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뒷얘기 ④
• 댓글 5개 보기진행자: 그렇게 해서 쿠퍼 씨께서 마블 작가로 참여한 만화에서 아마도 마블에서는 첫 번째인 레즈비언 캐릭터를 등장시키셨다고 하셨어요. "다크홀드(Darkhold: Pages From The Book Of Sins)"라는 호러물에 등장하는 캐릭터인데요, 그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내셨나요? 캐릭터가 가진 레즈비언의 정체성을 얼마나 드러낼 수 있었습니까?
쿠퍼: (웃음) 일단 바비 체이스가 그 작품의 에디터였기 때문에 저를 막지 않았지만,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 있으니 완전히 내놓고 할 수는 없었죠. 그래서 저는 약간 조심스러운 접근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렇다고 아주 조심스러웠던 건 아니고요. 만화 시작부에 이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룸메이트와 점심을 먹는 장면이 나오죠. 그 룸메이트도 여자인데, 둘 사이가 상당히 친밀하다는 게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폭탄이 터지고–(웃음) 만화니까 이해해 주시고요–룸메이트가 크게 다쳐 장애를 얻게 되죠.
그런데 이 캐릭터–비키 몬테시–를 보면 단순한 친구 관계 이상으로 룸메이트에게 잘 대해줘요. 물론 그러다가 젊고 터프한 남자 캐릭터가 등장해서 비키가 자신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는 것을 보고 레즈비언이라는 걸 깨닫는 장면이 나오죠. 이 남자가 "가만, 너는 그러면...(Wait, you mean you're a d...)"이라고 하는 순간, 비키가 들켰다는 듯 "앗– (Yikes–)"하는 장면이 있어요.
두 캐릭터의 대화를 영문으로 읽으면 쿠퍼가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서 캐릭터의 성정체성을 드러낸 교묘한 방법이 보인다. 남자 캐릭터는 d(duh)라는 발음을 하면서 말을 끝맺지 못했는데 바로 뒤이어 비키가 yikes(앗)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두 대화를 이어서 말하면 "dykes (=d+yikes)"가 된다. 다이크(Dyke)라는 단어는 레즈비언을 가리키는 경멸적인 표현이지만, 레즈비언들 사이에서는 이 단어를 역으로 자랑스럽게 쓰기도 한다. 즉, 작가는 캐릭터가 다이크라는 말을 입 밖에 내게 하지 않으면서도 독자들에게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진행자: 마블 경영진의 반응은 어땠나요?
쿠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았어요.
진행자: 게이 남성 캐릭터 논란이 생기고 한참 후에 등장한 캐릭터라 그런가요?
쿠퍼: 네, 그로부터 얼마 지난 후였어요. 그런데 원래 마블이 그렇게 포용적이고 열린 조직이에요.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전부 특이한 구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들 서로를 사랑하고 아낍니다. 성소수자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말라고 명령한 건 경영진에 있는 높으신 분들이 회사가 돈을 버는 데 지장이 될까 봐 그런 거죠. 지금 마블 만화를 보면 비키 몬테시가 자랑스럽게 자신의 레즈비언 정체성을 드러내고 다닙니다.
진행자: '퀴어 네이션: 온라인 게이 코믹 (Queer Nation: The Online Gay Comic)'라는 디지털 만화를 직접 만드시기도 하셨죠? 하고 싶은 걸 하실 수 있으니 어떤가요?
쿠퍼: 아, 너무 재미있었어요. 가끔 그걸 되살리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좋은 이야기인데 완결하지 못했거든요. 그 만화를 통해서 다른 곳에서는 제한 때문에 할 수 없었던 걸 했죠. 가령 엑스맨에서는 퀴어의 삶을 암시하는 코드가 들어있지만, '퀴어 네이션'에서는 숨길 필요가 없이 내놓고 이야기하면 되었으니까요.
그 만화의 기본 설정은 이래요. 어느 혜성 하나가 지구를 아주 가깝게 스쳐 지나갑니다. 그런데 이 혜성의 꼬리 부분에서 부스러기가 지구 위로 떨어지는데, 여기에서 람다선(lambda rays)이 나와 지구에 사는 성소수자들의 뇌에 있는 시상하부(視床下部)를 자극하게 됩니다. 그 바람에 성소수자들은 초능력을 갖게 되고, 그 결과로 일어나는 일을 그린 만화예요. 장난스러운 설정을 통해서 재미를 주려는 것이지만, 중요한 메시지도 담고 있었어요. 가령 패트(Pat)라는 우익 대통령이 당선되는데, 이 인물이 나라를 온통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가죠.
진행자: 쿠퍼 씨가 센트럴파크에서 경험한 일, 그러니까 쿠퍼 씨에게서 개의 목줄을 묶어달라는 말을 들은 백인 여성이 경찰에 허위 신고를 해서 흑인 남성이 자신과 개를 위협한다고 한 사건을 반영한 만화도 나왔더라고요. DC 코믹스(쿠퍼가 일했던 마블과 함께 미국 만화계의 양대 산맥이다–옮긴이)가 센트럴파크 사건을 바탕으로 한 만든 건데, 쿠퍼 씨의 인생에 중요한 두 가지를 하나로 묶는 의미 있는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어떠셨나요?
