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펜실베이니아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2000년대 초에 처음으로 차를 몰고 뉴욕시에 갔었다. 그때 어딘가에 들르려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맨해튼 북쪽에 위치한 할렘(Harlem) 지역을 지났다가 갑자기 변한 풍경에 놀란 기억이 있다. 백인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차들은 낡았고, 무엇보다 할 일 없이 길거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고 '무슨 일이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GPS가 없던 터라 지도책을 들고 위치를 확인하다가 비로소 (친구들이 안전하지 않으니 가지 말라고 했던) 할렘에 들어와 있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더욱 놀랐던 건 남쪽을 향해 운전해서 길 하나(정확하게는 110th Street)를 건너자마자 갑자기 달라진 풍경이었다. 센트럴 파크를 바라보는 고급 아파트들이 가득한 5번가(5th Avenue)에 들어선 직후에 마주친 풍경은 제복에 모자까지 쓴 흑인 운전기사가 대형 승용차의 뒷문을 열고 집에서 나오는 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백인 여자아이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 허구가 아니었다는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위험하니까 가면 안 된다는 "험한 흑인 동네"라고들 하는 할렘이 바로 길 건너라는 사실이었다.

이 사진은 맨해튼 부모들이 운전기사들에게 아이들의 등하교를 맡기는 것이 유행이 되고 있다고 하는 2007년의 뉴욕타임즈 기사에 등장했다. 내가 목격한 게 바로 이런 장면이었다.

미국에서는 잘 사는 동네와 가난한 동네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서로의 존재는 알아도 다른 집단의 사람들이 정말로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하지만 맨해튼에서 볼 수 있듯, 그런 두 그룹이 반드시 서로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은 아니다. 특히 대도시의 경우 도로 하나를 가운데 두고 한쪽은 엄청난 부자들이 모여 살고 있고, 다른 한쪽은 한 눈에 보기에도 가난한 동네임을 알 수 있는 경우가 꽤 많다.

오늘 하려는 얘기 속 동네들이 그렇다.

이 글은 This American Life(TAL)에 Three Miles(3마일)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두 학교의 이야기를 요약하고 설명을 더한 것이다. 뉴욕 맨해튼의 북쪽에 있는 구(borough)인 브롱스(뉴욕에서는 반드시 정관사를 붙여서 the Bronx라 부른다)에 위치한 두 개의 고등학교가 언론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2014년 뉴욕타임즈가 두 학교의 특이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소개하면서부터다. 그 기사가 발행된 직후 NPR의 인기 프로그램인 TAL의 기자가 자신만의 시각으로 다시 취재해서 만들어낸 라디오 기사가 Three Miles다.

브롱스의 두 학교

흔히 브롱스는 뉴욕의 다섯 개 구 중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로 일컬어진다. 인종적으로도 흑인과 히스패닉, 특히 이민자들이 많을 뿐 아니라, 가장 땅값이 비싸고 발전한 맨해튼에 접해있기 때문에 더욱 비교가 된다. 하지만 브롱스라고 해서 다 같은 브롱스가 아니다. 브롱스 안에도 부촌이 존재한다. 바로 필드스톤(Fieldston)이라는 곳.

미국의 행정구역은 한국과 다른 점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특정 구역을 여러 사람들이 함께 소유하는 일종의 사유지 마을(privately owned neighborhood)이다. 필드스톤이 그런 곳으로, 다른 브롱스의 분위기와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부촌이다. 부자들의 거주지이지만 단순히 돈이 있다고 들어올 수 있는 동네가 아니다. 일단 들어온 사람들이 이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맨해튼에서 가까운 거리에 환상적인 환경을 가진 동네에서 떠나려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아주 드물게 매물이 나오면 월스트리트저널에서 기사화할 정도다.

필드스톤에 위치한 주택. 미국 도시는 나무가 많을수록 부유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지 출처: 6sqft)

그곳에 위치한 필드스톤 고등학교(공식 명칭은 Ethical Culture Fieldston School) 역시 흔한 고등학교가 아니다. 필드스톤이라는 동네 자체가 돈만으로 들어올 수 있는 동네가 아니니 그곳에 사는 학생들만 입학하는 사립학교인 셈. 대부분의 공립 고등학교는 교실이 있는 건물과 운동장, 체육관, 강당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면 필드스톤 고등학교는 하나의 캠퍼스로 이루어져 있다. 잔디로 뒤덮인 넓은 캠퍼스에 교실 건물과 운동장 같은 건 물론이고, 독립된 도서관 건물과 수영장, 갤러리, 심지어 댄스 스튜디오까지 갖춘 작은 대학교 분위기의 전형적인 고급 사립학교다.

필드스톤 고등학교 캠퍼스의 일부 (이미지 출처: Architecture Research Office)

그에 비하면 유니버시티 하이츠(University Heights, 한때 이곳에 뉴욕대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브롱스의 전형적인 동네다. 흑인과 히스패닉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그중 많은 사람들이 이민자들이다. 그런 동네에 있는 유니버시티 하이츠 고등학교 역시 전형적인 브롱스의 공립학교다. 자동차 도로를 마주한 건물 하나에 운동장은 옆에 있는 다른 학교와 함께 사용하고, (위의 기사가 나왔던 2014년 기준으로는) 도서관도 없는 가난한 학교다.

