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카를로스는 아마릴로에 위치한 교도소 자기 방에 있다가 우편물실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제 그의 나이는 60이었고, 머리카락은 하얗게 변했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우편물은 엘파소의 한 변호사에게서 온 것이었다. 매튜 드코츠(Matthew DeKoatz)라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카를로스는 편지를 들고 교도소 도서관으로 가서 자리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편지에서 드코츠는 자신이 카를로스를 대신해서 11.07호 영장을 집행하도록 임명받았다고 했다. 카를로스는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다른 재소자들을 도와주곤 했기 때문에 그 영장이 신병 제출, 즉 법원 출두를 의미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형을 살고 있는 재소자에게 법원으로 나오라는 건, 잘못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에게 출옥을 허락하기 위함일 가능성이 있다. 그는 교도소 내 감독관에게 그 편지를 보여줬더니 "뭔가 좋은 일이 생기는 것 같다"라며 기뻐했다. 카를로스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오래지 않아 드코츠 변호사와 통화를 했다. 드코츠는 카를로스에게 증거물인 용의자의 체모와 DNA 검사 결과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고, 이 모든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려 주었다. 당시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 중 한 사람이 생각을 바꿔 검사실에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카를로스는 이번에는 정말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영장을 얻어내야 했다. 드코츠는 1990년에 그를 기소한 텍사스 주 정부가 카를로스의 무죄 판결을 끌어낼 수 있는 과학적 증거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했고, 이를 바탕으로 카를로스는 새로운 재판을 청구했다. 판사인 패트릭 가르시아(Patrick Garcia)는 주 정부가 과거에 정말로 증거를 숨겼는지 확인하는 증거 청문회 일자를 2018년 11월로 정했다.

청문회가 있기 3일 전에 이미 모든 것이 사실임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엘파소의 변호사들과 경찰들은 하나같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카를로스의 사건이 엘파소 역사상 최초로 DNA가 증거물이 될 수 있었던 사건이었기 때문에 기억을 못할 리 없지만,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 중 그걸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카를로스를 변호한 깁슨 변호사는 맹세컨대 자기는 DNA나 용의자의 체모와 관련한 상의를 했던 적이 없다고 했고, 만약 알았다면 당연히 DNA 증거를 변호에 사용했을 거라고 주장했다. 사건에 관여했던 지나 롱고리아 검사는 "그 사건과 관련한 기억이 없다"라면서, DNA와 관련한 편지들은 자기나 검사실이 아닌, 경찰서로 갔기 때문에 알 리가 없다고 했다. (앞의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롱고리아 검사는 DNA 검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재판을 연기해달라는 요청을 했고, 그가 깁슨 변호사에게 DNA 샘플에 대해 알렸다는 기록이 있다—옮긴이) 롱고리아는 FBI 실험실과 이야기한 건 인정했지만, 결과는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페레즈 형사는 증거 청문회에 참석할 수 없다고 했지만, 대신 제출한 진술서를 통해 "나와 릴리아 비어드 형사가 그때 FBI에 그 사건, 그리고 그와 비슷한 다른 사건과 관련해서 DNA 검사를 요청한 것으로 보이는 문서를 받았지만, 그런 요청을 한 기억이 전혀 없으며, 우리 경찰서가 그 결과를 전달받았는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DNA 검사와 관련한 주요 인물인 릴리아 비어드 형사는 청문회에 나오기는커녕, 소환장도 받지 않았다. 청문회에서 판사가 비어드 형사는 어디 있느냐고 묻자, 그 자리에 있던 지방검사보는 "연락하라고 메시지를 남겨 놨는데 연락이 없다"고 말했다. (릴리아 비어드는 결혼해서 릴리아 메디나로 이름을 바꿨고, 경찰에서 은퇴한 후 10년 넘게 호스피스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기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아무도 자기에게 연락한 적이 없다면서 "연락을 받았으면 당연히 갔을 것"이라고 했다.)

가르시아 판사는 2019년 3월 이 사건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면서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카를로스가 종신형을 받게 된 것은 이 사건에 관련된 모든 사람의 잘못이라면서 "이 정보(DNA 불일치 결과)를 카를로스 헤일레의 변호사에게 전달하는 것은 텍사스 주 정부(즉, 지방검사실)의 책임입니다. 이 정보를 피고 측에게 전달하지 않고 갖고 있었다는 게 우연한 실수라면 심각한 과실이고, 어쩌면 그 이상의 잘못입니다. 이 검사 결과가 엘파소 경찰서로 보내졌기 때문에 이를 몰랐다는 주 정부의 핑계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법원은 피고의 변호인이 DNA 검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변호인은 그 결과를 요구했어야 합니다."

