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이 똥이 되는 과정을 요약하면 이렇다.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 좋은 조건에 끌려 플랫폼에 들어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건이 점점 나빠져도 이런 저런 미묘한 유인책들 때문에 플랫폼에 묶여 떠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소비자의 구매 조건이 나빠진다. 소비자의 이익이 희생되면서 그 이익이 판매자에게로 간다. 잉여는 처음에는 소비자(사용자)에게 배분되고, 그들이 플랫폼에 묶인 후에는 판매자(공급자)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판매자들도 플랫폼에 묶여 떠나지 못하는 단계가 온다. 그때부터는 잉여가 소비자, 판매자 어느 쪽에도 돌아가지 않고 아마존의 주주, 투자자들에게 가게 된다. 앱스토어, 트위터, 스팀(Steam) 등등 플랫폼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하나도 예외가 아니다. 그럼, 페이스북은?

페이스북은 그 과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에 해당한다. 페이스북이 처음 등장했을 때 미국인들은 다들 마이스페이스(MySpace)라는 소셜미디어를 이미 사용하고 있었다. 페이스북은 마이스페이스 사용자들에게 자기네 웹사이트에 와서 친구들이 누구인지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만약 그 친구가 페이스북에 이미 들어와 있다면, 그들이 페이스북에 뭔가를 쓸 때마다–공개를 허용한 경우–너에게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사용자들이 가깝게 지내는, 사용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쓰는 내용을 최신순으로 정렬해서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게 첫 단계에 해당한다. 그때만 해도 페이스북은 사용자를 감시하지 않는다고 했고, 사용자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만 보여준다고 했다.

2005년의 페이스북과 현재의 페이스북

두 번째 단계에 들어서면 페이스북은 두 종류의 협력 비즈니스 고객들을 데려온다. 하나는 (전통적인 의미의) 광고주이고, 다른 하나는 미디어다. 여기에는 크리에이터, 방송국, 언론사, 퍼블리셔 등 다양한 이유로 오디언스에게 다가가려는 사람이나 기업들이 해당한다.

페이스북은 먼저 광고주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희는 사용자들을 감시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었죠? 음, 저희가 마음을 바꿨어요. 그래서 사용자들과 관련된 정보가 엄청나게 쌓였습니다. 이걸 아주 저렴한 가격에 사용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미디어 기업은 이렇게 구애했다. "여러분의 웹사이트로 트래픽을 끌어오기 위해서는 깔때기(funnel)가 필요하죠? 페이스북에 오셔서 여러분이 발행한 기사의 일부와 기사로 가는 링크를 걸기만 하시면 됩니다."

사용자에게는? "저희가 여러분께 여러분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만 보여준다고 했죠? 음, 그런데 저희가 그걸 좀 바꾸려고 합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원하지 않아도 여러분 눈앞에 들이밀기로 했어요. 미디어에서 발행한 콘텐츠나 광고도 보여드릴 겁니다." 이게 페이스북의 두 번째 단계다. 이제 협력 업체들을 돕기 위해 사용자들을 감시하겠다는 것. 사용자들은 타깃 광고를 보게 된다. 보고 싶다고 한 적이 없는 미디어, 크리에이터, 퍼블리셔의 콘텐츠도 보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페이스북은 적어도 한 때는 미디어 기업들에게 도움이 되는 도구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 미디어에 주던 선물을 중단한다. 이제부터 미디어가 페이스북에 유리한 쪽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이제까지보다 적은 숫자의 사용자들에게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에 유리하다는 건 뭘까? 이제 페이스북은 미디어 기업의 웹사이트로 트래픽을 몰아주는 깔때기 역할을 하지 않겠으니, 사용자들이 미디어 기업의 콘텐츠를 소비할 때 페이스북 밖으로(아웃링크) 나가지 않고 자기네 플랫폼에만 머물게 하라는 거다. 아웃링크를 삽입하지 않은 콘텐츠를 더 많은 오디언스에게 도달하게 해주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페이스북의 쥐어짜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미디어 기업이 그렇게 말을 잘 들어도 도달의 숫자를 줄이고는 이제부터는 콘텐츠 도달을 늘리려면 돈을 내라고 한다.

