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 우대 조치의 종말 ⑤
• 댓글 4개 보기에드워드 블룸은 대학교 입학에서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시아계 학생, 학부모와만 천생연분이었던 게 아니다. 현재 미국의 연방 대법원은 사실상 블룸 같은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법관 아홉 명 중 여섯 명이 보수 법관(그중 세 명은 트럼프가 임기 4년 동안 임명했다)일 뿐 아니라, 상당수가 이미 적극적 우대 조치에 대한 반대 의견을 이런저런 기회에 밝힌 사람들이다. 특히 대법원에서 보수가 5 대 4로 근소한 우위일 때 캐스팅 보트 역할을 했던 존 로버츠 대법원장마저 인종에 기반한 우대 정책을 "더러운 작업(sordid business)"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6 대 3으로 기울어진 현 대법원에서는 로버츠 대법원장의 캐스팅 보트는 중요하지 않다. 적극적 우대 조치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아직 나오지 않았음에도 다들 끝났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 사안이 두 번째 글에서 소개한 앨런 바키의 소송을 시작으로 대법원에 무려 6번이나 올라갔었고, 그때마다 대부분 5 대 4의 판결로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았는데, 그때마다 적극적 우대 조치를 살려낸 대법관은 공화당 대통령이 임명한 중도보수 성향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뉴요커의 기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이제 그런 대법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종을 기반으로 한 모든 조치를 종식시키는 것을 인생의 목표처럼 삼아 지난 25년 동안 달려온 에드워드 블룸의 노력은 트럼프와 공화당 의원들의 도움을 만나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SAT와 하버드, 능력주의
모든 뛰어난 소송 변호사들이 그렇듯 에드워드 블룸은 이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해서 제시한다. 대법원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비결이 여기에 있다. "아시아계와 백인 학생들은 다른 인종 학생들보다 더 높은 SAT 점수를 받아야 같은 학교에 입학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공평한가?"와 같은 질문이 그거다. 그 질문을 받고 단순히 인종이라는 이유로 차별대우를 받으면 안된다는 상식에 비추어 "그건 공평하지 않다"라고 대답하는 순간, 적극적 우대 조치의 폐지에 손을 들어주는 셈이다.
흔히 우리나라의 수능에 비견되는 SAT(Scholastic Aptitude Test, 하지만 수능과는 다른 점이 많다) 시험은 표준화된 시험(standardized test)의 대명사다. 20세기 초만 해도 미국에서는 표준화된 시험 없이 각 고등학교에서 알아서 학생들을 평가하고, 그렇게 평가된 아이들이 선생님들의 추천서를 받아서 대학교에 지원했다. 당시에도 좋은 대학교 졸업생들에 대한 프리미엄이 있었지만 대학 교육이 지금처럼 필수처럼 여겨지지 않던 시절이었고, 아이비리그 대학교는 미국 북동부의 부유한 백인 가정의 자녀들이 명문 사립 보딩스쿨을 졸업한 후에 진학하는 배타적인 클럽과 같은 분위기였다. 이런 대학교에 공부를 열심히 유대계 학생들이 밀려들자 하버드 대학교를 비롯한 많은 학교에서 유대계 학생의 숫자를 제한하기도 했다.
참고로, 20세기 초반만 해도 미국에서 유대계는 완전한 백인으로 취급 받지 못했고, 미국 대학에서는 20세기 중반까지도 한 학교당 유대계 교수의 정원에 한계를 정해두기도 했다. 유대계 미국인들 중에는 인종적으로 쿼터를 두는 방식의 적극적 우대 조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다. 에드워드 블룸도 유대계이지만 그가 이런 주장을 했다는 얘기는 찾아보지 못했다.
그런데 1933년에 하버드 대학교에 제임스 브라이언트 코넌트(James Bryant Conant)라는 총장이 취임하면서 분위기가 쇄신된다. 그는 이런 백인들의 클럽 같은 분위기의 하버드를 당시 유럽의 유명 대학교와 같은 연구 중심의 기관으로 바꾸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가 1926년에 만들어진 SAT 시험을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코넌트 총장이 SAT 점수를 학생 평가의 기준에 포함시킨 이유는 모든 학생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를 도입하기 이전에는 유명 사립고등학교의 추천서가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객관적으로 증명 가능한 점수가 생긴 것이다. SAT 하나로 모두가 평등한 경쟁이 가능해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부유층 자녀에게만 국한되던 높은 문턱은 어느 정도 낮아진 셈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SAT 같은 표준화된 시험 점수가 '계급 없는' 사회를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부유한 가정의 학생들은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통해 그런 표준화된 시험의 점수도 높게 받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뉴요커 기사에서 기자는 1958년에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Michael Young)이 들고 나온 능력주의(meritocracy)를 언급한다. 영은 표준화된 시험 점수로 능력을 증명하려는 능력주의가 가진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 표현을 가져다가 '능력주의 사회'를 옹호하는 중요한 원칙으로 생각했다는 것.
모순을 품은 정책
이런 논의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주장이 있다. "특정 집단의 아이들이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안의 도움으로 공부를 잘하게 되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이 합격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니냐"는 것이다. 수학능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아이와 낮은 아이가 있는데 후자를 뽑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생각이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건 위에서 언급한 하버드의 코넌트 총장도 바로 그 논리로 SAT 점수를 도입했다는 사실이다. 다만 코넌트 총장 시절에 실력이 낮은데 하버드에 들어오는 아이들은 흑인이 아니라 부잣집 자녀들이었다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 그런 생각에 도입한 SAT는 다시 경제적으로 넉넉한 아이들만을 하버드에 들여보내는 도구로 전락한 셈이다.
