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미국 알래스카 항공 소속의 보잉 737 맥스 9 여객기가 이륙 후 동체에 구멍이 나는 사고가 발생했다. 떨어져 나간 부분은 원래 비상탈출구(door)로 설계된 곳이지만, 주문한 항공사가 원하지 않을 경우 문을 없애고 그 자리를 벽으로 바꾼다. '도어 플러그(door plug)'라고 불리는 이 부분은 원래 구멍이 있던 자리기 때문에 기압 차이를 버틸 수 있도록 여러 개의 고정 장치를 만든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이 고정 장치에 문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도어 플러그가 설치된 자리는 창문의 간격을 눈여겨 살피지 않으면 구분하기 힘들다. (이미지 출처: Reddit)

사고가 난 기종은 2018년과 2019년에 똑같은 이유로 추락 사고를 내 총 346명이 사망한 악명 높은 737 맥스 기종(추락 사고가 난 기종은 737 맥스 8이고, 이번에 사고가 난 건 737 맥스 9)이다. 아직 정확한 원인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여론은 좋지 않다. 과거 추락 사고 이후 보잉이 가진 구조적 문제가 드러났고, 수익을 위해 안전을 등한시했다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혼이 나고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느냐는 말이 나오는 건 당연해 보인다.

물론 이번 사고는 당시와는 전혀 다른 지점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같은 실수의 반복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보잉이 제작한 항공기의 결함은 궁극적으로 기업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지적이 있다. 흥미로운 건, 보잉은 원래 그런 회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보잉은 안전과 관련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신경 쓰는 최고의 엔지니어링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런 보잉이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이를 지적한 유명한 2019년 기사가 있다. 보잉의 사고 원인을 기업 문화의 변화에서 찾는 이 기사는 많은 다른 기사에서 인용되고 관련 위키피디아에서도 출처로 인용된다. 쉽고 흥미로우면서도 많은 교훈을 주기 때문에 내용을 쉽게 풀어서 옮겼다. 제목은 'The Long-Forgotten Flight That Sent Boeing Off Course (보잉이 항로를 이탈하게 만든, 지금은 잊혀진 그날의 비행)'이다.


2001년 5월 어느 날 아침, 보잉 737 여객기 한 대가 시애틀을 출발했다. 이 비행기는 훗날 보잉사의 운명을 바꾸게 될 비행기였지만, 하지만 조종간을 잡은 파일럿도, 승무원도 이 비행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이 받은 예상 목적지는 세 곳이었다. 콜로라도주 덴버, 텍사스주 댈러스, 그리고 일리노이주 시카고가 그 후보였다. 비행기에는 보잉사의 CEO 필 콘디트(Phil Condit)가 타고 있었고, 비행기가 완전히 이륙한 후 그가 도착 공항을 발표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건 홍보의 일환이었다. 본사 사무실과 공장이 모두 미국 서북부 워싱턴주 시애틀에 있던 보잉사가 그 둘을 분리하면서 본사가 들어설 후보지로 세 곳을 정해 심사했고, 최종 결정을 극적인 이벤트로 발표하기 위해 비행기가 이륙할 때까지 기다린 거다.

보잉의 선택은 시카고였다.

시카고 강 옆에 위치한 보잉의 본사 건물 (이미지 출처: Chicago Sun-Times)

보잉은 시애틀 기업이다. 시애틀의 대표 공항인 시애틀 타코마 국제공항(SEA)보다 시애틀에 더 가까운 킹 카운티 공항은 보잉이 비행기를 테스트하거나 납품할 때 이용하기 때문에 '보잉 필드(Boeing Field)'라 불린다. 시애틀은 보잉이 자랑하는 '엔지니어 문화'가 뿌리를 내린 곳이다. 무려 4만 명이 넘는 엔지니어들이 시애틀에 거주하면서 보잉으로 출퇴근하며 일한다. 당연히 비행기 조립도 시애틀 공장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보잉의 CEO 필 콘디트와 이사회 의장이었던 해리 스톤사이퍼(Harry Stonecipher)는 2001년, 경영진과 엔지니어들 사이에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고 결정했다. 그리고 그 거리는 시카고와 시애틀이라는 물리적 거리로 환산된다. 비행기로 무려 4시간 가까운 거리다.

