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ankee Goes Home
• 댓글 남기기안녕하세요, 오터레터 발행인 박상현입니다. 제가 이번 주에 몇 가지 일로 캘리포니아를 방문 중입니다. 계속 이동을 하고 있어서 이번 주 오터레터 업데이트가 없어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합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다음 주부터는 다시 예전처럼 글이 올라올 예정입니다. 기대해주세요!
그리고 이번에 실리콘밸리를 방문한 동안 마이크로소프트의 이상인 디자이너님, 샌프란시스코 대학교 정은진 교수님과 함께 진행하는 오피스 아워의 특별한 순서로 트랜스링크 김범수 대표님을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여기에서 그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매주 업로드되기 때문에 구독을 권합니다 :^)
자, 그럼 오늘 준비한 Yankee Goes Home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미국이 지난 20년 동안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과 주둔을 끝내고 군대를 완전히 철수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에 조지 W. 부시가 시작한 전쟁이 오바마와 트럼프 정권을 통과해 바이든 정권에 이르러 마침내 끝난 것이다.
미군의 철수는 백악관의 예측보다 훨씬 파괴력이 컸다. 탈레반 세력이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을 상대로 치열한 교전을 벌이며 영역을 확장하려 할 것은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정부군이 이렇게 삽시간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줄은 몰랐다. 중국의 소셜미디어에서는 삽시간에 카불이 무너지고 탈레반이 국가를 장악하는 장면을 두고 “미국의 정권교체 보다 더 깔끔하게 정권이 이양되었다”며 미국을 조롱했다. 결국 수도 카불이 탈레반에 점령 당하면서 미국은 1975년 베트남 사이공 철수를 연상시키는 (국무부에서는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장면을 연출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을 떠났고, 이 지역은 다시 미국의 영향권을 벗어나게 되었다.
먼저 이 역사적인 사건과 관련해서 한국 외교연구원 인남식 교수의 글을 아직 읽어보지 않은 독자라면 그의 조선일보 기고문과 페이스북 포스팅을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중동지역 정세와 외교 문제에 관해서는 인남식 교수 만큼 깊이있는 분석을 제공할 수 있는 전문가도 많지 않다. 인남식 교수는 페이스북에 쓴 포스팅을 이 문장으로 끝냈다:
“문제는 아프간 국민들이다."
20년이면 전쟁이 시작된 후에 태어난 아이들이 성인이 되는 기간이다. 미국인들에게는 9/11 테러 때 세상에 없었던 아이들이 자라서 군인이 되어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되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지만 (그만큼 대다수의 국민이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이제 성인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다시 8살 이상 여자아이들의 교육을 금하고, 거리에서 여성의 얼굴이 등장하는 광고판을 모조리 페인트로 덮어버리고, 절도죄를 지으면 손을 자르고, 혼인 외의 성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사형에 처하는 중세시대로 되돌아가게 된 것이다. 민주주의 아래에서 태어난 주민들이 중국의 전체주의 정권 아래로 들어가게 된 홍콩의 상황과 비견된다. 무너진 로마제국을 슬퍼하던 사람들의 심정도 비슷했을 거다.
