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아버지의 초상

알렉산더 지Alexander Chee는 문학에 무지한 내가 우연히 알게 된 한국계 미국인 작가다. 이 사람에 대해서 설명하기 전에 먼저 그가 쓴 짧은 글을 하나 읽어보자. 제목은 '내 아버지의 초상(Portrait of My Father).' (번역이 신통치 않아도 양해를 부탁한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술은 '크라운 로열' 위스키였고, 좋아하는 초코바는 '베이비 루스'였다. 하지만 초콜릿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으셨다. 아버지는 포커에 능했고, 톨스토이를 즐겨 읽으셨다. 그리고 정장은 맞춰서 입으셨다.
아버지는 한국에서 다섯살 때 태권도를 시작했는데, 눈밭을 맨발로 달리는 훈련을 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중에 군수물자를 운반하던 군용 트럭이 사고로 뒤집어져 있는 것을 보고 큰형과 함께 트럭에서 쌀 포대 훔쳐 등에 지고 집으로 뛰어올 수 있었던 것도 그런 훈련 덕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아버지는 열여덟 살에 자신의 연령대에서 태권도 세계 챔피언이 되었고, 대학교 럭비팀에서는 주장을 했다. 쌀은 이래저래 도움이 되었던 셈이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붙잡지 못하도록 출장을 가신 동안에 한국을 떠나 미국에 도착했다. 할머니는 아버지에게 주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미국에 도착하면 팔라고 금으로 된 벨트 버클을 주셨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푸른 눈과 금발의 미국 여자와는 결혼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단다.
Portrait of My Father - Alexander Chee
미국에서 아버지는 조지타운 대학교 법대를 다니던 큰 형 집에 얹혀 지내다가 브라운스빌 대학교에 진학했다. 학교에서 몇 분 떨어진 텍사스주 에딘버그에 살면서 태권도를 가르치며 생계를 유지했다. 내게는 아버지가 공중을 날아 말굽차기를 하는 사진이 있다. 아버지의 팔과 다리가 앞으로 쭉 뻗어있고, 눈으로 단련된 발로 사람들이 붙들고 있는 나무판을 부수는 장면이다.
일 년 후에 아버지는 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캘리포니아의) 포모나 대학교에 편입했다. (포모나 대학교의 옆 동네인) 캘리포니아주 아주사로 떠나는 아버지에게 텍사스의 태권도장 학생들은 카우보이 모자와 카우보이 부츠를 선물로 주었다. 아버지는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던 훗날의 내 어머니를 만났다. 푸른 눈과 금발의 미국 여성이었다. 어머니는 당시 LA의 공립학교에서 가정경제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였고, 아버지의 위층에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어느 날 아파트에 속한 수영장 옆에서 음식을 차려두고 파티를 열었는데, 아버지는 초대받지 않은 그 파티에 무작정 찾아갔다. 당시 아버지는 당시 두 명의 한국계 공대생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세 명 중에서 요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파티 음식을 먹고 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어머니가 "이름이..?" 하고 물었다.
"척Chuck이요"하고 아버지가 대답했다. "댁이랑 같은 교회에 출석해요."
"그래요?" 어머니가 물었다.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요?"
"저는 옆문으로 들어가서 뒤에 서 있어요."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그 주 일요일, 어머니는 차를 태워주겠다는 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 후로 몇 달 동안 함께 차를 타고 교회에 갔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는 이제 LA에서 태권도를 가르쳤고, 학생 중에는 유명인들도 있었다. (영화배우) 피터 폰다는 내 어머니와 같은 이름의 여동생 제인과 소개팅을 시켜주기도 했다. 아버지는 여자를 만나고 집에 돌아오다가 어머니의 아파트에 불이 켜있으면 문을 두드리고 찾아가서 오늘 데이트는 어땠는지 이야기해주곤 했다. 아버지의 데이트는 전부 신통치 않았다고 한다. 당시 어머니 역시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 남자친구는 멀리 떨어진 듀크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머니의 생일에 분홍색 장미꽃 열두 송이를 보내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 저녁 아버지가 어머니 집 문 앞에 나타났다.
"집에 앉아서 장미 향기나 즐길래요, 아니면 내가 술 한 잔 살까요?"
아버지는 어머니를 어느 재즈 클럽에 데리고 갔다고 한다. 그런데 두 사람이 클럽에 입장하는 순간 밴드가 'Happy Birthday'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수석 웨이터는 무대 바로 앞 테이블로 안내하며 얼음에 넣은 샴페인을 한 병 가져왔다. 밴드가 생일축하 노래를 어머니의 이름을 넣어 부르는 걸 듣고 어머니는 웃으며 "내가 싫다고 했으면 어쩔 뻔했어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버지가 "하지만 승낙했잖아요"라고 말하며 어머니가 앉도록 의자를 빼주었다.

