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 박물관의 새 표본을 훔치던 당시의 기분을 설명하는 에드윈 리스트는 표본을 훔치는 동안 흥분이 되거나 신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들을 어떻게 하면 가방에 모두 담을 수 있을까?' 하고 당장 눈앞에 있는 문제만 생각했단다. 하지만 돌로 창문을 깨고 들어가서 쉽게 훔칠 수 있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단다.

새벽 기차를 타고 런던 집으로 돌아온 리스트는 훔친 새들을 모두 꺼내 자기 방에 늘어놓고 행복감에 빠졌다. 이제 자기만큼 훌륭한 플라이 미끼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리스트가 자연사 박물관에서 훔친 새의 표본은 총 299마리였고, 세상에서 이만큼 희귀한 깃털을 많이 확보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경쟁자가 있다면 비싼 돈을 내고 리스트에게서 깃털을 사야 했다.

꼬리를 밟힌 리스트

리스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날 아침, 트링의 자연사 박물관 사람들은 유리창이 깨진 걸 발견했다. 박물관은 경찰에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과 상태를 살펴본 결과, 도난당한 물건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그들이 그런 결론을 내린 이유는 이 박물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새 표본은 월리스의 것이 아니라, 다윈의 핀치였기 때문이다. 수집가들에게 가장 가치 있는 표본이 다윈의 것이니 제일 먼저 그 컬렉션을 확인했고—리스트가 손을 대지 않았으니—아무것도 없어지지 않을 것을 보고 도난이 없었다고 서둘러 결론을 내린 거다. 진화론 발전의 공로를 다윈에게 빼앗긴 월리스로서는 또 한 번의 모독인 셈이지만, 박물관은 '누군가 훔치려면 당연히 다윈의 새들을 훔쳤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람에 월리스 컬렉션의 서랍들은 열어보지도 않았고, 리스트의 절도는 한동안 드러나지 않았다.

이는 절도범 리스트에게 아주 유리하게 작용했다. 박물관에서 기차역으로 이동하는 곳곳에 있던 CCTV의 기록은 28일이 지나면 지워지는데, 박물관의 직원이 월리스의 컬렉션 서랍을 열었다가 새들이 사라진 걸 깨달은 건 범행 후 35일이 지난 후였기 때문이다. 뒤늦게 CCTV를 조사했지만 헛수고였다.

트링의 자연사 박물관을 소개하는 영상

런던에 위치한 영국의 자연사 박물관이 트링이라는 작은 도시에 분관을 만들고 다윈과 월리스의 새 표본을 보관하게 된 건 2차 세계 대전 때였다. 나치 독일이 영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밤낮으로 런던을 공습하자 영국 정부는 런던에 있는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근교의 다른 도시로 옮겼고, 새 표본들이 그렇게 트링으로 왔다. 월리스의 새들은 히틀러의 공습을 피했지만, 20세의 플루트 연주자의 절도는 피하지 못한 셈이다.

CCTV의 기록은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리스트를 추적할 만한 흔적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리스트는 몇 달 전에 이곳을 방문하면서 방문록에 실명을 남겼다. 만약 누군가 그의 이름을 뒤졌다면 EdwinRist.com(지금은 사이트를 닫았다)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 사이트에서 박물관에 있던 새 표본을 팔고 있는 걸 볼 수 있었을 거다. 그렇게 에드윈 리스트를 조금만 더 검색했다면 그가 플루트 연주자라는 것도 쉽게 알 수 있었을 거고, 이베이와 같은 온라인 경매 사이트나 플라이 미끼 제작 포럼에 가보면 'FlutePlayer1988'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사람이 깃털을 파는 걸 금방 발견했을 거다. FlutePlayer1988이 남긴 포스트 중 하나에는 "플루트를 사기 위해 인디언 까마귀 깃털을 급하게 팝니다"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그럼, 리스트에게서 깃털을 산 사람들은 그게 어디에서 왔다고 생각했을까? 구매자가 물어봤다면 리스트는 거짓말로 둘러댔겠지만,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구매자들은 희귀새 깃털의 출처를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리스트가 잡힌 건 경찰의 노력이 아니라 순전히 운이었다. 네덜란드에서 열린 한 플라이 미끼와 관련한 행사에 등장한 새 표본("스킨")을 본 동호인이 트링에서 사라진 새들 중 하나로 의심하고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이 이를 추적한 결과 이베이에서 FlutePlayer1988이라는 아이디를 발견하게 된 거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경찰은 에드윈 리스트가 문제의 인물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리스트가 범행을 저지른 지 일 년이 지난 후였다.

