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 압착 ③ 계획, 준비, 대비
• 댓글 남기기1979년 신시내티의 '더 후 참사' 이후 라이브 콘서트를 비롯한 미국의 대형 이벤트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요즘 콘서트장에서 대부분 좌석을 지정하고, 비지정 좌석이 있을 때는 청중 관리 담당자와 경비 요원들이 철저하게 모니터한다. 청중이 입장, 퇴장하는 방식은 과거처럼 직관에 의존하거나 별 탈이 없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고, 공들여 계획하고, 2중 3중의 안전조치를 취할 뿐 아니라, 중요한 부분은 사전 훈련을 한다.
하지만 군중이 입장할 때나 비지정 좌석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군중 압착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2020년 런던에서 개최된 유럽축구선수권대회 결승전 당시 소셜미디어에 돌아다니던 영상을 보면 경기가 열린 웸블리(Wembley) 스타디움 밖에는 엄청나게 많은 군중이 몰려든 것을 볼 수 있다. 입장권이 없는 영국의 축구팬들이 모여 경기장의 경비원들을 수적으로 압도해서 일시에 경기장으로 쳐들어가려고 한 것이다. 실제로 2,000여 명이 그렇게 경비를 뚫고 경기장에 들어갔다. 중요한 건 군중의 수가 위험한 수준으로 늘어났어도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사고 직전까지 갔었던, 아주 위험한 순간이었다. 이 사건을 조사한 경찰은 잉글랜드 팀이 우승했다면(이탈리아가 승부차기로 이겼다) 이미 경기장에 난입한 사람들 외에도 6,000명이 추가로 경기장으로 들어갔을 것이고, 그랬다면 스타디움에서 대형 참사가 났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올해 1월에는 런던의 북쪽, 맨체스터의 동쪽에 있는 셰필드 웬즈데이(Sheffield Wednesday) 팀의 경기장에 원정팀 관중이 경기를 보러 찾아왔다. 이들은 소란스러운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원정팀 관중에게 배정된 좌석으로 가기 위해서는 단 두 개의 좁은 통로를 통과해야 했다.
경기장에서는 관중이 입구에 한 번에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자체 안전 규칙대로 30분 일찍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문을 개방했지만, 문제의 통로를 지나 관중석에 도착한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확인하느라 서 있는 동안—일부 좌석에 커버가 씌워져서 빨리 확인하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뒤에서 사람들이 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군중 압착이 발생하자 다급해진 사람들은 아이들을 두 손으로 들어올려야 했다.
영국에서는 가까스로 사망 사고를 피했지만, 2021년 미국 텍사스주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휴스턴의 애스트로월드 페스티벌(Astroworld Festival)에서 10명의 사망자와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사람들에 따라서는 그날 출연했던 가수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과 홍보 대행사인 라이브네이션, 그리고 행사를 기획한 회사 스코어모어가 사고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행사장 설계에 있다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이 행사는 NRG 파크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프로미식축구(NFL)팀인 휴스턴 텍산스의 홈구장인 이곳은 350에이커의 넓이에, 무려 20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다. 휴스턴 소방당국은 안전을 이유로 최대 5만 명까지 참석 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문제는 청중의 규모가 아니었다. 행사장의 설계였다.
주최 측은 행사장의 무대를 오른쪽의 주 무대(Main Stage)와 왼쪽의 보조 무대(Secondary Stage), 두 개로 나눴다. 청중이 두 무대 앞에 골고루 퍼질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고, 실제로 청중은 그렇게 두 곳에 퍼졌다. 그런데 보조무대에서의 공연이 끝난 후에 주 무대에 등장하기로 했던 트래비스 스캇이 시간을 끌면서 공연이 지체되었다. 스캇의 공연이 그날의 하이라이트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큰 기대를 하고 있었고, 애초부터 소란스러웠던 청중은 스캇의 공연이 지연되면서 점점 더 주 무대 앞으로 밀려들었다.
행사장 곳곳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 진행실과 사운드 시스템을 보호하고 있었는데, 이런 바리케이드 때문에 청중은 여유가 있는 넓은 공간으로 퍼지지 못하고 이미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곳으로만 밀려들게 되었다. 사람들의 이동 경로를 보여주는 아래 그림에서 화살표 맨 끝이 바로 그 장소로, ㄷ자 형태로 설계된 곳이라 이곳에 있던 사람들은 빠져나갈 공간이 없이 갇히게 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날의 모든 사망자는 바로 이 장소에서 발생했다. (가수의 등장) 타이밍도 나빴지만, 행사장 설계에 문제가 있었던 거다.
