대상으로 삼은 빌딩에는 바로 이렇게 연방정부에서 불법 무기를 지정하고 단속하는 역할을 하는 ATF가 입주해 있었다.

OKC의 유령

오클라호마시티의 테러는 미국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당시까지 최대의 테러였고, 범인이 외국인이 아닌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즉 국내 테러범(domestic terrorist)이었던 것이다. 맥베이와 니콜스 같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을 안 클린턴 행정부는 이들을 철저히 색출하고 단속하기 시작했고 이런 조치를 통해 미국 내 민병대의 숫자는 급감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다시 민병대가 전국적으로 급증하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바로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이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것이 왜 민병대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것과 관련이 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총기규제에 적극적인 민주당의 대통령이라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고, 그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사실도 하나의 요인으로 추측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런 종류의 민병대는 대개 백인 중심이고 그 정서가 남북전쟁 시절의 남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 이후 민병대가 급증했다. (출처: NPR)

2021년 1월로 가보자. 대통령이면서 연방정부를 불신하고 후보 시절 정부기관을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을 공약처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에서 물러났고, 오바마 시절에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이–그것도 흑인들의 몰표가 큰 힘이 되어–대통령이 되었다. "내가 이겼지만 승리를 도둑맞았다"라는 트럼프의 근거 없는 주장을 믿는 지지자들은 바이든 승리가 공식화되는 절차를 막으려고 국회의사당에 난입했고, 트럼프는 그들 중에 총기를 소지한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도 그들이 의사당에 들어가는 걸 막지 말라고 했다.

게다가 트럼프는 (그 일과 무관하게) 백악관에서 국가기밀문서를 불법으로 빼내어 플로리다의 자기 집으로 가져갔고, 이를 돌려달라는 연방정부의 요구에 1년 넘게 불응하다가 결국 연방수사국 요원들의 압수수색을 받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연방정부가 긴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독 범행이지만 벌써 한 사람이 트럼프 자택 압수수색 직후 "FBI 요원을 죽이겠다"며 FBI 지부에 총을 들고 찾아가서 대치하다가 사살됐다.

오클라호마시티 테러범인 티모시 맥베이가 체포될 당시 소지품 중에는 링컨의 초상이 담긴 희색 티셔츠가 있다. 초상 밑에는 SIC SEMPER TYRANNIS라는 라틴어가 적혀있다. 이 문구를 직역하면 "따라서 언제나 독재자에게(Thus always to tyrant)"가 되고 이는 "독재자는 반드시 망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여기에서 독재자는 링컨이다. 맥베이 같은 사람에게 링컨은 북군, 즉 연방정부의 군대를 이끌고 남군, 즉 저항군(혹은 민병대)을 무찌른 독재자인 것이다. 그들은 연방정부는 힘이 최소화하거나 사라져야 한다고 믿고 있고, 트럼프는 이런 그들의 정서를 대변하면서 대통령이 되었다.

이런 그들이 다시 힘을 뭉치고 있고, 폭력 사용을 공공연하게 찬양하고 있다. 게다가 공화당 정치인들은 이들을 말리는 대신 이들의 분노를 이용하고 있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정치단체인 CPAC(Conservative Political Action Conference)는 올해 열린 집회에서 "우리는 모두 국내 테러리스트다(We Are All Domestic Terrorists)"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이들에게 바이든 대통령은 링컨(공교롭게도 링컨은 공화당 출신의 첫 대통령이다)과 오바마의 뒤를 잇는 폭압적인 독재자이고, 트럼프의 승리를 불법으로 가로챈 사람이다. 이들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되찾을 방법이 없다면 폭력 사용을 불사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내전이라는 옵션이 불가능하다면? 남는 건 연방정부 기관을 향한 국내 테러인 거다. 미국 정부가 긴장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