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특파원의 기록: 수하일 샤힌 ①
• 댓글 1개 보기3년 6개월의 워싱턴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서울에 복귀했다. 평소 신선한 시각과 관점을 담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큰 도움을 받았던 박상현 님으로부터 특파원 시절의 취재기를 오터레터에 싣고 싶다는 제안을 받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레거시 미디어 기자가 외부 기고를 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만 미국 사회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을 받았던 분의 제안이었던 만큼, 작은 보답 차원에서라도 몇 가지 취재 사례를 정리하게 됐다. 마침 관련 내용을 책으로 쓰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 내용 가운데 일부이기도 하다. 이 글은 취재 무용담이라기보다는 미국의 심장부 워싱턴에서, 어떤 방식으로 현장 취재를 했는지 복기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취재를 하는 방식에도 혁명적인 변화가 있었다. 특파원을 꿈꾸는 후배 기자들이나 미래 언론인 지망생, 국제 뉴스에 관심 있는 분들이 워싱턴 현장 분위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싣는다.
미군의 아프간 철군 과정은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큰 오점을 남긴 사건이었다. 공항을 빠져나가려는 수송기에 사람들이 매달렸다가 떨어져 숨지는 참혹한 장면이 그대로 전 세계에 방송됐다. 베트남전 패배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에 미국인들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탈레반은 미지의 집단이었지만, 그 대변인 수하일 샤힌(Suhail Shaheen)은 외신들에게는 탈레반의 의중을 들어볼 수 있는 창구로 통했다. (그는 탈레반 정부가 지명한 유엔 주재 대사이지만, 실제 부임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이미 BBC, 알자지라, CNN, ABC, NBC, CBS 등은 물론 탈레반에 더 적대적인 Fox News에도 직접 출연해 탈레반의 입장을 설명한 바 있었다. 사건 초창기였던 8월 17일, BBC의 아프간 출신 여성 앵커 얄다 하킴(Yalda Hakim)에게 전화를 걸어 탈레반 입장을 설명했는데, 앵커가 난데없이 걸려온 전화를 받고 깜짝 놀라 생방송 중에 실제 통화를 연결해 라이브 방송을 긴박하게 진행한 바 있다.
과거 탈레반은 거의 북한에 맞먹을 정도로 미지의 영역이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샤힌 같은 인물들이 종횡무진 서방 언론에 출연하며 '우리 이상한 집단 아니다'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중이었다. 특히 그가 영어로 작성한 트위터는 탈레반이 국제 사회의 인정을 받는 국가를 만들고 싶어 한다는 의사를 명확히 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이스라엘 언론만 아니면 최대한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직접 트위터에 언급했다. 그렇다면 그와 접촉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아프간 피란민까지 받은 상황이어서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당사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와 접촉하는 방법을 찾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특히 워싱턴에서 원격으로 취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 기자들도 현지에서 샤힌 대변인 인터뷰를 하는 상황에서 우리라고 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었다. 그와 접촉할 수 있었던 단서를 잡은 것은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서 만났던 아프간 피란민 현장 취재에서다. 2021년 무더웠던 여름, 수하일 샤힌과의 인터뷰 과정을 담았다.
미국에 온 아프간 피란민, "인기가요하는 SBS 맞죠?"
