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하고 공부를 잘하기로 소문난 멜라니가 다른 학교를 방문한 날 소동을 일으킨 이유가 뭘까? 이 글은 당시의 일과 그걸 목격한 사람들을 끈질기게 수소문해서 제작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 기사를 제작, 방송한 기자인 카나 조피월트(Chana Joffe-Walt)는 그 일이 일어난 지 10년 후인 2015년에 당시 양쪽 학교의 학생과 교사들을 인터뷰해서 그때의 상황을 재구성했다.

이유를 알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멜라니를 찾아 필드스톤 고등학교 캠퍼스에서 왜 그렇게 울며 소리를 질렀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멜라니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사람들의 말에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부분 그날 이후 멜라니가 학교에서 떠났다고 기억한다. 조피월트 기자가 취재한 결과를 종합해보면 멜라니는 필드스톤을 방문했던 2005년 말에 학교를 정식으로 졸업하지 않고 사라졌다. 펜팔 프로그램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멜라니였지만, 정작 자신과 편지를 나누던 아이들이 다니던 사립학교를 방문한 것이 학교를 자퇴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하지만 그날 필드스톤 고등학교를 방문했던 모든 유니버시티 하이츠의 학생들이 멜라니처럼 반응한 것은 아니었다. 다들 별일 없이 방문 수업을 마쳤다. 게다가 그 프로그램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는 걸로 보아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유니버시티 하이츠 고등학교에서 멜라니처럼 똑똑한 학생이 학업을 그만둔 것은 교사와 친구들 모두에게 충격적인 일이었다. 당시 필드스톤의 학생이었던 말레나 에델스톤은 멜라니가 자기가 듣는 수업에 참여했던 날을 이렇게 기억한다.

필드스톤 고등학교 캠퍼스 (이미지 출처: LinkedIn)

"그날은 우리가 계몽주의에 대해 배우면서 당시의 미술작품들을 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멜라니는 그림과 계몽주의 시대 철학자를 연결하면서 존 로크(John Locke)의 말을 인용하더라고요. 우리(필드스톤 학생들)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거였죠. 그날 그 교실에서 멜라니가 가장 똑똑한 학생이었어요." 멜라니는 그 수업에서 필드스톤 학생들을 놀라게 한 후에 캠퍼스를 나갔다.

하지만 멜라니의 심정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멜라니의 (유니버시티 하이츠) 학교 친구 하나도 멜라니처럼 화가 났었다고 한다. 도심에 있는 공간 부족으로 교내 식당도 없는 "거지 같은(shitty)" 학교에 다니다가 천국처럼 보이는 사립학교의  교정을 보고 '아, 이 아이들은 우리와 다르구나'라는 좌절감을 느낀 것이다. 한 학생은 필드스톤 아이이들이 맥북이 든 가방을 교내에 아무렇게나 팽개치고 돌아다니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멜라니의 행방

사람들이 "멜라니가 사라졌다"라고 하는 건 사실이었다. 전화번호도, 주소도 남아있지 않았고, 가까웠던 친구, 선생님들도 멜라니의 행방을 전혀 알지 못했다. 조피월트 기자는 멜라니와 같은 이름을 가진 같은 또래의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전국적으로 찾아서 수소문했지만 전화번호부에 올라온 이름으로는 멜라니를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 세상을 떠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뉴욕시의 사망기록까지 뒤졌지만 그의 이름은 없었다.

조피월트 기자는 그렇게 멜라니를 찾다가 멜라니를 직접 가르친 유니버시티 하이츠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에게서 흥미로운 얘기를 듣게 된다. 파블로 뮤리엘이라는 이 선생님은 멜라니와 마찬가지로 푸에르토리카계였고, 멜라니를 비롯한 많은 학생들이 따르던 교사였다. 뮤리엘 선생님은 기자에게 멜라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아주, 아주, 아주 (very, very, very)" 똑똑한 학생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기자가 찾아간 때로부터 4년 전, 그러니까 멜라니가 학교를 떠난 지 약 6년 만에 학교를 불쑥 찾아왔었다는 거다.

유니버시티 하이츠 고등학교의 복도 (이미지 출처: InsideSchools)

어느 날 뮤리엘 선생님이 수업을 마치고 다른 교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멜라니가 나타났다고 한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 특히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옛 고등학교를 찾아가는 일이 꽤 흔하다. 멀리 떨어진 대학교에 다니다가 명절이나 방학 때 집에 오면 (대개는 자기 동네에 있는) 고등학교를 찾아가서 정든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서 안부를 전한다. 각종 특별활동으로 학년 간의 교류가 많고 교사와 학생들이 친구처럼 지내는 분위기라 그렇다. 하지만 찾아가겠다고 미리 연락을 해두지 않았다면 상대방이 갑자기 시간을 내기에 난처할 수도 있다. 갑자기 사라졌던 멜라니가 모교를 찾아간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다른 용무로 몰래 들렀다가 좋아하던 선생님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다가갔던 것으로 보인다.

멜라니를 본 뮤리엘 선생님은 다른 교사와 하던 이야기를 먼저 끝내려고 "어, 멜라니! 반갑네! 잠깐만 기다려"라고 했단다. 그런데 멜라니는 "뭐, 그러시든가요(OK, whatever)"라는 말을 툭 던지고 자리를 떴단다. 뮤리엘 선생님은 반가운 마음에 잠깐만 기다리라고 한 건데 멜라니가 그걸 자신이 멜라니를 무시하거나 귀찮아한다는 뜻으로 해석한 게 아닌가 싶다고 한다.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이 일은 멜라니의 성격을 보여주는 하나의 단서가 된다.) 하지만 선생님의 말이 맞다면 멜라니가 사라진 것이 그가 죽었기 때문도 아니고, 다른 나라로 이민 갔기 때문도 아님은 분명해졌다.

