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에서 이야기했던 세 명의 후보 중 (FBI 국장 후보 캐시 파텔을 제외한) 두 사람은 상원의 인준을 통과하지 못한다고 해도 트럼프에게는 특별히 나쁜 일이 아니다. 트럼프가 받은 FBI 조사에 대한 보복을 포함해 트럼프의 명령을 이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파텔과 달리, 털시 개버드와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는 민주당을 나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데 도움을 준 것에 대한 보답, 혹은 거래의 성격으로 고위직을 약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공화당 상원의원들 중에서 이탈 표가 발생해 이들이 인준되지 못할 경우, 트럼프는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자기의 어젠다를 막는 구세력의 방해라고 공격할 핑계가 하나 더 생길 뿐이다. 공개 지지에 대한 보답은 지명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미국의 정치 제도를 바꾸려는 트럼프가 가장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인물은 의회의 인준을 거치지도 않은 일론 머스크다. 잘 알려진 것처럼, 머스크는 대선 기간 후반부에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로 변신해 트럼프의 취임과 함께 정부효율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 DOGE)라는 신설 정부 기관을 이끌게 되었다. 정부효율부는 이름에서 풍기는 것과 달리 연방법에 근거한 기관이 아니다. 공식 정부 기관으로서의 부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트럼프는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통해 임시 조직의 형태로 정부효율부를 만들고, 머스크에게 "특수 공무원(special government employee)"의 자격으로 일할 수 있게 했다.

세계 최고의 부자이면서 테슬라, 스페이스X 등의 크고 중요한 사업체를 운영해야 하는 머스크가 (게임을 좋아하는 그는 "내가 리그오브레전드를 하면 우주 프로그램에 지장이 생긴다"고 한 적이 있다) 왜 아까운 시간을 할애해서 임시 공무원이 되기로 했을까?

이미지 출처: Yahoo

어느 기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오픈AI의 샘 올트먼이—한 때 친구였다가 지금은 적이 된—일론 머스크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일론은 세상을 구원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단, 자기가 구원자가 될 경우에 한해서.' 저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해요. 머스크는 인류의 종말 같은 문제를 걱정하고, 자기가 그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머스크는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자기 사업과 관련해) 실질적인 걱정을 합니다. 그는 '카멀라 해리스가 대통령이 되면 테슬라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다녔습니다. 자기가 세운 사업체의 미래가 달린 문제라는 거죠."

머스크의 말만 들으면 마치 카멀라 해리스와 민주당이 머스크의 사업을 위협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머스크는 자기가 하고 싶은 사업을 마음대로 하는 데 방해가 되는 정부의 규제를 없애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머스크는 연방항공청(FAA)의 허가도 받지 않고 스페이스X 로켓을 발사했을 뿐 아니라, 스페이스X의 통제관들이 거쳐야 하는 안전 점검도 건너뛰고, 허가받지 않은 업체에서 로켓 연료를 조달했고, 발사장 주변의 생태계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등 온갖 문제로 조사를 받고 있다.

그가 테슬라를 이끌면서 캘리포니아 주정부와 빚었던 갈등은 앞으로 다가올 문제에 비하면 우스운 수준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초 머스크의 심각한 마약 복용 습관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적이 있다. 개인의 자격으로 마약을 복용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스페이스X가 미국의 방위업체이기 때문에 관련자의 마약 복용은 방산업체 자격을 박탈당할 수 있는 정도로 심각한 문제다. 따라서 머스크로서는 트럼프의 당선이 아주, 아주 절실했다. 그가 선거운동 중에 트럼프가 패하면 자기는 끝이라고 말한 건 과장이지만, 아주 과장은 아니었을 거다.

이미지 출처: PBS Wisconsin

일론 머스크가 보기에는 트럼프가 당선되는 걸로 문제의 끝이 아니다. 그는 자기를 방해하는 규제를 만들어 내는 정부 조직을 악의 근원으로 생각하고, 공무원을 악당이라고 믿는다. 그런 생각으로 연방 정부를 파괴하려는 머스크와 연방 정부에 자기를 싫어하는 "딥스테이트"가 존재한다고 믿는 트럼프는 동일한 이해관계에 있고, 따라서 트럼프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일론 머스크가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두고 있다.

미국 라이스 대학교에서 대통령사를 연구하는 더글러스 브링클리(Douglas Brinkley) 교수는 현재 머스크가 무슨 일을 해도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미국의 가장 기초적인 제도(기관)가 무너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라고 했다.

카멀라 해리스의 러닝메이트였던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가 소셜미디어에서 "일론 머스크는 끔찍한 대통령"이라고 말한 것은 현재 미국 정부를 파괴하며 가장 많은 뉴스를 만들어 내고 있는 머스크가 사실상 대통령처럼 행동하고 있음을 비꼰 것이다.

