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펜실베이니아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2000년대 초에 처음으로 차를 몰고 뉴욕시에 갔었다. 그때 어딘가에 들르려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맨해튼 북쪽에 위치한 할렘(Harlem) 지역을 지났다가 갑자기 변한 풍경에 놀란 기억이 있다. 백인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차들은 낡았고, 무엇보다 할 일 없이 길거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고 '무슨 일이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GPS가 없던 터라 지도책을 들고 위치를 확인하다가 비로소 (친구들이 안전하지 않으니 가지 말라고 했던) 할렘에 들어와 있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더욱 놀랐던 건 남쪽을 향해 운전해서 길 하나(정확하게는 110th Street)를 건너자마자 갑자기 달라진 풍경이었다. 센트럴 파크를 바라보는 고급 아파트들이 가득한 5번가(5th Avenue)에 들어선 직후에 마주친 풍경은 제복에 모자까지 쓴 흑인 운전기사가 대형 승용차의 뒷문을 열고 집에서 나오는 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백인 여자아이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 허구가 아니었다는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위험하니까 가면 안 된다는 "험한 흑인 동네"라고들 하는 할렘이 바로 길 건너라는 사실이었다.

이 사진은 맨해튼 부모들이 운전기사들에게 아이들의 등하교를 맡기는 것이 유행이 되고 있다고 하는 2007년의 뉴욕타임즈 기사에 등장했다. 내가 목격한 게 바로 이런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