(이미지 출처: Adam Love from Pixabay)

멜라니를 기억하는 또 다른 선생님의 말도 하나의 단서를 제공했다. 이 선생님은 멜라니가 다니던 고등학교가 아닌 필드스톤의 교사 앤젤라 바소스. 바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추진했던 교사 중 하나다. 조피월트 기자에 따르면 바소스 선생님은 멜라니의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아이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라면서 "아주, 아주 똑똑한 아이였는데" 자신이 그걸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는 멜라니가 필드스톤을 방문한 첫날 소동을 벌인 후로 멜라니를 주목하고 살폈단다. 자신이 필드스톤 아이들을 데리고 멜라니의 학교를 방문하게 되면 꼭 멜라니를 찾아서 만났다.

바소스 교사가 멜라니의 학교에 찾아가서 마지막으로 그 아이를 만났던 날은 멜라니에게 아주 좋은 일이 일어났다. 그날 멜라니는 50명 정도가 모여있는 방에서 "백인 계집애들(white bitches)들이 도대체 아는 게 뭐 있냐"라며 분위기를 휘어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진학상담 교사가 들어와서 멜라니를 불러냈단다. 그리고 깜짝 발표를 했다. "멜라니, 너 전액 장학금으로 미들베리 칼리지(Middlebury College, 미국 동부 버몬트주에 있는 사립 리버럴 아츠 칼리지)에 가게 되었다." 브롱스의 가난한 동네에서 좋은 대학에, 그것도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진학하게 되었다는 건 엄청난 소식이었다. 멜라니와 선생님들은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이런 좋은 소식을 들은 후에 멜라니가 학교에서 사라진 것이다. 미들베리 칼리지에 진학하기는커녕, 남은 고등학교 학기도 채우지 않고 학교를 떠났다.

기자 앞에 나타난 멜라니

하지만 팩트 체크를 하던 조피월트 기자는 그 이야기가 정확하지 않음을 발견했다. 미들베리 칼리지에 전화를 해서 확인한 결과, 멜라니는 그 대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합격했다는 기록도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물론 10년 전의 기억이니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바소스 선생님이 바로 그 미들베리 칼리지를 졸업했기 때문에 대학교를 잘못 기억했을 가능성은 없다.

멜라니의 옛 친구들은 멜라니가 대학교에 합격했다면 가지 않았을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던 다른 아이들은 대학교 진학에 관심이 없었지만 멜라니는 처음부터 오로지 목표는 대학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멜라니는 대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것이다. 기자는 점점 진실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 Igor Ovsyannykov from Pixabay)

그렇게 멜라니의 주변을 샅샅이 뒤지던 조피월트 기자는 기적에 가까운 만남을 하게 된다. 멜라니가 과거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아파트 건물을 하나씩 찾다가 우연히 멜라니의 현재 남자친구를 만난 것이다. 멜라니의 옛 주소인데 초인종에 아무런 이름이 없어서 (뉴욕의 아파트 건물에는 입구에 각 호수별로 초인종이 있고 거주자 이름이 적힌 경우가 많다. 물론 원하지 않으면 이름을 숨기기도 한다) 누르지 못하고 있던 중에 입주자 하나가 들어가길래 "혹시 이 건물에 사는 멜라니라는 사람을 아느냐"라고 물었더니, "내 여자 친구인데 지금 일하러 갔다"라는 대답이 돌아온 것이다.

그렇게 기자는 멜라니를 만나게 되었다.

멜라니의 남자 친구에 따르면 멜라니는 기자가 보낸 편지를 받았고, 왜 취재하려는지를 알고 있지만 답을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집까지 찾아온 이상 멜라니는 드디어 입을 열기로 결심했다.

기자와 만난 멜라니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파란색, 녹색으로 머리를 물들이고 있었고, 핑크색 트레이닝 바지(sweatpants)에 후드티를 입고 모자를 쓴 멜라니를 라디오 방송에서 묘사하는 기자는 흥미로운 걸 발견했다. 멜라니가 대화 중에 '그 사람들(they)'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들어보면 그게 '당신(you),' 지금 자기가 하는 말을 듣게 될 청취자를 의식하고 있다는 거다. 자기와 대화하는 상대에 대해 눈에 띄게 의식하는 성격이라는 기자의 묘사는 설득력이 있다. 녹음을 (21:40 지점) 들어보면 언뜻 편안하게 대화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긴장한 느낌이 역력하다. 가령 그의 웃음소리가 그렇다.

멜라니는 자신이 고등학교 때의 모범생을 떠올릴 수 없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If they could see me, they'd know I'm different. You know I'm different. I'm sitting here with like blue-green hair") 그걸 극도로 의식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게 멜라니가 학교의 선생님, 친구들과 완전히 연락을 끊고 10년 넘게 잠적하게 된 이유였을지 모른다. 멜라니가 기자에게 필드스톤 고등학교를 방문했던 날 벌였던 소동을 이야기하면서 제일 먼저 이야기한 것도 그날 자신이 입고 있었던 옷이었다.


'두 학교 이야기 ③'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