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연방 대법원은 2023년 6월 29일, 적극적 우대 조치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판결문을 발표했다. 아래의 글은 2022년 11월에 발행된 것이다.


미국 연방 대법원은 미국 유명 대학교에서 시행하는 소수 인종 배려 원칙이 헌법에 위배되는지 심사 중에 있다. 흔히 적극적 우대 조치(affirmative action)라 불리는 이 정책은 이미 대법원에 여러 차례 올라가서 위헌 여부를 다퉜던 역사가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대법원은 소수 인종을 배려하는 대학 손을 들어줬다. 그런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공화당이 오랜 노력과 편법을 동원해 대법원을 6대 3 보수 우세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지난 6월 무려 반세기 가까이 지켜왔던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 즉 여성의 임신 중지를 헌법이 보장한다는 판결을 뒤집었다. 적극적 우대 조치의 역사는 로 대 웨이드 판결보다 길지만 이 역시 진보적인 생각이 미국 정치를 이끌던 시대에 나온 것이기 때문에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이후로 미국의 보수 진영에서는 이런 과거의 원칙을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으려는 시도가 계속되어 왔다. 절대로 뒤집히지 않을 것 같았던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무효화되는 상황을 본 미국인들은 대학교들이 적극적 우대 조치를 사용하는 것을 이번 대법원이 위헌이라고 결정 내릴 게 분명하다고 예상하고 있다. ‘적극적 우대 조치는 끝났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이유다.

"적극적 우대 조치의 종말은 대학과 기업을 뒤흔들 것"이라는 뉴스위크의 기사와 표지

하지만 적극적 우대 조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보수 백인들만이 아니다. 아시아계 학생과 학부모들도 이 조치의 철폐에 나서고 있다. 아시아계는 소수 인종에 속하는데 왜 이런 조치의 철폐를 주장할까? 아시아계가 불만을 가진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미국에서 ‘소수 인종을 배려한다’고 이야기할 때는 백인이 아닌 모든 인종이 포함되지만, 교육에서는 다르다. 교육, 특히 대학 입학과 관련해서는 아시아계, 특히 동아시아 3국과 인도계는 ‘배려’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배려를 받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 많다. 지난 10여년 동안 하버드대에 입학한 학생들을 인종을 기준으로 분류한 자료를 보면 아시아계는 꾸준히 합격한 학생의 20% 안팎을 맴돌고 있다.

미국 인구에서 아시아계가 차지하는 비율이 6%가 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듯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지난 10여년간 하버드에 합격한 고등학생 SAT(미국의 수능시험) 성적을 보면 아시아계 학생은 총점 800점에 평균 767점을 받은 반면, 백인 학생은 평균 745점, 히스패닉 학생은 718점, 미국·하와이 원주민 학생은 712점, 흑인 학생은 704점을 받고 있다. 이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흑인 학생들은 700점을 간신히 넘기고도 하버드 진학을 꿈꿀 수 있다면, 아시아계 학생은 750점으로도 어림없다는 얘기다.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의 SAT 평균 점수를 인종별로 보여주는 도표 (이미지 출처: The Harvard Crimson)

물론 미국 대학교는 SAT 점수만으로 입학 허가가 나진 않는다. 점수로 표시될 수 있는 것 외에도 많은 요소가 심사 대상이 되는데 아시아계 학생들이 워낙 시험점수가 좋다 보니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각 소수 인종 학생 입학 비율이 10년 넘도록 꾸준하게 나타난다면, 학교 측에서 인위적으로 특정 인종 비율을 할당해서 유지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과연 그럴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적극적 우대 조치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이 조치가 미국에 등장했을 때는 인종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던 시절이었고, 여기에서 말하는 차별은 소수 인종, 특히 흑인들이 받는 차별을 가리켰다. 알다시피 미국 흑인은 대부분 아프리카에서 납치당해 미국 대륙에서 노예가 된 사람들 후손이고, 남북전쟁을 거치며 노예에서 해방된 후에도 인종분리 정책에 따라 100년 가까이 합법적으로 차별을 받아온 사람들이다.

오랜 노예 정책과 그 뒤를 이은 분리 정책을 실행해온 미국은 1960년대 마틴 루서 킹 목사를 비롯한 많은 인권운동가와 시민의 노력으로 인종차별을 해소하기로 방향을 바꿨지만 워낙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스며 있는 차별이 실정법이 마련된다고 해서 바뀌진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가령 학교가 흑인과 백인 학생들을 분리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강제할 수 있지만 경제적으로 뒤떨어지는 가정환경에서 자란 흑인 아이들이 대학교에, 그것도 좋은 대학교에 입학할 확률은 높지 않았다. 그 결과, 법은 차별을 금지하지만 대학교 캠퍼스가 백인 학생들로 가득한 현실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런 차별을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 1960년대 미국 정부는 적극적 우대 조치에서 그 답을 찾았다. 흑인들은 태어나 자라는 환경에서, 그리고 흑인에 대한 사회의 편견으로 이미 차별을 받았기 때문에 이들에게 특혜를 주어 우대해야만 기울어진 운동장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우대 조치의 대상에는 정부가 발주하는 계약과 대학교 입학이 포함되었다.

이를 앞장서서 추진한 사람은 린든 B. 존슨 대통령이다. 흔히 존 F. 케네디를 진보적인 대통령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당시 미국 사회가 진보로 돌아섰던 건 케네디 암살 이후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존슨 대통령이 진보 입법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는 진정한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회의 평등(equal opportunity)으로는 불충분하고 적극적 우대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린든 B. 존슨 대통령과 마틴 루서 킹 목사 (이미지 출처: TIME)

그런데 보기에 따라서 존슨 대통령 주장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미국 수정 헌법 14조는 “(어떤 주도) 개인에 대한 법의 동등한 보호를 거부하지 못한다”고 못 박고 있다. 이 조항은 남북전쟁 후에 애초에 노예 출신 흑인과 그 후손 권리를 보장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존슨 대통령과 진보 진영의 주장처럼 실질적인 차별을 없애기 위해 특정 인종에게 혜택을 주어야 한다면 이는 다른 인종을 차별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백인에 대한 ‘역차별(reverse discrimination)’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만으로는 대법원의 판결을 받을 수 없다. 법원은 특정한 주장이나 이론을 심리하는 곳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다루는 곳이다. 따라서 이런 정부의 정책에 반대해서 위헌소송을 하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사건을 찾아내어 법원으로 가져간다. 그렇게 해서 선택된 것이 1978년 ‘캘리포니아주립대 대 바키 사건(University of California v. Bakke)’이다.

당시 캘리포니아주립대 데이비스(U.C. Davis) 의대에서는 특별 소수자 전형을 운영하고 있었다. 매년 100명의 학생이 의과대학원에 들어오는데, 그중 16명을 소수 인종에게 할당하는 제도였다. 그런데 1973년을 기준으로 일반 전형으로 합격한 학생들의 학점이 평균 3.49인 데 비해 특별 소수자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은 평균 2.88로 눈에 띄게 낮았다.

그런데 이 대학원에 앨런 바키라는 백인 남학생이 지원한다. 바키는 미 해병대 출신으로 학부에서는 기계공학을 전공했는데, 학점이 3.46이었다. 일반 전형 평균에 살짝 미치지 못하지만 특별 전형 학생들, 즉 흑인 학생들에 비하면 훨씬 높았다. 그는 의과대학원 진학에 실패한다. 그것도 두 번이나.

역차별을 받았다며 U.C. Davis를 상대로 소송을 낸 앨런 바키 (이미지 출처: Fremont Tribune)

'적극적 우대조치의 종말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