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의 트럼프 사랑
• 댓글 3개 보기폴 토머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 감독의 2007년 작품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에는 다양한 갈등 관계가 등장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연기한 석유 채굴업자 대니얼 플레인뷰와 폴 데이노가 연기한 목사 일라이 선데이 사이의 지독한 반목이다. 아무도 흉내 내기 힘들 것 같은 두 배우의 연기가 보여주는 이 갈등과 증오의 핵심은 이 두 인물이 상대방이 가짜라는 것을 서로 알아 본다는 데 있다. 사람들 앞에서는 점잖은 사업가, 목사처럼 행동하지만 둘 다 똑같이 돈과 권력을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할 인간이라는 것을 잘 아는 두 사람은 그 약점을 이용해 서로의 팔을 비틀어 이익을 챙기려 한다.
이 영화를 두고 반기독교적인 영화라고 하는 건 무리지만, 복음주의 기독교(Evangelical Christianity)에 대해 비판적인 영화인 건 맞다. 좀 더 정확하게는 미국의 석유 재벌과 그들의 돈을 받아 성장한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다.
지난 월요일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열린 공화당 경선(코커스)은 시작한 지 30분 만에 "도널드 트럼프의 압승"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트럼프는 그동안 아이오와에서 보여준 지지율을 그대로 반영하는 51%의 표를 얻어 각각 21%, 19%를 기록한 론 드산티스, 니키 헤일리를 멀찍이 떨어뜨리며 승리했다. 평소의 지지율을 생각하면 트럼프의 아이오와 경선 승리는 전혀 놀라울 게 없지만, 아이오와주에서 트럼프가 50%가 넘는 지지를 받고 있다는 건 사실 놀라운 일이다.
트럼프 지지자의 인구학적 특성을 "백인, 저학력, 농촌 인구"라고 규정한다면 아이오와주는 완벽한 트럼프의 표밭이다. 주 전체 면적의 85%가 농지고, 미국에서 옥수수, 콩, 돼지고기, 달걀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주다. 하지만 아이오와가 원래부터 트럼프를 지지하는 주는 아니었다. 트럼프가 미국 정치에서 돌풍을 일으킨 2016년, 공화당 아이오와주 경선에서 승리한 후보는 트럼프가 아니라 텍사스의 테드 크루즈였다. 그 비결은 마치 부흥회를 연상케 하는 크루즈의 선거운동에 있었다.
아이오와주를 이야기할 때 보수 기독교, 즉 복음주의 기독교를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의 복음주의 기독교가 워싱턴 정치에 모습을 드러낸 건 독실한 기독교 신자임을 밝힌 지미 카터 대통령(1977~1981) 때였지만,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대가로 정책을 요구하는 노골적인 거래를 통해 정치 세력화한 것은 로널드 레이건(1981~1989) 때다. 레이건은 많은 신자들의 표를 가지고 협상했던 복음주의 목사들에게 정치적 약속을 하고 지원을 받아 당선에 성공했지만,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고, 임기 내내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지냈다. 레이건이 약속을 충분히 이행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목사들은 더욱더 치밀한 방법으로 정치에 개입했고, 그 이후로 어떤 미국 대통령, 어떤 대통령 후보도 기독교 세력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도 예외일 수 없었다. 임신 중지와 관련해서 여성의 선택을 존중하는 진보적인 '프로초이스(pro-choice)' 입장이었음에도—그래서 많은 보수 기독교인의 미움을 받았음에도—불구하고 자신이 신앙인임을 강조하면서 기독교인들을 헷갈리게 했던 이유는 미국은 대통령이 기독교 세력을 무시하거나 등지고 정치를 할 수 있는 나라가 더 이상 아니었기 때문이다.