(이미지 출처: Goodreads)

경찰이 영장을 들고 집으로 들이닥치자 리스트는 즉시 범행을 인정했고, 자기 침실에 보관 중이던 새들을 꺼냈다. 범행도 인정했고, 유죄도 인정했기 때문에 사건의 처리는 빠르게 진행되었고, 형량 결정만 남았다. 워낙 큰 절도였기 때문에 10~14년의 형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리스트의 변호사는 재판이 진행되던 중에 리스트가 (자폐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갖고 있다는 정신과 의사의 소견을 받아냈다. 판사는 "인류의 자연사에 끼친 크나큰 피해를 고려하면" 리스트가 10년 이상의 형을 살아야한다고 했지만, 리스트가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형량을 줄였다. 당시 영국의 판례를 고려하면 10년 형을 내려도 항소를 통해 판결이 뒤집힐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리스트가 받은 건 징역 1년, 집행유예 1년이었다. 금전적 손해에 대한 배상은 해야 했지만 교도소행은 피한 것이다.

사라진 새들을 찾아서

트링에서 도난당한 299개의 새 표본 중에서 1/3은 다치지 않고 고스란히 돌아올 수 있었다. 또 다른 1/3은 깃털이 뽑히거나 분해되는 등 피해를 입은 채 돌아왔다. 가장 중요한 피해는 새와 관련한 기록이 담긴 태그가 떨어진 것이다. 새가 포획된 때와 장소 등의 데이터가 없으면 연구에 사용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나머지 1/3의 행방은 묘연했다. 리스트는 체포되는 즉시 유죄를 인정했고, 수사는 거기에서 끝났고, 아무도 더 이상 새들을 추적하지 않았다. 박물관도 찾지 않았고, 영국 경찰도 찾지 않았다. 그중 일부는 온라인에서 팔려 사라졌지만, 일 년 사이에 100 마리를 모두 팔지는 못했을 거다. 이 새들은 어디로 간 걸까?

이 사건을 추적한 커크 존슨은 관련 온라인 포럼을 뒤지곤 했는데, 이 동호회 사람들은 새 표본 도난 사건을 두고 자기들끼리 농담을 하며 웃고 있었다. 존슨은 화가 났다. 첫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존슨은 불의한 일을 보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고, 반드시 팔을 걷고 뛰어들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 존슨을 화나게 하는 일은 또 있었다.

그가 독일의 호텔 방에서 리스트와 8시간의 긴 인터뷰를 하면서 깨닫게 된 일인데, 리스트는 도저히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둘이 대화를 한 지 6시간 정도 지났을 때, 존슨은 솔직히 말해서 당신은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것 같지 않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리스트는 자기도 정신과 의사를 만나기 전에는 한 번도 아스퍼거 증상이 없었다고 했다. "(형을 경감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했다(I became exactly what I was supposed to be)"는 거였다.

커크 존슨과 그의 책 (이미지 출처: Aqua Expeditions)

이 말을 들은 존슨의 머리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플라이 미끼를 만들던 사람이 자연사 박물관을 털었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특이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알프레드 월리스에 대해서 알게 되고, 그가 심혈을 기울여 모은 표본들에 인류가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자, 그리고 아직도 많은 새 표본이 회수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에게 이건 더 이상 장난도 아니고 우스운 일도 아니었다. 1860년으로 되돌아가서 그 새를 다시 잡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한 번 잃으면 영원히 사라지는 거다.

게다가 에드윈 리스트는 후회하는 기색이 없었다. 존슨이 인터뷰 중에 '도둑(thief)'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더니 얼굴을 찌푸리면서 자기는 자신을 도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존슨은 화가 치밀었다. 이제 사건은 종료되었고, 아무도 새들을 찾지 않고 있다. 하지만 플라이 미끼 동호회 포럼에서는 리스트가 훔쳤던 새와 아주 닮은 것들이 여전히 매매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리스트가 나머지 새 표본을 빼돌린 후에 지금도 팔고 있는 건 아닐까? 누군가 리스트를 대신해서 그 새의 깃털을 팔고 있지는 않을까?

수수께끼 공범의 등장

존슨이 독일의 호텔 방에서 리스트와 이야기하면서 반환하지 않은 새들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은 "경찰이 다 가져갔다"가 전부였다. 거기에 더해 리스트는 트링의 자연사 박물관은 자기네가 새 표본을 얼마나 갖고 있었는지, 얼마나 사라졌는지도 모르고 있을 거라는 말까지 했다.