물론 사고가 난 후에 돌이켜보면서 문제를 지적하기는 쉽다. 잘못된 설계 때문에 소란스러운 군중이 경쟁을 하게 했고, 주최 측의 준비는 부실했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결과,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설계는 지적하기는 쉬워도 개선하기는 쉽지 않다. 앞의 글에서 언급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순례객들이 사용하는 자마라트 다리가 그렇다.
이 다리는 세월이 흐르면서 모양이 바뀌었지만, 1960년대부터 현재의 자리에 있었다. 이 다리에는 "악마의 돌기둥"이라 불리는 자마라트 기둥이 있고, 수백만 명의 무슬림이 여기에 돌을 던지는 예식을 한다. 그런데 이 한 장소에 한 해 명절(하지)에 이곳을 찾는 200만 명의 무슬림이 모두 한 장소에 몰리기 때문에 압착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
2004년에는 이 기둥 앞에서 압착 사고가 발생해 251명의 순례객이 사망했고, 사우디 정부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기둥 주변의 설계를 바꿔 군중이 한 곳에 쏠리지 않고 움직일 수 있게 했다.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지만, 압착 사고는 사라지지 않았다. 2년 뒤인 2006년에는 다리로 올라가는 램프에서 사고가 발생해 345명이 사망한 것이다.
일부 구간의 설계를 개선하는 정도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사우디 정부는 10억 달러(1조 3,000억 원)를 들여 순례객 이동 경로 전체를 다시 설계하기로 했다. 다리의 폭을 80미터로 확장했고, 4개 층을 추가해서 많은 사람이 한 번에 돌을 던질 수 있게 했고, 맨 위층에는 거대한 햇빛 가리개를 만들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런 투자를 통해 이슬람 최대의 명절에 각국에서 오는 순례객의 안전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이슬람 세계에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한 번에 5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개선된 자마라트 다리는 해마다 늘어나는 순례객을 감당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다리의 개선만으로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었다. 2015년, 이번에는 자마라트 다리 인근 도로에서 군중 압착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무려 2,400여 명이 사망하는, 사상 최대의 참사였다. 문제가 된 구간은 텐트촌의 보행자 도로 중 평행한 204번 도로와 206번 도로가 이 둘을 수직으로 연결하는 223번 도로와 만나는 지점이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수만 명이 좁은 길에서 밀리는 바람에 군중 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몸이 들려 다리가 땅에서 떨어졌다고 한다—옮긴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자마라트 다리를 개선하는 동안 불과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군중이 빠져나가기 힘든 깔때기(choke point)가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취약 지점의 설계를 바꿔 해결했다고 생각했던 문제는 사라진 게 아니라, 다음 취약 지점으로 자리를 옮겼을 뿐이다.
하지의 순례객이든, 휴스턴의 페스티벌이든, 더 후 콘서트든, 군중 압착 사고가 발생하면 그 원인은 충분히 예측가능했다고 느껴진다. 하나같이 협조하지 않은 군중이 경쟁하게 되는데, 주변 구조물은 흐름을 제약하고, 하필 그날따라 운이 나쁘게 발생한 상황이 만나서 일어나는 사고로 보인다. 하지만 예측 가능했다는 것은 언제나 일이 일어난 후에 쉽게 할 수 있는 말이다.
뮤직 페스티벌에서 압착 사고가 일어나지만, 훨씬 더 많은 페스티벌에서 사람들은 젊은 날의 한때를 즐긴다.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에서 사고가 일어나지만, 훨씬 더 많은 세일 행사가 별 탈 없이 진행되어 매출에 큰 도움이 된다. 위험한 상황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이유는 사람들이 위험한 상황을 즐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사고를 방지하고 군중의 안전을 지키는 방법은 지루할 정도로 단순하다. 1) 압착이 일어날 가능성을 줄이는 적절한 계획 2) 위험 요소의 인지 3) 통제가 어렵게 되는 상황을 발견하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그거다. 군중 압착 사고를 보면 하나같이 이 세 가지 중 하나를 실패한 경우다. 따라서 압착 사고가 일어나는 순간을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려울 수 있어도, 사고 발생의 원인과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는 분명히 밝힐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