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언론에서 적극적 우대 조치 문제를 다루는 기사를 찾아 읽다 보면 유난히 동아시아계 기자, 저자들이 쓴 글이 많다는 것을 눈치채게 된다. 가령 2018년에 뉴요커가 이 문제를 피처 기사로 이야기했을 때 그 글을 쓴 사람은 대만계 미국인 후아 슈(Hua Hsu)였다. 후아 슈는 하버드에서 미국 역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으로 뉴요커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같은 잡지에서 몇 주 전에 발행한 같은 주제의 기사 ('The Death of Affirmative Action' 적극적 우대 조치의 죽음)를 쓴 사람은 제이 캐스피언 강(Jay Caspian Kang)이다. 한국계인 강은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달 초 뉴욕타임즈 오피니언란(Op-ed)에 이 주제의 칼럼을 기고한 학자는 콜럼비아 대학교의 사회학과 교수 제니퍼 리(Jennifer Lee)로,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다.

2018년 후아 슈의 기사

뉴요커와 뉴욕타임즈라는 뉴욕을 대표하는 진보적인 두 매체가 이 문제를 다룰 때 아시아계의 글을 싣는 이유는 적극적 우대 조치에 관한 논의의 핵심이 '흑인 대 백인'의 문제에서 '아시아계 대 기타 소수 인종'의 문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두 매체의 평소 성향을 생각하면 적극적 우대 조치를 옹호하는 입장일 가능성이 높은데, 현재의 논의 지형을 보면 적극적 우대 조치는 아시아계 학생들에게 불리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들 매체에서는 아시아계의 목소리를 통해 이 문제를 논의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흑인 문제는 흑인 기자가 취재해야 혹시 모를 오해를 피할 수 있다'라는 식의 기계적인 방어장치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이 글의 주제는 아니지만, 백인들이 압도적으로 다수인 미국 미디어계에서 흑인 저널리스트들의 고민에 대해 재미있고 진지하게 들어보려면 이 영상을 추천한다.) 그보다는 취재 대상에 대한 접근이 훨씬 용이하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중국계 학생과 학부모의 집을 찾아가 인터뷰를 한 후아 슈의 기사가 그런 이점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위에 소개한 글을 쓴 세 명이 모두 아이비리그를 나온 동아시아계라는 사실이다. 동아시아 부모에게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한 이들에게 좋은 대학, 특히 아이비리그가 가지는 의미는 다른 어떤 인종보다 특별하다. 학력 숭배, 대학교 브랜드에 대한 열망은 동아시아 문화와 분리하기 힘든 어떤 것이다. 게다가 부모가 미국으로 건너온 계기가 취업이 아니라 유학인 경우 자녀의 좋은 학교 진학은 단순한 문화적 바람을 넘어 당위의 영역이 된다.

뉴욕 콜럼비아 대학교 (이미지 출처: Chenwei Yao on Unsplash)

여담이지만,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자란 지역을 확인하는 거다. 제이 캐스피언 강은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와 노스캐롤라이나 주 채플힐에서 자랐고, 후아 슈는 일리노이주 어바나-샴페인에서 태어났다. 모두 대학교로 유명한 도시들로, 부모가 유학으로 미국에 와서 대학원 공부를 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똑똑한 부모에게 태어나 학구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했고, 거기에 공부를 지고지선(至高至善)의 목표로 생각하는 아시아 문화의 세례를 받았다면 명문 대학교, 그중에서도 아이비리그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식으로서의 당연한 도리'나 다름없다.

흔히 학업의 성공, 특히 어린 시절의 공부는 환경과 유전자의 합작이라고 하는데, 그게 맞다면 아시아계, 특히 유교문화권의 동아시아계 학생들은 이미 환경이라는 절반의 요소를 접고 들어가는 셈이다. 미국 내 아시아계는 총인구의 6%에 미치지 못하지만 하버드 대학교에 진학하는 학생 중 약 28%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첫 글세 번째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하버드에 진학한 학생들 중 아시아계의 SAT 점수가 가장 높다는 것은 이들이 다른 인종의 지원자들보다 훨씬 더 힘든 경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만약 대학교에서 인종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점수만으로 선발한다면 유명 대학교에서 아시아계가 차지하는 비율은 쉽게 40%를 넘는다는 게 정설이다. 이공계의 명문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 Tech)의 경우 오로지 성적으로만 뽑는 걸로 유명한데, 그런데 그 결과 입학생 중 백인이 48%, 아시아계 44%를 차지하는 것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미국 인구의 6%가 되지 않는 집단이 명문 대학교 학생의 40%를 넘게 차지하게 된다면 이는 어떤 세상일까?

