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아서 프랭크(Arthur Frank)의 책 'Letting Stories Breathe'에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속 등장인물 마드모아젤 부리엔느(Madmoiselle Bourienne)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결정을 내릴 때 자신이 읽거나 들은 이야기를 따른다고 주장하는 프랭크는 부리엔느가 인생에서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된 원인을 그가 과거에 들었던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물론 '전쟁과 평화'는 픽션이고 프랭크는 설명을 위해 톨스토이의 작품을 사용했을 뿐이지만, 사람들은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이 모르는 선택지를 고를 수 없다는 점에서 부리엔느의 예는 적절하다.

영화 '리플리(The Talented Mr. Ripley)'를 보면 한 사설탐정이 자신이 수사관이던 시절에 배운 교훈을 이야기하면서 "젊은 여성이 물에 빠져 숨졌다면 혹시 임신하지는 않았는지 살펴보라(When a girl drowns herself, find out if that girl is pregnant)"라고 배웠다는 말을 한다. 영화의 배경이 20세기 중반이고, 나이 든 탐정의 말이지만 우리는 그런 일이 드물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전통적인 작은 마을에 살던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임신했을 때 이를 중지할 방법이 없어 낳아야 한다면 그에게는 어떤 옵션이 있을까?

그 여성은 자라면서 그런 처지에 놓인 여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실제 일어난 일일 수도 있고, 그 문화에서 지어낸 교훈형 동화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장화홍련전(薔花紅蓮傳)에서 언니인 장화는 살해당하는데, 범죄를 숨기려는 범인이 만들어낸 얘기가 '임신과 낙태'다: "큰 쥐를 잡아 털을 뽑아서 장화의 이불 속에 넣었다가 꺼내어 좌수에게 보여 장화가 부정을 저질러 낙태하였다고 속이고, 아들 장쇠를 시켜 못에 빠뜨려 죽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미지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게 무슨 뜻이냐면, 젊은 여성이 물에 빠져 숨졌다면 사고일 수도 있고, 살인사건일 수도 있지만 죽은 여성이 임신한 상태였다면 누구나 자살이었다고 단정을 내릴 수 있을 만큼 그런 일이 흔했다는 얘기다. 조선시대의 소설에도, 1950년대에 나온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에도 같은 얘기가 나온다면 20세기 중반까지도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하게 된 여성들에게 자살은 드물지 않은 선택이었고, 근대 이전에는 훨씬 더 흔했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수영이 흔치 않은 사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 중 하나가 깊은 물에 뛰어드는 것임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고, 심지어 '전래동화'라는 이름으로 어릴 때부터 들어왔다면? 아서 프랭크의 말처럼 "스토리는 사람의 행동을 지휘한다." 특히 극심한 분노와 좌절처럼 격한 감정에 빠졌을 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그 문화에 익숙한 선택을 한다. 남성이 자신을 거부하는 여성을 공격하는 일은 모든 문화를 막론하고 일어나지만 그 공격 방법은 자신이 속한 문화를 따르는 게 그렇다. 여성 혐오는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지만 그것이 폭력으로 이어질 확률과 그 경우 선택하는 방법은 그 사회가 어디까지를 묵인하고 그 남성이 자라면서 어떤 문화에 노출되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가 사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미디어가 어떤 내러티브를 전달하는지 살펴보고, 문제가 있는 내러티브를 수정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TV가 임신 중지를 이야기하는 방법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미디어와 젠더, 인종을 연구하는 타냐 멜렌데즈(Tanya Melendez)는 현재 미국인들이 임신 중지(abortion)를 보는 시각 역시 이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흡수한 문화, 특히 TV에 등장하는 플롯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주장한다.

아래의 내용은 멜렌데즈가 2021년에 복스(Vox)에 게재한 글과 최근 NPR과 인터뷰를 한 내용에 기초하고 있다. 멜렌데즈의 주장을 자세히 알고 싶다면 여기여기에서 읽어볼 수 있다.

멜렌데즈에 따르면 TV 드라마 중에서도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의 멜로드라마에 등장하는 임신 중지는 임신 중지에 반대하는 쪽과 찬성하는 쪽의 의견이 맞서는 상황을 연출한 후에 과장되고 극적으로 다뤄졌다. 특히 작가들은 임신 중지를 '도덕적 문제(moral issue)'라는 틀 속에 넣고 갈등을 극대화해서 시청자들의 감정을 뒤흔드는 방법을 사용했다. 물론 이는 멜로드라마의 정의에 충실한 선택이겠지만, 과거에는 특별한 감정의 개입 없이 이뤄졌던 임신 중지가 멜로드라마의 소재가 된 것 자체가 하나의 내러티브적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거다.

위에서 이야기한 복스 기사는 버지니아 대학교의 사회학과 교수 안드레아 프레스(Andrea Press)의 논문을 인용해서 이렇게 말한다. "TV가 사용하는 도덕적 언어가 시청자의 도덕적 언어와 다를 경우 TV는 시청자가 생각을 바꾸도록 영향력을 행사한다." 즉, 미국인들은 임신 중지와 관련해서 TV 멜로드라마에서 사용한 틀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멜렌데즈가 분석한 세 가지 주요 임신 중지 플롯라인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플롯 1. "양쪽의 주장"

사례: The Facts of Life (1982), Cagney & Lacey (1985), Hill Street Blues (1985), St. Elsewhere (1986), 21 Jump Street (1988), China Beach (1990), Beverly Hills, 90210 (1996)

1980년대와 1990년대 미국 드라마에서는 인종과 젠더, AIDS, 섹슈얼리티, 약물중독 등의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서 어느 쪽이 옳은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고, 이 경우 '옳은 쪽'은 거의 예외 없이 진보적인 시각이고 사회가 앞으로 변화해야 할 쪽이었다.