2008년, 버락 오바마가 대선에 나섰을 때는 그가 다니는 (혹은 다닌다고 말했던) 교회의 목사가 "9/11 테러가 일어난 원인은 미국에 있다"면서 "God damn America (God bless America, 하나님, 미국을 축복하소서, 라는 말을 뒤집어 저주하라는 표현)"라는 말을 설교 시간에 했던 사실이 큰 문제가 되었다. 가뜩이나 오바마의 미들네임(후세인)과 옛날 사진으로 그가 무슬림이라는 가짜 뉴스가 퍼지던 시점이었다. 평소 교회나 신앙 얘기를 거의 하지 않는 오바마가 "내가 잘 출석하지 않아서 그 설교를 모른다"라고 했으면 간단하게 해결되었을 일이었지만, 오바마는 끝까지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미국을 저주하는 설교를 듣고 있었다는 것보다 교회에 별로 가지 않는다는 말이 가지는 정치적 피해가 크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보수 (복음주의) 기독교 세력과 백악관이 가장 가깝고 사이가 좋았던 시절은 아버지와 아들 부시의 집권기, 특히 아들 조지 W. 부시의 집권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젊은 시절 술을 마시고 사고를 치면서 인생을 낭비하다가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인도로 "거듭난(born-again)" 기독교인이 되고 술을 끊은 것으로 유명하지만, 기독교가 부시에 미친 영향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미국 사회의 보수화를 이끄는 중요한 통로로 작용했다. 성소수자의 민권이나 여성의 임신 중지권과 같은 진보적인 사회 변화를 막은 것이 정치인들이 아니라, 그런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행사해 온 보수 기독교 단체와 목사들이라고 보는 게 맞다.
아랍 국가들과 무슬림 문화에 우호적인 오바마 정권 8년을 보낸 미국의 보수 기독교인들은 부시 정권과의 행복했던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렇게 해줄 걸 기대했던 후보인 젭 부시(조지 W. 부시의 동생)가 혜성처럼 등장한 트럼프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면서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정치적 영향력이 간절하게 필요하다고 해도 기독교적인 가치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고 공개석상에서 막말을 쏟아내는 트럼프를 지지할 수 없었던 복음주의 목사들을 재빠르게 공략한 후보가 테드 크루즈였던 거다. 그렇게 복음주의 목사들의 지지를 얻은 크루즈는 2016년 아이오와 경선에서 트럼프를 누르고 1위를 차지하며 기염을 토했다.
결과적으로 트럼프가 그해 공화당 전국 경선과 대선에서 모두 승리하며 대통령이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말하면 그렇게 막강한 트럼프를 아이오와의 복음주의 목사들이 막아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이오와에서 이기려면 복음주의 기독교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게 된 거다.
플로리다주지사 론 드산티스는 2016년의 테드 크루즈의 방법론을 베끼기로 했다.
드산티스는 플로리다에서 여성의 임신 중지를 아주 어렵게 만들고, 성소수자의 민권을 제한하고 그들을 공격하는 등 사회적 보수주의를 넘어 우익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에 이미 아이오와의 복음주의 목사들과 목표가 일치하고 있었다. 거기에 2016년 아이오와 경선에서 테드 크루즈를 1위로 만든 선거 전략가까지 영입해서 노골적으로 복음주의 목사들을 공략했지만, 승리는커녕 트럼프에 30% 차이로 패한 것이다.
그렇다고 목사들이 드산티스를 지지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아이오와 킹메이커"라는 별명을 가진 유명한 목사 밥 밴더 플라츠(Bob Vander Plaats)는 트럼프를 친구라고 부를 만큼 그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지만, "미국이 필요로 하는 건 신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지, 자기가 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면서 트럼프와 갈라서서 드산티스를 지지했다. 그를 비롯한 많은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목사들이 그렇게 드산티스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면서 자신의 설교를 듣는 아이오와주 기독교인들의 표를 끌어오려고 애썼다.
하지만 트럼프는 2016년에 아이오와에서 받았던 지지를 두 배 가까이 키우며 승리한 것이다.
글 서두에 이야기한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의 끝부분에서 목사 일라이 선데이는 석유가 묻힌 토지를 팔기 위해 대니얼 플레인뷰를 찾아갔다가 플레인뷰가 이미 그 옆에 있는 땅을 사서 선데이가 팔려고 하는 땅 밑에 있는 석유를 모조리 빨아들여 팔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화에서 아이오와주의 복음주의 목사들과 트럼프 사이의 관계를 연상시키는 여러 장면 중 가장 비극적인 장면이 이 대목이다. 목사들은 자기를 따르는 신자들을 기반으로 정치권과 거래를 시도하지만, 트럼프는 그 신자들을 자기 손에 넣은 지 오래다.
