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나리오 같은 상상을 하나 해보자. 인류가 거대한 재난에 직면했다. 수천만 명, 아니 수억 명의 목숨과 재산이 위험에 처하게 되었고, 상황이 얼마나 나빠질지도 알 수 없다. 그런데 누군가 해결책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 문제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 방법이 인류가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는 걸 확인했고, 대부분의 사람이 이걸 사용하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다. 아이를 한 명 죽여야 한다. 우리는 그 아이를 죽일 수 있을까?

최근 나온 미국의 어느 인기 드라마에서도 비슷한 설정이 등장한다. 어디까지나 픽션이고, 가정에 불과한 설정이지만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인류가 살기 위해 한 아이의 목숨을 빼앗는 일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농담이 아니라 윤리학자(ethicist)의 설명까지 곁들인 기사까지 나왔다.

언뜻 들으면 진노한 신을 달래기 위해 인신공양(人身供養)을 하던 고대 문명의 이야기처럼 들려도, 사실 사회의 생존과 편안함을 위해 아이들이 희생하는 일은 인류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고된 작업을 하던 십 대 노동자들이 뛰어내리는 걸 막기 위해 그물망을 치는 공장들이 아니었으면 스마트폰의 가격은 몇 배로 뛰었을 것이고, "스마트폰 혁명"과 이를 따라온 많은 "혁신들"은 아예 불가능했을 거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혁신의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새로 나온 책 'Cobalt Red (코발트 레드)'가 고발하는 내용은 아마도 한 번쯤 들어봤을 수 있다. 스마트폰과 전기차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재충전이 가능한 배터리에 들어가는 희귀광물 중 하나인 코발트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는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코발트가 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콩고 민주 공화국에서는 환경 파괴는 물론이고 사실상 노예 노동으로 이 광물을 채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몇 년에 걸쳐 콩고의 코발트 광산을 취재한 저자 시타르트 카라(Siddharth Kara)는 이렇게 설명한다.

"인류 역사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희생해서 이렇게 많은 이윤을 만들어낸 적이 없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은 물론이고 점점 더 많이 팔리는 전기차에는 들어가는 리튬이온 배터리에는 빠짐없이 코발트가 들어가고, 전 세계 코발트 공급의 4분의 3이 콩고에서 나온다. 그리고 콩고에서는 끔찍하게 위험한 환경에서 이 광물을 채굴한다. 세계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모르고 있다."

하지만 식민 통치와 노예 노동, 내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생산되는 광물 대부분이 원래 문제가 많은 '분쟁 광물(conflict minerals)' 아니었나?  코발트라고 해서 특별히 더 심각한 이유가 있을까? 이게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가졌던 생각이다. 나는 지하 4km까지 파들어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금광에 대해 읽어본 적이 있다. 섭씨 60도, 습도 95%의 환경에서 일하는 그곳 광부들의 (사실상의 노예) 노동을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깊지 않은 위치에 묻혀 있다는 코발트를 파내는 일이 도대체 얼마나 위험하길래?

21세기의 자원 코발트

먼저 코발트가 어떤 광물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노트북 컴퓨터, 심지어 전기자동차까지 많은 제품이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한다. 이 배터리의 장점은 재충전이 가능하다는 것만이 아니다. 과거에 나왔던 다른 재충전 배터리에 비해 충전 시간이 짧고, 안정적인데, 수명까지 길다. 그런데 리튬이온 배터리의 이런 장점은 코발트(cobalt)가 섞여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름이 암시하는 것과 달리 리튬은 7% 정도밖에 차지하지 않고, 코발트는 많게는 60%까지 차지하는데, 코발트를 넣지 않고 만든다면 지금보다 훨씬 자주 충전해야 하고, 쉽게 불이 붙는 위험한 제품이 된다.

