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의 할로윈 참사가 1주년을 맞는다. 젊은이 158명이 생명을 잃은 이 끔찍한 참사에 사람들이 분노했던 것은 그 사고가 전형적인 인재(人災)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사고를 통해 사람들이 좁은 장소에 많이 모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배우게 되었지만, 우리는 과연 그 사고를 정말로 제대로 이해했을까?

군중 압착(crowd crush)은 좁은 실내가 아닌 길거리에서도 일어날 수 있음을 목격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군중 심리'를 잘못 이해하고 있고, 여전히 많은 사람이 "쓸데없이 서양 명절을 따르려던" 희생자들을 탓한다. 이런 몰이해는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재발 방지 노력을 제한한다.

한국에서는 낯선 사고였지만, 비슷한 사고는 전 세계에서 많이 일어났고, 많은 학자들이 이 현상을 연구했다. 아랫글은 과거 전 세계에서 일어난 군중 압착 사고를 새로운 발견을 동원해 이해하기 쉽게 분석한 영상("How to Control a Crowd)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글에 포함된 이미지 중 출처가 따로 표기되지 않은 것은 이 영상의 장면을 캡처한 것이다.


다음은 전형적인 재난의 시나리오다.

미국인들이 연중 최대 할인을 노리기 위해 쇼핑몰에 몰리는 블랙프라이데이(추수감사절 다음날). 한 전자제품 매장에서 많은 사람이 찾는 최신 버전의 게임 콘솔을 다량으로 확보했다. 이 매장은 입소문 판촉을 위해 큰 폭의 할인 판매를 결정했다. 이 가격이면 사람들이 구매한 직후에 온라인에 팔아서 이윤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고객 한 명당 3대 한정 판매. 그냥 줄만 빨리 서면 수백 달러를 벌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매장 앞에는 줄이 없다. 쇼핑센터의 큰 통로를 가득 채운 군중만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매장이 문을 여는 아침 9시보다 훨씬 일찍부터 나왔고, 그 규모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매장에서 고용한 경비팀은 8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이들은 인파를 헤치며 매장 입구에 간신히 도착해서 메가폰을 들고 소리를 지른다. "여러분, 차례로 줄을 서시기 바랍니다. 매장에서 확보한 게임 콘솔은 500대가 전부입니다. 여기에 계신 모든 분께 돌아가지 않으니, 줄을 서서 대기해 주십시오!"

하지만 모인 사람들은 말을 듣지 않는다. 개장 시간이 다가오고, 매장 경비원들은 이 사람들이 모두 한 번에 들어오면 매장과 종업원이 위험할 수 있다고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 맨 앞에 있는 소수만을 조심스럽게 먼저 들여보내기로 한다. 그렇게 30분이 지난 후 군중 압착이 발생한다.

이 모든 게 예측 가능했던 상황이다. 모인 사람 중 뒤에 있던 사람들은 빠르게 소진되고 있는 게임 콘솔의 재고를 걱정하며 앞 사람을 민다. 집단적으로 결정한 게 아니고, 개인이, 그것도 거의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다. 군중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점점 더 좁은 공간 안에 갇히게 되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건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질식한다. 말 그대로 숨쉴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숨을 들이 쉬기 위해서는 폐가 확장되어야 하는데, 가슴이 크게 압박된 상황이라 폐를 확장할 수 없어 공기를 들이마시지 못하는 것이다—옮긴이)

이들이 상황을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매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은 매장을 향해 앞 사람을 민다. 하지만 매장 밖에서 군중을 통제해야 하는 임무를 맡은 경비팀은 제발 들여보내달라고 사정하는 사람들의 요청을 무시한다. 경비원들의 눈에 이들은 무질서하고 탐욕스러운 군중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목표가 서로 다른 세 집단이 존재한다.

우선 재고가 소진되기 전에 게임 콘솔을 손에 넣는 것이 군중의 뒤쪽에 있는 사람들(그룹 1)의 목표다. 경비팀의 목표는 군중이 매장으로 일시에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리고 군중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들(그룹 2)이 있다. 현재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이 상황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 다른 목표들이 충돌하면서 동일한 하나의 결과가 나온다. 계속해서 악화하기만 하는 군중 압착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군중이 모이는 일이 항상 일어나도, 모든 군중이 압사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군중 압착으로 인한 압사 사고는 흔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고는 왜 일어나는 걸까?

군중을 보는 새로운 시각

이런 사고가 나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군중'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모여 군중이 되면 이성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바뀐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모이면 사람들은 인간성을 상실하게 되고, 개인일 때보다 더 소란스럽고 위험한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게 한 때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근래 들어 군중을 새롭게 보는 연구들이 등장했다. 이 연구들에 따르면 흔히 군중이 집단 전체에 이익이 되는 목표를 저버리고, 패닉에 빠져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된다고 생각하는—가령 비상사태—상황에서 우리의 짐작과는 반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사람이 가득 들어찬 빌딩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사람들은 서로 먼저 빠져나가기 위해 마구 사람들을 밀어 사고가 날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런 일은 놀라울 만큼 드물다.