이중적 정체성
한국과 같은 중소국가의 신문과 강대국, 특히 미국의 신문에서 느껴지는 가장 큰 차이는 국제 뉴스다. 한국 언론에서는 국내 뉴스가 메인을 구성하고, 국제 뉴스가 양념처럼 들어간다면 미국의 언론은 국제 뉴스를 국내 뉴스와 전혀 다르지 않게 보도한다. 미국이 세계고, 세계가 미국이라는 태도는 메이저리그 야구의 월드 시리즈’처럼 미국인들의 사고방식 곳곳에 스며있다. 세상을 무력으로 정복했던 몽골이나 그리스, 로마 같은 나라가 그랬다면 이해를 하겠지만 멀쩡하게 주권이 있는 나라들로 구성된 현대 세계에서 미국이 마치 세계 일에 관심을 갖고 일일이 챙겨야 한다는 이런 마인드 어디에서 오는 걸까?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중적 정체성에서 비롯된다. 미국은 분명한 국경을 갖고 있고 국익을 우선적으로 챙겨야 하는 보통 국가인 동시에, 현대적인 민주주의를 시작한 나라라는 이상(ideal), 혹은 하나의 아이디어라는 정체성도 갖고 있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스스로 부여한 것이기도 하고, 다른 나라들이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말리아에 내전이 생겼다고 해서 미국이 군대를 보내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냐고 물으면, 비민주주의적 독재국가들과는 경제적 교류를 하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면 그 답은 ‘민주주의 미국의 이상’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이런 태도는 2차 세계대전 이후로 미국이 세계 무대에서 초강대국으로 등극하면서 더욱 분명해졌는데, 문제는 이 시점에 미국의 보통 국가로서의 국익 챙기기 역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는 데 있다. 미국은 이 둘을 항상 교묘하게 섞어서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홍보해왔다. 국민을 차별하는 독재정권과 교류를 하지 않는다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현대판 노예제도를 유지하는 두바이 같은 곳과 멀쩡한 교류를 하는 이유는 에너지 수급과 중동지역 영향력 유지라는 보통 국가 미국의 이익 때문이다.
테러조직 소탕 vs. 국가재건
테러리스트들을 소탕하겠다고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간 미군이 20년 동안이나 떠나지 않은 이유는 그 사이에 미션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대테러전쟁이었지만, 알카에다를 소탕한 이후에는 아프가니스탄의 국가재건(nation building)이 목표가 되었다. 물론 미국은 국가재건을 목표라고 밝힌 적이 없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실패한 게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바이든 행정부는 “우리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테러리스트를 소탕하려는 목적을 달성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테러 집단의 소탕을 끝낸 후에 왜 그토록 오래 남아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민주 정부, 더 중요하게는 친미 정권을 세우기 위해,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정부가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탈레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때까지 주둔하고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걸 ‘국가재건’이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고 그 목표가 달라지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이름을 피한 건 국가재건이라는 목표는 실패할 게 분명한, 전형적인 "미션크립(mission creep, 임무변경)"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일본의 재건, 및 우방 국가화 경험이 아웃라이어(outlier), 즉 극히 예외적인 경우였음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워싱턴에는 그게 가능하다고 믿는 옛날 정치인과 관료가 많고, 무엇보다 군이 있다. 미군은 미국인들이 가장 신뢰하는 조직이고, 정치인들이 전략에 실패할 수는 있어도, 미군은 주어진 미션에 실패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기관이다. 하지만 (한국의 검찰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느 조직이나 규모와 힘이 세지면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시작한다.
국가의 이익과 군의 이익은 다를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고 젊은이들이 희생되는 것은 국가에 손해가 나는 일이겠지만, 끊임없는 국지적 분쟁 개입으로 존재의 의미를 증명해왔던 미군에게는 아프가니스탄에 오래 주둔하는 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군의 최고 통수권자가 대통령, 즉 민간인이기 때문에 정책적 실패는 군의 책임이 아니다. 군은 주어진 임무, 즉 전투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대통령의 이익과 군의 이익이 충돌할 수 있다. 전쟁을 시작한 대통령이 퇴임했고, 다음 대통령은 이제 군을 철수하는 게 국익이라고 판단했음에도 군이 반대하는 상황 말이다.
군과 대통령
군의 지휘권을 민간인에게 두는 오랜 전통을 가진 미국 같은 나라에서 군이 대통령과 대립하는 게 말이나 되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대놓고 명령을 거부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통령이 철군을 결정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오바마의 회고록 '약속의 땅'에 바로 그 이야기가 나온다. 대통령 후보 시절 오바마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이 더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둘을 끝내기는커녕 시리아 사태에도 휘말리게 되었다. 왜 그랬을까?
비록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이 군을 통수하지만 "모래알로 쌀밥을 만들고,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드는" 수준의 전지전능한 리더가 아닌 이상, 대통령은 참모들의 조언을 따르게 된다. 대통령이 현장을 일일이 다니면서 정보를 수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장의 정보는 누가 수집하고, 분석할까? 바로 군이다. 그런데 정보의 수집과 분석 단계에서 군이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부터 독립해서 완전히 객관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미군은 어떤 이유에서든 궁극적으로 더 많은 병력과 무기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미군이 전달하는 정보와 분석은 그걸 고려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오바마에게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바이든 부통령이었다.