구글과 페이스북의 불법 담합을 보도한 뉴욕타임즈의 기사

그리고 더 나아가 광고 사기까지 저질렀다. 가령 페이스북과 구글이 2018년 비밀리에 체결한 제다이 블루(Jedi Blue) 합의에 따르면 디지털 광고계의 1, 2위 기업인 이들은 온라인 시장에서 서로 경쟁하지 않기로 약속한다. 이렇게 할 경우 광고주들에게 높은 광고비를 청구하고, 미디어에는 적은 돈을 지급하고, 차액을 챙길 수 있다. 당연히 불법이다. 제다이 블루 외에도 복잡한 방법을 사용해서 궁극적으로는 광고비를 훔친 것이다.

마지막 단계

이제 마지막 3단계에 들어선다. 미디어 기업들은 더 많은 돈을 내면서도 도달하는 타깃 오디언스는 점점 줄어들었고, 사용자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포스팅을 볼 가능성이 적어졌다. 양쪽 모두에게 좋지 않은 조건이 된 거다. 페이스북은 이제 광고주에게도, 미디어에게도, 사용자들에게도 매력을 잃고 있지만, 아무도 이 플랫폼을 떠나지 않는다. 아니, 떠나지 못한다는 데 가깝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높은 담이 둘러싼 정원에 모두가 갇혔기 때문이다. 다들 싫지만 다른 대안이 없으니 계속 로그인하며 찾아온다. 플랫폼은 매력이 없는데 아무도 떠나지 않기 때문에 망하지 않고 유지되는 아슬아슬한 균형이 유지되는 거다.

이런 균형은 쉽게 깨질 수 있다. 틱톡처럼 뛰어난 경쟁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깨지기도 하고, 누군가 학교에 총기 난사를 하면서 플랫폼을 통해 생중계한다거나, 캠브리지 애널리티카 사건 같은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터지면 사람들이 그 플랫폼을 싫어하게 되고, 불안한 균형은 삽시간에 깨진다. 가장 좋은 예가 트위터다. 트위터는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던 중요한 플랫폼이었지만, 삽시간에 많은 사용자와 기업들이 없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존재로 변했다. 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 상황에서 일어난 변화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플랫폼은 거꾸러지고 쓸모없는 "똥 더미"로 전락한다.

그렇게 인쉬티피케이션(enshittification)이 완성된다.

트위터의 새로운 이름 X (이미지 출처: USA Today)

그런데 이 상황에서 페이스북은 뜬금없이 회사명을 메타로 바꾸고 성공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메타버스(Metaverse)에 힘을 쏟는 걸 뭘까? 위기감을 느낀 기업이 성급하게 피봇(pivot, 사업 모델 전환)을 시도하는 거다. 지금은 일론 머스크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지만 (머스크는 트위터를 결제 수단 등을 결합한 슈퍼앱으로 만들겠다며 이름부터 X로 바꿨다), 이 무모한 행동은 저커버그가 먼저 했다. 저커버그의 경우는 다리도 없고, 성별도 불분명한 다면체의 캐릭터들이 모여 사는 가상의 세상, '메타버스'다. 디스토피아를 묘사한 사이버펑크 소설에 등장한 풍자(satire)를 가져와 서비스의 이름을 만든 거다. 이사회가 있거나 제대로 역할을 한다면 당연히 말려야 하는 행동이다. 이건 농부가 종자를 먹는 짓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용자들은 왜 집단행동을 하지 않을까?

