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에 집착한 남자 ②
• 댓글 4개 보기플라이 낚시를 시작했다가 영국 자연사 박물관의 절도 사건에 대해 알게 된 커크 존슨은 범인인 에드윈 리스트를 직접 만나 이야기하고 싶었다. 존슨은 무려 3년에 걸쳐 리스트에게 이메일을 보내 인터뷰를 요청했다. 하지만 리스트는 일관되게 이를 거절했다. 그때의 일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답장이 왔다. 리스트는 존슨이 원한다면 일주일 후에 독일의 뒤셀도르프에서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그 도시에 살면서 한 앙상블에 소속되어 연주 활동을 하고 있었다. 존슨의 아내는 남편이 혼자 범인을 만나는 것에 반대했다. 일단 박물관을 턴 절도범인데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만나는 건 너무 위험했다. 그래서 존슨과 그의 아내는 독일에서 경호원을 한 명 고용했다. 그 경호원은 존슨이 호텔 방에서 리스트를 인터뷰하는 내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복도에서 대기했다.
하지만 존슨은 리스트를 만나자마자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키에 검은색 코트를 입고 있었지만, 전혀 위협적인 사람이 아니었고, 친근한 성격이었다. 존슨은 전형적인 중서부의 농촌 출신이고, 리스트는 유럽에서 플루트와 값비싼 깃털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었지만, 존슨은 리스트와 이야기를 시작하자 곧 호감을 느꼈다.
리스트는 뉴욕주 올버니(Albany) 남쪽에 있는 조용한 마을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의 모습을 보면 금속 테 안경을 끼고 밖에 잘 나가지 않는, 해리 포터와 비슷한 인상의 귀여운 아이다. 둘 다 저널리스트였던 부모는 그를 그의 동생과 함께 홈스쿨링으로 키웠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탁월한 재능
그렇게 자라던 리스트는 열 살 때 아버지가 디스커버(Discover) 매거진에 플라이 낚시의 물리학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조사하는 걸 보게 된다. (같은 글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아버지가 쓴 것으로 보이는 기사는 2008년에도 발행되었다—옮긴이) 그러다가 특별한 종류의 깃털을 사용해서 플라이 미끼를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비디오까지 봤다. 새의 깃털이 아름답고 정교한 모양의 벌레로 탈바꿈하는 장면을 보는 순간, 열 살짜리 리스트의 머리는 얼어붙는 듯했고, 그 아름다움에 단번에 매료되었다.
평범해 보이는 깃털이 그렇게 변신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리스트는 동생과 함께 그 비디오를 여덟 번이나 봤다고 한다. 그러고는 창고에 가서 낚싯바늘과 실을 찾아 비디오에서 본 것과 같은 플라이 미끼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깃털은 엄마의 베개에서 뽑아낸 다운을 사용했다.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걸 본 아빠는 낚시용품 상점에 데려가서 미끼 제작에 필요한 죔틀(vise)과 낚싯바늘 등의 도구와 재료를 사줬다. 하려면 제대로 해보라는 거였다. 리스트와 그의 동생은 미끼 제작에 빠져 처음에는 예쁘지 않은 송어 미끼부터 만들어봤다. 둘은 미끼 제작을 가르치는 강의에도 가고, 몇 시간씩 웅크린 채 미끼를 만들었다. 그걸 만드는 동안에는 완전히 딴 세상에 있는 듯했다.
오래지 않아 리스트 형제는 플라이 미끼 제작에 두각을 나타냈고, 플라이 미끼를 만드는 각종 대회에 나가서 상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참석한 한 대회에서 연어 미끼를 보게 된다. 플라이 미끼를 만드는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머지(Muzzy)"라는 애칭으로 통하는 에드워드 머저롤(Edward Muzeroll)의 부스에서 연어 미끼를 직접 보게 된 리스트의 머리는 또 한 번 얼어붙는 것 같았다. 존슨이 낚시를 하면서 연어 미끼를 봤을 때도 그랬다.
머제롤이 만든 연어 미끼를 보며 연신 감탄하던 리스트는 머지에게 플라이 미끼 만드는 법을 직접 배우기로 하고 개인 레슨을 신청했다. 리스크는 14살이 되던 해, 북쪽에 있는 메인주에 가서 여름을 보내며 연어 미끼 만드는 법을 배웠다. 하루 종일 머지에게서 배운 것은 단순한 테크닉만이 아니었다. 머지는 리스트에게 플라이 미끼의 역사도 가르쳤다. 그렇게 머지에게서 더럼 레인저와 같은 플라이 미끼 만드는 법을 배웠지만, 그 레슨에서 사용한 건 과일 까마귀나 타조의 진짜 깃털이 아니었다. 닭의 깃털 따위를 염색한 모조 깃털이었다.
리스트가 태어나기 전부터 플라이 미끼를 만들던 머지의 눈에는 리스트의 타고난 재주가 보였다. 그렇게 여름 레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리스트에게 머지는 봉투를 하나 건네주면서 속삭이듯 이렇게 말했다. "제대로 하려면 이런 걸 써야 한다."