일론 머스크가 진행하고 있는 미국 정부 허물기 작업 중에서 현재 가장 큰 논란이 되는 것은 미국국제개발처(USAID) 폐지다. 머스크는 미국의 해외 원조를 담당해 온 국제개발처를 "범죄 조직"이라 부르면서, 수천 명에 달하는 부처 공무원들에게 이메일로 해고를 통보했다. 그리고 자기가 소유한 소셜미디어 X에 "주말에 파티에 갈 수도 있었지만, 미국국제개발처를 목재 파쇄기에 넣는 데 보냈다"고 자랑했다.

뉴욕타임즈는 기사에서 머스크가 이렇게 정부 기관을 폐쇄하는 작업을 X나 스페이스X 같은 자기 소유의 기업에서 일하는 젊은 엔지니어들에게 맡기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공식 출입증도 발급받지 않은 20대 초중반의 젊은 엔지니어들(그중에는 19살짜리도 있다)을 데리고 정부 건물에 들어와 정부 기록을 마구 뒤지며 마치 점령군처럼 행동하는 중이다. 의회로부터 아무런 권한을 부여받지 않은 머스크가 연간 5조 달러를 집행하는 재무부의 결제시스템을 들여다보겠다고 요구하자 스캇 베센트 재무장관이 안 된다고 버텼지만,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물론 머스크가 데리고 온 실무자들이 형식적으로나마 재무부에 고용되는 절차를 거쳤고, 재무부에는 결제내역을 읽기만 가능한 권한을 주었지만, 전례도 없고, 절차도 무시한 행위다. "미국에서 지금 쿠데타가 진행 중이다"라는 말이 나오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머스크가 폐쇄를 명령한 워싱턴의 국제개발처 본부 앞에서 항의 성명을 발표하는 민주당 의원들
이미지 출처: Tennessee Lookout

뉴욕타임즈는 머스크가 지금 벌이고 있는 일이 트위터를 인수한 직후에 했던 것과 똑같다고 설명한다. 다짜고짜 들어와 역할의 경중에 상관없이 닥치는 대로 해고를 했던 일 말이다. 사실 머스크의 그런 행동은 트위터 때가 처음이 아니다. 그는 테슬라를 인수(머스크의 주장과 달리 그는 테슬라 설립자가 아니다)한 후에도 그랬고, 스페이스X를 경영할 때도 그랬다.

머스크가 자랑스럽게 하고,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회자되는 말이 있다. "지나치게 없애서 없앤 것의 최소 10%를 되돌려 놓게 되지 않는다면 충분히 없애지 않은 것"이라는 그의 지론이다.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없앤 후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좋은 거고, 문제가 생기면 필요한 존재였으니 되돌리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가 없애는 대상은 때로는 로켓의 부품이기도 하고, 자기 회사의 직원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가 트위터 본사에 들어오자마자 해고해 버린 직원 중에는 나중에 "다시 입사하지 않겠느냐"는 이메일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

기업가인 머스크는 미국의 정부도 그렇게 작동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트럼프는 머스크가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둔 상태다.


마이크 브록(Mike Brock)이 자기 블로그테크더트에 쓴 "A Coup Is In Progress In America(미국에서는 쿠데타가 진행 중이다)"는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한번 읽어 봐야 할 글이다. 브록은 미국 헌법은 단순히 정부의 시스템이 아니라, 이성과 법에 의한 자치(self-governance)를 이룩하는 인류의 실험이라면서, 미국을 건국한 사람들은 '개인의 권력이 아닌 법에 통제를 받는 정부'라는 인류 최초의 실험을 시작한 것이고, 그 이후로 미국은 핏값을 치르며 이 제도를 지켜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처럼 선출되지 않은 민간인이 재부무의 결제 시스템에 들어가고, 공무원이 법에 근거해서 받아야 할 (DEI 관련) 교육을 받았다고 징계를 받는 일은 단순히 정부 정책의 변화의 결과가 아니라, 헌법에 기반한 정부를 해체하고, 그 자리에 개인에 충성하는 시스템을 세우려는 계획적인 시도라는 게 브록의 주장이다. 비록 거리에 탱크가 돌아다니거나, 정부 건물에 군인이 들어가는 가는 식으로 벌어지지 않아도 이건 엄연한 쿠데타, 어쩌면 더 무섭고 체계적인 쿠데타라는 것.

"우리는 민주주의가 무섭고 위험한 다른 제도로 변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 중이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조심스러움이 아니라, 공모(共謀)다. 나는 미국 국민이 지금 일어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에 망설이는 이유를 안다. 쿠데타가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건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두 눈을 똑똑히 뜨고 현실을 봐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는 명백히 불법적인 수단을 통해 연방정부의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탈취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