그건 사실과 다르다. 박물관 측에서는 존슨에게 어떤 새를 갖고 있었고, 도난당한 새가 어떤 것들인지 정확하게 표시된 문서를 보여줬다. 문서의 복사본을 갖고 있던 존슨은 그 자리에서 리스트에게 문서 내용을 읽어줬다. 2009년 7월의 시점에서 사라진 표본의 숫자, 태그가 사라진 채 돌아온 표본들, 그리고 반환된 가죽과 깃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망가진 표본의 숫자까지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존슨이 리스트에게 이 목록을 보면 꽤 철저하게 기록된 거 아니냐고 따지자, 리스트는 그런 것 같다고 비로소 인정했다.  

(이미지 출처: Outside Magazine)

"그럼, 반환되지 않은 다른 표본들은 어디 있습니까?" 존슨의 단도직입적인 이 질문에 리스트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다면, 저는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했다. 존슨은 다시 물었다. "그럼 그 다른 사람이 한 사람인가요? 혹시 여러 차례에 걸쳐 (여기저기) 보냈어요? 그걸 제일 잘 알 수 있는 사람이 당신 아닙니까?" 그러자 리스트는 존슨을 바라보며, "어떤 의미에서 그렇다는 거죠?"라고 되물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존슨은 리스트를 노려봤다. 당신이 훔쳤잖아, 라는 표정으로. 그러자 리스트는 길고 횡설수설한 답을 늘어놓았다. 결론은 "근본적으로 말해(fundamentally) 저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였다.

리스트에게서 깃털이나 표본(스킨)을 통째로 샀던 구매자 중에는 도난 사건이 알려진 후에 자진해서 박물관에 반납한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리스트의 아버지 역시 큰 액수의 배상금을 아들을 대신해서 물어줬다. 박물관은 그렇게 돌아온 새들의 잔해를 놓고 새 한 마리에 깃털이 몇 개나 들어가는지 계산해야 몇 마리가 돌아오지 않았는지 계산할 수 있었다. 그런 작업 끝에 64마리의 새 표본이 반환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커크 존슨도 독자적으로 추적 작업에 들어갔다. 그가 인터넷에서 사라진 웹페이지를 복원하는 웨이백 머신(Wayback Machine) 등을 사용해서 깃털의 매매 기록을 뒤지다 보니 특이한 게 눈에 띄었다. 리스트가 훔친 게 분명한 표본을 팔고 있는 사용자가 하나 더 있는 게 분명했다.

그 사용자의 아이디는 Goku(고쿠)였다.

인기 만화 드래곤볼의 주인공 손오공(Son Goku)이 해외에서는 "고쿠"로 통한다. (이미지 출처: Voicemod Tuna)

존슨은 '고쿠'가 리스트가 온라인에서 사용하는 다른 이름이거나, 아니면 그를 도와 훔친 표본을 팔고 있는 공범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수수께끼 같은 인물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플라이 미끼 동호회 사람들을 중심으로 그와 가까운 인물들의 지도를 만들었다. 리스트가 고쿠가 아니라면, 그와 가까운 인물 중 하나라고 판단한 거다.

그러던 중 뜻하지 않은 곳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존슨은 예일 대학교의 조류학자 릭 프럼(Rick Prum) 교수를 찾아간 일이 있었다. 예일 대학교의 자연사 박물관인 피바디 뮤지엄(Peabody Museum)의 수석 큐레이터이자, "천재상(Genius Grant)"라고 불리는 맥아더 펠로우를 지낸 유명한 사람이다.

존슨을 만난 프럼 교수는 자기가 리스트와 공범을 잡기 위해 준비한 자료들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FWS(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관리국)가 이 씨벌놈들(fuckers)을 잡게 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요?" 존슨은 유명한 학자도 그렇게 욕을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릭 프럼 교수 (이미지 출처: The Columbus Dispatch)`

프럼 교수는 존슨처럼 이 사건에 분노했고,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존슨과 비슷한 건 또 있었다. 그도 존슨처럼 관련 기록을 꼼꼼하게 다 챙기는 사람이었다. 그는 특히 온라인에서 거래되던 깃털의 매매기록을 저장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치 고등학교 시절에 같은 밴드를 좋아하던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처럼 신나서 서로의 기록을 대조하며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그러는 과정에서 리스트가 훔친 새들을 팔던 '고쿠'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깃털에 집착한 남자 ④'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