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는 지난 6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작전을 감행했다. 현재 러시아의 침략을 막아내고 있는 동부와 남부에서 병력을 빼내 북부 접경지 러시아 영토 쿠르스크로 진격, 점령한 것이다. 물론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영토(아래 작은 지도에서 붉게 표시된 지역)과는 비교도 안 되게 작은 지역이지만, 서울 면적의 약 2배가 되는 러시아의 땅—약 80개 이상의 러시아 마을 포함—을 우크라이나가 점령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우크라이나가 점령한 러시아 영토의 크기와 위치 (이미지 출처: Barrons/AFP)

그런데 이 일이 놀라운 건 러시아의 공격을 막아내기에도 벅찬 우크라이나 정규군이 올린 전과라서만이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2022년 2월에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면서 "러시아 본토 침략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에 언론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진격에 놀랐다. 우크라이나는 왜 이런 대범한 일을 벌였을까?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처럼 휴전, 정전을 염두에 두고 영토를 교환하기 위한 포석일까?

뉴욕타임즈의 키이우 특파원인 앤드류 크레이머(Andrew Kramer) 기자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이 작전에 무려 1만 명의 병력을 투입했다고 한다. 이런 대대적인 작전을 준비하는 동안 러시아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은 러시아의 첩보 능력에 문제가 있음을 말해주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이야기한다) 어쨌거나 이들은 러시아 국경을 넘자마자 고속도로를 달려 러시아 마을들을 빠르게 점령했다. 미국은 과연 이를 알고 있었을까?

젤렌스키는 미국에게는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전혀 몰랐다고 보기는 힘들다. 전쟁의 양상을 심각하게 바꾸는 행동을 우크라이나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 진격이 알려진 후에 나온 반응이 그런 의심을 더 짙게 만든다. 미국과 독일은 우크라이나가 (서방 국가에게서 제공받은) 무기를 사용해도 되는 기준을 충족한다고 했고, 진격 소식이 들린 후에 당황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젤렌스키가 공식적으로 통보하지만 않았을 뿐, 서방 국가들은 상황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인상을 준다.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제공받은 무기를 "국경 지대"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이미 허가한 상태다. 이는 러시아가 지난 5월, 하르키우에서 공세 작전을 펴면서 우크라이나 북동부의 많은 지역을 점령하면서 내려진 결정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마음껏 공격을 하면서도 우크라이나가 (확전을 두려워하는 서방 국가들이 내건 조건에 따라) 영토를 침략해 들어오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건 우크라이나에게 크게 불리한 조건이었기 때문에,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깊숙히 침공하지 않는 한 러시아 영토를 향해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허용한 거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들어가도 되는 "국경 지대"라는 것의 정의는 분명하지 않다. 미국의 반응을 보면 현재 우크라이나가 점령한 규모는 국경 지대라고 유권해석을 내린 듯하다.
쿠르스크 지역에서 파괴된 러시아군의 차량들 (이미지 출처: The Guardian)

