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온 후, 나는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과거에는 한국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었고, 그래서 미국에 있는 집 주변의 잔디밭을 제때 다듬을 수 없었다. 아이들은 어렸고, 아내는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여름에 잔디를 깎고, 겨울에 낙엽을 치우는 일을 업체에 맡겼다. 한국의 금잔디와 달리, 미국의 잔디는 가만 놔두면 엄청나게 빨리 자라기 때문에 한여름에는 1, 2주에 한 번은 깎아줘야 하고, 겨울에는 낙엽도 치우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내가 대부분 미국에 머물게 되면서 '잔디를 깎고 낙엽을 치우는 일 정도를 굳이 돈 주고 맡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 "야드 워크(yard work, 마당 일)"라고 부르는 그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장비를 갖춰야 한다. 작업의 핵심이 되는 잔디 깎는 기계, 깎여 나간 잔디 찌꺼기와 낙엽을 치우기 위한 낙엽 청소기(leaf blower)라는 장비, 그리고 잔디 깎는 기계가 처리하지 못하는 틈이나 가장자리의 풀을 처리하는 데 사용하는 트리머(trimmer), 이렇게 세 개는 이런 작업을 위한 최소 준비물이다.

그런데 장비를 사려고 들여다보니, 자동차 업계가 내연기관(ICE)에서 전기차로 바뀌는 것과 똑같은 일이 이런 야드 워크용 장비에 고스란히 일어나고 있었다. 20년 전만 해도 이런 장비들은 모두 휘발유 엔진으로 작동했다. 시끄럽고, 무겁지만 강력한 힘을 가졌기 때문에 지금도 (옛날부터 그런 장비에 익숙한) 60대 이상의 미국인들은 휘발유를 넣고 시동을 걸어야 하는 장비를 좋아한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전기 모터와 배터리를 사용한 새로운 장비를 선호하고 있었다.

휘발유 엔진을 사용한 낙엽 청소기(왼쪽)와 배터리로 작동하는 낙엽 청소기

각 방식에 장단점이 있었기 때문에 꼼꼼히 조사를 하고 내가 내린 결론은 '이 분야에서도 전기 모터와 배터리 기술이 충분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었다. 잔디밭을 가꾸는 일을 직업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굳이 휘발유를 넣는 무겁고 시끄러운 제품을 사야 할 이유가 없었다. 남은 건 어떤 브랜드를 사느냐는 것뿐이었다. 기기 간 배터리를 공유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에 모든 걸 한 브랜드로 사는 게 좋았고, 나는 이고(Ego)라는 브랜드로 통일했다.

그 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글이 있었다. 미국 전역에서 사용되는 엔진형 낙엽 청소기—내가 예전에 했던 것처럼 업체에 맡기면 대부분이 엔진형을 사용해서 치운다—에서 배출되는 탄화수소가 엄청나다는 내용의 뉴욕타임즈 칼럼이었다.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 같은 낙엽 청소기로 30분 정도 낙엽을 치우면 (내 경우 보통 한 번 작업에 걸리는 시간이 최소 30분에서 한 시간이다) 그 엔진에서 배출되는 탄화수소의 양이 포드의 F-150 랩터를 타고 텍사스에서 출발해 캐나다를 통과해 알래스카까지 달릴 때 배출하는 양과 같다는 얘기였다.

충격적인 정보였다. 역시 글은 이렇게 임팩트 있는 비유가 들어가야 한다는 교훈도 주지만, 어쨌든 그 글을 읽고 엔진형 장비를 살 수는 없었다. 그게 배출하는 매연도 결국 사용자가 들이마셔야 하는 거니까. 환경에도 좋고, 유지와 관리도 쉬운, 게다가 조용하고 가벼운 배터리 제품을 고르는 건 쉬운 결정이었다. 만족스러운 결론이었다.

하지만 환경과 기후 위기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아름다운' 얘기는 여기까지다.

그동안 환경보호론자들의 노력으로 F-150 랩터 같은 트럭이 얼마나 개선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내가 고른 브랜드는 물론이고, 비슷한 경쟁 모델들은 대부분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한다. 그리고 그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리튬과 구리, 니켈, 코발트 등 다양한 원료가 필요하다. 전기 배터리 이전에도 인류가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기후 위기에 직면한 인류 사회가 화석연료 사용을 회피하면서 그 수요가 폭발한 광물들이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이 광물들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100년 전, 공업화 선진국들이 혈안이 되어 석유를 찾아다닌 것과 다르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때보다 훨씬 더 조용하고, 더 복잡한 양상으로 벌어지는 전쟁이다. 어니스트 샤이더가 쓴 책 '광물 전쟁'의 원제가 The War Below, 즉 우리 발 아래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다.

이 전쟁이 석유를 둘러싸고 벌어진 전쟁보다 덜 치열한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100년 전만 해도 힘있는 나라가 식민지를 '소유'하는 것이 당연한 권리처럼 여겨지고 있었고, 석유를 가진 지역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었기 때문일 거다. 우리는 한반도가 자원이 부족한 땅이라고 한탄하지만, 만약 100년 전 한반도에 석유 자원이 풍부했다면 한국의 운명은 우리가 겪은 것보다 훨씬 더 끔찍했을지 모른다.