그런 유니버시티 하이츠 고등학교에는 필드스톤 고등학교에 없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보육시설(daycare)이다. 교사를 위해 지어졌다기보다는 학생용이다. 미국의 가난한 지역에서는 고등학생들이 임신하는 일이 흔하고, 출산을 할 경우 집에서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엄마가 된 학생들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게 하기 위해 학교에 보육시설을 갖춘 곳들이 많다. 즉, 보육시설을 갖춘 학교는 그 동네가 어떤 동네인지를 잘 보여준다. 인종 구성도 크게 다르다. 사립인 필드스톤에서는 70%가 백인인 데 반해 유니버시티 하이츠의 학생들은 97%가 흑인, 아니면 히스패닉이다.

이 두 학교는 직선거리로 약 5km(3마일) 떨어져 있다.

유니버시티 하이츠 고등학교 (이미지 출처: Scholar.com)

울음을 터뜨린 여학생

하지만 2005년, 이렇게 완전히 다른 환경을 가진 두 학교의 학생들이 서로를 알게 되는 일이 생겼다. 두 학교의 교사들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두 학교의 학생들이 교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고, 펜팔 프로그램을 시작한 거다. 같은 브롱스이지만 환경이 판이하게 다른 아이들은 다른 쪽에 사는 아이들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교사들은 펜팔이 성공적이었다고 판단한 듯하다. 왜냐하면 교류를 단순히 편지를 주고받는 펜팔에 그치지 않고 일종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같은 나라, 같은 도시, 같은 구에 위치한 두 학교가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게 어처구니없게 느껴지겠지만, 빈부의 격차가 경제적인 차이에 그치지 않고 문화와 인종적 차이, 심지어 커리큘럼의 차이로 이어지는 미국의 환경에서는 충분히 일리 있는 아이디어였다. 방식은 두 학교에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다른 학교를 방문해서 그 학교 학생들을 만나고 수업에도 정기적으로 함께 참여해서 대화를 하는, 그야말로 교환학생 프로그램이었다.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좋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왜 성적도 나쁘고 시설도 열악한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겠느냐"라고 궁금해할 수 있지만, 사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수혜자는 필드스톤 학생들이다. 문화적 다양성과 다문화적 이해와 경험이 아주 중요한 교육 목표인 미국에서는 부유한 동네에 사는 생각이 깨인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이런 기회를 주기 위해 큰돈을 쓴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은 세상에는 자기처럼 사는 사람들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나, 자신과 다른 사람, 문화에 대해 편견을 가지며 자랄 확률이 높은데 이는 미국 사회에서 '리더의 자격'에 심각한 결격 사유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립학교 학생들은 남미의 가난한 나라를 방문해서 봉사활동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따라서 필드스톤 아이들은 유니버시티 하이츠를 방문해서 얻을 게 많았다.

두 학교는 인종 구성도 크게 차이가 난다.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 Times)

문제는 유니버시티 하이츠 아이들이었다. 어려운 환경, 부족한 시설에서 공부하는 이들이 천국 같은 필드스톤의 캠퍼스에서 얻을 게 뭐냐는 것. 그곳에서 계속해서 공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가끔씩 방문해서 부러움과 자괴감 외에는 얻을 게 있을까? 교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한국의 차이를 다시 한번 이야기해야 한다. 한국은 교육열의 나라다. 아무리 가난해도 공부를 해야 대학에 갈 수 있고, 대학에 가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하나의 국가 이념처럼 거의 모든 국민이 공유하는 나라다. 미국은 그렇지 않다. 워낙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여있다 보니 그 안에는 교육에 대한 가치를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 문화들도 존재한다. 실제로 가난한 가정의 학생들 중에는 "공부는 왜 하느냐" "너 같은 게 대학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웃기지 말고 빨리 일이나 해라"라는 말을 듣고 자라는 아이들이 많다.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 중 하나인 유니버시티 하이츠의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교사들은 이런 아이들이 좋은 환경을 직접 보고, 대학교에 가려고 노력하는 걸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필드스톤 고등학교 같은 곳을 경험하면 자극을 받고 '나도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교에 가야지. 대학교에서 이런 캠퍼스 생활을 해야지'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시작된 첫날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단체로 버스를 타고 필드스톤에 도착한 유니버시티 하이츠 학생 중 하나가 큰 소리로 "이건 불공평해! 나는 여기에 있기 싫어! 집에 갈래!"라며 울부짖은 것이다. 이 학생이 벌인 소동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학생이  십 년이 지난 후에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만큼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교사와 아이들이 흥분한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붙잡아야 했으니까.

더 충격적인 건 멜라니라는 이름의 그 여학생은 유니버시티 하이츠에서 똑똑하기로 소문난 학생이었다. 그 가난한 학교에서도 교사들이 "너는 하버드에 지원해야 해"라고 할 만큼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무엇 때문에 소동을 벌였을까?


'두 학교 이야기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