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일부가 세계일보 '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미국 동북부 뉴잉글랜드 지역의 대표적인 휴양지인 케이프 코드(Cape Cod) 한 해변에 갔다가 이런 문구를 봤다. “A day at the beach restores the soul(바닷가에서 보낸 하루는 영혼을 회복시킨다).” 이 글이 적힌 곳은 바닷가 모래밭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놓여 있던 벤치였다. 미국에는 가족 중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가 자주 가던 해안이나 공원, 산책로에 그의 이름으로 벤치를 하나 만들어 기증하는 문화가 있다. 위의 문구가 씌어 있던 곳은 2020년에 세상을 떠난 브렌다 진 스미스라는 여성 가족(아마도 자녀들)이 기증한 벤치였다. 등받이에 붙은 자그마한 동판에는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이 바닷가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알려주는 짧은 글이 있었다.

그런데 내 눈길을 끈 것은 동판 마지막 줄에 등장하는 “바닷가에서 보낸 하루는 영혼을 회복시킨다”라는 문구였다. 제법 낯이 익은 문구였기 때문에 세상을 떠난 여성이 처음 한 말은 아닌 게 분명했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짐작대로 바닷가나, 인테리어 소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꽤 유명한 문구였다. 정확하게 누가 언제 만들어냈는지는 모르지만 틀린 말 같지는 않다. 복잡한 도시와 일상에서 벗어나 사람이 많지 않은 해변에서 조용하게 하루를 보낸 후에 정신이 맑아지고 상쾌해지는 건 당연해 보인다.

물론 그게 과연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증명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흥미로운 건 우리가 “여름 바캉스 시즌”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바닷가 모래밭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유와 바닷가에서 “영혼을 치유한다”는 생각이 처음 등장한 이유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원래 바다는 사람들이 쉬러 가는 곳이 아니었고, 바닷가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건 인류 역사에서 꽤 늦게 등장한 사고 방식인데, 이런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게 된 계기가 의사들 처방이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들이 기독교 성경을 비롯한 고대 문헌에 등장한 바닷가 관련 언급을 살펴보고 내린 결론은 ‘인류에게 바다는 신비롭고 파괴적인 장소’라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끝 모를 심연(深淵)’이나 ‘대홍수’, 거대하고 알 수 없는 생명체에 대한 언급이 있을 뿐이다. 세네카나 오비디우스 같은 고대 로마 철학자들도 바다는 사람들 사이를 벌어지게 하는 “비사교적인” 장소라고 생각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어드'와 '오디세이'는 바다의 색을 짙은 포도주색(wine-dark sea)으로 표현한다.

셰익스피어(1564∼1616)까지만 해도 바다는 ‘풍랑’과 ‘끔찍한 여행’, ‘난파(難破)’와 관련지어 언급될 뿐이었다. 특정 개인이 바닷가에서 아름다움을 즐겼을 수 있을지 몰라도 대중에게 바다와 바닷가는 긍정적인 연상을 일으키는 장소와는 거리가 멀었다. 바다는 어부와 선원들이 어쩔 수 없이 목숨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고 일을 하는 곳이었지, 쉬러 가는 곳이 아니었다.

그랬던 바다 이미지가 서구 문화에서 처음으로 긍정적으로 묘사되기 시작한 건 1600∼1700년대였다고 전해진다. ‘The Lure of the Sea(바다의 매력)’이라는 책에서 저자 앨런 코빈은 이 시기부터 프랑스 시에서 바다를 좋게 묘사하는 대목들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17세기 네덜란드의 풍경화에서 바닷가를 아름답게 묘사하면서 그 풍경을 직접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바다를 찾아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유럽인들 사고에서 바다를 휴식, 혹은 건강을 회복하는 장소라는 이미지로 바꾼 사람들은 영국인들이었다. 1700년대 후반부터 영국 의사들이 분노와 신경쇠약, 우울증에 시달리는 환자들에게 바닷가에서 쉬면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차가운 바닷물에서 목욕을 하면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는 처방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해수욕(海水浴), 즉 바닷물 목욕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게 이때인 듯하다. 1700년대 후반에 앙투안 라부아지에를 비롯한 과학자들이 산소라는 화학 원소를 발견했다. 사람들은 바닷바람에 도시 공기보다 산소가 더 많이 들어있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지금도 병원에서 중환자실에서 산소 호흡기를 사용하는 모습은 흔하지만 바닷가 공기가 산소를 더 많이 함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당시 유럽, 특히 영국에서 산업화가 빠르게 진전되고 있었음을 생각하면 공장이 없는 넓은 해변의 공기는 도시 공기와 비교도 안 되게 깨끗했을 것임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이런 사고는 20세기에도 이어져서 ‘폐병’으로 알려진 폐결핵을 앓는 환자들이 바닷가에 지어진 요양원에 입원하는 일이 흔했다.