2021년 8월 22일, 아비규환 상태의 카불 공항에서 탈출한 선발대가 지난 주말부터 워싱턴 D.C. 덜레스 공항으로 입국하기 시작했다. 로컬 뉴스의 보도를 보고 피란민들이 곧 입국한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는데, 덜레스 공항에 지인 배웅을 나갔다가 평소와 달리 공항에 히잡을 쓴 여성이 굉장히 많아졌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입국장 앞에는 적십자사에서 피란민들에게 구호품을 나눠주는 데스크가 마련돼 있었다. 일정표를 보니 정오쯤부터 중동에서 들어오는 비행기가 몇 개 있는 걸 확인하고는 혹시나 아프간 피란민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취재팀과 함께 촬영 장비를 챙겨 나와 입국장에서 ‘뻗치기’(방송계 은어로 인터뷰 대상자를 무작정 기다린다는 말)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이 정상적인 여행객처럼 들어오리라고 생각한 것 자체가 큰 실수였다. 카타르 도하에서 온 비행기에 피란민이 탔을 가능성이 제일 커보였는데, 2, 3시간이 지났는데도 피란민을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워싱턴 특파원들은 오후 3시가 넘어가면 한국 아침 뉴스를 준비해야하기 때문에, 이 시간 취재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이런 경우 철수하는 게 보통이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SBS 마이크를 보고는 공항에 피란민들을 마중 나온 아프간인들은 물론 중동의 다른 나라 사람들까지 하나둘씩 몰려들어 말을 걸기 시작했다. 보통 SBS 마이크를 본 백인들은 같은 이름의 호주 방송사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중동에서는 K팝 인기가 높아서인지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은 SBS를 ‘인기가요’를 방송하는 한국 방송사라고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들은 회사에서 일하면서 K팝 연예인을 본 적이 있는지, 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를 잔뜩 물어봤다. (방송국에서 일하기는 하지만, 공개홀이 따로 있는 SBS는 연예인들을 볼 기회가 그리 많지는 않다) 이들과 이런 얘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근하게 느껴졌다. 나도 아는 한에서 K팝 스타들의 동향(?)을 설명해줬더니, 이들도 자신들이 기다리는 아프간 피란민들의 입국 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줬다. 덜레스 공항 입국장 내부에는 카불에서 탈출한 200명이 대기하고 있지만, 입국 수속에 시간이 걸리는 것뿐이었다. 피란민들이 바깥에 있는 지인들에게 현재 상황을 메시지로 보내줬고 그걸 그대로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피란민들도 언제 어떻게 나올지 정확한 정보가 없었다.
입국 대기 중인 2백 명을 두고 그냥 갈 수는 없었다. 기약도 없이 무작정 기다리기는 했지만, 가족과 친구를 기다리던 아프간인들이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얘기를 해줘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히잡을 쓴 소녀 3명이 카불에서 탈출한 친구를 마중 나왔는데, 이들은 여성을 사람 취급 안하는 탈레반의 무자비한 행태에 대해서 극도의 적개심과 분노를 표시했다. 아프간에서 여성은 그냥 죽은 목숨이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또 다른 아프간 남성은 영어를 거의 못했지만, 같이 나온 다른 젊은 남성에게 통역을 해달라고 하면서 지금 카불 공항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줬다. 이들은 페이스북과 왓츠앱, 바이버 등에 만들어진 아프간인들의 단체 채팅방을 통해서 현지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받고 있었다. 아프간뿐만 아니라 파키스탄이 고향인 사람들과도 일부 얘기를 나눴는데, 잘 몰랐던 파키스탄의 정치 상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유익했다. 한 파키스탄계 미국인은 친척들 사이 K팝이 대단한 인기라고 했는데, 사진 찍어서 친척들에게 보내주고 싶다고 해서 기념 촬영에도 응해줬다.
저녁 먹을 시간이 조금 지나자 CNN과 Fox 지역 채널 카메라 팀이 등장했다. 이들도 피란민들이 언제 나올지 정보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는데, 센터에서 지휘하는 PD가 오후 늦게 피란민들 입국 소식을 듣고 현장에 나가 뻗치기를 하라고 했기 때문에 일단 여기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오후에 국방부 브리핑에서 덜레스 공항에 지난 24시간동안 아프간 피란민 태운 비행기 세편이 내렸다고 발표한 걸 보고 공항에 나온 듯했다. 졸지에 한국 언론 대표로 외신들과 현장에서 같이 대기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CNN은 라이브 방송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영상을 라이브 송출하면 센터에서 보고 기사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정규 방송에 바로 화면을 띄워서 앵커가 진행을 한다고 설명해줬다. 혼자 나와서 인터뷰도 하고 영상도 찍으면서 라이브 송출도 하는데, 멀티 플레이가 대단하기도 했지만, 사실 취재의 밀도가 높을 수는 없었다. 대충 쑥 훑으면서 찍고 빠지는 수준이었다. 입국장 내부에 카불에서 탈출한 200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는데, '와우'라며 짧은 감탄사를 낼 정도로 놀라더니 위에 전화 보고를 하고는 이들도 결국 못가고 현장에 같이 묶여 있게 됐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들이 못 가게 발을 묶어버린 물귀신이 돼 버렸다.