(이미지 출처: San Francisco Chronicle)

하지만 미국 내 아시아계 고등학생의 학부모들이라면 그런 세상에 대한 고민에 앞서 '내 자식이 좋은 학교에 입학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생각을 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아시아계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훨씬 더 심한 경쟁을 해야 아이비리그 대학교에 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서 과연 아이비리그 대학교들만이 명문 학교인가, 내 아이가 반드시 아이비리그 학교에 가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해봐야 한다. 이는 아주 중요한 질문이다. 미국에서는 아이비리그에 합격하고도 다른 대학교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많다. '내가 마음껏 공부할 수 있고, 나를 성장시켜줄 환경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학생마다 다르기 때문에 동부의 명문대가 반드시 정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는 단계에 가기 위해서는 미국 사회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학부모가 명문대가 사회적 성공의 열쇠처럼 작동하는 문화에서 자라 미국에 온 사람이라면 자녀의 바람이나 성향보다는 누구나 들으면 아는 (정확하게는 고국에 사는 사람들이 들으면 금방 아는) 명문대를 고집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런 학부모들에게 아시아계 입학생을 20%대에 "가두어 두는" 아이비리그 학교들은 아시아계를 차별한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마이클 왕(Michael Wang)의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었다. 마이클은 201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제임스 로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학점이 4.67에 SAT 성적도 우수했다. 교내 활동도 활발히 해서 고등학교에서는 수학클럽을 만들었고, 교내 토론팀에서도 활동했다. 음악 연주도 열심히 했고, 그가 소속된 합창단은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와 협연을 했고,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때는 워싱턴 DC에 가서 축가도 불렀다. 이 정도 스펙이라면 아이비리그 학교 중에서 최소한 몇 군데는 합격할 것으로 자신했고, 특히 자신이 목표로 하는 네 학교(하버드, 예일, 스탠포드, 프린스턴) 중 최소 한 곳은 합격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University of Pennsylvania)에 합격했지만 그 외의 다른 아이비리그에는 불합격이었다. 그는 크게 좌절했다. 특히 충격이었던 건 같은 고등학교에서 자신보다 성적이 좋지 않은 친구들 중에 자신이 원하던 대학교에 합격한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전부 히스패닉, 혹은 흑인 학생들이었다. '내가 아시아계라서 떨어진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였다.

마이클 왕과 부모 (이미지 출처: Buzzfeed News)

특히 마이클의 아버지 제프 왕은 미국의 대학교들이 중국계 아시안들을 차별한다고 굳게 믿는다. "중국계는 미국에서 소수인종이고 미국 역사에서 차별을 받아왔다"는 제프의 말은 맞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중국계 노동자들은 인도인들과 함께 쿨리(Coolie)라 불리며 미국 전역에서 노예와 크게 다르지 않은 대우를 받으며 위험한 노동을 떠맡았던 역사가 있다. 특히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철도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폭약을 사용하는 위험한 일을 중국계 노동자들에게 맡겼기 때문에 셀 수 없이 많은 중국계 노동자들이 이 과정에서 죽었고, 사고 외에도 백인들의 인종 혐오범죄에 희생된 경우가 많았다.

물론 한국계와 일본계도 미국 내에서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받은 역사가 있지만 중국계의 경우는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흑인이 입학할 때 우대를 받는다면 중국계도 우대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런 불만을 품게 된 중국계 학부모들은 미국 대학교의 적극적 우대 조치의 근거와 인종문제를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앞 글에서 이야기한 에드워드 블룸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었다. '백인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았다는 백인 학생들을 변호하며 대법원까지 갔다면 우리를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블룸의 입장에서도 반가운 일이었다. 그는 아시아계야 말로 적극적 우대 조치를 부술 수 있는 무기라고 생각했다. 백인 학생들이 적극적 우대 조치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면 이미 경제적, 사회적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인종 집단이 소수 인종을 배려하기 위해 남겨둔 작은 조각마저 차지하려고 든다는 비난을 받겠지만, 인구의 6%가 안 되는 아시아계가 그런 주장을 한다면 이들을 나무라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계 학부모와 에드워드 블룸은 그야말로 천생연분이었다.


'적극적 우대 조치의 종말 ⑤'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