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y/Them
• 댓글 남기기인기가수 데미 로바토가 최근에 소셜미디어에 올린 자신의 사진을 본 팬들이 보인 반응에 대해 자기 생각을 밝혔다. 그런데 그 소식을 전하는 한 매체의 기사 제목이 눈길을 끈다. 단순한 문장이니 한 번 해석해보자:
"Demi Lovato asks fans to stop complimenting their weight loss."
어렵지 않게 "데미 로바토는 팬들에게 그들의 체중감량에 대한 칭찬을 멈춰달라고 부탁했다"고 번역할 수 있다. 문법적으로 틀린 문장이 아니니 많은 번역가들이 이렇게 번역을 해두고 넘어간다. 하지만 좋은 번역가가 자신이 해놓은 번역이 문법적으로 옳은지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문장이 문맥에서 말이 되는지를 살핀다. 사람들(로바토의 팬들)이 체중을 줄이고 스스로 칭찬한다? 이건 좀 이상하다는 생각해야 정상이다.
만약 "...asks fans to stop showing off"라고 했다면 말이 된다. 체중 뺐다고 자랑하지 말라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complimenting은 다른 사람에 대한 칭찬이다. 따라서 이 문장에서 their는 팬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 문장에 등장하는 사람은 로바토와 팬들밖에 없다. 그런데 they/their가 팬들이 아니라면 로바토밖에 없다. 하지만 데미 로바토는 한 사람, 즉 단수인데? 이 글의 제목 'They/Them'을 본 독자 중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눈치챈 사람들도 많을 거다. 바로 영어에서 최근 바뀌고 있는 인칭대명사의 성性/수數 표기다.
데미 로바토는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논 바이너리(non-binary)이며, 앞으로 자신의 대명사(pronouns)는 they/them으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들어 자신을 가리키는 대명사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경우가 부쩍 늘었고, 이렇게 밝힌 경우 언론 매체에서는 이를 수용해서 기사에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점점 더 많은 기업과 조직에서 사용자나 고객이 개인정보를 입력할 때 젠더 외에도 자신의 대명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결국 앞서 이야기한 영어 문장의 들어간 their는 과거라면 her로 썼을 로바토를 가리키는 표현이기 때문에 이 문장은 "데미 로바토는 팬들에게 자신(로바토)의 체중감량에 대한 칭찬을 멈춰달라고 부탁했다"고 번역해야 한다.
이제는 보수적인 매체로 유명한 폭스뉴스도 기사에서 로바토를 she/her가 아닌 they/them으로 지칭할 만큼 논 바이너리의 복수 대명사 사용이 보편화하고 있지만, 비영어권 국가의 독자들에게는 오해, 오독의 문제를 낳을 수 있다. 그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 문법에 맞지 않는 새로운 사용법, 즉 they/them을 단수인칭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용법이 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도 동사는 복수형 주어에 맞춘다. 즉, '로바토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한다'라는 문장을 옮기면 'Lovato says they are happy'가 된다). 한국의 초중고등학교 영어 교과서가 이런 젠더평등적인 새로운 표현법을 언제쯤 교과서에 반영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때까지 영어를 외국어로 공부하는 사람들은 약간의 업데이트를 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위의 문장이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지금 많은 미국인이 똑같은 혼란을 겪고 있고, 지인이나 친구가 자신의 대명사를 바꾼 후에도 적응하지 못해 예전처럼 she나 he를 썼다가 they로 정정하는 일이 흔하다. 다행히 영어 호칭의 특성상 이런 실수는 본인이 없는 상황에서 그 사람을 지칭할 때 일어나기 때문에 덜 민망하고, 한국어에서는 '그'로 통일하면 상관없기 때문에 ('그녀'라는 표현은 우습고 진부하다) 번역의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
처음에는 약간의 불편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우리가 옛날 방식을 고집하려고 할 때만 그럴 뿐이다. 휠체어가 지하철 차량에 들어오는 시간을 고려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휠체어가 출퇴근 시간을 잡아먹는 존재로 느껴지지만, 휠체어를 탄 승객과 함께 가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서는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우리는 새로운 세상에 익숙해질 시간만 조금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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