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 톰슨의 경고 ③
• 댓글 5개 보기앞의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1920, 30년대는 미국에서 신문의 전성기였고, 사람들은 대부분 신문에서 뉴스를 접했다. 그런데 (도로시 톰슨이 기사를 쓰던 헤럴드 트리뷴을 포함한) 많은 신문들은 언론 재벌이 소유하고 있었다. 이 사실이 중요한 건 재벌의 이해관계와 세계관은 일반 독자나 기자들과 다르고, 그들의 생각은 신문 기사와 논조에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럽에서 확산하고 있던 파시즘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신문 재벌들은 파시즘이 유럽을 어떻게 몰아가든지와 상관없이—지금의 트럼프가 취하는 태도와 비슷하게—미국이 세계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 게 좋다는 '고립주의(Isolationism)를 추구하고 있었다. 런던리뷰오브북스의 데보라 프리델은 당시 신문 재벌들이 미국인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이렇게 요약한다. "미국인들은 (지난 1차 대전 때) 영국이 퍼뜨린 독일에 반대하는 프로파간다에 속았는데 또 그렇게 속고 싶은가?" 그래서 미국 신문들은 1차 대전 때 참전했다가 죽은 미국 병사들의 사진을 게재했다. 유럽에서 일어나는 일에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도로시 톰슨이 맞서 싸우려는 견해가 바로 그런 미국의 고립주의였다. 기자였던 그가 자기 글을 게재하는 언론사의 사주와 다른 시각을 가졌다는 건, 유럽을 돕는 쪽으로 미국의 여론을 바꾸려는 그의 싸움이 쉽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톰슨의 노력은 남편과의 관계도 어렵게 만들었다. 앞의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싱클레어 루이스는 노벨상을 받은 작가이고, 파시즘을 경고한 소설 'It Can't Happen Here (있을 수 없는 일이야)'까지 발표했지만, 아내가 자기보다 더 유명해지자 이를 불편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데보라 코헨의 책에 나오는 일화가 있다. 한 번은 밤중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톰슨과 유럽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 부부는 자려고 이미 침대에 누워있었고, 침대 옆 전화기는 남편인 루이스 쪽 테이블에 있었기 때문에 루즈벨트가 톰슨에게 전화한 것을 알게 된 루이스가 수화기를 옆에 누운 아내에게 건네줬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된 통화가 30분 가까이 이어지면서 전화선이 루이스의 목 위를 가로질러 가는 바람에 꼼짝 못 하고 누워있어야 했다.
대통령이 외교 문제를 논의하려고 한밤에 전화할 만큼 도로시 톰슨은 당시 미국 내에서 국제 문제를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람들 눈에는 그건 "여자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었고, 싱클레어 루이스는 사람들이 톰슨을 '싱클레어 루이스의 아내'라고 생각하기보다 자기를 '도로시 톰슨의 남편'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이 몹시 거슬렸다.
이런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영화가 'Woman of the Year (올해의 여성)'이다. 1942년에 나온 이 영화에서는 두 기자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데, 아내는 정치부 기자, 남편은 스포츠 기자로, 당시 관객들은 이들이 도로시 톰슨과 싱클레어 루이스를 묘사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영화에서 아내가 일에 몰두하는 바람에 둘의 관계가 나빠지는데, 결말부에서는 아내가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고, 남편에게 아침 식사를 차려준다.
하지만 부엌일을 해본 경험이 없는 아내는 식사 준비를 망치고 울음을 터뜨리고, 남편은 그런 아내를 위로한다. 이게 평범한 미국인들이 도로시 톰슨을 보는 눈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와 달리 톰슨과 루이스의 관계는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루이스는 알코올중독이 있었고, 아내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위의 영화가 나온 해에 이혼한다.
2차 대전 당시 도로시 톰슨의 역할과 영향력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을 반대하는 트럼프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언론이 미치는 역할을 연상시킨다. 톰슨의 아버지가 영국 더럼(Durham) 출신이기도 했지만, 톰슨은 나치에 대한 반감 외에도 영국이 처한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고, 톰슨처럼 영향력이 있는 언론인이 영국 편에 있다는 사실은 나치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하던 처칠과 영국인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훗날 헐리우드 영화에서 미국을 유럽의 구원자처럼 묘사해서 그렇지, 미국은 진주만이 일본에 기습당하기 전까지는 참전을 꺼리고 있었다. 2차 대전 발발 직전에 주 영국 대사를 지낸 조셉 케네디(Joseph Kennedy, 존 F. 케네디, 로버트 케네디 같은 유명한 정치인의 아버지)는 영국이 독일에 편입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고, 아예 독일 편에 선 사람들도 많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비행기로 대서양을 최초 횡단한 찰스 린드버그(Charles Lindbergh)다.

