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와 기억 ②
• 댓글 3개 보기그 남자의 표정을 보면서 저는 몸에 난 모든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고, 공포가 엄습하면서 모든 감각이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그 남자는 그들 중 하나였습니다. 공포스런 비밀경찰.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요? 직감(gut instinct)이었죠. 저는 옆에 있던 남편에게 낮은 목소리로 그 사실을 알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천천히 걸으면서 카트에 물건을 넣었습니다. 저희가 2년 동안 받은 훈련대로 한 거죠. 그 남자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우리를 따라다녔습니다.
우리의 머리는 복잡했습니다. 토요일 정오였기 때문에 슈퍼마켓에는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창문 밖을 보니 슈퍼마켓 입구에 푸조 504 승용차가 주차해 있었고, 그 안에는 3명의 남자가 타고 있었습니다. 자동차에는 두 개의 안테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앞에, 하나는 뒤에 있었죠. 비밀경찰의 차가 분명했습니다.
'이렇게 붙잡히는구나. 이제 우리는 죽었다.'
하지만 우리는 슈퍼마켓으로 들어가기 전에 건물 주변을 잘 살펴두었습니다. 저희가 받은 훈련 덕분입니다. 슈퍼마켓 옆에는 전화회사의 사무실이 있었고, 그 사무실은 밖에서는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거울유리창을 갖고 있었습니다. 남편과 저는 천천히 계산대로 이동해서 줄을 섰습니다. 앞에 선 사람이 계산하는 동안 저희는 컨베이어 벨트에 저희 물건을 모두 올려 놓았고, 그렇게 해서 저희 물건을 담기 시작하자 조용히 줄을 빠져나가 사람들 사이로 몸을 숨겼습니다. 그렇게 재빨리 슈퍼마켓을 빠져나가 옆에 있는 전화회사 사무실로 이동했습니다.
잠시 후 그 중년 남자가 슈퍼마켓에서 나와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는 손을 입고 있던 재킷 주머니로 가져갔습니다. 총을 지닌 듯 했습니다. 그러고는 주차해있던 푸조 승용차에 올라탔고, 차는 빠른 속도로 그곳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장면을 전화회사 사무실 안에서 지켜봤습니다.
제 혼이 몸을 빠져나가 사무실 천장에 걸려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끔찍한 공포감에 제 몸은 껍데기만 남은 것 같았죠. 남편과 저는 그날 오후 내내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며 시내를 지그재그로 돌았습니다. 미행하는 사람을 따돌리려는 거였고, 더 이상 우리를 따라오는 사람이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칠레의 독재 정권은 1990년에 무너졌습니다.
피노체트의 네오리버럴 경제 체제는 그대로 남았다는 사실이 실망스럽기는 했지만, 독재정권이 끝나자 저항운동은 해체되었습니다. 저는 남편과 이혼하게 되었고, 다시 캐나다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궁금증은 한 번도 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일들이 내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25년이 지났고, 저는 그 때의 경험을 담은 회고록을 쓰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가지고 있던 궁금증을 풀기 위해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로 가서 그곳에 살고 있는 전남편을 만났습니다. 저는 그와 함께 식당에서 뇨키(gnocchi)를 먹으면서 그 옛날 슈퍼마켓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제게 돌아온 답은 "그런 기억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가슴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게 내가 만들어 낸 기억이었나? 그때 겪었던 무수한 많은 일들이 정말 내 상상 속에서만 일어난 일이었나? 나도 서류 가방을 들고 자수한 그 남자와 똑같이 피해망상에 빠졌던 걸까? 저는 제가 기억하는 슈퍼마켓의 상황을 자세한 디테일까지 설명했지만, 전남편은 제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혼란스러웠죠. 그는 저와 겪은 다른 모든 일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행당한 기억은 한 번도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우리는 서로 작별 인사를 했고 저는 식당을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신문에서 사진을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사진 속 인물은 제가 25년 전 슈퍼마켓에서 봤던 그 남자였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저는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기사를 읽어보니 그 남자는 칠레의 비밀경찰 요원이었고, 1970, 80년대에 아르헨티나에서 활동했다고 합니다. 그랬던 그가 사귀던 게이 남자친구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내용을 전하는 기사였습니다.
그런데 살인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그 남자의 집을 수색하다가 벽장에 잔뜩 쌓인 상자들을 발견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상자들 안에는 그가 비밀경찰로 활동하면서 수집한 정보, 활동기록을 담은 파일들이 가득 담겨있었고, 그 정보 중에는 그가 미행했던, 고문했던, 그리고 살해했던 칠레 저항운동가들에 대한 기록들도 포함되어 있었죠. 하지만 그 사람이 제가 슈퍼마켓에서 만난 그 남자인 걸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4반세기가 지난 후에도 제가 얼굴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저는 다시 캐나다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 저는 이메일을 하나 받았습니다. 예전에 함께 저항운동을 하던 칠레 친구에게서 온 이메일이었고, 제목은 "This will interest you(네가 관심 있을 내용이야)"였습니다. 누군가 그 비밀경찰이 보관하던 파일 속 내용을 옮겨 적었고, 1970, 80년대에 아르헨티나에서 칠레 민주화운동을 하던 사람들에게 보낸 겁니다. 저는 그렇게 파일을 받아 샅샅이 뒤졌습니다. 수백 페이지가 되는 문서를 꼼꼼히 살펴보다가 짧은 문단 하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문단은 그가 1986년에 미행했던 일 하나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미행 장소는 제가 살던 그 아르헨티나 도시의 슈퍼마켓이었고, 미행 대상은 10대 후반의 커플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커플 중 여자는 칠레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주한 사람으로, 아르헨티나로 와서 저항운동에 가담했으며, 남자는 아르헨티나 사람이라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미행을 따돌리고 잠적했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 문단에는 미행의 목적도 있었습니다. 두 사람을 붙잡아 차에 태워 모처로 데려가 고문을 해서 최대한 정보를 뽑아낸 후 살해하고, 시신은 찾지 못하게 처리하려는 게 목표였습니다. 저는 이 문단을 읽으면서 벌어진 입을 손으로 막았습니다. 공포로 몸이 굳어졌지만, 동시에 안도감이 찾아들었습니다. 내 정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는 안도감이었고, 나의 직감, 나의 기억, 나의 인생을 믿어도 좋다는 안도감이었습니다.
저와 함께 싸운 동료 중에는 일찍 세상을 떠난 이들이 많습니다. 많은 이들이 스트레스와 공포, 편집증에 시달렸고, 풀리지 않는 궁금증으로 괴로워하다가 삶을 일찍 마감했습니다. 그들과 달리 제가 일찍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제가 했던 경험이 사실임을 보여주는 증거를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제 기억을 제 것이라고 주장하고, 가질 수 있고, 말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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