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뒷얘기 ②
• 댓글 남기기쿠퍼: 그렇게 녹화를 시작했는데 그게 그 여자분을 화나게 했죠. 자신이 찍히는 걸 원하지 않았고, 그것 때문에 몹시 분노했습니다. (공공장소에서의 촬영은 문화마다 조금 다른 함의를 갖고 있다. 한국에서는 '불법촬영범죄'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미국에서는 '증거 남기기'를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옮긴이) 자기가 원하지 않는데 촬영 당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만, 그분이 이성적으로 대응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게 이랬거든요, 촬영을 멈추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해서 흑인(African American) 남자가 내 목숨을 위협한다고 말하겠다고요.
진행자: 흑인이라고 말한 부분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왜 촬영을 시작하셨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렇게 촬영한 걸 어떻게 사용하시려 한 거죠?
쿠퍼: 그렇게 개를 데려와 야생동식물을 해치는 문제는 원래도 있었지만, 그 해에 유난히 심각해서 통제 불능 상태가 되었어요. 그래서 많은 탐조인들이 스마트폰을 꺼내서 위반하는 사람들을 촬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센트럴파크 관리소와 공원관리국에 증거로 제출해서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경찰 배치 등의 조치를 취해달라고 하려는 거였죠. 그래서 탐조인들이 폰을 꺼내 규칙을 어기는 사람들을 촬영하게 된 거죠. 촬영을 시작하면 개 주인들이 법을 따르기 시작해요. 대부분은 자신이 공원의 규칙을 어기고 있는 장면을 찍히고 싶지 않으니까요.
진행자: 그런데 그 여자분이 실제로 경찰에 전화해서 흑인 남성이 자신과 개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죠. "African American"이라는 말을 하는 순간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다고 생각하세요?
쿠퍼: 그 단어를 사용하면서 인종 문제가 개입하기 시작했죠. 그 직전까지만 해도 램블에서 아주 흔하게 일어나는 '개 주인과 탐조인 사이의 갈등'이었다면, 백인 여성이 "흑인 남자가 나를 위협한다"라는 말을 하면서 여기에 인종적인 측면이 더해진 거죠. 이건 미국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이야기를 끌어냅니다. 에멧 틸(Emmett Till) 살해 사건이 가장 유명하지만, 남부에서 일어난 많은 린치(lynching)가 "위기에 처한" 백인 여성을 구한다는 이유로 자행되었고, 때로는 흑인 커뮤니티 하나를 통째로 없앴으니까요.
쿠퍼의 말에는 미국에서는 이제 상식처럼 알려진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우선 '린치'는 한국에서는 흔히 집단 폭행처럼 이해되지만, 사실은 사형(私刑), 그러니까 재판과 같은 합법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일반인의 손에 의해 저질러지는 보복 행위로, 흑인들을 상대로 한 린치는 거의 예외 없이 살인, 그것도 가장 끔찍한 형태의 살인이었다.
'위기에 처한 백인 여성(damsel-in-distress)'는 서구 미술, 문학사에 오래된 내러티브인데, 미국의 인종주의는 이를 가져와서 악당, 괴물을 흑인 남성으로 대체해서 사용했다. 영화사에서 최초의 장편 극영화로 통하는 D.W.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The Birth of a Nation)'은 KKK를 미화한 작품으로, 여기에서도 흑인에 의해 살해당하는 백인 여성이 사건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킹콩'에도 위기에 처한 백인 여성이 등장하는데, 그 여성을 사랑하는 거대한 유인원이라는 구도는 백인들이 흑인 남성에 대해 가진 인종주의적 공포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쿠퍼가 "흑인 커뮤니티 하나가 통째로 파괴되었다"라고 이야기하는 건 오클라호마 털사 학살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이 사건 역시 흑인 소년이 백인 소녀를 공격했다는 근거 없는 말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참고로, 같은 날인 2020년 5월 25일, 미국의 다른 도시(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는 경찰이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의 목을 9분 넘게 짓눌러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래서 멈칫했습니다. 저는 바보가 아닙니다. 저는 평생을 미국에서 흑인 남자로 살았기 때문에 백인 여자가 저를 그런 내용으로 신고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압니다. 그래서 그렇게 위협하자 정말로 그만할까 싶었습니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큰일이다. 내가 촬영을 멈추면 이 모든 상황이 끝나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그 사람의 의도였으니까요. 하지만 다른 한 구석에서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냐, 그럴 수는 없어. 나는 내 자신을 비인간화하는 일에 동조해서는 안 돼(I am not going to be complicit in my own dehumanization).'
