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펜하이머(Oppenheimer)'에서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로버트 오펜하이머 박사가 해리 트루먼(Harry Truman) 대통령을 만나서 자신이 그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I feel I have blood on my hands")며 원자폭탄 사용의 도덕적 문제를 호소하는 장면이 나온다. 오펜하이머를 만나서 영광이라며 반기던 트루먼은 순간 표정이 변하며 이런 말을 한다. "후세 사람들이 누가 그 폭탄을 만들었는지 기억할 것 같소? 사람들은 누가 그 폭탄을 떨어뜨리는 결정을 내린 나밖에 기억하지 않을 거요."

트루먼의 말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만든 오펜하이머보다 투하를 결정한 자신에게 훨씬 더 큰 책임이 있으니 너무 자책하지 말라는 것일 수도 있고, "폭탄을 만들었다고 당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대통령은 나다"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위의 대사는 극중의 대사이지, 기록된 내용은 아니다.

그렇다면 실제 그들의 대화는 어땠을까?

해리 S. 트루먼(왼쪽)과 J. 로버트 오펜하이머 (이미지 출처: CNA)

백악관의 공식 기록은 아니지만, 다른 기록물을 보면 실제로 영화 대사와 비슷한 대화가 오갔다고 한다. 그 두 사람이 백악관에서 만난 건 일본의 항복 후 약 두 달이 지난 1945년 10월 25일이었다. 처음에는 즐겁게 시작한 대화가 소련의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두고 두 사람 사이의 의견 차이가 발생했고 (영화에서처럼 트루먼은 소련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했고, 오펜하이머는 소련에도 능력 있는 과학자가 많으니 가능하다고 했다) 뒤이어 오펜하이머는 앞서 인용한 "I feel I have blood on my hands"라는 말을 한다.

오펜하이머의 대표적인 전기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American Prometheus)'에 따르면 트루먼은 훗날 이날의 대화를 여러 버전으로 다르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신경 쓰지 마시오. 씻으면 없어질 거요"라고 대답했다고 한 적도 있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건네주며 "이걸로 닦으시오"라고 말했다고 한 적도 있단다. 정확한 표현은 무엇이었든, 트루먼은 오펜하이머의 고뇌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집무실 밖에서 대화를 들은 사람들에 따르면 트루먼은 (영화에서처럼) "내 손에는 당신 손에 묻은 것보다 두 배는 많은 피가 묻어있소!"라면서, 폭탄 만들었다고 괴롭다고 불평하고 다니지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 트루먼은 딘 애치슨 국무장관에게 "다시는 저놈(that son of a bitch)을 백악관에서 보고 싶지 않다"고 했고, 훗날 쓴 편지에서 오펜하이머를 가리켜 "징징거리는 과학자(cry-baby scientist)"라고 했다고 하니, 영화에 나온 장면은 특별한 과장이 없는 것 같다.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 투하는 히로시마 하나만으로도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히로시마 원폭 이후 3일 만에 나가사키에도 폭탄이 투하되자 충격을 받았다. 불필요하게 많은 사람의 목숨을 희생했다고 생각한 거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트루먼은 자신이 내린 결정에 도덕적 의문을 제기하는 과학자를 묵살한 대통령으로 보인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여기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정이 있다.

히로시마(왼쪽)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폭발 장면 (이미지 출처: Wikipedia)

트루먼은 원자폭탄의 투하를 직접 결정하지 않고 통보를 받았을 뿐이다. 당시 핵폭탄의 사용에 대한 결정 과정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고, 트루먼은 이 결정권을 군에서 백악관으로 가져오기 위한 긴 싸움을 시작한 사람이다.

아래의 내용은 2017년 라디오랩(Radiolab)에서 'Nukes'라는 제목의 에피소드로 소개한 것을 편집해서 옮긴 것이다. 이 이야기는 해롤드 헤링이라는 한 남자의 질문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해롤드 헤링의 질문

미국이 경제 대공황에 빠져있던 1936년, 미국 중서부 일리노이주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태어난 해롤드 헤링(Harold Hering)은 아이들이 무려 11명이나 되는 가난한 가정의 첫째였다. 헤링은 어린 시절부터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공군 비행기를 보며 공군 조종사의 꿈을 키웠다. 한 번 마음 먹으면 포기하지 않는 그의 성격 덕분에 공군에 입대해서 장교가 되었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그가 베트남에서 맡은 임무는 격추되어 추락한 미군기의 조종사 구조였다. 헬기를 타고 추락지점으로 날아가 구조요원들이 조종사를 찾아 끌어올리는 동안 헤링은 헬기를 공중에 대기시켜야 했다. 베트콩 병사들은 미군 헬기가 오면 구조 작업이 시작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격을 했기 때문에 무척 위험한 임무였다. 때로는 한겨울 차가운 바닷물에서 조종사를 구조해야 했다.

공군에서는 그런 일을 20대에 조종사에게 맡긴다. 조종사가 30대에 들어서면 공군 기준으로는 이미 나이가 많다고 생각해서 일선에서 물러나 사무직을 맡는 게 일반적이다. 해롤드 헤링에게도 그런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 찾아왔다. 1973년이면 아직 베트남전이 끝나지 않았지만, 헤링은 30대 중반을 넘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소련과의 냉전이 첨예해지고 있던 그 시점에 일선에서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좋은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미슬리어(missileer)라는 병과였다.