이런 플랫폼들이 도움이 된다고 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그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플랫폼들이 인쉬티피케이션을 적당히 유지하고 망하지만 않으면 사용자들이 플랫폼을 떠나지 않을 이유를 제공할 수 있다. 가령 희귀병을 가진 환자들이 페이스북에서 만나 환우들의 모임을 만들고 정보를 교환한다면, 페이스북은 그 사람들에게 소중한 플랫폼이 되고, 가치 있는 서비스가 된다. 사람들이 이 플랫폼을 사용하는 이유다.

메타의 메타버스 (이미지 출처: Meta)

그런데 이런 플랫폼들은 사용자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사용하려면 그들이 싫어하는 것도 불가피하게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훌륭한 검색 기능을 누리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온라인 행동을 감시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식이다. 과연 그럴까? 구글이 처음부터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가져간 게 아니다. 페이스북은 사람들을 감시하지 않고도 작동할 수 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페이스북은 원래 사람들을 감시하지 않는 소셜미디어였다.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이 우리에게 하는 말은 1980년대 영국의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가 했던 것과 같은 말이다. "대안이 없습니다(There is no alternative)." 이들은 사용자에게 구글이 없는 세상, 아마존이 없는 세상은 불가능하지 않으냐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것이다.

대처 수상이 시장경제 외에는 대안이 없다며 사용한 이 슬로건은 줄여서 "TINA 독트린"이라고도 불리며 네오리버럴리즘을 대표하는 문구가 되었다. (이미지 출처: New Age)

결국은 똑같은 독점

시장을 지배하는 플랫폼 기업들을 보면서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경쟁과 독점의 문제를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기업이 성장하면서 시장을 장악하고 독점 기업이 되려는 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일은 항상 존재했다. 그런데 테크기업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존재한다. 철강과 석유를 팔던 기업들과 인터넷 기업이 작동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는 거다. 과연 그럴까?

음악 파일을 공유하는 프로그램 냅스터(Napster)를 만들어 음반 산업을 위기에 빠트리고, 훗날 페이스북의 초대 의장이 되었던 션 파커(Sean Parker)는 페이스북이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작동 원리를 이용해 사용자들을 플랫폼에 묶어두고 관심과 시간을 빼앗았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이런 걸 이용하니 테크기업들은 완전히 다른 힘을 갖고 세상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마법사일까?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유발하는 쾌감은 분명 효과가 있다. 하지만 도파민을 나오게 하는 외부 자극은 평균으로 회귀(regress to the mean)한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낚시성 제목으로 클릭을 유도하는 사이트에서 "Seven Amazing Things About Your Socks. You won't believe the third one (양말에 관한 놀라운 사실 7가지. 그중 3번째는 아마 믿기 힘들 것)"같은 기사를 처음 보면 클릭하지 않을 수 없다. 그 3번째가 뭔지 알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제목을 200번 정도 본 후에는 내성이 생긴다.

클릭베이트(낚시성 제목)의 원조격인 버즈피드의 전형적인 제목. "우피 골드버그가 여자에게는 절대 물어서는 안 되는 질문을 생방송 때 했다." 궁금해서 찾아보실 분들을 위해 답을 드리면 그 질문은 "임신하셨어요?"였다.

카지노를 비롯한 도박도 그렇게 도파민을 이용해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소수이지만 그중 일부는 심각한 중독에 빠지게 되는 게 사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산업은 규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처음에는 몇 번 해보다가 질린다. 사람들은 페이스북에서 자기가 가진 생각을 재확인해 주는 포스트를 만나 도파민이 분비되고 쾌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플랫폼 기업들이 인류의 사고를 사로잡고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이들은 짧은 시간 동안 이점을 누렸을 뿐이고, 그 이점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게 맞다. "$10.99"라는 식의 가격표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이를 보고 11달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주 어린 아이가 아닌 이상 다들 그냥 11달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용자의 관심을 끄는 것으로 장사하는 플랫폼 기업들을 두고 사악한 마술사들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들은 그저 시장의 일부를 통제하면서 돈을 벌려는, 흔하게 널린 사업가일 뿐이다.

'플랫폼은 왜 모두 💩이 될까? ③ 트위들링'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