진행자: 그래서 그 여성이 정말로 경찰에 전화했죠. 개에 목줄도 채웠고요. 그 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쿠퍼: 경찰에 전화하는 것은 제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하겠다면 해야죠. 하지만 제가 녹화를 멈추면서까지 그 사람의 말을 따를 생각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냥 제 계획대로, 그러니까 개에 목줄을 할 때까지 녹화하려던 계획대로 한 거고요. 그래서 그 사람이 개에 목줄을 채우는 순간, 저는 고맙다고 말하고 녹화를 멈췄습니다. 저는 더 이상 그 사람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나의 하루를 망치려 들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다시 새를 찾는 일을 계속했죠.
진행자: 맨해튼 검찰은 그 여성을 기소하기를 원했고, 기소했죠. 기소한 검사는 도널드 트럼프를 조사한 사이러스 밴스(Cyrus Vance Jr.)였고요. 그런데 쿠퍼 씨는 그 여성을 기소하는데 협조하기를 거절하셨습니다. 왜 그러셨나요? 밴스 검사는 쿠퍼 씨를 허위 고발한 혐의로 기소하려던 거였는데요.
쿠퍼: 맞아요. 저로서는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이건 원칙의 문제이고, 제게는 원칙이 중요했거든요.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보면 그 일로 인해서 그 여자분의 삶은 망가졌거든요. 산산조각 났죠. 그런 결과가 그날의 행동에 대한 평가로서 충분하지 않다면, 그분에게 일어난 일이 앞으로 같은 일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경고가 되지 못한다면, 더 심한 결과도 그런 행동을 막지 못할 겁니다.
진행자: 네, 그 여성은 직장을 잃었고, 개도 압류당했죠.
쿠퍼가 촬영한 영상을 본 쿠퍼의 여동생은 이를 트위터에 올려 바이럴이 되었다. 문제의 여성, 에이미 쿠퍼는 프랭클린 템플턴의 보험 투자 총책임자였다. 프랭클린 템플턴은 회사 차원에서 이 영상을 확인하고 사내 조사를 거친 후 에이미 쿠퍼를 하루 만에 해고했다. 에이미 쿠퍼는 부당 해고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고, 항소를 했지만 올해 5월, 최종적으로 기각되었다. 애완견의 경우에는 동물을 학대했다는 이유로 개를 압류당했지만, 진상 조사를 거쳐 돌려받을 수 있었다.
쿠퍼: 맞아요. 전국적인 비난을 받고 있었죠. 심지어 언론은 그 여성이 과거에 했다는 경솔한 행동도 대대적으로 폭로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죽이겠다는 협박도 받고 있었다고 해요. 이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그 여성이 제 목숨을 위협하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거꾸로 그 여성의 목숨을 위협하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런 많은 일들을 보면서 제 생각은 이랬습니다. 이건 내게 일어난 일에 상응하는 대가는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끔찍한 일을 겪었다고 합니다. 물론 나쁜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제가 경찰의 폭력을 겪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경찰을 상대할 필요도 없었고, 체포되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흑인들처럼) 현장에서 사살되지 않았고요. 그런 일들이 제게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제가 가진 정의에 대한 원칙(sense of justice), 비례의 원칙(proportionality)이 그 여성의 기소에 협조하는 걸 망설이게 했습니다.
이 모든 것에 더해서, 그 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였죠. 그러다 보니 모두가 주목하는 사건이 되었고, 저는 정의를 실현하려는 동기가 아니라 정치적인 동기로 문제가 커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었습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쿠퍼: 워낙 복잡한 문제라서 제가 단순하게 생각해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검찰의 기소에 찬성할 것인지, 거절할 것인지에 대한 제 생각은 50:50으로 갈렸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내린 결정이 훗날 잘못으로 귀결되더라도 용서를 한 결과가 잘못이었다는 쪽이, 그 반대로 잘못되는 것보다 낫다고 (I have to err on the side of mercy, forgiveness) 결정했습니다. 그게 용서라고 부르든, 자비라고 부르든 말이죠. 제 결정이 그거였어요.
진행자: 그런데 일은 또 다르게 진행되죠. 그 여성이 경찰에 전화해서 흑인 남성이 자신을 위협한다고 말했을 때 쿠퍼 씨는 필란도 카스티요 사건(2015년에 일어난 경찰의 흑인 남성 살해 사건)을 떠올리셨다고 했죠. 그런데 같은 날 몇 시간 후에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에 살해당하는 일이 있었고, 결국 거대한 운동으로 번지게 됩니다.