크레파스나 물감에서 '코발트 블루(cobalt blue)'라는 걸 본 기억이 있을 거다. 코발트라는 단어를 들으면 파란색을 떠올리는 이유는 인류가 오래도록 이 광물은 파란색을 내는 염료로 사용해왔기 때문이다. 워낙 구하기 힘든 광물이어서 유럽에서는 파란색 이 나는 천은 귀족들만 입을 수 있었고, 그래서 '파란색=비싼 색'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코발트는 구리를 캐낼 때 광석에 붙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둘이 함께 붙은 광석을 heterogenite라 부른다) 아프리카, 특히 콩고 남부 지역의 구리 광산에서 코발트가 많이 생산된다. 20세기 말까지도 별로 찾는 사람이 없는 광물이었지만, 모바일 기기가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하면서, 그리고 무엇보다 전기차 보급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코발트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전기 자동차 한 대에 들어가는 정제된 코발트가 많게는 10kg이니, 인류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코발트가 필요할지 상상해 볼 수 있다. 업계에서는 2018년부터 2050년까지 코발트에 대한 수요가 500%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콩고에서 채굴하는 코발트 광석 (이미지 출처: NPR)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코발트를 생산하는 콩고(여기에서는 말하는 콩고는 콩고 민주공화국, DRC이다) 남부 지역에서 이 자원을 둘러싼 처참한 현실을 고발하는 책이다. 저자는 콩고의 코발트 광산 지대를 이렇게 설명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화석 연료의 3/4이 가로 400km, 세로 100km 정도 되는 지역에 모두 모여있다고 상상해보라. 그리고 거기에 존재하는 연료의 절반이 한 도시 주변에 묻혀있다면? 게다가 이 화석연료가 땅속 깊은 곳이 아닌, 지표면에 존재하고 있어서 누구나 삽 한 자루만 있으면 파낼 수 있다면? 이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 될 것이다. 초대형 화석연료 기업들이 몰려들 것이고, 그 주변 지역 사람들도 몰려와서 채굴을 시작할 것이다. 환경 보호는 부차적인 문제가 될 것이고, 지역 정부는 부패할 것이고, 이곳에서 나는 이익은 골고루 분배되지 않고 독식하는 사람들이 등장할 것이고, 이 지역에 살던 주민들은 비참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 이 광물이 코발트이고, 이 도시가 콩고의 콜웨지(Kolwezi)다."

풍부한 자원의 저주

이렇게 소중한 자원이 풍부하면 모두가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세상에 그런 곳이 없지는 않다. 노르웨이나 미국의 알래스카주에서는 석유로 벌어들이는 수익을 인프라 투자나 생활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사회로 환원한다. 하지만 이런 일은 민주주의 시스템이 잘 정착된 선진국에서나 가능하다. 콩고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독재자들의 리스트에서 레오폴드 2세는 히틀러 다음이다. (이미지 출처: Earthly Mission)

이 책에 따르면 콩고는 현대 문명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광물을 신기할 정도로 골고루, 그것도 풍부하게 가진 나라다. 1880년대 유럽에서 피아노와 틀니, 조각 등에 상아(아이보리)를 많이 사용할 때는 상아를 공급한 나라고, 1890년대 자전거와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타이어가 필요할 때는 고무를, 비누가 보편화되던 1900년대에는 팜유(palm oil)을 생산해낸 곳이다. 공업화가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던 1910년대에는 구리, 주석, 아연, 은, 니켈 등을 공급했는데, 이곳에서 채굴된 구리가 없었으면 1, 2차 세계 대전 때 총알이 부족했을 것이다. 금과 다이아몬드는 시대와 상관없이 채굴했고, 1940년대 인류가 핵무기를 갖기 시작할 때는 이곳에서 우라늄을, 그리고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탄탈럼(tantalum)과 텅스텐을 공급했다. 그러니까 2012년 이후로 콩고에서 재충전 배터리용으로 코발트를 채굴하는 건 이런 오랜 역사의 최신판일 뿐이다.

문제는 이런 모든 자원을 생산한 방식이 식민지 시스템이었다는 사실이다. 콩고를 처음 식민 지배한 사람은 벨기에 국왕 레오폴트 2세였다. 인터넷에서 "인류 역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인물"을 검색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람이 레오폴트 2세다. 그의 식민지배하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은 1,300만 명가량으로 추정한다. 당시 콩고 인구의 절반에 해당한다. 워낙 악명 높은 일이라 책과 다큐멘터리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가 자원 착취에 콩고인들을 동원하던 이야기는 너무나 잔혹해서 읽기 힘든 수준이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 손목을 자르는 행위가 그렇다.

아이들도 이런 잔혹 행위의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이미지 출처: All That's Interesting)

우리나라를 비롯해 식민 지배를 겪었던 많은 나라들이 2차 대전이 끝나면서 독립을 되찾지만, 콩고에 대한 (벨기에와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간섭은 계속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풍부한 자원을 가진 나라가 다른 세력과 손을 잡는 것을 허용하지 않은 거다. 외세의 간섭을 벗어나려 했던 민주주의 정치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서구 열강은 그런 지도자를 간단히 죽여버렸다. 그 결과, 콩고는 후진적인 정치 체제를 벗어나지 못했고, 코발트의 채굴과 수출로 벌어들이는 돈은 소수 지배 세력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콩고의 푸른 눈물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