속절없이 시간이 지나고 밤 10시가 넘어갔는데, 젊은 아프간인들이 꽤 많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페이스북 아프간 그룹을 통해 통역 자원 봉사가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고 뛰어 나온 사람들이었다. 오후에 있던 적십자 직원들까지 다시 나와 구호 물품을 점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입국장 밖으로 나오는 게 정말 얼마 안 남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이들은 새벽 1시 반이 넘어서야 하나 둘씩 입국장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총맞아 죽는 걸 봤다"
아프간에서 온 사람들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오랫동안 제대로 못 먹고, 못 씻은 티가 확연한 데다, 핸드 캐리 가방을 한 개라도 든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냥 배낭 하나 정도를 가지고 사실상 몸만 비행기에 싣고 온 사람들이었다. 여기 저기 감격적인 재회 장면을 볼 수 있었는데, 입국자들과 가족들은 드디어 살아 돌아왔다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서로 부둥켜안고 감격적인 재회를 하는 장면을 보는데도 코끝이 시큰해졌다. 지옥 같은 곳에서 돌아온 이들의 마음고생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아이들은 적십자사에서 나눠준 물과 과자를 먹으며 행복해했다.
인터뷰에 응한 선발대는 모두 미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거나 시민권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도착한 사람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비자가 없는 서류 미비자가 워낙 많아서 이렇게 늦게 내린 거라는 설명을 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피란민들은 공통적으로 공항까지 가는 길이 너무 위험했고, 공항 내부로 진입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고 증언했다. 자신의 영주권, 시민권 서류를 들고 흔들며 공항 내부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애원했고 미군의 도움으로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거의 전부 미군을 돕는 직업을 가졌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영어에 능통했고, 미군들과 소통하는데도 큰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탈출하지 않으면 탈레반의 보복 1순위라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만난 젊은 청년 마이완드는 공항 외곽에서 사람이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을 자신의 눈으로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현재 카불 공항 내부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지만, 공항 외부는 탈레반이 지배하는 기묘한 상황이었다. 탈레반들은 인파가 몰리면 기분 내키는 대로 총질을 하고 수류탄까지 던지는 상황이라고 했는데,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고 설명했다. 마이완드는 본인이 직접 촬영한 미군 수송기 C17 내부와 카타르 대기 시설 사진도 보내줬는데, 모두 사람들로 가득한 상태였다. 수송기 사진은 2/3쯤 찬 사진이라고 했는데 이륙 때는 700-800명이 탑승해 발 디딜 틈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마이완드의 아버지는 탈레반이 총질을 할 때 파편에 맞아 눈 주위에 큰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촬영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 찍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피란민 가운데 다친 사람들을 확인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쿠르 씨는 공항에 상당히 초창기에 진입한 사람이었다. 그는 첫 수송기가 이륙할 때 사람들이 매달려 추락사했던 비극적인 현장에 있었다. 당시 활주로에 남녀노소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수송기 어떤 부분이든 붙잡고 매달렸는데, 결국 일부는 그대로 비행기와 함께 올라갔다가 추락사했다고 당시 상황을 담담하게 진술했다. 본인도 시신을 봤다고 덧붙였다. 사쿠르 씨는 다행히 일가족을 모두 데리고 나올 수 있었는데, 지치고 힘들어보였지만 무사히 나온 걸 진심으로 신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아프간 여성인 앗시아 씨는 공항에 몰려든 사람들은 살기 위해 간 거라고 설명했다. 출국에 필요한 서류도 없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일단 살기 위해 미국으로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공항 주위에 있는 거라고 설명해줬다.
최근 한국 영화 모가디슈를 봐서 그런지 이들의 증언이 더 생생하게 와 닿았는데, 모가디슈보다 더 영화처럼 들렸다. 공항으로 목숨을 걸고 가서, 탈레반의 감시를 뚫고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는 건 정말 영화 같은 일이었다. 이런 비극적인 일이 21세기에 실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더 참담하게 느껴졌다.
('워싱턴 특파원의 기록: 수하일 샤힌 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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