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정부가 전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감시의 강도를 크게 높였다는 뉴욕타임즈의 보도가 나왔다. 나라 곳곳에 간첩이 침투했기 때문에 모든 국민이 나서서 이들을 색출해 내야 한다는, 과거 한국에서도 흔하게 듣던 얘기다. 굳이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감시와 처벌'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인류의 근현대사는 국민에 대한 감시 기술의 발전사라고 큰 과장이 아니다. 특히 독재정권의 경우, 국민이 감시를 내재화해서 자신이 항상 감시하고 있다고 여기게 되면 적은 인력과 비용으로 사회를 통제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정권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잠재울 수 있다.

푸코는 감시가 사람들 마음에 내재화하는 것을 판옵티콘(panopticon)이라는 근대 감옥의 형태로 설명한다. 죄수는 감시에 노출되어 있지만, 간수(감시자)를 볼 수 없기 때문에 항상 감시 당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미지 출처: mimisawhney, Purdue University)

시진핑이 노리고 있는 것도 다르지 않다. 현재 심각한 경제난이 다가오고 있고, 젊은 층의 실업률이 치솟는 상황에서 사회의 관심을 외부의 적에게로 돌리는 동시에, 간첩으로 오인당하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게 하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일본 오염수 방류에 대한 비판을 외부의 지령을 받은 반국가 세력의 책동이라고 주장하는 한국 정부의 전략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물론 그 효과는 민주화 운동을 통과한 한국보다 그렇지 못한 중국에서 훨씬 더 효과가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외국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행위도 간첩 행위로 의심하고 제재하는 극단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뉴욕타임즈의 기사는 이 상황을 일종의 피해망상(paranoia, 편집증)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극도의 감시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정말 이런 망상 증상을 경험할까? 1980년대 독재국가였던 칠레에서 지하 저항운동을 하면서 정부의 감시를 직접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20세기형 독재 정권의 감시를 피해 다니며 망상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던 당시 칠레 민주화 운동가들의 경험은 많은 나라가 새로운 감시 사회로 들어가는 21세기에 좋은 교훈이 될 것 같아 소개한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카르멘 아기레(Carmen Aguirre). 아래는 약 10분 분량의 이야기를 글로 옮긴 것이다. 제목은 Gut Instinct (직감)이다.


저는 칠레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18살이 되던 1986년에 다시 남미로 돌아가 그곳에서 4년을 보냈습니다. 당시 칠레의 독재자였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정권에 저항하는 지하 운동에 참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피노체트는 칠레에 파시스트 정권을 세운 극우 정치인이었고, 네오리버럴 경제정책과 각종 긴축정책으로 칠레를 지배하고 있었죠.

제가 저항운동에 참여해서 하게 된 일은 칠레와 접경한 아르헨티나의 소도시에서 안전가옥(safe house)을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제 남편은 저항운동가들을 그곳에 숨겨주고, 버스와 경비행기–우리는 비행기를 조종하는 법도 배웠죠–를 이용해 칠레에 필요한 물품을 수송하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두려워하던 칠레의 비밀경찰은 당시 '콘도르 작전(Operation Condor)'이라는 걸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남미의 여러 국가의 비밀경찰이 협력해서 숨어서 활동하는 저항운동가들을 색출, 체포하는 작업이었죠. 제가 있던 아르헨티나에서만 180여 명의 칠레 운동가들이 사라졌습니다.

저항운동을 하는 시민을 체포하는 칠레의 군인들 (이미지 출처: NBC News)

저는 극심한 공포 속에서 그 4년을 보냈습니다. 저와 함께 활동하던 사람들은 제 또래를 '공포 세대(generation of terror)'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우리 또래 중에는 정권에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거나 살해당한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우리의 편집증(paranoia)은 극에 달했습니다. 저는 종종 '이거 혹시 내가 상상 속에 만들어 낸 걸까? 내가 만들어 낸 게 분명해!'라고 혼자 생각하면서 괴로워했습니다.

독재정권 하에 살다 보면 정상적으로 생각하기 힘들어집니다(Living under a dictatorship will fuck your brain). '빅브라더는 나를 항상 감시하겠지. 그런데 정말로 나를 항상 감시할까? 정말로 나를 감시하고 있다면 나는 벌써 잡혀 죽었어야 하지 않나? 내가 불법 저항운동을 이렇게 하고 있는데 온전할 수 있겠어?'

그때가 1980년대 말이었습니다. 저희는 지령(memo)을 카메라 필름 형태로 전달받았습니다. 이 필름은 저희가 가명을 사용해서 만들어 둔 우편 사서함에 도착하곤 했는데, 이걸 받으면 집으로 가져가 벽장 안쪽에 비밀리에 만들어둔 암실에서 현상, 인화합니다. 그렇게 얻은 사진 속에는 작은 글씨로 적힌 문서가 등장합니다. 그럼 저희는 돋보기를 사용해서 문서의 내용을 읽고, 다 읽으면 즉시 불에 태워서 그 재를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립니다.

그런데 어느날, 꺼림칙한 내용의 지령이 도착했습니다.

"너희의 생각을 조심하라. 너희의 편집증을 조심하라"라는 내용이었죠. 그런 지령이 내려온 배경은 이렇습니다.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하는 저항운동가가 칠레의 비밀경찰에 자수했다는 겁니다. 그 운동가는 저항운동가들의 접선장소, 주소, 연락처, 전략과 전술 등 각종 일급비밀이 담긴 서류 가방을 들고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의 시내를 걷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걷는 중에 그는 누군가 자신을 미행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고, 곧 비밀경찰이 자신을 덮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공포에 질린 그는 결국 제발로 전투경찰을 찾아가 자수하고 비밀이 담긴 가방을 건네주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카르멘 아기레 (이미지 출처: The Moth)

그 이야기에서 슬픈 대목은, 아무도 그를 미행하고 있지 않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지하 저항운동을 17년을 해오면서, 그리고 자기 자식들이 사라져버리는 일을 경험하면서 그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진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수하면서 많은 동지들도 함께 넘겨주게 되었습니다.

그 지령을 읽으면서 몇 년 전을 떠올렸습니다.

1986년, 제가 아르헨티나에서 첫 월급을 받은 때였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영어 교사로 일했습니다. 신분을 숨겨야 했기 때문에 그랬고, 저항운동을 한다고 월급이 나오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직업이 필요했죠. 저와 남편은 슈퍼마켓에 가서 드디어 제대로 된 음식을 먹게 되었다는 기쁨에 쇼핑 카트에 잼과 치즈, 토마토소스, 스파게티 등등을 넘치게 넣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Delish)

저는 그렇게 식재료를 사면서 빵가루를 입힌 소야 커틀렛(breaded soya cutlet)의 레시피를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한 중년 남자가 저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베이지색의 폴리에스터로 만든, 핀스트라이프 양복을 입고 있던 그 남자는 텅 빈 카트를 밀고 있었고, 마트에서 제가 선 통로의 중간쯤에 있었습니다. 저를 보는 그 남자는 묘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 순간 제 다리에서 힘이 쫙 빠져나갔습니다.


'감시와 저항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