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먼 vs. 오즈 ② 인식의 변화
• 댓글 3개 보기펜실베이니아주 공화당 경선에서 31.21% 대 31.14%라는 초박빙의 경쟁을 통해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가 된 메멧 오즈와 달리 존 페터먼은 민주당 내 경선에서 2위 후보보다 두 배가 훌쩍 넘는 지지율로 넉넉한 경쟁을 하고 있었다. 그가 민주당 후보가 되는 것을 의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페터먼은 민주당 경선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던 지난 5월 13일 선거 유세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뇌졸중 증세를 보였다. 남편이 평소와 달리 말을 부정확하게 하는 것을 눈치챈 아내가 "지금 당장 병원에 가야 한다"며 유세장에서 차를 돌려 응급실로 향했다. 페터먼은 나중에 인터뷰에서 자신은 뇌졸중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고 거부했지만 운전대를 잡고 있던 아내가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바람에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참고로, 페터먼이 겪은 허혈성 뇌졸중(ischemic stroke)은 "뇌혈관에 폐색(혈관 등을 이루는 관이 막히는 경우)이 발생하여 뇌에 공급되는 혈액량이 감소"하는 증상으로, "뇌혈류 감소가 일정 시간 이상 지속되면 뇌조직의 괴사(조직이나 세포의 일부가 죽는 것)가 시작"하는 심각한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의사들은 뇌졸중이 의심되는 증상을 보이면 절대 지체하지 말고 응급실에 가라고 조언한다. 머뭇거리는 1분이 생과 사를 가르기도 하고, 회복과 재활에 걸리는 시간과 재활 후의 상태를 결정한다. (허혈성 뇌졸중에 관해서는 이 사이트를 참고)
경선을 코앞에 둔 후보가, 그것도 53세의 비교적 젊고 큰 키에 튼튼해 보이는 페터먼이 뇌졸중으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는 건 펜실베이니아주를 넘어 전국적인 큰 뉴스였다. 민주당이 상원을 지킬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열쇠를 지닌 후보였기 때문이다.
퇴원한 페터먼을 보는 시각
아내의 빠른 판단과 의료진의 노력으로 페터먼은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그의 주치의는 일정 기간의 재활훈련을 거치면 아무런 불편 없이 일상적인 활동과 일을 할 수 있게 될 거라고 했다. 정치인으로서 문제없이 일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문제는 그가 당장은 뇌졸중을 겪은 사람들이 흔히 보이는 증상을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주위에서 본 적이 있겠지만 말이 약간 어눌하거나 심할 경우 걸음걸이나 팔 사용이 불편한 사람들이 있다. 페터먼의 증상은 그보다 훨씬 약하다. 걷거나 팔을 쓰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어 보이고, 말을 할 때도 이상한 부분을 거의 찾기 힘들다. (그만큼 빠른 발견과 치료가 중요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가 뇌졸중 후에 말하는 것을 듣고 싶다면 아래 팟캐스트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추천한다. 이를 추천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의 증상의 심각성을 확인하라는 것이 아니라, 선거와 관련해 언론이 공정한 보도를 위해 기울이는 노력을 소개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팟캐스트의 진행자인 카라 스위셔는 본인이 허혈성 뇌졸중을 겪고 재활 기간을 거쳐 예전과 똑같이 방송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사람이다.
스위셔와 제작진은 뇌졸중을 겪은 페터먼과의 인터뷰가 선거 전에 나간다는 사실 때문에 고민 끝에 페터먼이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을 조금의 편집도 하지 않고 내보내기로 했다. 이 팟캐스트에서는 인터뷰이의 말을 편집하는데 그 이유는 방송인이 아닌 사람들은 "음-" "어-" 같은 소리를 많이 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페터먼과의 인터뷰에서 그런 가벼운 편집조차도 하지 않은 이유는 그의 건강 상태가 유권자들의 선택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위의 인터뷰를 들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페터먼의 말은 완벽에 가깝다. 간혹 잘못 발음하는 단어가 있기는 하다. 가령 hospital(병원)을 hospitable(친절한)로 거듭 잘못 말하는 경우가 있고, politics(정치)의 강세를 o가 아닌 첫 번째 i에 두었다가 정정하는 대목이 있지만 뇌졸중을 겪었다고 생각하기 힘들 만큼 문제없는 인터뷰였다.