2. 아시안 혐오를 이야기하는 한국계 작가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알렉산더 지는 한국계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렇게 혼혈인 경우 백인처럼 보이기도 하고 유색인종으로 보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팬이 많은 말콤 글래드웰은 백인 아버지와 자메이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니던 젊은 시절에는 다들 백인으로 알았다가 머리를 기르자 경찰이 (흑인으로 생각하고) 불러세우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알렉산더 지의 젊은 시절 사진은 아시안으로 보이는데, 나이가 든 후에는 백인으로 보인다. '아시안 혐오는 미국의 인종 문제에서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해야 한다'는 글은 또 다른 한국계 작가인 캐시 박 홍Cathy Park Hong과의 대담을 글로 옮긴 건데, 여기에는 이렇게 백인과 아시안의 정체성을 모두 가진 혼혈 아들이 미국에서 자라면서 백인으로 행동하던 시절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그게 세대 별로 다르다고 한다. X세대에 속한 한국계들이 그렇게 자랐다면, 그들의 자식 세대인 지금의 Z세대는 한국피가 4분의 1만 섞였는데도 아시아계임을 자랑스럽게 밝히고 그 문화를 배우려고 한다며 격세지감을 이야기한다.

알렉산더 지는 인스타그램트위터에도 꽤 열심이다. 방문해보고 팔로우해보는 것도 추천.

3.  퀴어 정체성

알렉산더 지는 남성이지만 아시아계인 동시에 게이다. 미국에서 흔히 말하는 '더블 마이너리티double-minority'에 해당한다. 그런 그가 대학에 입학한 건 1980년대 말이었다. 1980년대 미국에서는 AIDS가 가장 큰 사회적 문제 중 하나로 대두되었고, 성 소수자들은 자신들을 불치병 보균자, 기독교 성경에서의 '죄인'으로 보는 미국 주류사회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당시 성 소수자들의 인권운동 단체로 가장 유명했던 곳은 ACT UP(AIDS Coalition to Unleash Power)였고, 알렉산더 지는 자신이 작가로 성장하던 시절을 이야기하는 이 인터뷰에서 자신이 대학생 때와 대학 졸업 후에 이 단체와 관련된 활동을 했던 일을 회상한다. 참고로, ACT UP의 설립자는 래리 크레이머로, (팬데믹으로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앤서니 파우치 박사가 젊은 시절 에이즈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인물이다. 크레이머는 파우치 박사를 비난하다가 결국 그의 진지한 태도에 감동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친구로 지낸 이야기는 유명하다.

4. 다시 아버지의 이야기

내가 알렉산더 지에 대해 알게 된 글은 GQ에 실린 '내가 아버지가 가르쳐준, 미국에서 나를 보호하는 법'이다. 앞서 소개한 그의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의 아버지는 미국에 건너와서 태권도를 가르치던 사람이다. 그런 아버지가 무술에 그다지 소질이 없고, 책을 좋아하는 아들이 학교에서 아시아계라는 이유로 놀림감이 되고 차별을 받을 때마다 어떻게 대응하라고 했을까?

그의 아버지는 인종차별적, 인종 혐오적인 대우를 받을 때는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그 차별과 혐오에 힘을 실어준다는 생각이었다. "무술의 진정한 유단자는 힘을 쓰지 않고 피하는 법을 사용한다"는 태권도 사범다운 태도였지만 알렉산더 지는 아버지와 반대로 살아왔다.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아버지는 인종차별을 피하는 쪽을 택했지만, 말과 글을 사용하는 아들은 목소리를 높여 성 소수자, 아시아계를 향한 혐오와 차별에 항거했다.

하지만 알렉산더 지와 그의 아버지의 서로 다른 태도는 이민 1세와 2세에게 나타나는 아주 전형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도계 미국 코미디언 핫산 민하지는 넷플릭스 스페셜 '홈커밍 킹Homecoming King'에서 인종차별 앞에서 아버지가 어떤 태도를 보였고, 미국에서 태어난 자신은 왜 거기에 동의할 수 없었는지 이야기한다. 이 대목은 꼭 한 번 보시길:

5. 알렉산더 지의 작품들

찾아보니 그의 작품 중 '자전소설 쓰는 법'과 자전적 소설 '에든버러'는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