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커버스(Zucker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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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업계나 버즈워드(buzzword)는 종종 등장했다 사라지지만, 테크 업계만큼 꾸준히, 쉬지 않고 많은 버즈워드가 등장하는 업종은 찾기 쉽지 않다. 그 중에는 빅데이터/데이터마이닝, 클라우드 컴퓨팅, 머신러닝, 인공지능, 블록체인처럼 어디까지나 기술적인 개념인데 기술이 무르익어 다양한 산업에 확산되는 과정에서 유행어처럼 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아직 대중이 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소위 "사짜"들이 기술을 과대 포장할 때 사용되는 단점(어차피 이런 사람들은 어떤 분야나 존재한다)을 제외하면 이런 개념 자체가 과장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같은 버즈워드는 조금 다르다. 분명히 기술적인 개념이기는 하지만, 이 기술과 관련된 기업이나 투자자들이 다소 의도적으로 버즈를 일으키는 분야다. 앞서 말한 버즈워드들과는 달리 아직 수요자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세상이 바뀐다"고 요란하게 홍보하는 카테고리다. 이런 기술의 발표는 마케팅과 구분하기 힘들 때가 많지만 그렇다고 이런 노력을 탓할 수는 없다. 스티브 잡스나 제프 베이조스 같은 '퍼스트무버first mover'들이 즐겨 강조했던 것처럼 소비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모른다. "만약 (자동차를 보여주기 전에) 사람들에게 물어봤다면 빠른 말을 달라고 했을 것"이라는 헨리 포드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완전히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는 앙케트로 태어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은 개발한 기업이 홍보와 마케팅을 통해 인위적으로 퍼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다만 모든 새로운 것들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고, 대중화에 실패했을 경우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말은 공허한 마케팅에 그친다. 혁명이냐, 반란이냐는 그게 성공했느냐 여부가 결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4차 산업혁명, 공유경제 같은 카테고리의 버즈워드가 있다. 이 카테고리는 하나의 독립된 기술이라기보다는 기술변화의 추세, 사회변화 추세에 대한 진단 쪽에 가깝다. 다양한 기술적 발전과 기업 활동을 통해 사회 전체에 파급되는, 그러나 일반인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하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때 이를 진단하고 정의해주는 표현들이다. 물론 이런 표현도 인기를 끌면 강사들이 생겨나고, 책이 나오고, 자격증이 등장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떤 버즈워드들은 아예 처음부터 이런 '부수 사업'을 목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공허한 구호에 그치거나 '공유경제'처럼 예측 방향을 몇몇 기업들에 유리한 쪽으로 잘못 판단하고 치어리더 역할에 그치는 경우도 보게 된다. 그래도 이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믿었다면 예측이 빗나가는 일이 생겨도 정직한 실수(honest mistakes)라고 봐줄 수 있다.
기업의 의도
하지만 인공지능이나 블록체인과 같은 특별한 기술적 진보가 업계에 확산되지 않았고, 사회적으로도 뚜렷한 변화가 눈에 띄지 않았을 때 빅테크의 CEO가 버즈워드를 사용해 "______는 우리의 미래"라고 말할 때, 특히 그 버즈워드가 그 기업의 이익과 밀접한 이해관계에 있을 때는 약간의 의구심을 갖고 들을 필요가 있다. 가령 지난주 더버지The Verge와 인터뷰에서 메타버스(metaverse)를 대차게 홍보한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의 말이 그렇다. (저커버그와의 인터뷰 전문은 오터레터와 함께 미디어스피어의 파트너 매체인 씨로켓에서 전문을 번역해서 무료 가입자에게 공개했다. 미디어 쪽의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구독을 권한다).
작년부터 여기저기 자주 눈에 띄다가 올해 들어서는 가장 뜨거운 키워드/버즈워드로 등장한 메타버스는 알다시피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우주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합친 단어다. 개인용 컴퓨터에서 모바일로 진화한 인터넷이 다음 단계에서는 3차원 가상세계로 확장될 거라는 '업계의 희망'을 잘 표현한 메타버스는 전혀 새로운 개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팬데믹으로 물리적인 공간에서의 만남과 협업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버즈워드가 되었다. 팬데믹을 접하게 된 사용자들의 '새로운 요구'와 현 제품의 '불편함'이 만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테크기업이 목표로 삼기에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저커버그는 이 인터뷰에서 메타버스야 말로 "모바일 인터넷의 후계자"라고 추켜세운 후에, "제대로만 하면" 약 5년 후에는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소셜미디어 기업이 아닌 '메타버스 기업'으로 기억하게 될 거라는 거창한 포부를 밝혔다.
