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치킨 샌드위치 전쟁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먼저 며칠 전에 찍은 사진 한 장을 보자.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매사추세츠주의 맥도널드 매장인데, 맥도널드의 상징 골든 아치 밑에 붙은 광고판에 이런 말을 적었다. "부드럽고 바삭한 치킨이 매일. 일요일에도."

맥도널드 매장이 일요일에도 문을 연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텐데, 그리고 치킨 메뉴가 요일별로 나올 리도 없는데 굳이 일요일에도 치킨을 판다고 적은 이유는 이 매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치킨 샌드위치의 대명사이자 자칭 원조인 칙필레이Chick-fil-A가 있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좀 더 설명하겠지만 칙필레이는 일요일에 영업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내가 페이스북에 적은 적도 있지만 미국에서 자동차가 드라이브스루에 온종일 길게 늘어서지 않은 매장을 찾기 힘들 정도로 큰 인기다. 따라서 일주일 중 하루를 영업하지 않아서 생기는 손실은 엄청날 텐데도 독실한 남침례교 신자인 창업자의 굳은 신념으로 일요일에는 장사하지 않는다.

사진 속 맥도널드 매장은 칙필레이가 일요일에 장사하지 않는 걸 지적하면서 "그러니 우리 치킨을 먹으라"고 하는 거다. 기업이 경쟁기업을 내놓고 놀리거나 겨냥해서 광고하는 행위가 아직은 공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는 운동선수들 사이에서 서로를 놀리고 말로 공격하는 "trash talk"이 하나의 놀이처럼 받아들여지는 문화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면 된다. (특히 패스트푸드 브랜드들 사이에 트위터에서 이런 일이 흔한데, 웬디스와 버거킹 사이에 벌어진 트위터 전쟁은 유명하다).

맥도널드의 작동방식

하지만 맥도널드는 세계 최대의 패스트푸드 브랜드인데 굳이 작은 치킨 샌드위치 전문 체인을 향해 이런 싸움을 하는 걸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진에 보이는 매장은 맥도널드의 직영점이 아닌 프랜차이즈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 내 1만 4천 개의 맥도널드 매장 중 1만 3천 개가 매장을 소유한 주인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매장이다. 이들은 맥도널드의 이름을 걸고, 맥도널드의 메뉴를 팔지만 결국 지역 상권을 두고 자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 프랜차이즈 오너들은 브랜드를 키우려는 기업을 상대로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받기 위해 단결해서 협상한다. 특정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팔라고 강요하지 못하게 힘을 합쳐 대응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메뉴를 만들라고 압력을 넣기도 한다. 그렇게 그들이 근래 들어 요구한 사항이 "치킨 샌드위치 메뉴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위의 매장처럼 미국 전역에서 맥도널드 매장이 칙필레이에 손님을 뺏기고 있기 때문이다. "손님들이 요즘 제일 좋아하는 게 치킨 샌드위치인데, 우리에게 없으니 결국 칙필레이로 간다"고 항의했고, 본사는 결국 그 메뉴를 만들어내어 공급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그렇게 해서 바로 옆에 있는 칙필레이에 대항할 메뉴가 생긴 맥도널드가 일요일에 문을 닫는 경쟁 매장을 향해 날린 메시지다. 단순한 장난이 아니다. 일요일에 치킨 샌드위치가 먹고 싶어도 참아야 했던 사람들은 '꿩 대신 닭'이라 생각하고 맥도널드의 치킨 샌드위치를 먹게 될 거다. 한 번 먹어봤는데 나쁘지 않으면? 굳이 길게 줄을 서야 하는 칙필레이 대신 빠르게 사서 먹을 수 있는 맥도널드의 치킨 샌드위치를 사 먹을 거고,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성공이다.

아마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맥도널드는 이미 치킨 샌드위치 (치킨을 넣은 샌드위치는 다양한 버전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프라이드 치킨을 햄버거 빵 사이에 넣은 버전만을 이야기한다) 메뉴를 가지고 있었다. '서던 스타일 Southern Style 치킨 샌드위치'라는 이름의 이 메뉴는 2005년부터 10년 정도 판매되다가 인기가 없어 퇴출당한 메뉴다. 그런데 칙필레이의 주력 상품인 치킨 샌드위치가 미국인들 사이에서 돌풍을 일으키자 이 메뉴를 개선, 부활시키면서 '크리스피 치킨 샌드위치'라는 이름을 붙였다.

