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이 모이는 하지에서 워낙 대형 사고가 잦았기 때문에 학자들은 이 순례 행사를 사례로 삼아 군중 심리를 연구해 왔다. 그들이 내린 중요한 결론 중 하나는 하지의 핵심인 카바(الكعبة, Kaaba)와 관련이 있다.

메카의 대모스크(마스지드 알하람) 한가운데 위치한 카바를 향해 기도하는 것이 순례의 핵심이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기 위한 장소를 선택할 수 있다. 하나는 지상에 있는 플라자, 다른 하나는 플라자를 둘러싼 건물의 테라스다. 짐작하겠지만 최적의 장소는 플라자다. 넓은 마당에서 카바를 보는 시야를 가리는 방해물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테라스에서 볼 때는 아래 사진에서 보듯, 사람이 서는 위치에 따라 아치형 구조물이 앞을 가릴 수 있다.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카바

학자들은 이렇게 시야를 방해하는 구조물이 군중 사이의 협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연구하기 위해 수천 명의 순례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그들이 짐작했던 대로 테라스에 올라간 사람들은 카바를 잘 볼 수 있는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밀치며 경쟁을 했고, 군중 사이의 협력도는 낮았다. 경쟁이 증가하면 협력이 감소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민 소요의 경우는 다르다. 카바를 보기 위해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 순례객과 달리 시위에 나온 시민들 사이에서는 경쟁할 요소가 거의 없다. 어디에 서느냐에 따라 얻거나 잃는 게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사이에는 서로를 밀치고 떠밀어야 할 이유, 동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이들은 아주 강한 정체성을 공유한다. 시위 장소에 긴장이 고조되기 전, 그 자리에 모인 군중은 특정한 목표를 지지하고 있다. 1)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이면서 2) 그들 사이에는 경쟁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시위에 참여한 군중은 이를 조직, 관리하는 주체가 없어도 압착 사고를 내지 않는 것이다.

2018년 미국 워싱턴 D.C.의 "March for Our Lives" 시위 (이미지 출처: Mashable)

신시내티의 일반 입장권 금지

반면 대규모 시위와 달리 주체가 아주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거듭해서 군중 압착 사고를 내는 종류의 집회도 있다. 많은 사람이 꽤 큰 돈을 들여 입장권을 구매하고, 시간을 써가며 장소로 이동하는 운동 경기와 콘서트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모여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출입구는 제한되어 있어서 입장은 지연되고, 행사는 시작되려는 상황에서 군중 압착이 발생한다.

이렇게 거대한 군중이 경쟁하는 다이내믹이 만들어져 발생한 사고가 2023년 엘살바도르의 산살바도르, 2022년 카메룬의 야운데, 2019년 마다가스카르의 안타나나리보, 2017년 말라위의 릴롱궤, 앙골라의 우위게에서 일어났다. 가장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인데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압착 사고가 바로 이런 형태다.

개발도상국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선진국의 콘서트장을 보자. 콘서트에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소는 그 콘서트를 가장 위험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바로 비지정석(unassigned seating)이다.

야외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에서는 비지정석이 일반적이다. 드물게 주어지는 지정석이 있지만 이는 VIP에게 제공되고, 일반 입장권보다 나은 점이라고는 남들보다 빨리 들어갈 수 있고, 덜 붐비는 자리라는 정도의 이점밖에 없다. 반면, 작은 공연장부터 스타디움까지, 공간이 제한적인 행사장에서는 입장권이 '좌석(seated) 티켓'과 '플로어(floor) 티켓'으로 구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행사 주최 측이나 청중 관리 담당자들에게는 좌석 티켓이 행사 관리에 용이하지만, 청중이나 가수들은 좌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곳에 있는 청중은 공연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지루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가수나 청중 모두 자리가 지정되지 않는 플로어 티켓, 즉 일반 입장권을 좋아한다. 그쪽에 있는 청중의 에너지 레벨이 높고 분위기가 생생해서 공연자와의 교감이 훨씬 더 다이내믹해서다.