1938년 나치의 공군총사령관 헤르만 괴링(Herman Göring)에게서 훈장을 받기도 한 린드버그는 미국에서 친나치 활동을 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조종사로서 항공기 분야에서 독일이 이룩한 기술 발전을 찬양한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린드버그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영국과 유대인들, 그리고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짜고서 미국을 전쟁으로 몰아넣으려 한다는 나치의 프로파간다를 미국에 퍼뜨렸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린드버그의 국제 정치를 보는 시각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린드버그는 미국과 독일에서 퍼지고 있던 우생학의 신봉자였고, 인종주의자, 백인우월주의자로 악명이 높았다. 그는 백인이 다른 인종과 피를 섞게 될 경우 서구 문명이 끝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찰스 린드버그가 극우 성향의 유명인이라는 점에서 일론 머스크를 떠올리게 되는 것을 피하기 힘들다. 머스크는 최근 인기 팟캐스트에 출연해서 "공감(empathy)은 서구 문명의 근본적인 약점"이라면서, 공감이야말로 "문명의 자살"을 부추긴다는 끔찍한 발언을 했다. 머스크의 이 발언이 나온 후, 1945~46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 때 나치 고위급 지도자들을 관찰한 후 'The Psychology of Dictatorship (독재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발간한 미국의 심리학자 구스타브 길버트(Gustave Mark Gilbert)의 말이 온라인에 회자되었다.
"악의 본질이 뭔지 탐구한 결과 가장 가까운 정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공감의 부재(lack of empathy)다. 피고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게 바로 공감의 부재다. 그들은 같은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정말로 느끼지 못했다. 악은 공감의 부재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영국이 독일에 점령당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미국의 유럽 문제 개입을 원하지 않는 여론 때문에 주저하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자국군을 해외에 파병하는 것은커녕, 식량과 같은 물자 지원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칠은 루즈벨트에게 낡고 녹슨 군함이라도 달라고 사정하던 모습은 푸틴에 맞서 싸우는 젤렌스키가 미국과 전 세계 지도자들을 만나 호소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젤렌스키는 원조를 호소할 때 처칠을 종종 언급한다.)
처음에는 루즈벨트가 히틀러 같은 독재자가 되지 않을까 우려했던 도로시 톰슨은 루즈벨트가 영국 원조에 호의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의 외교 정책을 지지하고 조언하기 시작했다. 루즈벨트가 톰슨에게 조언을 구한다는 것을 안 윈스턴 처칠은 톰슨이 영국을 방문할 때마다 극진히 대접했다고 한다.

세계 대전 참전을 주저하던 미국의 여론은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이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완전히 바뀐다. 흥미로운 건, 톰슨의 태도 변화다. 여론이 미국의 전쟁 개입을 원하지 않았을 때는 지원을 주장하던 톰슨은 정작 미군이 참전을 선언하자 다소 모호한 태도로 돌아선다. 그는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이 유럽에 상륙하기도 전에 독일의 패배를 확신했고—독일이 항복을 선언하기까지는 몹시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 확신하기는 힘들었다—그렇게 믿은 결과, 연합국이 독일의 무조건적 항복을 요구하는 데 반대했다. 히틀러와 나치에 반대하지만, 그저 명령을 따른 모든 독일인이 나쁜 건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견해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적극적 전쟁 범죄자와 소극적, 단순 가담자를 구분하기도 힘들 뿐 아니라, 많은 나치 범죄자들이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핑계로 자신의 범죄를 축소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2023년에 발행한 글 '악마의 자백'을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독일에서는 파시스트나 인종주의자가 아닌데, 경제적 불안으로 나치당에 가입했던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나치'라고 부른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데보라 프리델은 도로시 톰슨의 이런 태도 변화를 이해하는 몇 가지 시각을 제시한다. 우선 톰슨은 일반적인 언론인들보다 한발 앞선 시각을 제시해 온 기자이기 때문에, 여론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데 익숙했고, 그게 자신을 차별화하는 방법이었다. 영어에서 '주류와 다른 견해를 택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인 콘트래리언(contrarian)은 톰슨을 잘 설명하는 단어다.
게다가 톰슨은 독일인들을 잘 알고 독일 친구도 많았기 때문에 독일 전체를 악당으로 보지 않았다. 이런 생각으로 1942년부터는 독일까지 전파를 보낼 수 있는 단파 라디오를 통해 "한스(Hans)"라는 가상의 독일 옛 친구에게 보내는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정치 지도자들에게 속아 전쟁에 참여했을 뿐인 독일인들에게 "미국은 독일 국민들에게는 적대감이 없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다.