프랜차이즈 주인들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본사도 긴장하고 있다. 왜냐하면 치킨 샌드위치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칙필레이가 어느덧 미국 내에서 최대 매출을 올리는 패스트푸드 브랜드 3위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1, 2위는 맥도널드와 스타벅스). 메신저가 없던 페이스북이 스냅챗의 위협을 받으면 페이스북 메신저를 만들어 내놓듯, 맥도널드도 치킨 샌드위치를 내놓을 수밖에 없는 거다.

먹어본 사람들의 평가는? 맥도널드의 완패다. 맥도널드의 치킨 샌드위치는 칙필레이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큰 기업과 작은 기업의 싸움에서는 반드시 특정 메뉴 하나가 더 맛있을 필요는 없다. 맥도널드는 이미 훨씬 더 다양한 메뉴를 압도적으로 더 많은 매장에서 팔고 있기 때문에 칙필레이의 주력 상품에서 고객을 조금만 뜯어내도 충분히 견제를 할 수 있다. 스타벅스가 커피 전문점의 이미지를 버리고 다양한 메뉴를 파는 음식 매장으로 변신한 이유도 다르지 않고, 펩시가 콜라라는 한 상품에서는 코카콜라에 밀려도 다양한 제품을 팔면서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치킨 명가들의 자존심

더 중요한 것은 칙필레이의 치킨 샌드위치 시장을 노리는 기업이 맥도널드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맥도널드는 원래 햄버거를 만드는, 즉 소고기를 다루는 브랜드이지만, 미국에는 이미 치킨의 명가들이 존재한다. 바로 KFC와 파파이스다. 물론 이들은 치킨 샌드위치보다는 치킨 자체에 주력하는 브랜드다. 하지만 전부 치킨을 다루는 미국 남부에 본사를 둔 브랜드라는 점에서 (KFC는 이름 그대로 켄터키주, 파파이스는 플로리다주, 그리고 칙필레이는 조지아주에 본사를 두고 있다) 내가 치킨을 제일 잘 만든다는 자존심이 빠르게 성장하는 치킨 샌드위치 시장을 칙필레이가 혼자 먹게 허용할 수 없다.

먼저 KFC가 2018년에 칙필레이의 치킨 샌드위치에 도전장을 냈다. KFC가 내놓은 'The Crispy Colonel'은 제법 나쁘지는 않았지만 칙필레이를 상대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KFC는 "치킨 명가라는 이름에 부족하지 않은 샌드위치를 선보이려 했으나 솔직히 부족했다"며 패배를 인정하고 2년 후인 2020년에 다시 개선된 치킨 샌드위치를 내놨다.

KFC의 오랜 경쟁자인 파파이스는 KFC의 칙필레이 도전 실패를 지켜보고 잘 준비된 치킨 샌드위치를 선보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파파이스가 칙필레이를 꺾어 버렸다. 온라인에 칙필레이와 파파이스의 치킨 샌드위치를 시식하는 동영상이 쏟아졌고, 대부분 파파이스의 치킨 샌드위치가 압승을 거두는 영상이었다. 이 두 브랜드의 시식 대결은 2019년 미국 인터넷의 작은 화제가 될 만큼 뜨거웠다.

칙필레이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뭐라고 대응하지 않으면 여론은 칙필레이의 참패로 정해질 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칙필레이는 "원조 카드"를 꺼내 들었다. 칙필레이는 자기네가 치킨 샌드위치의 원조라는 주장을 오래도록 해왔다. 물론 치킨 샌드위치가 큰 인기가 없던 시절에는 작은 브랜드가 그걸 주장한다고 해서 누가 뭐라 하지 않았고, 그래서 정설처럼 받아들여졌지만 사실 확실한 근거는 없는 것 같다. 위키피디아의 치킨 샌드위치 항목을 보면 "칙필레이는 1940년대에 프라이드 치킨 샌드위치를 처음 발명했다고 주장하지만, 근거는 없다. 다만 1964년에 칙필레이에서 판매를 시작한 서던 스타일 치킨 샌드위치는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서 판매하는 치킨 샌드위치로는 첫 상품일 가능성은 높다."

칙필레이가 원조 카드를 어떻게 꺼냈을까? 트위터에서다. 트위터는 바이럴이 일어날 수 있지만, 반격을 받거나 역풍을 맞으면 그 역시 바이럴이 되는 위험한 곳이지만, 앞서 소개한 웬디스와 버거킹의 사이의 트위터 싸움에서 보듯, 그걸 잘 모르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칙필레이는 자기네 매장의 오래된 흑백사진을 배경으로 이런 메시지를 올렸다: "Bun + Chicken + Pickles = all the (love) for the original." 햄버거 빵과 치킨, 피클을 합치면 (원조를 향한) 사랑입니다, 라는 말인데 정확하게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없는 그냥 막연한 트윗이었다.