우크라이나의 의도

그렇다면 우크라이나는 무엇을 노리고 러시아 국경을 넘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현재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남부와 동부 전선에서 러시아군의 압력을 줄이는 것이다. 푸틴은 러시아 국민들에게 이번 전쟁을 러시아의 영토를 서방 국가들의 침략 위협으로부터 지키는 전쟁으로 묘사해왔다. 따라서 본토가 침략당하는 건 절대로 피하고 싶을 것이고, 쿠르스크 지역으로 파병할 수 밖에 없을 거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하지만 길어지는 전쟁으로 병력이 부족한 러시아군은 결국 현재 우크라이나 동부, 남부에서 싸우고 있는 병력을 보내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그 지역에서 러시아군을 맞서는 우크라이나군이 숨을 돌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국경을 넘은 지 2주가 넘은 현재, 러시아군의 대응은 그런 기대와는 다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주력군에 해당하는 우크라이나 동부, 남부 전선의 병력이 대규모로 이동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게다가 오히려 동부 전선에서 러시아의 공격은 더욱 거세어졌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또 다른 목적은 러시아 국민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푸틴은 "러시아의 보호자"라는 역할을 자기의 브랜드로 삼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 국경이 뚫렸다는 것은 푸틴을 안방에서 흔들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된다. 그렇다면 이 의도는 성공했을까?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지 않다. 앤드류 크레이머 기자는 푸틴이 언론을 장악한 독재자임을 감안하면, 쿠르스크에서 일어난 일이 자기에게 불리하게 사용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거라고 한다. 현재까지 푸틴 입에서 나온 언급은 쿠르스크 지역에 "테러리스트들"이 벌인 "대규모의 도발"이 있었다는 것이 전부이고, 현재 러시아 언론은 우크라이나의 쿠르스크 침공을 마치 그 지역이 자연 재해를 겪고 있는 것처럼 (피난민에게) 구호품을 보내고 "쿠르스크를 위해 기도하자"는 모호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게 기습을 허용한 건 푸틴에게 치욕스러운 일이지만, 그건 푸틴이 이 사태를 그렇게 받아들일 때만 그렇다. 푸틴이 10월 1일까지 쿠르스크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을 몰아내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보도는 있지만,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결국 현재 상황은 러시아에서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있고, 그 결과 우크라이나가 점령지를 강화하는 모양새다.

우크라이나군은 쿠르스크 지역에서 철도와 교량을 파괴하며 러시아의 보급로를 끊고 있다. (이미지 출처: BBC)

여기에 세 번째 분석이 있다. 러시아를 압박해서 종전 협상에 나오게 하거나, 지금 당장 협상이 이뤄지지 않아도 장기적으로 쿠르스크 점령지를 협상 카드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미국의 외교 전문가 웨스 미첼(A. Wess Mitchell)은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글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러시아를 압박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경제적 제재가 아니라 "땅(soil)"이라는 것이다.

"동유럽에서 일어난 전쟁들의 마지막 단계에서 영토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거 러시아가 전쟁 후에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협상 조건을 강요하지 않았던 건 상대방이 러시아 영토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을 때 뿐이었다. 1921년 폴란드-소련 전쟁이 끝나갈 때, 폴란드군이 소련 영토의 일부를 차지한 다음에야 서쪽으로의 진군을 멈췄다. 그와 반대로, 핀란드와 벌였던 (1939~40년) 겨울전쟁에서는 핀란드가 군사적으로는 성공적인 전쟁을 치렀지만 소련의 영토는 차지하지 못했고, 그 결과 소련이 핀란드의 영토을 상당 부분 빼앗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따라서 서방 세계는 우크라이나가 쿠르스크 지역을 놓치지 않고 유지하게 도와야 한다는 게 미첼의 생각이다.  

하지만 뉴욕타임즈의 데이비드 프렌치(David French)는 쿠르스크 점령지가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는 건, 적어도 현 단계에서는 성급한 기대라고 경고한다. 우크라이나가 점령지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정확한 의도도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짙은 "전쟁의 안개(the fog of war)" 때문에 누구도 함부로 전망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가 이 지역을 점령한 것이 당장 이 전쟁의 향방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같은 신문의 다른 기사에서도 초기의 작전 성공을 성급하게 축하하면 안된다면서 "우크라이나는 빠르지만, 러시아는 더 크다(Ukraine is nimble, but Russia is bigger)"고 한다. 우크라이나군이 점령지에 참호를 비롯한 방어선을 구축하지 않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우크라이나는 비대칭 전쟁(asymmetrical war)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몰라도, 러시아가 막강한 무기와 병력을 동원할 경우 일대일 대응은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정말 병력을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꺼내 쓸 수 있는 나라일까? 이 부분을 지적하는 분석이 있다. 우크라이나의 쿠르스크 진격이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현재 푸틴의 정치적 취약점 공략이라는 것이다.


'젤렌스키의 계산 ②'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