마이클 영과 같은 학자들이 이런 문제를 지적하고 미국 사회가 흑인 인권운동의 세례를 받으면서 1960년대가 되어서 비로소 구조화된 인종차별을 바로잡기 위한 방법으로서 적극적 우대 조치가 미국 사회 곳곳에 도입되었지만 이 정책은 (SAT 점수 의존이 드러낸 모순과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인종에 기반한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인종에 기반한 차별을 사용한다는 공격을 받기 쉬웠다.
그래서 하버드를 비롯한 대학교들이 사용한 논리가 '다양성(diversity)'이었다. 애초에는 과거의 잘못을 수정한다는 의미에서 평등(equity, 결과적인 평등)을 내세웠지만 이는 법적으로 방어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습 환경이 다양할 때 교육의 효과가 높기 때문에 학교가 자율적으로 다양한 학생 구성을 하겠다고 하면 이는 외부에서 뭐라고 할 수 없는 학교의 권리가 된다.
여기에서 잠깐, 평등의 두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사회적 평등을 이야기할 때 '이퀄리티(equality)'라는 표현을 썼다면 요즘은 '에쿼티(equity)'라는 표현이 훨씬 더 흔하다. 전자의 경우는 기회와 자원을 모두에게 똑같이 준다는 의미의 평등이지만, 그런 식으로는 결과적 불평등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기회, 자원을 차등적으로 배분해서라도 결과적인 평등을 만들어내자는 '에쿼티'가 더 많은 설득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의 그림이 이를 쉽게 설명해준다.
이런 학교들에서 사용하는 논리는 이렇다. "대학교는 그 학교가 위치한 지역사회보다 다양성이 더 높아야 한다. 이런 다양성은 그 자체로 진리를 발견하는 데 기여한다. 왜냐하면 진리는 다양한 생각이 서로 부딪히는 토론 속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는 1957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교육에서의 인종분리가 대학의 목적에 위배된다는 논리를 펼친 'The Open Universities in South Africa'라는 소책자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법적인 논쟁
국가가 개인이나 기업, 학교의 자유를 제한할 때는 법에 근거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온 후에도 시정을 하지 않고 버틸 경우 제재수단이 있어야 한다. 입학 과정에서 특정 인종을 차별했다고 총장을 체포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미국의 학교는 사립과 공립을 막론하고 나라로 부터 많은 지원을 받는다. 이런 지원은 학교들이 국가의 정책을 따르게 하는 중요한 무기가 된다.
이 정책을 무너뜨리려는 쪽에서도 결국 법에 의존하게 된다. 하나는 현재 진행되는 것처럼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예 새로운 법을 만들어서 인종을 기준으로 한 적극적 우대 조치를 제한하는 것이다. 후자는 실제로 캘리포니아에서 사용되었다. 1996년 캘리포니아에서 '주민제안 209(Proposition 209)'이라는 이름으로 주민투표에 붙여진 이 내용은 (캘리포니아 대학교와 같은) 주 정부의 기관이 고용이나, 하청, 교육에서 인종과 성별 등을 기준으로 차별 대우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었고, 55%의 찬성으로 법제화되었다. 캘리포니아가 가진 진보적인 이미지 때문에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 주에서는 주민제안 209 이후로 인종을 기반으로 한 적극적 우대 조치를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캘리포니아 대학교 시스템에서는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들의 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많이 낮을까? 이 제도가 금지된 직후에 실제로 두 집단의 입학률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대학교는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이를 만회하기 위해 이후 10년 동안 다양한 방법을 개발해냈고, 결국 소수 인종의 입학률을 적극적 우대 조치 시절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학생들이 사는 지역과 경제적 형편 등의 요소를 세심하게 고려하면 인종을 묻지 않고도 인종을 골고루 배분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그 사실 자체가 인종과 경제적 격차가 얼마나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연방 대법원이 적극적 우대 조치를 위헌이라고 판결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캘리포니아가 갖고 있다. 이는 지독하게 법적인 싸움이기 때문에 대법원이 인종을 학생 평가의 요소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해도 이에 대한 의지를 가진 대학교들은 반드시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참고로, 팬데믹 기간 동안 많은 학교들이 SAT나 ACT같은 표준화된 시험 점수 제출을 선택으로 돌리거나 아예 폐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때문에 시험 실시 자체가 불가능한 지역이 많아서 취하게 된 불가피한 조치였지만, 많은 학교들이 그동안 하고 싶었어도 눈치만 보며 못하고 있었던 조치를 팬데믹을 핑계로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적극적 우대 조치의 경우 SAT 점수가 없으면 인종 차별을 주장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에서 옛날 수준을 회복하는 데 걸린 10년은 그만큼의 기회를 소수 인종의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없었던 잃어버린 10년이다. 그 기간 동안에 졸업한 학생들 중에 대학에 가지 못한 학생들이 많았을 것이고, (백인과 아시아계 학생들과 달리) 이들은 자기 집안에서 처음으로,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해서 중산층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아이들일 것이다.
이런 일을 피하기 힘든 것은 적극적 우대 조치를 법적으로 방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 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정답이 반드시 법정에서 지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답은 아니다. 정답은 때로는 타협(compromise)이다."
하지만 21세기 민주주의 국가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게 타협점을 찾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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