쿠퍼: 제게는 큰 영광이었죠. 그 작품을 추진한 사람은 아까 말씀드렸던 마블에서 제 상사였던 바비 체이스였습니다. DC 코믹스로 옮기셨거든요. 그분과 마블에서 함께 일했던 마리 제이빈스, 그리고 또 한 명의 친구–이 사람은 지금 DC 코믹스의 총책임자입니다–가 함께 제게 연락해서 제가 겪은 일을 만화로 만들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만화 작가를 그만둔 지 몇 년이 지난 시점이었기 때문에 제 기술이 녹슬었을 것 같아 걱정되었죠.
하지만 함께 고민해서 만화로 옮길 방법을 찾아내고 나니 재미있는 작업이었습니다. 중요한 건 제목이었어요. 이분들이 생각한 제목을 제게 들려주자 모든 게 쉽게 풀렸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마술적 사실주의(magical realism)의 형태로 완성되었습니다. 즐거운 경험이었죠.
진행자: 기가 막힌 제목이니 말씀을 해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쿠퍼: 아, 제목은 "It's A Bird(저건 새야)"입니다. 슈퍼맨을 아시는 분이라면 이게 슈퍼맨에 등장하는 대사라는 걸 아실 겁니다. "하늘을 봐. 저건 새야, 저건 비행기야, 저거 슈퍼맨이야! (Look up in the sky. It's a bird... It's a plane... It's Superman!" 하는 대사 말예요.
워낙 유명한 대사인데, 크리스천 쿠퍼가 겪은 일(과 그의 관심)이 새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완벽한 선택이었을 뿐 아니라, 슈퍼맨이 마블이 아닌 DC 코믹스에서 나온 만화라는 점에서 더욱 적절했을 거다.
그렇게 해서 'It's A Bird'라는 제목을 고른 거죠. 바비와 마리가 제게 이 만화를 만들자고 처음 제안했을 때만 해도 저는 그 일을 가지고 슈퍼 히어로 만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어요. 이게 만화가 될 수 있을까? 그러는데 이 사람들이 'It's A Bird'라는 제목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제가 그 만화에서 뭘 하고 싶은지 바로 떠올랐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일이 착착 진행되었죠.
진행자: 그 만화에는 새가 많이 등장하나요?
쿠퍼: 만화 곳곳에 새가 등장합니다. 새를 좋아하는 아이가 특별한 망원경을 받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 망원경을 통해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게 되죠. 내용을 전부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특수 망원경으로 보게 된 것들을 통해 주인공의 의식이 성장합니다. 이 이야기가 좋은 해결책을 주지는 않아요. 하지만 불의한 폭력과 사회의 부정의, 경찰의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장면(moment of grace)이 있어요. 저는 그 장면을 넣을 수 있어서 아주 좋았습니다.
게다가 이 작품은 알리사 마르티네즈(Alitha Martinez)가 뛰어난 솜씨로 그렸어요. 저로서는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게 맞아요. 제 인생에 중요한 것들을 하나로 아름답게 묶어주는, 작은 요약 같은 작품입니다.
언론에 공개된 이 작품의 일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진행자: 인터뷰를 끝내기 전에 탐조(birding)에 대한 조언을 몇 개 듣고 싶어요. 책에서 특히 눈에 띄었던 내용인데, 망원경을 잘 사용하는 방법을 설명하셨습니다. 망원경으로 새를 찾는 게 아니라, 먼저 맨눈으로 새를 찾은 후에 새를 눈에서 떼지 말고 망원경을 눈으로 가져가라고 하셨어요. 생각해 보니 당연한 얘기인 것 같은데, 저는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이 없더라고요.
쿠퍼: 탐조할 때 익혀야 할 아주 중요한 테크닉이죠. 이 방법을 익히면 과거에는 놓쳤던 새들을 다시는 놓치지 않고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어린 시절 제 탐조 멘토이셨던 엘리엇 커트너(Elliot Kutner) 씨에게서 그 기술을 배웠어요. 이 기술을 사용하게 되자 새들이 제게 다가왔죠.
구글로 검색해 보니 엘리엇 커트너는 쿠퍼가 자란 롱아일랜드의 사우스 쇼어 오듀본 협회 회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1980년대 뉴욕타임즈 기사에도 등장한다. 2012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사우스 쇼어 오듀본 협회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부고 글에 달린 댓글을 읽어보면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진행자: 그리고 새소리를 구분하는 법을 배우는 제일 좋은 방법은 녹음을 듣는 게 아니라는 말씀도 하셨죠. 시간이 지나면 기억 속에서 다 비슷하게 섞여버린다고요. 그럼 어떤 방법이 있나요? 새소리를 내실 수 있나요? (이건 쿠퍼가 새소리 흉내를 잘 낸다는 걸 알고 하는 말이다–옮긴이) 하실 수 있으시면 몇 개만 들려주시겠어요?