이렇게 가수와 청중이 모두 선호하는 일반 입장권을 무려 24년 동안 금지한 도시가 있다. 바로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다. 이 도시가 1979년부터 2004년까지 일반 입장권을 금한 이유는 1979년 12월 3일에 있었던 영국 록밴드 더 후(The Who) 공연에서 일어난 사고 때문이다. 더 후의 팬들이 오래 기다렸던 공연이었고, 공연장인 신시내티의 리버프론트 스타디움의 일반 입장권 18,438장이 매진되며 흥행에도 성공했지만, 이날의 공연은 미국과 전 세계 공연장 관리법을 정비하게 만든 비극적인 사례가 되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좌석이 지정되지 않는 일반 입장권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는 경쟁이 생긴다. 가수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제치고 무대 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런데 이 공연에서는 그런 경쟁이 청중이 입장하기 전부터 시작되었다. 입장권을 가진 2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가장 먼저 앞자리로 가기 위해 행사장 문이 열리기도 전에 입구로 몰려들어 문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고, 12월 초에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추위에 떨며 조급해졌다.  

그러다가 담당자가 비로소 문을 열었을 때는 가능한 8개의 출입구 중에서 단 2개만을 사용하기로 했다. 2만 명이 들어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녹색으로 표시된 곳이 열린 문이다.

당연히 행사장 입장은 느렸고, 이미 오래 기다린 사람들은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었다. 그러다가 행사장 내 무대에서 사운드 체크를 하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사람들은 입장도 못 했는데 공연이 시작되는 줄로 착각하고 동요하기 시작했다.

앞 사람을 미는 건 맨 뒤(앞의 글에서 '그룹 1'에 해당하는 사람들)에서 시작되었지만, 그렇게 시작된 파동은 모인 사람들을 지나 앞으로 이동하면서 더욱 거세졌다. 맨 앞에 있던 사람들은 열린 두 개의 문으로 쏟아져 들어가면서 생채기가 나고, 옷이 찢어지고, 신발이 벗겨졌고,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가기 위해 밀어댔다. 새치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뒤에서 오는 압력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입구에 있던 사람들이 넘어지고 뒤에서 미는 사람들에 깔리면서 11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다쳤다.

사고가 발생하자 사람들은 군중을 탓했다. 그들이 그렇게 밀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술이나 약물에 취해있었는지를 이야기했고, 록 음악과 그 팬들의 문화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런 비난은 비슷한 사고가 날 때마다 반복된다. 운동 경기장에서 압착 사고가 발생하면 훌리건 문화를 지적했고, 콘서트나 페스티벌에서 사고가 나면 젊은이들의 문화가 문제라고 했고, 종교 행사에서 발생하면 광신도의 행동으로 몰아갔다.

하지만 문제의 근본에는 잘못된 설계가 있다.

군중의 이기적인 행동이나 광란의 결과라는 비난은 청중의 숫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관리 인원이 2만 명에 가까운 청중을 단 두 개의 문으로 입장시키려 했다는 사실을 감추지 못한다. 군중의 중앙과 앞에 있던 사람들은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밀었던 게 아니라, 숨을 쉴 공간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맨 뒤에서 밀었던 사람들도 나쁜 의도로 그랬던 게 아니라 자신이 미는 것이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뿐이다.

신시내티의 사고 현장 (이미지 출처: AP News)

게다가 이런 사고를 군중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것은 군중의 밀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증가하면 개인의 행동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1제곱 미터 안에 5명이 들어가는 정도의 밀도가 되면—이때부터 넘어지고 밟는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그 안에 있는 개인은 자신의 움직임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고, 그저 군중에게서 밀려오는 충격파(shock waves)에 휘둘릴 뿐이다. 이 단계부터 군중의 움직임은 유체역학에 가깝다.

이제는 '더 후 참사(The Who Disaster)'라고 알려지게 된 1979년의 사고는 군중의 뒤에 있던 사람들과 앞에 있던 사람들, 그리고 경비 담당자들 사이의 단절이 중요한 요인이었고, 일단 압착이 시작되면 그저 충격파와 함께 움직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까지 더해져 발생한 것이다. 물론 거기에 군중 통제의 실패와 준비되지 않은 행사장, 그리고 부족했던 관리 인원도 중요한 요소였다.

신시내티에서의 참사 이후 콘서트를 비롯한 대형 행사를 기획하는 사람들은 이 참사를 만들어낸 요인들을 재검토했다. 일반 입장권을 전면 금지한 건 신시내티 뿐이었지만, 미국 내 다른 도시들도 많은 청중이 예상되는 행사에서는 훨씬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미국 내 각 주와 도시를 위한 표준 안전 기준을 만드는 비영리기구인 미국화재예방협회(NFPA)는 군중 역학(crowd dynamics)를 반영하는, 완전히 새로운 생명안전표준을 만들었다.


'군중 압착 ③ 계획, 준비, 대비'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