아무런 관심도 끌지 못하고 잊혀졌을 이 트윗은 파파이스가 받아서 리트윗을 하면서 바이럴이 되었다. 파파이스는 칙필레이의 트윗에 남부 사투리를 써서 "...y'all good? (니들 괜찮니?)"라는 한 줄을 달았다.

언뜻 무슨 소린가 싶지만, 그 트윗 밑으로 이어지는 리얼리티 쇼의 짤들을 보면 문맥을 이해할 수 있다. 한 여성이 펑펑 우는 걸 보는 친구가 "You good?"하고 묻자 울던 여성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도 우는 걸 본 친구는 "You're not good. And it is OK"라고 말한다. "(그렇게 울고 있으면) 너 괜찮은 거 아냐, 하지만 괜찮아. 항상 괜찮을 필요는 없으니까, 괜찮아"라고 위로를 하는 장면이다. 즉, 파파이스에게 참패해서 울고 있는 칙필레이를 파파이스가 위로하는 장면이다.

파파이스는 시식회나 홍보전에서만 승리한 게 아니다. 2020년 한 해 동안 매출이 무려 20%나 상승했고 그중 대부분이 새로 선보인 치킨 샌드위치에서 온 것이었다. (트위터에서 일어난 파파이스-칙필레이 싸움을 좀 더 보고 싶다면 이 기사가 모아두었다).

닭싸움판에 등장한 (버)거인들

그러니까 맥도널드가 치킨 샌드위치를 다시 들고나온 건 단순히 칙필레이를 꺾기 위함이 아니라, 그동안 큰 경쟁자들로 생각하지 않았던 치킨집 세 곳이 난리를 떠는 걸 보고 '우리도 저 시장에 들어가자'고 결정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런데 코카콜라가 가는 곳에 펩시도 따라가듯, 맥도널드가 가는 곳에 빠지지 않고 따라가는 기업이 버거킹이다. 버거 매장으로는 맥도널드를 따라잡을 수 없어도 여전히 버거 시장에서 잘 버티며 이름값을 유지하는 버거킹은 맥도널드가 치킨 샌드위치 시장에 들어가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치킨집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도 않고, 버거에서도 이제 웬디스에 밀리는 버거킹은 이 시장에 지입할 앵글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 버거킹은 정치적인 메시지로 그 방향을 잡았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보수적인 남부 침례교(기독교 중 개신교의 일파) 신자인 창업자의 신념("우리에게 맡겨진 것을 잘 관리하는 스튜어드십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칙필레이와 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에 따라 기독교적인 기업문화를 갖고 있는데, 창업자의 아들이자 현 CEO인 댄 캐시가 2012년에 동성결혼에 반대하면서 관심을 끌었다. 그는 동성 간의 결혼은 "미국에 하나님의 심판을 부를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문화전쟁의 전면에 나섰다.

LGBTQ+ 커뮤니티에 적대적인 정치적 입장 때문에 불매운동이 일어났지만 큰 문제 없이 사업을 하고 있고, 여전히 보수적인 주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것으로 유명한 단체인 기독체육인연합(Fellowship of Christian Athletes) 같은 곳에 기부금을 내는 행동이다. 이게 문제가 되자 동성애 반대단체에 대한 기부를 멈추겠다고 선언했고, 동성애자 인권단체에도 기부금을 내는 등 반인권적인 행동을 중단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물론 여론의 압력에 굴복한 것일 뿐이라는 의심은 남아있다.

그런데 버거킹은 최근 자체 치킨 샌드위치 메뉴인 '치킹(Ch'King)'을 홍보하면서 이런 트윗을 했다. "6월 성소수자의 달(Pride Month) 동안에 팔리는 치킹 수익금의 일부가 (LGBTQ 옹호단체인) 인권캠페인(HRC)에 기부된다"는 것.

물론 요즘 미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성소수자의 달 마케팅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버거킹이 굳이 치킨 샌드위치 메뉴에서 나오는 수익금의 일부(한 개 팔릴 때 마다 40센트 기부)라고 지정한 이유는 칙필레이의 스토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다. 버거킹은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면서 많은 다른 기업들처럼 동성애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이게 어느 한 쪽에 줄을 서는 정치적인 행동일까? 맞다. 돈을 벌기 위한 철저히 자본주의적인 행동일까? 맞다. 하지만 갈수록 사회가 정치적으로 양극화되는 세상에서 기업들은 더 이상 중립에 남기 힘들게 되고 있다. 소비자들이 요구하기 때문이다.

치킨 샌드위치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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