판사는 당시만 해도 DNA 검사가 아직 낯설었던 시점임을 인정하면서도 그게 검사들이 검사 결과를 전달하지 않은 이유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형사 항소법원이 카를로스를 다시 재판할 것을 권고했다. 지방검사실은 DNA 검사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카를로스가 무죄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며 새로운 재판에 반대했지만, 주의 최상급 항소법원인 형사 항소법원은 가르시아 판사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텍사스주가 카를로스를 다시 재판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동안, 카를로스는 보석 보증금을 내고 먼저 출옥할 수 있게 되었다. 2019년 8월 말, 카를로스는 지역 보안관의 차를 타고 아마릴로의 교도소를 떠나 엘파소의 카운티 교도소 별관으로 이송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2주를 머문 후, 판사가 정한 (채권 형태로 제출하는) 3만 달러의 보석 보증금을 냈다. 그리고 9월 12일 땅거미가 질 무렵, 교도소의 굳건한 정문이 카를로스 앞에서 열렸다.

그는 성경책과 몇 개의 법률 서류가 담긴 작은 가방을 들고 교도소 문을 나섰다.

잘못된 판결로 형을 살던 사람이 무죄로 풀려나면 보통 두 팔을 번쩍 들며 교도소를 나서고, 밖에서 기다리던 변호인단과 기자들, 그리고 축하하러 온 사람들의 환영을 받는다. 그리고 "마침내 정의가 회복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한다. 하지만 카를로스가 나왔을 때는 혼자였다. DNA 검사에 관해 묻는 기자도, 앞으로는 더 잘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검사도, 수고했다고 등을 두드려주는 변호인단도 없었다. 엘파소의 관계자들은 그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조용히 교도소를 나가게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는 어둠이 깔린 도로 옆 땅바닥에 털썩 앉아서 마리오 형을 기다렸다. 시카고에서 비행기를 타고 도착해있던 마리오는 근처 호텔에서 운전해서 오고 있었다. 15분 후 형의 차가 도착했다. 둘은 껴안고 함께 울었다.

"고마워," 카를로스가 말했다.

"이제 드디어 끝났구나," 형이 대답했다.

마리오가 배고프지 않냐고 묻자, 카를로스는 그렇다고 했다. 그는 왓어버거(Whataburger, 텍사스의 인기 햄버거 체인—옮긴이)가 정말 먹고 싶었다.

형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엘파소를 통과하면서 카를로스는 자기도 모르게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누군가 자기를 쫓아와서 다시 교도소에 던져 넣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두 사람은 무사히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로 돌아갔다. 카를로스는 창가 쪽 자리에 앉아서 착륙 직전 시카고의 스타디움 솔져 필드(Soldier Field)를 내려다보면서도 자기가 하늘에서 그곳을 다시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당분간 형과 형수님이 사는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자식들이 모두 장성해서 집이 빈 둥지가 된 형 부부는 그를 환영했다.

카를로스는 마리오의 아들인 세 명의 조카와 가까워졌다. 카를로스는 첫째 조카가 이제 막 걷기 시작했을 때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주말에는 식구들이 카를로스를 데리고 함께 골프 라운딩을 가거나 연습장에서 공을 쳤고, 그해 가을에는 형이 카를로스를 리글리 필드(Wrigly Field)에 데리고 가서 시카고 컵스의 게임을 함께 관람했다. 형과 함께 야구장에 들어오는 동안 카를로스는 리글리 필드의 상징과도 같은 아이비 담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자리를 찾아 앉는 순간, 그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무슨 일 있어?" 형이 물었다.

"아니, 그냥 내가 여기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카를로스가 말했다.

카를로스는 다시 돈을 벌고 싶어 참을 수 없었다. 첫 몇 해 동안은 형이 운영하는 정육점에서 일을 했고, 2022년 11월에는 일리노이주 복지부에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일을 시작했다. 그는 시간이 나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장소를 찾아가곤 했다. 하루는 자기가 다니던 초등학교를 찾아갔다. 그곳을 걸으니 옛날 기억들이 밀려왔다. 그러다가 어릴 때 친구였던 캐시(Kathy)가 떠올랐다. 둘 다 여섯 살일 때 만나서 자라며 친하게 지냈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연락이 끊겼더랬다. 아마 결혼해서 잘살고 있겠지만, 그래도 한 번 만나 보고 싶었다.

조카 하나가 검색을 도와줘서 캐시의 전화번호를 구할 수 있었고, 용기 내 전화를 해봤다. 연결이 되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캐시는 35년 동안 UPS에서 일한 후에 은퇴했고, 이혼한 남편과의 사이에 다 자란 아들이 하나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캐시와는 말이 잘 통했고, 둘은 곧 다시 친구가 되었다. 오래지 않아 카를로스는 캐시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

첫 데이트 후 카를로스는 캐시의 집에 함께 갔다. 그는 캐시에게 말해야 할 게 하나 있다고 하고 지난 30년 동안의 자기 인생을 이야기했다. 카를로스는 "내가 무죄라는 말을 믿지 못하겠다고 해도 괜찮아"라면서 가방에 들고 온 몇 개의 서류를 꺼냈다. 가르시아 판사의 의견서도 그 안에 있었다. 캐시는 그 서류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캐시는 카를로스를 떠나지 않았고, 오래지 않아 둘은 함께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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