그런데 여기에는 반드시 언급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그가 자막(closed captions)을 사용해서 인터뷰 질문을 이해했다는 것이다. 뇌졸중의 후유증은 피해를 입은 뇌의 부위가 어떤 일을 담당하고 있었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 페터먼의 경우는 귀로 들은 소리를 처리(auditory processing)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일종의 청각 장애라고 볼 수 있지만 소리가 들리지 않는 귀의 이상이 아니라 말소리를 이해하는 뇌의 처리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 거다. 물론 의사들은 시간이 지나면 이 기능은 다시 돌아온다고 했고, 페터먼 본인도 증세의 개선이 빨라서 매일매일이 다르다고 했지만 유권자들은 "상원의원이 될 사람이 뇌에 문제가 있다고?"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장애의 위치에 따른 차별
미국은 장애인 정치인에 익숙한 나라다. 성인이 된 후에 소아마비(폴리오)를 앓아 휠체어를 사용한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이 있었고, 현재 텍사스 주지사인 그레그 애벗(Greg Abbott, 이번에 재선에 성공했다)도 젊은 시절 사고 이후로 휠체어를 타기 시작했고, 그의 정치 커리어는 그 이후에 시작되었다. 민주당 상원의원인 태미 덕워스(Tammy Duckworth, 일리노이주) 역시 의족과 휠체어를 숨기지 않는다. 덕워스의 경우 군인 시절 전투 중에 입은 부상이기 때문에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 그의 장애는 훈장에 가깝다.
비슷한 경우로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존 매케인(John McCain)도 있다. 매케인은 월남전에서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팔 사용이 불편했는데, 빌 클린턴과 1996년 대선에서 대결한 공화당의 밥 돌(Bob Dole) 의원이나,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모두 전쟁에서 입은 부상의 후유증이나 장애를 갖고 살았던 유명한 정치인들이다. (참고로, 장애인의 묘사에 대해서는 '빌런의 얼굴'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따라서 존 페터먼이 청각 문제, 그것도 일시적인 청각 처리 문제로 자막의 도움을 받는 것은 정치인이 휠체어의 도움을 받는 것과 다를 게 없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특히 공화당에서는 페터먼이 갖게 된 장애의 위치가 인지기능(cognitive function)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다른 장애도 아니고 인지능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느냐, 라는 문제 제기였다.
물론 페터먼은 질문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고, 오로지 그 질문이 소리로 들어올 때만 청각'처리'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그 장애의 부위가 '귀'가 아니라 '뇌'라는 이유로 다르게 취급한 것이다. 아니, 엄밀하게는 직무 수행에 문제가 없을 것을 알면서도 대중의 인식, 유권자의 불안을 파고들기로 한 것에 가깝다.
장애를 조롱하는 사람들
남에게 일어난 불행을, 그것도 장애를 공격하는 건 아무리 인신공격에 익숙한 정치인들에게도 분명히 넘지 말아야 할 선이다. 하지만 미국 정치는 트럼프의 등장 이후로 넘지 말아야 할 많은 선들을 넘었다.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조롱도 그중 하나다.
이런 비윤리적이고 저열한 행동에 대한 잘못은 정치인 당사자에게 그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자랑하듯 ("내가 사람을 총으로 쏴도 내 지지자들은 아무도 나를 떠나지 않을 것") 그런 정치인이 아무리 잘못해도, 아니 잘못을 저지를 수록 더욱더 열광하며 떠나지 않는 지지자들에게도 분명한 책임이 있다.
메멧 오즈와 공화당이 페터먼의 장애를 조롱, 공격하기로 한 배경에는 바로 이런 공화당/트럼프 지지자들의 성향이 있다. 오즈 선거운동본부에서는 "페터먼이 살면서 야채를 한 번이라도 먹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고, 오즈와의 토론회에서 페터먼이 필요한 모든 배려를 하겠다면서 "의료진이 옆에 대기해야 한다면 우리가 돈을 내주겠다" "토론회 중 휴식이 필요하면 '화장실 다녀올게요!"하고 손을 들면 된다"라는 조롱이 가득 담긴 리스트를 내놓기도 했다.