그의 말이 지나치게 희망적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근거없는 얘기는 아니다. 현재로서는 페이스북이야말로 메타버스를 구현하기에 가장 유리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 그리고 왓츠앱까지 합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용자를 가진 소셜미디어 기업일 뿐 아니라, 가상현실 분야의 선두주자 중 하나인 오큘러스도 갖고 있다. 만약 빅테크 기업 중 하나가 메타버스를 성공적으로 완성할 수 있다면 그 기업은 페이스북일 가능성이 높다. 테크놀로지와 사용자 네트워크를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굳이 메타버스를 '모바일 인터넷의 후계자'라고 까지 이야기한 이유는 페이스북이 소비자와 직접 만날 수 있는 접점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페이스북 사용자는 안드로이드 기기나 애플 기기를 통해서 페이스북에 들어온다. 즉, 경쟁사가 페이스북과 사용자들 사이의 관문 노릇을 하는 셈이다. 이런 상황이 가진 문제점은 얼마 전 애플이 iOS 기기에서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수집을 제한하는 과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애플이 사실상 수집하려는 정보를 스로틀링(throttling)해버리는 순간 페이스북의 광고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오큘러스를 2014년에 인수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저커버그가 가상현실에 관심을 가진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저커버그는 "중학생 때 코딩을 하면서 부터 여기에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Who wasn't?) 하지만 '메타버스'에 대한 애정이 이렇게 커진 것은 애플과의 싸움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저커버그는 메타버스를 페이스북이 모바일 기업들로 부터 해방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고 있다.
메타버스는 열린 공간일까
저커버그의 메타버스 찬양에서 가장 관심이 간 지점은 페이스북 CEO로서의 그가 메타버스를 어떤 공간으로 보고 있느냐였다. 그는 "사람들이 개별 기업이 운영하는 걸 메타버스라고 부를 것 같지 않다"면서 메타버스는 여러 기업들이 함께 만들고 상호운용이 가능(interoperable)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저커버그는 어느 한 기업이 메타버스를 소유하면 안 된다면서 "어느 기업에게 메타버스를 만들고 있느냐고 묻는 건 '당신네 기업의 인터넷은 어떠냐'고 묻는 것처럼 황당하게 들렸으면 한다"라고 했다.
흠... 🤔
페이스북은 '담장이 쳐진 정원(walled garden)'의 대명사 아니었나? 물론 페이스북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현재의 빅테크는 열린 인터넷의 세상을 끝내고 각자의 플랫폼 안에 콘텐츠를 가두는 일종의 가두리 양식장으로 인터넷 세상을 바꿔왔다. 왜냐하면 광고 수익이 달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작동하면서 수익을 낼 때는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하다가 사용자들과의 일차적 접점(기기)이 없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자 상호운용 가능성을 주창하고 나서는 (위의 인터뷰에서 '상호운용 가능성'이라는 말은 무려 9번이나 등장한다) 것을 두고 위선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수익을 내야 하는 기업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의견이 바뀌는 법이다.
하지만 만약 페이스북이 메타버스를 선점, 독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도 저커버그는 과연 상호운용 가능성을 이렇게 열정적으로 이야기할까?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그의 진실성을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메타버스가 명실상부한 메타버스가 될 수 있을지를 알고 싶기 때문이다. 만약 페이스북이 메타버스에서도 지금과 같은 광고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하려 한다면 세계 최대의 범 페이스북 사용자 네트워크를 경쟁자들에게 열어줄까? 그건 혼자서 메타버스를 만들 수 없을 때만일 것이다. 만약 가능하다면? 그때는 태도를 바꿀 거다. 그는 항상 그래왔다.
메타버스는, 그게 가능하다면, 인터넷의 다음 단계를 의미할 만큼 중요한 진보가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저커버그가 메타버스를 열심히 팔고 있을 때는 그게 우리가 기대하는 메타버스가 아니라 저커버스(Zuckerverse)일지 모른다는 약간의 의구심을 갖고 들을 필요가 있다. 페이스북의 이해와 너무나 완벽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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