(이미지 출처: Google Maps)

시애틀을 출발해 시카고 미드웨이 공항에 착륙한 737 여객기에서 내린 콘디트는 활주로에서 짤막한 발표를 한 후에 대기하고 있던 헬리콥터를 타고 시카고 시내에 있는 모튼솔트(Morton Salt) 빌딩으로 날아갔다. 보잉의 본사가 될 이 건물에서 최고 경영진을 포함한 500명 정도의 직원이 일할 예정이었다. 시카고강의 보트와 다리를 건너는 철로가 내려다보이는 본사 건물은 오페라 팬인 콘디트가 걸어서 시카고 오페라 하우스에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물론 단점은 시애틀과 1,700마일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경영본부가 본업(=비행기 제작)이 행해지는 곳과 너무 가깝게 있으면 그날그날의 업무에 말려들게 된다"는 게 당시 콘디트가 말한 본사 이전의 이유였다. 이 말 안에 현재(이 기사가 나온 2019년을 의미하지만, 2024년도 다르지 않다—옮긴이) 항공업계의 거인 보잉사가 처한 문제의 핵심이 담겨있다. 보잉 737 맥스 항공기의 문제는 20년을 거슬러 올라간 바로 그날의 결정, 즉 경영진이 보잉 고유의 문화와 결별하기로 한 결정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엔지니어들의 기업

보잉은 설립된 지 80년이 넘도록 사실상 엔지니어들의 연합체로 작동했다. 보잉의 경영진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었고, 비행기 날개를 디자인한 사람들이었다. 엔지니어링과 안전 이슈에 대해서 익숙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재무(finance)는 그들의 모국어가 아니었다. 심지어 보잉사의 회계 담당자들도 회계보다는 엔지니어링에 더 익숙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보잉의 CFO(최고 재무 책임자)는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과 만나지도 않았고, 사내에서 기본적인 재무 자료를 달라고 요청해도 "걱정하지 말라고 해"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말았다.

제작 중인 보잉 747 비행기 목업 앞의 엔지니어들 (이미지 출처: The Seattle Times)

하지만 기자가 2000년에 보잉을 방문했을 때는 이미 회사가 변하고 있었다. 보잉 필드를 내려다보는 콘디트의 사무실에는 그날의 보잉 주가를 의미하는 54송이의 흰 장미가 놓여 있었다. 이런 변화는 그보다 3년 전, 보잉이 맥도널 더글러스를 "역인수(reverse takeover)"하면서 시작되었다.

보잉이 맥도널 더글러스를 인수한 게 맞지만 사람들이 이를 '역인수'라고 부르는 이유는, 맥도널 더글러스의 임원들이 합병된 회사의 경영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 맥도널 더글러스의 문화가 보잉의 문화를 대체하게 된다. 당시 시애틀에서는 "맥도널 더글러스가 보잉의 돈으로 보잉을 인수했다"라는 농담이 떠돌았다.

물론 보잉의 CEO였던 콘디트는 합병 후에도 자리를 지켰고, 기자에게 자신이 특정 세력에게 "인질"로 "잡혀있다"라고 사람들이 하는 말은 무시하라고 했다. 하지만 맥도널 더글러스 CEO 출신으로 합병 후 보잉 이사회 의장이 된 스톤사이퍼는 딕 체니(Dick Cheney, 조지 W. 부시 시절의 부통령으로, 실권을 쥐고 있는 막후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옮긴이)를 연상시키는 인물로, 다른 사람의 비판을 받으면 거칠게 반격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스톤사이퍼는 맥도널 더글러스의 CEO로 일하면서 기업의 주가를 네 배나 끌어 올렸고, 그 비결은 무자비한 비용 절감이었다. 하지만 애널리스트들은 그의 비용 절감 노력은 기업의 미래 경쟁력을 약화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평가한다. 보잉의 부사장을 지낸 딕 알브렉트(Dick Albrecht)는 2000년 인터뷰 당시 "사람들은 추락하고 있는 회사를 운영하던 인물이 (보잉에 들어와서) 그렇게 큰 권력을 쥐게 되었다는 사실이 다소 의외라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그는 맥도널 더글러스에서 하던 비용 절감을 보잉에 똑같이 적용했다.