그 때만 해도 영국과 미국 등 연합국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고, 독일의 패배는 아직 생각하기도 힘들만큼 먼 미래의 일이었다. 따라서 톰슨의 그런 방송을 뜬금없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훗날의 역사를 보면 미국의 전후 독일 원조는 톰슨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연합국은 나치의 지도자들은 처벌했지만, 독일에 대한 경제 지원을 통해 동맹으로 편입시켰기 때문이다.
이 글을 끝내기 전에 도로시 톰슨이 1941년에 쓴 'Who Goes Nazi? (누가 나치가 되는가?)'라는 흥미로운 글을 소개하려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글을 읽으면 다소 의아하게 느꼈을 수 있지만, 2025년에 읽으면 그의 혜안에 감탄하게 되는 대목이 많다.
길지 않은 이 칼럼에서 톰슨은 각자 자기 주변에서 나치가 될 만한 사람들을 찾아내는 (다소 침울한) 게임을 설명한다. 그의 생각에는 세상에는 타고난 나치가 있는가 하면, 나중에 나치가 되는 사람들이 있고, 절대로 나치가 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느냐가 그 내용이다.

톰슨은 인종/민족으로 나치가 결정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유대인들도 나치가 될 수 있다. "나는 타고난 나치에 해당하는 유대인들을 많이 알고 있다. 어떤 유대인들은 기회만 주어지면 당장 내일이라도 하일 히틀러를 외칠 사람들이다." 영국인도, 프랑스인도, 미국인도 예외가 아니다.
교육을 많이 받았거나 적게 받은 사람이라고 해서, 돈이 많거나 적다고 해서 나치가 되거나, 되지 않는 게 아니다. "A는 유명한 가문 출신이다. 하지만 그는 가난하고, 편집자로 일해서 생활한다. 고전 교육을 받았고, 문학과 미술, 음악에 조예가 깊지만, 잘난 척하는 사람이 아니다. 유머 감각이 있고, 예의 있고, 재치 있는 그는 1차 대전 때 장교로 참전해서 싸웠고, 루즈벨트에 투표한 사람이다. 그는 지나치지 않고, 아주 똑똑하지는 않아도, 믿음직한 친구이고, 예쁘고 똑똑한 여성들과 어울리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그는 사랑했던 아내와 사별한 후로 재혼하지 않는다. 특별히 용기 있다고 할 사람은 아니지만, 장담하는데 그는 나치가 되지 않는다. 나치와 싸우고 싶어 하지는 않겠지만, 세상에 그 무엇도 그를 나치가 되게 하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B는 훌륭한 사람이다. 좋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왔고, 부자이고, 스포츠를 즐기며, 은행의 부사장이고, 좋은 가문의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했고, 아주 인기 있는 사람이지만, 미국 정부가 나치 손에 들어가면 일찌감치 나치에 가입할 사람이다." 이 둘을 가르는 건 뭘까?
"A는 자기 행동에 따라 형성된 삶을 산다. 돈은 없지만, (본인은 과시하지 않는) 자질과 교육 덕분에 일자리는 항상 있었다. 사나운 경쟁을 해본 적이 없고,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는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 자기 규범에 어긋나는 일을 해야 했던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 나치즘은 그의 기준에 맞을 수 없고, 그는 자기 기준에 어긋나는 것과 타협하지 않는다.
B는 건강과 잘생긴 외모, 그리고 사람들과 잘 섞이는 재주 때문에 자기의 실제 능력을 넘어서는 성공을 거뒀다. 그는 돈을 보고 결혼했고, 살면서 돈만을 보고 한 일이 많다. 그는 자기만의 규범을 따르는 게 아니라, 자기가 속한 계급(class)의 규범—그렇다고 그 규범이 더 나쁘거나, 더 좋다는 건 아니다—을 따른다. 성공하는 패턴에 자신을 잘 맞추는 편이다. 성공은 그가 가진 유일한 가치 척도다. 나치즘을 따르는 사람이 많지 않으면 그도 나치즘에 관심이 없겠지만, 나치즘이 권력을 갖기 시작하면 생각이 바뀔 거다."
톰슨은 이렇게 자기가 아는 인물들, 혹은 가상의 인물들의 잠재적 나치화 가능성을 설명한 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친절하고, 착한 사람들, 행복하고 신사적이며, 안정된 자아를 가진(secure) 사람들은 나치가 되지 않는다. 유명한 철학자일 수도 있고, 대학에서 가르치며 비행기를 설계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이들은 나치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좌절을 경험하고 모욕을 당한 지식인, 부유하지만 두려움을 느끼는 투기꾼, 돈 있는 부모의 버릇없는 아들,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사람, 성공의 기회를 잘 포착해서 성공한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 나치가 된다.
장담컨대, 좋은 사람들(nice people)은 나치가 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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