멜렌데즈에 따르면 이런 태도에서 유일한 예외가 임신 중지였다. 이 주제가 나오면 등장인물들은 찬성과 반대, 양쪽의 시각으로 갈려서 두 의견에 같은 무게를 부여했다. 이렇게 할 경우 여성의 권리를 탄압하려는 쪽과 임신을 중지하려는 여성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착각을 갖게 한다.

대표적인 예가 'Cagny & Lacey'(1985)의 'The Clinic' 에피소드. 한쪽에는 임신을 중지하려는 여성과 의사, 그리고 주인공 레이시(Lacey)가 있고, 다른 쪽에는 임신 중지의 도덕적 문제를 제기하는 또 다른 주인공 캐그니(Cagny)와 신부, 임신 중지 반대 시위대가 있다.

'Cagny & Lacey'(1985)의 'The Clinic' 에피소드

어떤 이슈에서는 '양쪽의 주장'을 모두 듣는 것 자체가 잘못된 출발이다.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는 사람의 주장과 그 권리에 반대하는 사람의 주장은 동등한 무게를 가질 수 없고, 가져서도 안된다. 이는 남의 집에 침입한 사람이 집주인을 상대로 집안에 있는 물건을 두고 토론을 벌이자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

플롯 2. "아기가 만들어내는 드라마"

사례: Melrose Place (1992), Murphy Brown (1992), Beverly Hills, 90210 (1994), Roseanne (1994), Felicity (2000), Sex and the City (2001), Scrubs (2006), ER (2006), Weeds (2009), Sons of Anarchy (2010), Mad Men (2010), True Blood (2010)

멜렌데즈의 분석에 따르면 1990년대부터 2000대 초까지의 드라마에서는 과거와는 달리 페미니스트적인 태도를 조금 더 담아서 등장인물이 임신 중지의 권리를 표현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에피소드들이 나왔다. 하지만 이런 에피소드에서도 잔뜩 긴장을 고조시킨 후에는 여성이 아이를 낳기로 스스로 선택하면서 궁극적으로 임신 중지 반대의 손을 들어주는 결과를 낳곤 했다.

이 플롯의 문제점은 '위대한 모성애'와 '사악한 임신 중지'라는 이분법을 만들어낸 데에 있다. 대표적인 장면이 한국에서도 '로잔느 아줌마'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던 'Roseanne'(1994)의 'Thanksgiving 1994,' 'Maybe Baby' 두 에피소드. 주인공 로잔느는 여성의 선택권에 찬성하는 의견을 분명히 보였고, 그와 남편은 "태아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경우 임신 중지를 선택하자"라고 합의를 했지만, 오히려 "태아의 발달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의사에 말을 들은 후 마음이 흔들린다. 그리고 로잔느는 이렇게 말한다. "태아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었어. 원하면 임신 중지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항상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어."

결국 주인공 부부는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고, 아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이 태어난다. 말하자면 '선한 선택을 했더니 복을 받았다'는 해피엔딩이다. 'Decoding Abortion Rhetoric'의 저자 셀레스티 콘딧(Celeste Condit)은 이런 내러티브가 "임신 중지는 육아와 가정, 그리고 모성 같은 가치를 위협하는 존재라고 강조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멜렌데즈는 '로잔느 아줌마'의 에피소드가 "여성은 자연적으로 엄마가 되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임신 중지는 이를 막는 적이라는 사고를 만들어낸다"라고 비판하면서, 특히 "이런 이야기는 대부분의 임신 중지와 동떨어진 묘사"라고 말한다. "미국에서 임신을 중지하려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이미 아이가 있는 여성, 즉 엄마들이고, 그들은 원하지 않는 임신을 중단하려는 것일 뿐"이라는 거다.

플롯 3. "아슬아슬하게 탈출한 위기"

사례: Family (1980), Call to Glory (1984), Spenser for Hire (1985), Webster (1985), MacGruder and Loud (1985), Dallas (1985), 21 Jump Street (1988), A Different World (1989), Melrose Place (1992), Roseanne (1990), Party of Five (1996), Grey’s Anatomy (2005)

멜렌데즈는 위의 두 플롯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세 번째를 특히 나쁜(toxic) 플롯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는 등장인물이 임신을 중지할지 말지를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결국 임신 중지로 마음을 먹는데 실행에 옮기기 직전에 유산을 하거나 임신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서 임신을 중지하는 일을 회피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임신 중지에 반대하는 시청자들이 분노하게 되는 상황을 회피하고, 계속해서 주인공이 시청자의 사랑을 받게 하는 플롯이다.

이 플롯은 궁극적으로 여성에게서 선택권을 빼앗는 플롯이다. 그런데 이 플롯을 사용한 1980년대 드라마 '21 Jump Street'의 에피소드 타이틀이 '선택권이 누구에게 있지(Whose Choice Is It Anyway)?'라는 건 아이러니.

세 번째 플롯을 사용한 1980년대 드라마 '21 Jump Street'의 에피소드 'Whose Choice Is It Anyway?' 에피소드의 타이틀이 아이러니다.

멜렌데즈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서면서 변화가 생겼고, 이제 미국 TV 드라마에서 임신 중지를 다루는 방법은 많이 달라졌다. 특히 2010년대에 등장한 드라마들의 경우는 주인공들이 임신 중지를 결정하는 과정을 극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로 대 웨이드 판결의 뒤집히면서 상황은 또 한 번 달라질 위험에 처했다. TV가 이 문제를 어떻게 묘사하는지는 계속해서 중요한 문제로 남는다. 이야기가 세상을 보는 틀을 형성하고, 사고의 한계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