리스트가 봉투를 열어보니 안에는 희귀한 새들의 깃털이 담겨 있었다. 과일 까마귀부터 코팅가까지 150~200달러 정도는 줘야 살 수 있는 깃털들이었다. 물론 리스트가 선물로 받은 깃털들은 불법이 아니었고, 이 취미에 발을 들여놓은 제자에게 '더 높은 단계로 올라오라'는 격려였다. 정말로 잘하면 이런 진짜 깃털을 쓰는 거라는 그런 격려.
리스트가 깃털에 집착하게 된 게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리스트는 희귀한 새의 깃털을 사용해서 플라이 미끼를 만들고 싶었다. 그는 이웃집에 땔감 나무를 배달하는 등의 잡일로 용돈을 모아 깃털을 샀고, 그렇게 해서 플라이 미끼 제작의 마스터(master fly tyer)가 될 수 있었다. 여기에서 마스터란, 클래식 레시피를 꾸준하고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가 16살이 되었을 때 플라이 미끼 잡지에서는 리스트를 플라이 미끼 제작의 "차세대 대표 주자"라고 소개했고, 사람들은 그를 신동이라 불렀다.
하지만 뛰어난 솜씨를 가진 리스트도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있었다. 아무리 솜씨가 좋아도 십 대 아이에게는 좋은 깃털을 살 만한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끔 이베이(eBay)에 그가 원하는 깃털이 경매에 올라와도 항상 돈 많고 나이 든 사람들이 사 갔다. 아무리 뛰어난 손재주로 만든다고 해도 진짜 코팅가 깃털을 사용하지 않으면 "진짜 물건"이라고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그저 돈이 허용하는 정도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소질이 있는데 단지 돈이 없어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한다면 누구나 억울하고 괴롭겠지만, 십 대의 리스트에게는 유난히 큰 고통이었다. 그는 자기가 아무리 잘 만들어도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가난한 연주자가 악기 상점에 진열된 비싸고 좋은 악기를 그림의 떡처럼 바라보는 것과 똑같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리스트는 실제로 뛰어난 연주자이기도 했다. 아래는 그가 메탈리카의 'Master of Puppets'를 플루트로 연주하는 영상으로, 그의 기술적 완성도를 잘 보여준다.
그런 실력을 바탕으로 리스트는 영국 런던에 있는 왕립음악원(Royal Academy of Music)에 입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영국으로 가면서 플라이 미끼를 만드는 도구는 가져가지 않았다고 한다. 세관에서 새털이 가득 든 가방을 제대로 통과시킬 리 없었기 때문이다.
리스트가 영국에서 공부를 시작했을 무렵, 캐나다에 사는 지인에게서 이메일을 받았다. 리스트에게는 플라이 미끼와 관련한 멘토였던 이 사람은 리스트에게 영국에 있는 동안 런던 북쪽 트링(Tring)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 분관에 꼭 한번 가보라고 했다. 그의 이메일에는 화려한 깃털을 가진 새들의 표본이 가득한 서랍을 보여주는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전시는 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관람객은 볼 수 없다고 했다.
자연사 박물관
트링에 위치한 영국 자연사 박물관 분관은 1880년대에 튜더(Tudor)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밖에서 언뜻 보면 박물관이라기 보다는 부잣집 저택, 혹은 학교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런데 이 박물관이 특별 컬렉션으로 보관 중인 새 표본을 보기 위해서는 연구 목적임을 증명해야 한다. 따라서 리스트는 이 박물관에 보관된 새들을 보기 위해 거짓말을 생각해 냈다. 박사 과정에서 연구 중인 친구의 부탁으로 새 표본의 사진을 찍어주기로 했다는 핑계였다.
그렇게 허가를 받은 리스트는 2008년 11월 5일, 카메라를 들고 박물관에 입장해서 방문록에 자기 이름을 사실대로(!) 적어 넣고 안내를 받아 박물관 내 '천국의 새들 컬렉션(Birds of Paradise Collection)'에 들어갔다.
박물관에 있는 새 표본은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새의 눈알이 있던 자리는 솜으로 채워져 있고, 날개는 접혀 있고, 다리는 쭉 뻗어있다. 이런 새 표본을 '스킨(skin, 내장이 제거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듯하다—옮긴이)'이라 부른다. 새 표본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다리에 붙은 태그다. 태그에는 새의 종류와 포획한 날짜, 각종 생체 데이터, 그리고 (이 컬렉션의 경우) 알프레드 월리스의 서명이 적혀있었다.
이런 태그가 없으면 표본은 표본으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한다. 문화재를 함부로 파내는 도굴꾼의 범죄는 단순한 절도 행위가 아니라, 그 물건에서 역사적 맥락을 제거하는 데 있는 것처럼, 이런 새의 표본도 언제,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으면 연구의 가치를 상실한다. 하지만 그 표본들을 바라보는 리스트에게 연구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그저 눈부시게 아름다운 깃털들만 보였다.