1997년 합병 당시 보잉의 CEO 필 콘디트(왼쪽)와 맥도널 더글러스의 CEO 해리 스톤사이퍼 (이미지 출처: Business Insider)

보잉사가 내세우는 슬로건도 바뀌어서, "A passion for affordabilty (경제성을 향한 열정)," "Less family, more team (가족보다는 팀)" 같은 문구들이 도입되었지만, 직원들은 반기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의 변화는 보잉의 화이트칼라 엔지니어 조합의 성격마저 바꿨다. 전문가들의 토론 모임처럼 운영되어 온 보잉의 엔지니어 조합은 바뀐 기업 문화 속에서 노동조합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2000년 40일간의 파업을 주도했던 보잉의 노조 간부는 "우리는 보잉을 상대로 싸운 게 아니라, 보잉을 살리기 위해 싸운 것"이라고 했다. 원래 보잉의 엔지니어들은 경영진을 만나면 자기 생각을 솔직하고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만 해도 시애틀은 지금처럼 대도시가 아니었고, 회사 밖에서도 엔지니어와 경영진이 마주칠 일이 적지 않았다. 따라서 합병 이후 회사의 변화로 불만이 쌓인 엔지니어들과 경영진이 마주치게 되니 즐거운 말이 오갈 리 없었고, 보잉의 새로운 경영진은 현대적이고 다원화된 기업의 임원들은 일반 직원들과 그렇게 쉽게 마주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결과, 최고의 엔지니어링 문화 중 하나였던 보잉의 기업 문화는 맥도널 더글러스식 사고방식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맥도널 더글러스의 임원 중 한 사람이 보잉의 최고 재무 책임자가 되는 일이 생겼고 (한 노조 임원은 이를 두고 "이 회사를 컨트롤하는 게 어느 쪽인지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했다) 본사를 시카고로 옮기겠다는 결정이 뒤를 이었다. 첨단 항공기업의 본사가 인쇄와 기차 제조, 정육업으로 유명한 시카고로 본사를 이전하는 건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었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보잉의 본사는 시카고에 있다.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는 "가지고 있는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넣고, 그 바구니를 잘 지키라"고 했지만, 보잉은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결정을 내렸다. 보잉의 방위산업 부문은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우주산업 부문은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에, 그리고 여객기 부문은 시애틀에 흩어 놓고, 이 세 부문을 멀리 떨어진 시카고에서 관리하기로 한 것이다.

보잉의 시애틀 공장에서 문제가 된 737 맥스 기종이 조립되는 모습 (이미지 출처: The Points Guy)

게다가 매출과 공장, 사무실 면적을 기준으로는 시애틀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본사 경영을 비행기 조종에 비유하면 파일럿이 창밖을 보지 않고 계기판에만 의존해서 비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들의 목표는 보잉의 기업 문화를 바꾸는 것이었다.

변화한 기업 문화

콘디트와 스톤사이퍼가 원하던 게 기업 문화를 바꾸는 것이었다면 그들은 분명히 목표를 달성했다. 디테일을 꼼꼼히 챙기기로 유명했던 보잉은 본사 이전 4년 만에 일련의 스캔들에 휘말리게 되었다. 보잉의 로켓 부문은 경쟁사인 록히드마틴으로부터 서류 2만 5,000페이지를 불법 입수한 것이 드러났고, 맥도널 더글러스 출신의 보잉 CFO는 미국 정부의 조달 관련 법을 어긴 혐의로 감옥에 갔다. 윤리 문제가 불거지자 콘디트는 CEO에서 내려왔고, 스톤사이퍼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맥도널 더글러스 CEO 출신으로 보잉의 CEO가 된 스톤사이퍼는 취임 직후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이 내가 보잉의 문화를 바꿨다고 말하는데, 맞다. 그게 나의 의도다. 나는 보잉이 '위대한 엔지니어링 회사(a great engineering firm)'이 아니라, 일반적인 기업(a business)처럼 작동하기를 원한다." 제네럴 일렉트릭(GE) 출신의 스톤사이퍼는 GE의 유명한 크로톤빌(Crotonville) 리더십 센터의 복제판을 만들어 보잉의 경영진을 훈련시켰다. 그랬던 스톤사이퍼가 회사 직원과 불륜을 저지른 것이 드러나 물러나게 되자, 역시 GE에서 경영을 배운 제임스 맥너니(James McNerney)가 그의 뒤를 이었다.