페터먼은 뇌졸중을 겪은 후 이미 계획되어 있던 오즈와의 선거 토론회를 취소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가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버벅대거나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을 유권자들이 보면 충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뇌졸중 환자를 많이 본 의사들이나 의학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페터먼이 당장 청각 처리에 어려움이 있어도, 아니 만에 하나 그 문제가 지속되어도, 그래서 캡션을 사용해 대화하더라도 이는 애벗 주지사가 휠체어를 타거나 나이 든 상원의원이 보청기를 끼는 것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일반 대중에게서 그런 수준의 인식 전환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토론회를 취소하자고 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페터먼은 토론회를 고집했다. 전체 토론회 영상은 여기에서 볼 수 있고, 아래는 워싱턴포스트가 주요 장면을 편집한 3분짜리 영상이다. 이 영상에서 1:50 지점을 보면 페터먼이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같은 말을 반복하며 얼버무리는 장면이 나온다.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것만 문제가 된 게 아니다. 이를 정리한 기사에 따르면 자신이 겪고 있는 증상을 최대한 극복하기 위해 대답을 짧게 했지만 지나치게 짧았고, 말을 하기 전에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I believe...(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라는 말을 기계적으로 넣었다. 게다가 발언 시간을 지나치게 의식했다. 정치인들이 원래 말이 많지만 이런 토론회에서 시간을 넘기는 일은 흔하다. 누구나 벨이 울리고도 십여 초 넘게 말한다. 하지만 페터먼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를 지키려고 너무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페터먼은 토론 전에 자신이 현재 겪고 있는 증상을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했지만 사람들은 그 모습에 불안함을 느꼈던 것 같다. 토론회가 끝난 후 거의 모든 언론에서 "페터먼이 왜 토론회를 취소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토론회는 누가 보기에도 페터먼의 완전한 패배였기 때문이다.
토론회 전까지만 해도 페터먼은 오즈에 넉넉히 앞서 있었지만, 상황은 단번에 뒤집어졌고 오즈는 페터먼을 바짝 추격하기 시작했다. 페터먼의 승리를 예측했던 언론은 박빙의 승부나 오즈의 승리를 예상하기 시작했다.
페터먼의 승리가 보여준 것
하지만 선거 결과는 페터먼의 넉넉한 승리였다.
펜실베이니아 유권자들은 왜 다시 생각을 바꿔서 페터먼을 지지하기로 했을까?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페터먼은 뇌졸중을 앓기 전에 이미 오즈에 앞서 있었던 후보다. 다만–여론조사 결과의 추이를 놓고 보면–뇌졸중을 겪고 어눌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잠시 그의 직무수행 능력을 의심했던 것 같다. 적어도 언론의 추측은 그렇다.
그런데 사람들은 생각을 바꾼 게 분명해 보인다. 인지 능력과 관련이 있는 장애라고 해도 자막과 같은 보조기구(accommodation)의 도움으로 상쇄할 수 있다면 문제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게 비슷한 장애를 일시적으로 겪고 있거나 영구적으로 가진 사람들에 대한 대중의 인식 변화를 의미할까? 그렇다고 단정짓기는 힘들다. 이 선거는 너무나 중요한 선거였기 때문에 '그 정도 장애는 무시할 수 있다'라고 특별한 판단을 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앞서 말한 루즈벨트 대통령은 휠체어를 탄 모습을 최대한 숨겼고, 대중 연설을 할 때는 좌우에서 그를 조심스럽게 붙잡아 걸어 나오는 모습을 연출할 만큼 신경을 썼다. 아직 '휠체어를 탄 리더'를 인정할 만큼 대중의 인식이 성숙하지 못했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르다. 그레그 애벗 주지사와 태미 덕워스 상원의원은 휠체어를 타고 대중 앞에 나서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존 페터먼이 그렇게 루즈벨트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미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뇌졸중을 겪고 있기 때문에 '상원의원 페터먼'의 존재는 중요하다. 그걸 겪었어도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면 인식은 천천히나마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미국 정치 내에서 페터먼의 승리가 가지는 의미와는 전혀 별개의 의미로 중요한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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