조지 플로이드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쿠퍼: 가슴이 꺼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또 시작이구나, 하고요. 왜냐하면 제 나이가 있기 때문에 아마두 디알로(Amadou Diallo, 1999년 사망)의 일을 기억합니다. 그저 브롱크스에 있는 자기 집 앞에 앉아 있었는데 아무런 범죄 혐의도 없이 뉴욕 경찰의 총에 맞아 죽었죠. 경찰복도 입지 않고 있던 사복 경찰들이 총알을 빗발처럼 퍼부어 죽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패트릭 도리스먼드(Patrick Dorismond, 2000년 사망)의 일도 기억합니다. 칵테일 라운지의 사설 경비원이었는데 사복 경찰이 다가가서 마약을 팔고 있는지 함정 수사를 하려고 마약을 사겠다고 했죠. 도리스먼드는 이런 경찰의 시도에 분노했고, 경찰은 그를 사살했습니다. 그 일이 있자 당시 뉴욕시장이었던 루디 줄리아니(Rudy Giuliani, 현재 트럼프의 변호사)는 사망한 도리스먼드도 "복사(服事, altar boy, 천주교 사제의 미사 집전을 돕는 소년. 영어에서 순진무구한 사람을 일컫는 표현)는 아니지 않느냐"는 말로 이 사건을 덮으려 했죠. 그런데 실제로 패트릭 도리스먼드는 어릴 때 복사였고, 그것도 줄리아니가 다니던 성당의 복사였습니다.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이런 편견이 우리 사회에 퍼졌고, 그날 오전 제가 센트럴파크에서 그 여성과 마주쳤을 때에도 드러난 겁니다. 이런 편견이 경찰 활동에 스며들기 때문에 저희는 계속 죽어 나가는 거죠.
진행자: 쿠퍼 씨께서는 본인이 센트럴파크에서 겪은 일이 널리 알려지면서 더 많은 흑인들이 탐조 활동에 참여하게 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신다고 하셨어요. 열정적인 흑인 탐조인이 존재가 알려지면서 말이죠. 미국에서 탐조(birding)가 거의 전적으로 백인들의 취미 활동이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이 인터뷰에서 사용하는 '탐조'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birding이다. 원래는 birdwatching, 말 그대로 새를 구경하는 활동이 유명하지만, 요즘은 그렇게 단순히 새를 구경하는 것과 birding을 구분해서 사용한다. 전자의 경우는 가벼운 취미 활동에 가깝지만, 후자는 새를 구경하는 것을 넘어 기록하고 연구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멀리 여행하는, 좀 더 진지하고 전문적인 활동이다.
쿠퍼: 좋은 질문입니다. 저는 탐조가 백인들만의 취미로 받아들여진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일단 이 취미 활동을 하려면 망원경이 필수적인데 이게 진입장벽이 됩니다. 망원경이 없으면 탐조를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망원경은 상당히 비싼 장비입니다.
저만 해도 평생 망원경을 산 적이 없어요. 제가 갖고 있는 것들은 사용하던 사람들에게서 중고로 물려받았거나, 선물로 받은 겁니다. 정말 비싸거든요. 이러니 아무나 갖기 힘든 취미가 됩니다.
또 다른 이유는 미국의 사회경제적 구조입니다. 우리 사회에 예전부터 내려오는, 그래서 우리 사회 속에 굳어있는 구조 때문에 흑인이 경제적 사다리를 오르기가 힘듭니다. 지금 경제적인 곤경을 겪고 있고,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 다음 달 월세를 낼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일자리 하나로 부족해 두 개를 뛰어야 하는 상황에서 탐조처럼 한가로운 취미를 위해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월세를 낼 수 있어서 쫓겨날 염려가 없어도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자연을 즐길 수 있는 별장을 갖는 건 또 다른 얘기입니다. 아이들을 굶기지 않는다고 해서 그 아이들을 캣츠킬에 있는 여름 캠프에 보내서 자연을 감상하는 법을 가르쳐줄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이런 모든 요인 때문에 흑인들이 탐조 활동을 하기 힘들었던 것이지, 탐조가 특정 집단만의 취미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탐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활동입니다. 새들이 머무는 곳에 가는 건, 그리고 야생의 자연과 연결되어 새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건 큰 힐링이 됩니다.
'그 남자의 뒷얘기 ③'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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