그에 비하면 리튬이나 희토류 같은 광물은 현재 중국이나 미국 같은 강대국들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물론 가난한 나라, 개발도상국가에도 코발트처럼 배터리 산업에 필수적인 광물이 많다. 여기에 대해서는 '콩고의 푸른 눈물'에서 다뤘다.) 지난주 '귀한 흙' 시리즈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희토류 싸움은 단순히 자원을 가진 나라와 못 가진 나라의 싸움이 아니다. 두 나라 모두 가진 자원임에도 불구하고 한 나라가 이 자원을 무기화할 수 있는 것이 광물을 둘러싼 전쟁이 흥미로운 이유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땅 밑에 있는 광물을 개발하지 못할까? '귀한 흙'에서도 소개했지만, 미국에 풍부하게 묻혀 있는 희토류나 리튬 같은 미래를 위한 자원들을 개발하는 데 따르는 온갖 부담 때문이다. '광물 전쟁'은 그게 얼마나 까다로운 문제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서문에서 '티엠의 메밀'(Eriogonum tiehmii)이라는 희귀한 야생화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1983년 네바다주의 식물학자 제리 티엠(Jerry Tiehm)이 처음 발견한 이 식물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 지역에서만 자란다. 희귀 식물 중에서도 희귀한 식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티엠의 메밀은 사막 지역 중에서도 리튬이 많이 매장된 땅 위에서만 자라기 때문이다. 생물학자들은 이런 희귀 생명체를 리튬에 혈안이 된 광산업자들이 멸종시키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한다. 북아메리카 최대의 리튬 매장지 위에 희귀 식물이 자란다는 것은 광산업자들에게는 저주와 같은 일이지만, 환경 파괴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축복이다. 특정 식물이 멸종 위기에 있는 종으로 지정될 경우, 서식지가 법적으로 보호받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만 자라는 티엠의 메밀

하지만 그 땅에 묻힌 자원은 석유가 아니라, 기후 위기에서 지구를 구할 수 있는 리튬이다. 리튬은 인류가 화석 연료 중독에서 벗어나게 도와줄 수 있는 필수적인 자원이다. 리튬을 꺼내기 위해 희귀 야생화가 멸종될 수도 있지만, 이런저런 반대에 부딪혀 인류가 화석 연료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래서 기후 위기를 막지 못한다면, 그 야생화는 물론이고, 훨씬 더 많은 동식물이 멸종될 수밖에 없다. 즉, 인류는 "소피의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선택은 단순히 '인류와 지구 환경' 대 '희귀 식물' 사이의 선택이 아니다. 그렇다면 많은 정부가 어렵지 않게 희귀 식물—그것도 1980년대까지는 있는 줄도 몰랐던 식물—을 포기할 거다.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미국의 경우, 이런 자원이 백인들이 원주민들을 몰아넣은 '인디언 보호구역' 혹은 그들의 거주지 안에 있다. 과거에는 그들을 이런 척박한 땅에 몰아넣고는, 이제 와서는 중요한 자원이 있으니 그 땅을 파헤치겠다고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희토류는 내몽고 자치주, 윈난성처럼 개발이 덜 된, 소득수준이 낮은 지역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주민이나 식물학자가 법에 호소해 기업의 행동을 막을 수 있는 미국과 달리, 중국에서는 부패한 지방정부 덕분에 주민의 피해를 무시하면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네바다주 사막에 있는 리오라이트 리지(Rhyolite Ridge)

저자 어니스트 샤이더는 오바마, 트럼프, 바이든 정권으로 이어지는 미국에서 자원 개발을 두고 정책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추적한다. 당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중국과 달리, 다양한 유권자의 이해가 충돌하고, 그런 유권자들에게서 표를 받아야 하는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이 자원 개발에서 단호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특히 기후 위기에 대응해서 대체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는 민주당이 환경보호론자와 원주민의 항의에 밀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모습은 단순히 미국이라는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이 문제를 둘러싼 인류 사회의 축소판이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인류라는 종 자체가 지구 환경을 망가뜨릴 수밖에 없는 존재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인류가 먼저 살아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한 완벽한 답을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물 전쟁'은 비관론적인 책이 아니다. 문제를 단순화하거나, 낙관론으로 포장하지 않고 복잡하고, 까다로운 이유를 모두 보여주기 때문에 읽으면서 비관적인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지만, 그 과정에서 이 문제를 풀어내려는 사람들의 노력을—환경론자는 환경론자대로, 광산업자는 광산업자대로—잘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광물 전쟁'의 저자가 저널리스트라는 게 큰 도움이 된다. 최대한 중립적인 위치에서 현장을 찾아 관련된 사람들과 며칠에 걸친 긴 인터뷰를 하면서 그들의 주장뿐 아니라, 그들이 사는 곳, 일하는 모습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며 독자에게 직접 판단하게 하는 미국식 저널리즘의 장점이 이 책의 강점이다. 이 책의 한국판 편집자가 나와 이메일을 주고받던 중에 "미국 저널리스트들은 어쩌면 이렇게 글을 잘 쓸까요"라고 말했을 만큼, 어려운 문제를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통해 들려준다.

당분간 트럼프 행정부와 시진핑의 중국이 광물을 두고 힘겨루기를 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지금, 이 문제에 대한 배경지식을 가장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 꼭 읽어 보시기를 추천한다.


이 책을 출간한 위즈덤하우스에서 오터레터 독자 열 명에게 책을 선물하기로 했어요! 원하시는 분은 댓글로 의사를 표해주시면 제가 한국 시각으로 목요일 오전에 추첨해서 발표하겠습니다. 응모하시는 분들은 목요일 이메일을 꼭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