항공산업 애널리스트인 리처드 아불라피아(Richard Aboulafia)는 "수백 명의 본사 직원들이 (생산 공장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하고, 기술을 전혀 모르는 리더가 이들을 이끄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아니, 그런 경영 구조를 갖게 되었다고 해도 상업용 비행기 부문을 STEM(과학, 기술, 엔지니어링, 수학) 분야를 잘 아는 경험 많은 엔지니어가 이끌게 놔뒀다면 문제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맥너니는 세일즈, 마케팅, 공급망 관리를 하던 MBA 출신을 그 자리에 앉혔다. 업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결정이었다.

한때 재무용 언어를 사용할 줄 몰랐던 보잉은 이제 엔지니어링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법을 잊어 가고 있다.

2019년 에티오피아 항공의 보잉 737 맥스 항공기 추락 현장 (이미지 출처: Bloomberg)

아불라피아에 따르면 보잉이 잃은 것은 단순히 기술적 지식만이 아니고, 엔지니어들끼리 편안하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보잉 특유의 문화다. "한 엔지니어가 다른 엔지니어와 쉽게 대화를 나누며 자기가 우려하는 점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와 1,500 마일 떨어진 본사에서 엔지니어들의 퇴직금을 줄이는 데 혈안이 된 경영진에게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분위기의 차이다. 이 둘은 완전히 다른 다이내믹이다. 엔지니어들의 힘을 빼앗는 데 이보다 좋은 방법도 없을 거다."

외부로 유출된 사내 대화를 들여다보면 이렇게 엔지니어들과 경영진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게 된 것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알 수 있다. 보잉의 부사장 마이크 시네트(Mike Sinnett)는 아메리칸 에어라인의 파일럿들과 만난 자리에서 추락한 보잉 737 맥스 항공기의 MCAS(조종특성향상시스템, 여기에 쉬운 설명이 있다—옮긴이) 소프트웨어 시스템은 단일 장애점(single point of failure)을 갖고 있지 않다고 설명하면서, 그 근거로 MCAS가 오작동하면 파일럿이 백업(뒷받침)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단일 장애점, 단일 고장/실패점은 시스템의 한 요소가 고장을 일으킬 경우 시스템 전체가 멈추는 것을 의미한다. 여객기는 단일 장애점이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이중, 삼중의 백업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데, 조종사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부사장이 단일 장애점의 개념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운항과 관련한 모든 시스템에 겹겹의 백업 장치를 만들어 두는 보잉의 전통이 끝났음을 보여준 말이었다. 그러는 동안 보잉의 엔지니어들은 회사가 소프트웨어 개발을 대학을 갓 졸업하고 시급 9달러를 받는 개발자들—이들은 인도의 하청기업이 고용해서 시애틀 보잉 필드 건너편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일한다—에게 아웃소싱하는 모습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지켜만 봐야 했다.

보잉의 현 CEO 데니스 뮬렌버그(Dennis Muilenburg)는 사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고, 수익을 앞세워 회사를 망쳤다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아불라피아가 보기에는 비판의 초점이 틀렸다. "MCAS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어내느냐, 마느냐는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건 기업 문화의 문제다."

어떤 문제들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제대로 볼 수 있지만, 어떤 문제들은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인다. 보잉이 합병 후 본사 이전을 추진하던 2000년, 경영학자인 짐 콜린스(Jim Collins)는 기자에게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보잉의 매도널 더글러스 인수가 정말로 역인수였고, 맥도널 더글러스의 기업 문화가 보잉에 퍼지고 있다면, 보잉은 위대한 시절은 끝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다.

"보잉이 위대한 기업이 될 수 있었던 건 수익을 우선시하는 조직이 아니라, 엔지니어링을 우선시하는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보잉이 엔지니어링을 미션의 핵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흔한 회사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의 예언은 맞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