핵 미사일이 보관된 사일로에서 발사를 책임지는 미슬리어의 근무지는 지하에 있다. (이미지 출처: New York Post)

미슬리어란 미사일 발사를 책임지는 장교를 말한다. 지하 벙커에서 근무하면서 상부에서 명령이 내려오면 열쇠를 돌려 핵미사일을 발사하는 게 그들의 임무다. 이 일에 지원한 헤링은 임무 수행을 위한 교육을 받았다. 그가 받은 교육 내용에 따르면 "핵미사일 발사를 책임지는 미슬리어는 인류 역사의 어떤 장군보다 더 많은 화력을 직접 통제한다."

헤링은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밴덴버그(Vandenberg) 공군기지에서 교육을 받았고, 당시 대통령은 리처드 닉슨이었다. 그때만 해도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는 핵전쟁에 대한 공포가 엄청났었다. 사람들은 언제라도 핵폭탄이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고, 학교에서는 핵폭탄이 터질 경우 대응 방법을 가르쳤고, 자기 집 지하에 폭발과 낙진을 견딜 수 있는 벙커를 만드는 미국인들이 많았다. 그렇게 적국의 핵미사일이 날아올 경우 미군이 즉각 반격해야 했기 때문에 미슬리어의 책임은 막중했다. 명령 이해에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았다.

만약 상부에서 핵미사일을 발사하라는 명령이 내려오면 함께 온 암호를 해독하고, 공동 책임자(파트너)가 이를 확인한다. 그렇게 확인이 되면 함께 열쇠를 돌려 미사일을 발사한다. 이렇게 두 명이 함께 돌리게 하는 건 중요한 안전장치로, 한 사람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미사일이 발사되는 걸 막으려는 것이다. 게다가 둘 중 한 사람이 다른 책임자에게서 발사 열쇠를 빼앗으려 하는 상황에 대비해 항상 권총을 휴대해야 한다. 한 사람을 죽이고 열쇠를 빼앗아 돌릴 수도 없다.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동시에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헤링은 이런 엄격한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 절차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영화 '크림슨 타이드'에 나오는 핵 미사일 발사 암호 인증 절차 (이미지 출처: RPF)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미국이 핵공격을 받는 경우에는 반격으로 미사일을 발사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우리가 먼저 핵공격을 한다면 그런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도 똑같이 엄격한 견제와 균형이 작동할까?' 이게 헤링의 궁금증이었다. 헤링이 받은 교육 내용을 보면 모든 과정이 견제와 균형을 통해 철저하게 통제되는 게 보이지만, 대통령이 선제공격을 결정하는 단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그는 그 부분을 알고 싶었다. 생각해 보면 인류 역사에서 전쟁 중에 핵폭탄을 사용한 건 미국 뿐이고, 미국은 핵공격에 대한 반격으로 핵폭탄을 떨어뜨린 게 아니기 때문에 헤링의 의문은 충분히 의미 있는 것이었다.

헤링은 수업 중에 이런 질문을 해서 시끄럽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교관에게 다가가 이렇게 물었다.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발사를 명령할 수 없게 하는 안전장치도 있는 거 맞죠?" 최고 명령권자에게도 견제와 균형은 작동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말을 들은 교관은 잠시 말을 멈추고 헤링을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자네, 방금 한 질문을 종이에 적어주겠나?"

헤링은 그때 적은 질문을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There's presently a degree of doubt in my mind as to whether I might someday to be called upon to launch nuclear weapons as a result of an invalid, unlawful order. I asked myself, 'How will I know, or can I be sure I'm -- I am participating in a justifiable act? (저는 장래에 불법적이고 무효한 명령의 결과로 제가 핵무기를 발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지에 대해 현재 약간의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저는 '내가 이행하려는 것이 정당한 행위인지를 어떻게 알거나 확신할 수 있을까?'하고 저 자신에게 묻습니다.)"

미국 대통령 곁에는 핵무기 발사 코드가 들어간 "핵가방"(미국에서는 football이라는 별명이 붙었다)을 들고 있는 군인이 항상 따라 다닌다. (이미지 출처: NBC News)

그는 이런 질문을 적은 편지에서 명령을 받으면 반드시 이행하겠지만, 발사 결정을 내리는 대통령에게 어떤 견제와 균형이 주어지는지 모르기 때문에 명령을 수행하면서도 "양심의 갈등을 느끼게 될 것 같습니다"라고 하면서 '양심의 갈등(a conflict of conscience)'에 밑줄을 그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제가 대통령이라는 한 사람이 가진 가치를 맹목적으로 신뢰할 것을 요구받을 것입니다. 대통령의 가치는 그의 건강과 성격, 정치적인 고려 등을 포함할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This just should not be)."

참고로, 이 에피소드는 도널드 트럼프가 취임한 2017년에 만들어졌다. 당시 트럼프는 북한의 김정일을 향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며,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 같은 호전적인 말을 쏟아내고 있었고, 워싱턴에서는 트럼프가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는 독단적인 결정을 내릴 경우 그걸 막을 방법이나 절차가 있느냐는 질문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었다. 헤링이 1973년에 제기한 질문에 등장하는 대통령의 "건강과 성격, 정치적 고려"는 마치 2017년 미국의 고민을 예언한 것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미국의 대통령은 어떻게 선제공격을 어떻게 결정하는 걸까?


'미슬리어 ②'에서 이어집니다.