'트럼프는 어떻게 아이오와의 종교적 보수를 손에 넣었나 (How Trump Captured Iowa's Religious Right)'라는 글을 비롯한 최근의 분석을 보면 미국의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핵심은 1980년대부터 조지 W. 부시 정권 시절까지 이어지는 전통적인 보수 기독교 세력과 친트럼프 기독 보수와의 차이점이다. 추구하는 사회 정책이라는 점에서 이 둘을 보면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하지만 두 집단이 느끼는 위기의식은 다르다.
1980년대 미국의 복음주의 목사들은 정치에 무관심했던 기독교인들을 하나의 뚜렷한 견해를 가진 세력, 혹은 결집된 표밭으로 바꾸기 위해 세속주의(라는 번역어는 가치 판단이 들어간 느낌이라 적절치 않지만, 원래 secularism은 종교와 무관하고, 종교에서 분리된 것을 의미한다)를 "사악하고 악마적인" 세력으로 규정했다. 이 방법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렇게 해서 결집된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경제적인 이익과 반대되는 정치 세력에도 표를 몰아주는, 복음주의 목사들에게 유용한 무기가 된다.
그러나 상황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부시 대통령 집권 말기인 2006년 복음주의 기독교를 믿는 백인들은 미국 인구의 23%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14%로 줄어들었다. 이들은 이걸 아주 크고 실질적인 위기로 받아들인다. 부시 시절의 전성기가 끝났고, 이제는 집단의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하는 상황이라고 느낀다는 거다. 이렇게 패닉에 빠진 나이 든 백인 기독교인들의 귀를 사로잡는 말은 정치권과 가깝게 지내는 유명한 복음주의 목사의 말도, 이들의 지지를 받는 드산티스 주지사의 말도 아닌 트럼프의 말이다. 트럼프는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고, 악의 세력(=바이든 정권)이 자기를 잡아넣으려는 것은 결국 당신(지지자)을 향한 공격이라는 논리로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트럼프 지지자들과 프레퍼(preppers), 서바이벌리스트 문화가 겹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류 복음주의 목사들은 트럼프의 교만한 말과 행동을 기독교인답지 않다고 말하지만, 일반 신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선과 악이 대결하는 전쟁터에서 필요한 건 스트롱맨(strongman, 독재자)이라는 것. 트럼프를 반대하는 보수 기독교 목사들은 말하자면 자기가 파놓은 함정에 빠진 셈이다. 애초에 신자들을 정치세력화하기 위해 기독교는 세속주의에 포위되었다는 논리를 만들어 내 지난 수십 년 동안 가르쳐온 결과, 신자들은 정말로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잘 준비된 사람들의 표를 트럼프가 빨아들이면서 이제 보수 목사들의 영향력은 줄어들었다.
복음주의 목사들과 손잡고 과격한 사회적 보수 노선을 추구했던 드산티스 주지사의 전략적 실패도 두 가지 차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하나는 과격성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복음주의 목사들이 좋아하는 수준의 정책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임신 중지를 금지해도 임신 6주부터 금지하는 식의 과격한 정책은 지나치다는 것이고, 이는 트럼프도 다르지 않다. (이를 두고 드산티스가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과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있지만 비슷하다는 말도 있다. 둘 다 환영을 받지만, 주류가 되기 힘들다는 얘기다.)
다른 하나는 메시지의 전달 방식이다. 드산티스는 사회적 보수가 힘을 가졌고, 승리하고 있다는 투로 말하는데, 이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복음주의 기독교를 믿는 백인들의 수가 급감하고 있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태도가 아니다. 반면, 트럼프는 2016년의 트럼프는 상실(loss)의 메시지를 내세웠고, 2024년의 트럼프는 공포(fear)를 앞세우면서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불안감을 키운다. 게다가 트럼프가 조성하는 불안감은 로스 다우섯의 표현대로 "눈을 떼기 힘든 드라마(irresistable theater)"이기 때문에 흥행 가능성이 크다. 물론 트럼프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트럼프의 그런 메시지가 더 큰 반감을 일으키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복음주의 목사들에게서 세상을 상대로 영적인 싸움하라는 교육을 받아 온 보수 기독교인들에게 트럼프는 하나님이 보내준 보호자다.
아이오와주의 복음주의 목사들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트럼프는 그들이 만들어 낸 후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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