하지만 단순히 소수 환자들이 바닷가에 요양을 하러 가는 것은 지금처럼 바캉스를 맞아 일제히 바다로 몰려가는 문화와는 분명히 다르다. 일부 집단 행동이 사회 문화로 확산되려면 계층의 힘이 필수적이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상위 계층 사람들 문화를 따르는 뚜렷한 경향이 있다. 영국에서 이런 변화의 도화선이 된 사람이 조지 4세(1762∼1830)다. 그는 아직 왕자 신분이었던 1783년에 통풍(gout)으로 고생했는데 바닷가에 가서 해수욕을 하라는 의사 처방에 따라 영국 남부 브라이턴(Brighton) 해변으로 간다. 왕족이 바닷가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얘기는 빠르게 퍼져나갔고, 런던에서 100㎞ 떨어진 곳을 찾아갈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생긴 귀족과 평민도 이곳을 찾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존 컨스터블의 '브라이튼 해변.' 1824년 작품

그렇게 해서 1800년대 초가 되면 영국인들 사이에서는 바닷가에서 건강을 회복한다는 개념이 널리 퍼졌고, 당시에 영국 전역으로 확산된 철도는 여유가 별로 없는 일반인들도 해변으로 여행할 수 있게 해줬다. 리버풀 북쪽에 위치한 블랙풀(Blackpool) 해변은 최초로 노동계급을 위한 해변 리조트가 됐다. 왕족이 쉬던 브라이턴 해변도 다르지 않아서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 남부에 있는 유명한 브라이턴 해변도 영국 해변 이름을 가져다 붙일 만큼 해변 휴양지의 대명사가 되었다.

1900년대 초에 찍은 브라이턴 해변의 모습.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해변 콘서트 파티를 열고 있다. 입고 있는 옷을 빼면 지금의 해변 콘서트와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알다시피 1800년대는 영국이 세계를 주름잡은 시대였다. 당시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릴 만큼 전 세계에 식민지를 갖고 있는, 돈이 몰리는 나라였다. 그런 영국에서 유행하는 일이라면 다른 나라들도 따라하는 건, 영국 내에서 귀족들의 유행이 평민에게 퍼지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프랑스의 노르망디 해변, 독일 북부와 스칸디나비아 지역 등 대서양을 접한 나라들이 ‘해변에서의 휴식’을 새로운 문화로 받아들였고, 이는 곧이어 중부와 남부 유럽까지 확대되었다.

영국의 브라이튼 해변의 이름은 뉴욕 코니 아일랜드 옆 해변에도 붙었다.

흥미로운 건 정작 전 세계 사람들을 해변으로 달려가게 만든 영국인은 바닷물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는 행동을 그야말로 목욕처럼 극도로 사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물에 들어가는 걸 꺼렸다는 점이다. 수영복이 없던 때라 옷을 입고 들어가는 것임에도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치료를 위해 처음 해수욕을 하던 사람들이 왕족과 귀족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찾아오지 못하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찾아오는 공공 해변에서 물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영국이 아닌 유럽 본토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영국인들이 수영을 즐기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를 배경으로 한 영화 '전망 좋은 방(A Room With A View)'를 보면 영국 남자들이 숲이 우거진 곳에서 물에 들어가 노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들이 옷을 입지 않고 있다는 사실. 수영복이라는 게 따로 없던 시절이기 때문에 물에 들어간다는 건 그야말로 목욕처럼 옷을 다 벗고 들어가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옷을 모두 벗고 들어가야 하니 다른 사람들이 오지 않는 숲 속에서, 그야말로 "선녀가 깊은 산 속 연못에서 목욕하듯" 하는 행동이었다.

영화 '전망 좋은 방'에서 수영을 즐기는 영국 남자들의 모습

이런 풍습이 바닷물에 들어간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고, 사람들(이라고 해야 남자들이지만)이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길 때도 옷을 다 벗고 들어갔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찾으면서 해변이 이제 공공장소가 되었고, 이런 곳에서 옷을 다 벗고 물에 들어가는 모습은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했다. 영국에서는 남성들이 옷을 다 벗고 물에 들어가는 것을 금하는 법이 1860년에 만들어졌는데 위의 영화 속 장면은 그걸 무시한 채 몰래 놀고 있는 장면인 셈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남자들의 얘기고 여자들은 다른 기준이 적용된 건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도 바다에 들어가려는 여자들을 위해서는 '해수욕 머신(bathing machine)'이라는 게 만들어졌다. 이들은 말이 끄는 집처럼 생긴 마차를 타고 허리 정도 오는 물까지 후진해서 프라이버시를 확보한 후에 옷을 모두 입은 채 물에 들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끔찍한 경험일 것 같지만 당시만 해도 해수욕은 어디까지나 건강을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참고한 글들 중에서 아래 두 개를 추천합니다:

Inventing the Beach: The Unnatural History of a Natural Place
The seashore used to be a scary place, then it became a place of respite and vacation. What happened?
‘The Last Resort’ unveils the destructive reality of beachside destinations
“The Last Resort” is a new book that looks at the rise and environmental impact of beach resorts. NPR’s Elissa Nadworny talks to author Sarah Stodo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