지난 10년 동안 일어난 21개의 군중 압착 사고 중에서 사람들이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아나다가 사고가 난 경우는 단 두 번에 불과했다. 하나는 예멘에서 전기 폭발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화재가 발생한 교회에서 신자들이 빠져나가려다 일어났다. 이는 우리가 직관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화재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은 게임 콘솔을 싸게 사려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보상이 상대적으로 적은 상황에서 오히려 군중 압착 사고가 더 많은 이유를 찾기로 했다.

흔히 일어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평상시에 비행기에 탄 승객들은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들과 어깨를 맞대고 앉아 4, 5시간을 보내면서도 옆에 누가 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게이트 앞에서 비행기 출발이 지연되면? 사람들의 행동은 완전히 바뀐다. 옆에 있는 사람과 말을 트기 시작하고, 문제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 상의를 하고, 옆에 앉은 사람과 친해지기 시작하고, 심지어 음식을 나눠 주기도 한다. 그러다가 항공편이 취소되는 일이라도 발생하면 사람들 사이의 협력은 더욱 증가해서, 방금 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함께 대안을 찾기 시작하고, 렌터카를 빌려 함께 타기도 한다.  

군중 심리학 연구자들은 이런 사례를 많이 발견하면서 이를 설명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핵심은 정체성(identity)에 있었다. 공항을 돌아다니는 사람들 사이에는 특별히 공유하는 정체성이 없다. 그저 여행자/승객이라는 정도가 전부다. 하지만 비행기 출발이 지연되거나 취소되면 이들의 정체성은 변화, 집중하게 된다. 이제 이들은 '어려움에 직면한 여행자'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공유하게 되고, 이들 사이에는 더 큰 협력이 발생한다.

연구자들은 실험을 통해 증명하기도 했다. 런던 지하철에서 대피하는 상황을 연출한 실험에서 피험자는 어려움에 빠진 사람이 자기가 응원하는 축구팀의 유니폼(저지)을 입고 있는 사람일 경우 그를 도와줄 확률이 높았다.

"비상 상황에서 사람들은 패닉 하는 게 아니라, 놀라울 정도로 조직력을 발휘하고 서로를 돕는다." (출처: Scientific American)

생각해 보면 대규모 이벤트에 모이는 군중은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는 경우가 흔하다. 같은 팀을 응원하는 팬이거나, 같은 종교를 믿는 신도, 같은 이유로 시위에 나선 시민들 모두 그런 집회를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 경우 수만 명, 수십 만 명이 모여도 질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위험에서 대피하는 상황에서 군중 압착 사고가 드물게 일어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상시에 런던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들이 공유하는 정체성은 "출퇴근 승객"이라는 약한 정체성이다. 하지만 테러로 인한 폭발이 발생했다면? 그 순간 승객들의 정체성은 집중되고 단단해진다. 이들은 이제 아주 드문 사건의 피해자라는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이다.

실제로 2005년에 일어난 런던 지하철 테러를 직접 겪었던 승객들을 인터뷰한 연구자들은 테러가 일어나는 순간 승객들이 하나로 단결하는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다. 그 사건에서 자신의 안전을 돌보지 않고 어려움에 처한 타인을 돕고 함께 협력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이런 현상은 테러 때만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재난에서도 마찬가지다. 재난이 발생하면—영화에서 보는 것과 달리—사람들 사이의 협력은 증가하고, 그 결과 군중 압착을 피하고 질서 있게 대피하는 일이 흔하다.

또 하나의 특이한 점은 군중 압착 사고가 시민들의 폭동 소요(civil unrest) 사태 때 발생하는 일이 상당히 드물다는 사실이다. 이런 소요야말로 '군중심리(mob mentality)'가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지난 10년 동안 소요가 대형 사고로 이어진 경우는 2022년 인도네시아의 칸주루한 스타디움 참사를 들 수 있지만, 이 경우는 폭동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이 쏜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다가 일어난 사고였다. 2016년 에티오피아에서도 시위대가 경찰을 피해 달아나다가 사고가 난 것이다.

즉, 폭동으로 군중 압착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고, 경찰의 진압이 없이 일어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인도네시아의 칸주루한 스타디움 참사 (이미지 출처: CNN)

이건 수수께끼 같은 일이다. 전통적인 이론에 따르면 소요, 폭동에 참여한 개인들은 평소의 자아를 상실하고 야만인처럼 행동하며, 함께 모인 사람들의 과격한 행동을 보고 더욱 폭력적으로 변하게 되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렇게 무질서한 사람들은 압착 사고를 내지 않는데, 같은 정체성을 가진 스타디움의 축구팬, 콘서트장의 관객, 그리고 같은 종교를 믿는 신도는 종종 압착 사고의 희생자가 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종교인 이슬람권 연중 최대 행사인 성지순례 '하지(Hajj)'를 보자. 무려 200만 명의 무슬림이 이 종교의 중심지인 메카를 찾는다. 만약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는 군중이 협력해서 군중 압착의 위험을 피할 수 있다면 하지 순례에서는 사고가 나지 않아야 한다. '무슬림'에 더해 '순례자'라는 정체성까지 공유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참석한 이들은 이르함(إِحْرَام)이라는 종교적으로 순결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나뭇가지도 꺾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하지는 20세기와 21세기에 가장 많은 군중 압착 사망자—한 사고에서 1천 명이 넘는 사망자—를 내는 행사로 악명이 높다. 어찌 된 일일까?


'군중 압착 ② 경쟁과 협력'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