존슨에게 당시의 감동을 설명하던 리스트는 이런 비유를 들었다. 테이블 위에 금괴가 하나 놓여있다고 상상해 보라. 사람들은 그걸 보고 감탄한다. 엄청난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포트 녹스(Fort Knox)에 있는 금괴 창고에 들어갔다고 생각해 보라. 그때 받을 충격은 금괴 하나를 보고 감탄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플라이 미끼를 만드는 사람에게, 그 깃털들의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 새 표본 하나로 얼마나 많고 아름다운 미끼를 만들 수 있는지 아는 사람에게, 그리고 그 일에 열정을 가진 사람에게 박물관의 표본들은 다르게 보여요. 그걸 집착(obssession)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라서 저는 좋아하지 않아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그냥 압도되는 기분이었어요. 엄청났거든요. 슬픈 건 너무나 많은, 아니 대부분 사람들은 그게 어떤 느낌인지 모른다는 사실이죠."
리스트는 그날 방문해서 다양한 종류의 새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그날의 방문이 표본을 훔치기 위한 사전답사는 아니었다며, 그저 한번 보고 싶어서 간 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과 달리 그가 그날 찍은 사진에는 박물관 주변 모습도 담겨있다. 나중에 유용하게 사용될 사진이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런던으로 돌아온 그는 자기 컴퓨터에 워드 문서를 하나 만들었다.
파일 이름은 planformuseuminvation(박물관침투계획).doc였다.
그 문서에는 박물관을 털기 위한 준비물 목록도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유리 커터다. 영화에서 범인들이 창문을 통해 조용히 침입할 때 사용하는 그 물건. 존슨이 커터를 사용하기 전에 연습을 해봤느냐고 묻자, 리스트는 별로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서 연습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만큼 그의 준비는 부실했고, 범죄는 어설펐다.
2009년 6월 23일, 왕립음악원에서 연주를 마친 리스트는 텅 빈 수트케이스와 병원에서 슬쩍 집어 온 라텍스 장갑, 작은 와이어 절단기, LED 라이트, 그리고 유리 커터를 챙겨 트링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나중에 사건을 수사한 경찰에 따르면, 트링역에 도착한 리스트는 수트케이스를 끌고 걸어서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박물관의 낮은 담을 넘은 그는 창문 앞 철조망(지금은 철창으로 바뀌었다)을 와이어 커터로 잘라냈다. 이제 창문을 뚫고 들어가야 할 차례. 그런데 가지고 온 유리 커터를 찾을 수 없었다.
오는 길에 잃어버린 거다.
그 순간 리스트는 그걸 하나의 징조로 생각했다. 절도를 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그는 그냥 계획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갈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준비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스트는 옆에서 커다란 돌을 하나 집어 유리창을 깨고 들어갔다. 깨진 유리창을 통해 들어가는 건 위험한 일이었지만 용케 다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단다.
유리창이 깨지면서 센서가 작동해 경보가 울렸지만, 신기하게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날 밤 박물관에는 분명히 경비원이 있었는데 오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리스트는 박물관 경비원이 축구 중계를 보느라 오지 않은 것이라고 했지만, 박물관 측은 강력하게 부정한다. "문제의 경비원은 축구를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게 박물관 사람들의 말이다. 분명한 건, 경보가 울렸지만 경비원은 몰랐다는 사실, 그리고 그 결과 리스트는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약 한 시간 동안 마음껏 박물관을 털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원래 리스트는 종류별로 제일 좋은 표본을 한두 마리씩 훔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칠흑 같은 밤에 작은 LED 라이트만으로는 좋은 표본이 어떤 건지 구분하는 게 불가능했고, 그냥 닥치는 대로 집어 담기로 했다. 비싼 코팅가는 작은 새여서 100마리나 챙겼다. 하지만 아주 긴 꼬리를 가진 케찰(resplendent quetzal)은 까다로웠다. 리스트는 케찰의 꼬리를 돌돌 말아서 조심스럽게 가방에 담았다.
리스트는 그렇게 표본이 든 캐비닛을 차례로 열어 표본을 꺼냈고, 어떤 경우는 서랍 하나를 통째로 비우기도 했다. 붉은 가슴 과일 까마귀(red-ruffed fruitcrow)는 박물관이 보관 중이던 표본 48개 중 47개를 챙겼다. 서랍 뒤에 끼어있던 한 마리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전 답사를 했던 터라 짧은 시간 안에 일을 끝낸 리스트는 수트케이스를 끌고 걸어서 트링역으로 돌아갔다.
밤이 늦어 열차는 끊겼고, 리스트는 승강장 벤치에 앉아 새벽 4시 첫 차를 기다려야 했다. 1백만 달러 가치의 새 표본이 가득 든 가방을 옆에 두고.
'깃털에 집착한 남자 ③'에서 이어집니다.
무료 콘텐츠의 수
테크와 사회, 문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찾아냅니다.
유료 구독자가 되시면 모든 글을 빠짐없이 읽으실 수 있어요!
Powered by Bluedot, Partner of Mediasp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