쿠퍼: 으아아...(웃음) 결국 그 부탁을 하시는군요. (아마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방송에 이걸 넣자고 줄다리기를 한 것 같다–옮긴이)
진행자: 네, 그렇습니다. (웃음)
쿠퍼: 네, 제가 다양한 새소리를 구분하는 법을 배운 건 이런 식이었습니다. 제가 모르는 새소리를 들으면 반드시 그 새를 찾아서 소리를 낼 때마다 부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꼬리는 어떻게 흔들리는지 살펴봅니다. 그렇게 움직임을 확인하지 않으면 엉뚱한 새를 보고 그 새가 내는 소리로 착각하게 되죠.
게다가 그렇게 새를 보면서 소리를 확인하는 작업을 계속해서 하다 보면 소리와 새의 모습이 함께 두뇌에 저장됩니다. 그렇게 되면 새소리와 경험이 연결되는 거죠. 그러면 새소리를 들으면 그 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진행자: 자, 이제 새소리를 들어볼 시간입니다.
쿠퍼: 좋아요. 제가 휘파람으로 후디드 와블러(hooded warbler) 새소리를 내볼게요. 이건 사람도 따라 하기 쉬운 소리예요. (새소리를 흉내 낸다)
쿠퍼가 내는 새소리는 인터뷰 녹음에서 들어볼 수 있다. 여기에서 38:40 지점으로 이동하면 된다.
제 친구 하나는 제가 좋아하는 새의 소리를 기억하는 기억법(mnemonic)을 고안했어요. 와블러에 관한 책 표지에도 등장하는 블랙버니언 와블러(blackburnian warbler)라는 새인데요, 목 부위가 뚜렷한 오렌지색이죠. 아주 고음의 소리인데 마지막에는 꼭 목이 졸리는 듯한 소리를 내요. 이걸 기억하는 방법은 "Come on, come on, come and see meeee–"입니다. (함께 웃음. "나를 보러 오라"는 말이 화려한 이 새에 아주 잘 어울린다) 이걸 생각해 낸 사람은 제 친구 큐 리(Kyu Lee. 중요한 사실은 아니지만, 그의 트위터 계정을 보면 뉴욕에 사는 한국계 탐조인으로 짐작된다–옮긴이)인데,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캐나다 와블러라는 새도 있어요. 저는 이 새에 게이가 말할 법한 기억법을 만들었어요. 이 새는 짧은 소리를 찍– 낸 후에 소리를 쏟아내죠. 그래서 저는 이 새의 소리를 기억하는 방법으로 "Chicks– I don't think that's really for me"라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Chick은 여성을 가리키는 단어이기 때문에, 이 말은 "나는 여자들에게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라는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옮긴이)
진행자: (웃음)
쿠퍼: 이런 방법들을 이야기하자면 밤새도록 이야기해도 시간이 모자랄 거예요. 자기에게 도움이 된다면 어떤 문구(기억법)를 만들어 내도 되니 해보세요.
진행자: 감사합니다. 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제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평범하지 않은 탐조인(Extraordinary Birder)'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시잖아요. 그렇다면 촬영팀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함께 움직여야 하니 과거에는 흑인 남성이 혼자서는 갈 수 없었던 곳들도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일까요?
쿠퍼: 맞습니다. 제게 가장 의미 있었던 에피소드는 (남부) 앨라배마주에 가서 촬영한 겁니다. 흑인 남자인 제가 앨라배마에 탐조를 하러 간다? 어림도 없는 일이었죠. 그 에피소드를 촬영하기 1년 전에 앨라배마 오듀본 협회의 초청을 받아 간 적이 있어요. 그때의 감동이 너무나 컸고 제게 중요해서 꼭 거기에서 에피소드를 찍어야 한다고 제가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 경험을 되살리고 싶었거든요. 앨라배마에 오듀본 협회와 함께, 그리고 촬영팀을 끌고 가는 건, 제가 전에는 갈 수 없었던 곳을 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앨라배마주가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셀마(Selma, '피의 일요일'로 알려진 흑인들의 투표권 쟁취 행진이 시작된 곳–옮긴이)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셀마의 에드먼드 피터스 다리를 걸어서 건넜습니다. 제 가족은 북부 출신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흑인들은 몇 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남부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제 아버지 쪽 집안은 앨라배마에서 오셨죠. 그래서 제게는 이런 개인사와 탐조, 민권운동의 역사가 함께 만나는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이 에피소드에 기대가 큽니다. 이 시리즈에서 가장 흥미롭고 감동적인 에피소드가 될 겁니다.
진행자: 축하드립니다.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셔서 기쁩니다. 책의 출간도 축하드리고요. 오늘 나눈 대화,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쿠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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