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일린의 깨달음 ①
• 댓글 남기기게일린 리(Gaelynn Lea)는 바이올린 연주자인 동시에 작곡가이자 가수다. 그리고 그는 특별한 충격 없이도 뼈가 쉽게 부러지는 골형성부전증(영화 '언브레이커블,' '글래스'에서 새뮤얼 L. 잭슨이 연기한 캐릭터가 이 병을 갖고 있었다)이라는 희귀한 선천성 장애가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전동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데, 이는 그가 들려줄 아래 이야기의 배경이 된다.
아랫 글은 그가 더 모스(The Moth)에서 이야기한 내용을 옮긴 것이다. 녹음은 여기에서 들어볼 수 있다.
저는 미네소타주 출신의 음악인입니다. 저는 연주를 오래 했어요. 그러다가 음악 공연을 생업으로 하시는 분을 몇 분 알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미네소타 출신인데 미국 전역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를 돌아다니며 연주하시는 분들이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성공한 분들이었죠. 저는 그렇게 자기 곡을 연주하면서 투어를 하는 사람들이 항상 부러웠어요.
언젠가 그중 한 분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겨서 제가 여쭤봤습니다. 나이가 좀 드신 분이었는데 제가 "그렇게 공연 투어를 하시는 거, 재미있나요? 하시는 일이 마음에 드세요?"하고 물었더니, 그분이 이렇게 답을 하셨어요. "아뇨, 그렇지 않아요. 투어는 몸을 갈아 넣어야 하는 일이에요. 지금 바이올린 가르치신다고 했죠? 좋은 직업을 갖고 계신 거예요. 투어는 생각하지 마세요. 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저는 그분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습니다.
그러다가 2016년이 되었고, 저는 미국공영라디오(NPR)의 '타이니 데스크 콘테스트'에 제 곡을 보내서 지원했다가 1등을 하게 됐고,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서 공연을 할 수 있었죠. 6,100 팀이 지원한 경쟁에서 제가 1등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방송을 타고 유명해진 건 엄청난 기회였기 때문에 저와 제 남편은 공연 투어를 해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되나 안 되나 한번 해보기로 한 거죠. 그래서 둘 다 직장을 그만두고, 집을 팔고, 밴을 사서 길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이후로 2년 반째 풀타임으로 투어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연주를 하고, 남편은 그 외의 나머지 일을 모두 책임지고 있죠.
공연 투어가 힘든 일이라는 걸 깨달은 건 어느 날 연주를 10분 남겨놓고 화장실 안에 있을 때였죠. 저는 그 안에서 화장을 하면서 입으로는 식사 대신 육포를 씹고 있었거든요. 그 순간 예전에 들었던 나이 든 음악인의 말이 떠오른 거예요. '아, 갈아 넣는다는 게 이 얘기구나. 내가 지금 여기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런데 공연 투어 자체도 힘들지만, 장애를 갖고 공연 투어를 하는 게 더 힘든 일이 될 거라는 생각을 제가 깊이 해보지 않았더라고요. 한번은 몇 주 동안 다른 음악인과 함께 다니며 공연을 하게 되었어요. 투어를 10년 동안 하신, 경험이 많은 분이었는데, 그분이 저와 함께 공연한 지 2주가 지났을 때쯤 자기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쓰신 걸 봤습니다. "나는 공연 투어가 힘들다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을 운전해야 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무대에 서야 하고, 그렇게 찾아간 무대에 관객이 한 명도 없을 때도 있고, 공연을 마친 후 12달러를 받는 게 전부일 때도 있다."
이거 정말 맞는 말입니다. 저도 똑같은 경험이 있습니다.
제 생각을 바꾼 건 그다음 내용이었어요. "하지만 아무리 투어가 힘들다고 해도 내가 공연할 공연장에 들어가기도 힘든 상황이라면 얼마나 힘들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게일린과 그의 남편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나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엄청난 일이다." 왜냐하면 그 말이 사실이었거든요. 제가 공연 전에 보내는 무대 플롯(stage plot, 공연자가 요구하는 무대 구성안)에는 "게일린 리는 전동 휠체어를 타기 때문에 경사로가 필요하다"라고 적혀있지만, 아무도 무대 플롯을 안 읽죠.
그러니 공연장에 도착하면 경사로는 보이지 않고, 휠체어로는 그린룸(green room, 공연자 휴게실)에 접근할 수 없을 때도 많아요. 그린룸이 지하, 혹은 위층에 있는데, 경사로나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이죠. 심지어 화장실을 쓰지 못할 때도 있어요. 게다가 가끔은 무대로 올라가지도 못해서 사람들이 제 휠체어를 직접 들어 올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제 휠체어의 무게가 130kg이 넘습니다.
제게는 새로운 공연장에 가는 게 장애물 코스를 통과하는 것 같아요.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제가 투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일주일 내내 잠만 자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아마 그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래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으냐'라는 생각으로 저 자신을 위로했죠. 저는 연주를 좋아하고,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니까요. 저는 이게 현재 내가 사는 사회의 여건이니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느냐고 생각하고 말았어요. 적어도 저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이죠.
그 후에 다른 음악인을 만났어요. '휠체어 스포츠 캠프(Wheelchair Sports Camp)'라는 힙합 그룹에서 활동하는 케일린 헤퍼넌(Kalyn Heffernan)이라는 래퍼죠. 케일린은 저와 똑같은 장애를 갖고 있는데, 자기가 꽤 큰 페스티벌에서 공연했던 얘기를 해줬습니다. 케일린이 공연 투어를 시작한 첫해에 일어난 일인데, 어쩌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의 2층 공연장에서 공연하게 되었답니다.
케일린은 장애인 커뮤니티에서 상당히 유명한 래퍼라 공연에 찾아온 청중 중에는 휠체어를 탄 사람이 많았지만, 공연장이 2층에 있어서 이분들이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팬들은 화가 났고, 케일린은 정식 공연 전에 이들을 위해서 공연장 밖에서 몇 곡을 연주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공연장에 들어가서 예정된 공연을 진행했고요. 다음날 화가 난 팬들에게서 이메일을 몇 개 받았다고 합니다. 케일린의 공연을 보고 싶어 찾아갔지만 밖에서 몇 곡만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던 분들이었죠.
그 얘기를 들은 저는 순진한 질문을 했습니다. "그분들, 약간은 과민반응 아닌가요? 공연장을 가수가 고를 수 있는 자기 공연이 아니라 페스티벌에 참석했을 뿐인데 말이죠." 그랬더니 케일린은 제게 이렇게 답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연주자가 장애인인데 그의 공연을 보러 온 장애인이 공연장에 들어갈 수도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연주자가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는 거니까요."
저는 케일린의 말을 듣고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연주자인 제가 힘든 것만 생각했지, 저를 보러 오는 청중이 공연장에 들어오기 힘들어할 수 있다는 건 미처 생각해 보지 않았거든요. 제 공연에는 그런 일이 아직 없었지만, 찾아온 청중이 들어오지 못한다면 정말 비참한 일 아닌가요? 그래서 그 후로는 장애인이 접근하기 힘든 공연장에서 공연을 할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장애인 접근성을 주장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곳에서 공연한다는 사실에 저 자신이 위선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지금이 2019년인데 장애인이 접근하기 힘든 공연장이 있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러다가 제가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된 일이 보스턴에서 있었습니다.
'게일린의 깨달음 ②'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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