그렇다고 군이 오바마를 속이고 거짓말을 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물론 언론 플레이로 오바마의 결정을 좌지우지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이에 백악관과 바이든이 크게 분노했었지만 (바이든은 이때 쌍욕을 했다고 한다) 이는 장군들의 반란 행위라기보다는 평생 군 생활을 하면서 군 조직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몸에 밴 결과라고 보는 것이 맞다. 아무리 미국 대통령의 힘이 강력하다고 해도 장성들이 제출한 보고서에서 지금 철군을 하는 것은 위험한 결정이라고 하는 걸 무시할 수는 없다. 그게 전쟁 종식을 외치며 당선된 오바마가 철군하지 못했던 이유다.
오바마의 후임인 트럼프 역시 다르지 않았다. 사실상 외교 고립주의를 택하고 전문가의 조언을 무시한 트럼프 역시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바로 실행하지 못했다. (그는 결국 4년 임기 이후인 2021년 6월을 철군 시한으로 정했는데, 그때는 아무 말이 없던 공화당 의원들이 바이든이 철군을 실행에 옮기자 실책이라고 비난하는 중이다). 그런데 바이든은 예정대로 철수를 추진한 것이다. 흔히 바이든은 워싱턴의 오래된 정치인 중에서 군을 가장 불신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오랜 경험을 통해 군이 어떻게 정보를 통해 대통령이 결정할 수 있는 선택지를 없애는지 보아왔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역할과 책임
지금 아프가니스탄의 많은 국민이 충격과 공포에 떨고 있다. 미국은 이번에 처음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언론인들에게 미국 비자를 내주는 특별 조처를 취했다. 미군을 도왔던 사람들을 미국으로 데려와 보호하는 일은 있지만, 언론인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방침을 바꾼 이유는 탈레반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던 언론인들은 탈레반 치하에서 어떤 위험에 처할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으로 올 수 있는 문은 좁다. 극히 일부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미군의 비행기를 탈 기회를 얻었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남았다. 다급한 사람들이 이미 문을 닫고 이륙하는 비행기 밖에 매달리기 위해 활주로를 달리는 장면, 그렇게 해서 매달리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 이륙한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충격적인 장면은 그들이 얼마나 다급한 상황인지 보여준다.
주의! 아래 트윗 영상은 충격적일 수 있습니다.
여성의 교육과 직업, 사회활동을 금하는 탈레반의 정책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축구팀 주장은 여자 선수들에게 "유니폼을 태우고, 축구를 했다는 흔적을 없애라"고 이야기했고, 십대 여성들로 이루어진 아프가니스탄의 로보틱스 팀은 외국인들의 도움을 받아 카타르 도하로 탈출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바이든의 철군 결정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탈레반의 위협 아래 놓인 이들의 처지를 이야기한다. 미국은 이들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책임이란 어떤 것일까?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자유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그것을 추구하게 만든 책임일까? 여성들도 똑같은 권리가 있음을 깨닫게 해주고, 그 맛을 보여준 책임일까? 그게 어떤 것이든 미국의 책임은 미국의 역할에 따라 결정된다. 미국이 자유 민주주의 진영의 리더를 자처한다면 세상의 비민주적인 정권이 저지르는 악행으로 부터 사람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그게 리더가 되는 대가다.
하지만 미국은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과거에는 그랬다가 더 이상 아닌 것이 아니라, 한 번도 완벽하게 수행한 적이 없는 나라다. 그 이유는,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세계 경찰, 혹은 반장 노릇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국민들이 있는 한 미국은 그 역할을 할 수 없다. 게다가 트럼프의 집권을 통해 미국의 민주주의 역시 취약하다는 사실이 온 세상에 알려지고 조롱당한 이후로 미국이 수출하려는 자유 민주주의의 브랜드 파워가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이제 미국이 해야 할 일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모범을 보이는 것일지 모른다.
인남식 교수의 말처럼 "문제는 아프간 주민들이다." 누가 그들을 지켜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들을 영원히 지켜줄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은 여전히 이상과는 거리가 먼 끔찍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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